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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78화 (78/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78화

무구 산업에서 처음으로 패배한 바르무트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중소공방 연합.

그리고 그들의 후원자가 되기를 자처한 순례교.

심상치 않은 잠재력을 지닌 새로운 단체의 등장에 영웅 업계 전체가 술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바벨은 다른 일로 술렁이고 있었는데, 바로 일주일도 남지 않은 ‘토벌 실습’ 때문이었다.

“이번에 어디로 가는지 들었냐?”

“검은연꽃 수해로 간다며. 거기 진짜 싫은데.”

“탐지 도구나 확실하게 챙겨둬. 예전 선배들 중에 길 잃어서 실습 망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야.”

이번 실습지로 정해진 곳이 검은연꽃 수해라는 것이 밝혀지자 필수로 참가해야 하는 아칼쿠프와 우르의 신입생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보들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위험지역.

난이도가 어려운 만큼 조금만 활약해도 점수를 딸 수 있겠지만, 반대로 조금만 실수해도 실습을 망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번 실습 어쩔 거야?”

“쉬운 곳이면 가볼까 했는데 빠지려고. 괜히 다쳤다가 다른 시험 망치면 바로 병동행인데.”

“하긴. 나도 그냥 빠져야겠다.”

반면 본인 선택으로 참가하는 보르시파의 신입생들은 까다로운 장소가 나오자 마음 편하게 불참을 선언했다.

기술직인 그들에게 토벌 실습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부분.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가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도들이 저마다 실습과 과제를 준비하며 바쁘게 공부하고 있을 때.

“좀 더! 피를 쥐어짜!”

“끄악!”

이세훈은 제이크의 검지에서 피를 마구 쥐어짜고 있었다.

푸슈욱!

흘러나온 피가 대야에 가득 찬 마석액에 떨어져 잠겨 있던 워터골렘의 핵 안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우우웅!

이전보다 더욱 검붉어진 상태로 빛을 워터골렘의 핵.

대야에 담긴 마석액이 그 빛에 맞춰 출렁이는 것을 본 이세훈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진짜 조금만 더 뽑으면 돼!”

“지금 그 말만 벌써 10번…… 끄아악!”

제이크의 쓸데없는 말을 무시한 채 다시금 피를 짜냈고, 잠시 후 워터골렘의 핵이 갑작스럽게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심상치 않은 떨림이 일어나기 시작한 그 순간.

슈와아악!

대야에 담겨 있던 모든 마석액이 워터골렘의 핵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석액을 빨아들이며 검붉은 색에서 본래의 푸른색으로 돌아가는 워터골렘의 핵.

그 변화에 이세훈이 비실거리는 제이크에게 소리쳤다.

“지금이야! 부어!”

대야 옆에 준비되어 있던 플라스틱 통의 뚜껑을 따고 대야에 부어 넣는 두 사람.

한 통에 어림잡아 천만 원은 가볍게 넘기는 마석액.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이세훈과 제이크는 그것을 무려 일곱 통이나 쉬지 않고 들이부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마석액을 빨아들이던 워터골렘의 핵이 본래의 푸른색으로 돌아온 순간.

채앵!

청명한 금속음과 함께 그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까드득 까득

안쪽에서부터 사방으로 솟구쳐 나오는 푸른색 수정.

주먹만 한 구슬에서 십자 형태의 수정 덩어리로 변한 워터골렘의 핵에 제이크가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숙성이 끝나서 워터골렘의 핵이 완전히 변이된 거야. 주재료가 네 피였으니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광석으로 변한 거지.”

“하나밖에 없는…….”

제이크가 홀린 듯이 새로운 광석을 보고 있을 때. 이세훈이 조심스레 대야에서 꺼내 수정 덩어리를 살펴보았다.

‘새어 나오는 마력도 없고…… 내부에 회로도 정상적이네. 설계해둔 대로 잘 됐어.’

이번 무구는 틀만 준비해두고 재료가 자연스럽게 변이되도록 만들어야 했기에 변수가 상당히 많았다.

특히 주재료로 쓰인 제이크의 피가 가장 문제였는데 다행히 별 탈 없이 변이가 완료된 것이다.

“손질할 테니까 조금 떨어져 있어.”

“알았어.”

제이크가 뒤로 물러나고 이세훈은 아공간 포켓에서 레아가 인챈트해 준 백광비수를 꺼냈다.

우우웅

비수의 날에 맺히는 새하얀 예기. 거기에 이세훈은 자신의 백광류까지 더해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사아악

날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단단해 보이던 수정 조각들이 부드럽게 잘려나간다.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본 제이크가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저 기술…… 전보다 더 탄탄해진 것 같은데.’

맺혀 있는 예기도 흔들림 없이 안정적이고 무엇보다도 안쪽이 꽉 들어차 있는 듯한 ‘밀도’가 느껴졌다.

‘이전에는 검기를 흉내만 냈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가까워진 느낌인가.’

