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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85화 (85/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85화

새로운 규칙이 발표된 뒤, 검은연꽃 수해에 흩어져 있던 생도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결국 에어리어 보스를 누가 잡느냐로 1위가 갈리겠구만.”

“그놈 맷집만 튼튼하지 느려터졌다며. 그러면 내 밥이지.”

최상위권이거나 화력에 자신 있는 생도들은 에어리어 보스가 나타날 연꽃의 무덤으로.

“어차피 최상위권은 글렀으니까 빈집이라도 털자.”

“안쪽에 몬스터들도 많다니까 잘하면 상위권도 노려볼 수 있을 거야.”

에어리어 보스를 상대로 활약하기 힘든 생도들은 연꽃나무를 파괴하기 위해 안개숲으로.

“괜히 무리하다가 탈락하면 그게 더 손해야.”

“그냥 하던 대로만 하자.”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담감을 느낀 생도들은 처음과 같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몬스터 토벌을.

본인의 실력과 성향에 따라 목표를 잡고 움직이는 생도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쟁이 심화되기도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격렬해진 것이 바로 안개숲이었다.

“연꽃나무부터 찾아!”

“잠깐! 여기 우리가 먼저 왔어!”

“어쩌라고! 달려!”

안개숲의 보상 조건은 어디까지나 연꽃나무를 파괴하는 것.

그렇기에 몇몇은 몬스터를 무시한 채 달리는 전략을 선택했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생도들도 덩달아 달리기 시작했다.

“어? 여기가 어디…… 컥!”

“낭떠러지다! 멈……!”

하지만 본래도 가혹했던 수해의 환경에 오감차단의 효과를 지닌 안개까지 더해진 상황.

3m도 안 되는 가시거리에 보이는 것들조차 오감에 혼란이 생겨 실제 위치와 다르다 보니 제대로 피하지도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모, 몬스터다!”

“이놈들 안개 속에서 저격하고 있어!”

거기에 몬스터들까지 안개를 이용해 공격하니 만만하게 생각하고 들어왔던 생도들은 그야말로 지옥을 경험했다.

들어올 때와 달리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 안개숲. 그 미로에서 생도들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헤매고 있을 때.

투웅─!

이세훈을 업은 제이크가 안개를 가로지르며 내달렸다.

울퉁불퉁한 나무뿌리를 정확히 밟고 쓰러진 나무를 뛰어넘으며 낭떠러지 끝에서 박차고 뛰어올라 빽빽하게 자란 나무 위를 능숙하게 내달린다.

안개 속을 완벽히 꿰뚫어 보는 듯한 움직임. 다른 이들이 본다면 절로 감탄할 광경이었지만, 정작 달리고 있는 당사자는 달랐다.

“저쪽.”

“크윽?!”

등에 업힌 이세훈이 어깨를 툭 건드린 순간. 앞으로 달려나가려던 제이크의 몸이 오른쪽으로 급격히 틀어졌다.

후웅!

아슬아슬하게 볼을 스치고 지나간 몬스터의 가시. 잘못하면 눈에 맞았을 수도 있는 절로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제이크는 