심상치 않은 변화에 제이크가 진지한 눈으로 살피고 있을 때. 이세훈 역시 백광비수의 예기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왜 이렇게 잘 먹혀?’

전보다 그리 집중하지 않았는데도 백광류의 예기가 날카롭게 벼려진다. 의문을 느낀 이세훈은 체내에 움직이는 마력을 살펴보았고 금방 그 원인을 알아차렸다.

‘……천충검?’

눈대중으로 습득하게 된 마광수의 비전검법.

그 천충검의 운용법이 백광류를 사용할 때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기반을 다져주고 있는 것이다.

‘흐음…… 생각해 보니 둘이 비슷한 부분이 있기는 하네.’

백광류는 자신이 만들어냈던 검의 예기를 흉내 낸 기술이었고 천충검은 체내의 마력을 검으로 벼려내는 기술이었다.

똑같이 ‘검’이라는 사물을 중심으로 삼고 있는 기술. 그 공통점을 깨닫게 된 이세훈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잘하면 엮어볼 수 있겠는데.’

흥미가 생긴 이세훈은 무의식중에 사용하고 있었던 두 스킬을 좀 더 긴밀하게 연계시켰다.

스아악

새하얀 예기가 더욱 가늘고 예리하게 뻗어 나갔고 수정을 깎아내리는 손이 빨라진다.

조금이나마 느껴졌던 저항감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는데 밑으로 한 번이라도 삐끗하는 순간 수정 덩어리와 함께 잡고 있는 손가락을 잘라버릴 것 같았다.

‘좋아. 딱 이 느낌이야.’

하지만 이세훈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좋은 도구를 얻었다는 듯이 예기를 가다듬는데 박차를 가했고, 제이크를 위한 검이 조금씩 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사삭

40cm 정도 되는 긴 손잡이와 30cm 정도 되는 가드. 검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15cm 정도 되는 뼈대가 솟아 있었는데 검보다는 푸른색 수정으로 만든 십자가처럼 보였다.

“…….”

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독특한 형태. 하지만 제이크는 실망하기보다 가슴이 점점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이상했지만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은 것 같은 익숙함과 그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게 내 검이구나.’

아직 만져보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레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제이크가 두근거리는 가슴과 빈혈로 인한 현기증을 느끼며 마지막 칼질을 바라보았고.

우웅!

푸른 십자가로부터 찬란한 빛이 뻗어 나왔다.

[무구 ‘휘광검輝光劍’이 완성되었습니다!]

[뛰어난 대장장이가 오직 한 검사만을 위해 만들어낸 검! 완벽한 검을 위해 새로운 광석마저 만들어낸 실력과 창의력은 갈채를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판정 결과 ‘휘광검’의 등급은 ‘영웅’입니다]

[스킬 ‘백광류(C)’가 스킬 ‘천충검(S)’에 흡수됩니다.]

“……어?”

연달아 떠오른 알림창을 훑어보던 이세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백광류가 천충검에 흡수되다니?

회귀 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상황에 이세훈은 곧장 천충검의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천충검淺充劍] 『S』

체내에서 가공한 마력을 검으로 빚어내는 검술.

전신의 모든 힘을 검기를 형성하는 데 사용하며 일반적인 검기보다 더욱 날카롭고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체내에 완성된 검이 존재할 경우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형성해낼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의 효능은 아직 습득하지 못했습니다.

*사용하는 마력에 따라 검기의 성질이 달라집니다.

*검기를 사용할 때마다 신체의 피로가 누적됩니다.

*현재 완성된 검 : [백광白光]

‘검을 만들어내는 기술로는 자기가 위다 이거구만.’

천충검이 백광류의 완벽한 상위호환이었기에 벌어진 현상. 그 구조에 이세훈이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을 때.

“크흠!”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이크가 크게 헛기침했다.

“다 끝났으면 나도 좀 보면 안 될까? 이러다가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아서.”

얼마나 흥분했는지 방금까지 창백하게 물들었던 얼굴에 생기가 감돈다. 그 들뜬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휘광검을 내밀었다.

“자 봐봐.”

“고, 고마워.”

혹시라도 부러질까 봐 조심스레 휘광검을 건네받은 제이크는 긴장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살펴보았다.

[휘광검輝光劍]

[등급 : 영웅] [품질 : 중상]

특수한 수정을 가공하여 만들어낸 검.

마력을 소모하여 ‘결정수’를 생성할 수 있으며 손잡이에 압력을 가해 검신으로 빚어낼 수 있습니다.

대기 중의 마력과 수분을 흡수하여 검신을 강화할 수 있으나 그 크기에 따라 마력과 정신력이 추가로 소모됩니다.

*마력을 소모하여 ‘결정수’를 생성합니다.

*대기 중의 마력과 수분을 흡수하여 검신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단, 힘이 커질수록 마력과 정신력 소모가 증가합니다.

*스킬 ‘청휘성靑輝星’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휘광검의 정보창을 읽은 제이크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본래 희귀 등급인 워터골렘의 핵을 사용해 영웅 등급 중상품의 무구로 만들어 내다니.

물론 숙성 과정에 사용한 마석액의 양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재료보다 한 등급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은 엄청난 성과였다.

‘아직 1학기도 안 끝났는데 영웅 등급의 무구를 혼자서 만들었다는 게 알려진다면…….’

교류회 이후 나날이 올라가는 이세훈의 명성에 날개를 달아주다 못해 아예 폭발시키지 않을까.

경쟁자를 늘리기보단 최대한 비밀로 하기로 다짐하며 제이크는 조심스레 휘광검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았다.

우웅─

제이크의 손에 쥐어지자 희미하게 떨리는 휘광검.

두 손과 손잡이가 마치 한 몸이라도 된 것처럼 착 달라붙었으며 체내의 마력이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스며 들어갔다.

“우와…….”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촉에 제이크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본가에 있으면서 수백, 수천 자루의 검을 쥐어봤지만 이런 감각을 느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내 몸처럼 느껴지네.’

뛰어난 장인이 만들어준 무구는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이 자신의 몸처럼 느껴진다던데 그게 딱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끼며 제이크가 떨리는 눈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이, 이제 어떻게 할까?”

“일단은 꽉 움켜쥐어봐.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

“아,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 제이크는 휘광검을 다시금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검이라 해도 자신이 제대로 쥘 수 없다면 결국 달라질 게 없다.

조금이라도 힘을 가하는 순간 부서질 것 같아서 무서웠지만 제이크는 마음을 굳게 다졌다.

‘믿자.’

이세훈의 실력. 막대한 재료비. 그리고 자신의 피까지!

그 모든 것을 믿기로 결심한 제이크는 두 눈을 빛내며 전력을 다해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파앙─!

두 손안에 남아 있던 공기가 폭발하듯 밀려 나오고 주변의 마력이 비틀리며 풍경이 잠시나마 일그러진다.

이세훈과 대련한 이후 처음으로 발휘한 전력에 제이크는 반사적으로 감았던 두 눈을 천천히 떴다.

“오오…….”

부서지기는커녕 금 하나 가지 않은 채 멀쩡한 손잡이.

보고도 믿기지 않는 그 광경에 제이크는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가문의 다른 형제와 사촌들이 7살부터 검을 쥐며 수련하고 있을 때. 오직 자신만이 목검도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했다.

검술명가로 알려진 가문 안에서 느꼈던 소외감. 드디어 거기서 한 발자국 벗어났다는 사실에 제이크는 눈시울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고맙다. 진짜로…….”

진심이 가득 담긴 감사 인사. 그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턱으로 비어 있는 검신 쪽을 가리켰다.

“감사 인사는 다 보고 난 다음에 해.”

“아아. 그래야지.”

씩 웃은 제이크가 휘광검에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자 가드의 위쪽으로 푸른 광택이 맴도는 결정수가 솟구쳤다.

녹은 유리를 보는 것 같은 질감. 거기에 제이크가 손잡이를 힘껏 움켜쥐자 결정수가 떨리더니 압축되어갔다.

까드득─

부피가 줄어들며 점점 날카롭게 벼려지는 검신. 그리고 그 안쪽으로 푸른빛이 차오르더니 완전한 휘광검이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와…….”

유리처럼 투명한 검신과 그 안에 별처럼 반짝이는 푸른색 마력. 검보다는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모습에 제이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거라면…….’

가문의 계승식도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낀 제이크가 곧장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이제 고맙다고 해도 돼?”

“뭐, 그 정도면 받아도 되겠네.”

“진짜 고마워. 보수는 절대 섭섭하지 않게, 아니, 너무 과하다 싶을 만큼 줄게.”

두 눈을 빛내며 이야기하는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나한테 과하다는 소리 들으려면 좀 힘들 텐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트비히 학원장만큼 퍼줘야 할 텐데 과연 제이크의 호주머니에서 그만큼 나올 수 있을까.

비교 대상이 누구인지 모르는 제이크는 코웃음 치며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이래 봬도 어디서 돈이 모자란 적은…….”

우우웅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 그에 재빠르게 휴대폰을 꺼낸 제이크는 발신자를 보고는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전화 좀…… 예, 누님. 전화 받았습니다. 예…… 안 그래도 방금 막 전화 드리려고…….”

휘광검을 해제해서 집어넣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전화를 받는 제이크. 누가 보면 영상통화라도 하는 듯한 그 모습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애를 개 잡듯이 잡았으면…….’

이세훈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제이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예? 아니, 굳이…… 아뇨…… 넵……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제이크가 고개를 돌리더니 슬쩍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그……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고 필사적으로 강조하는 제이크. 그 안쓰러운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뭔데?”

“나랑 같이 우리 가문 별장에 좀 가줄 수 있을까?”

“별장?”

이세훈의 물음에 제이크가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님이 너도 계승식에 초대하고 싶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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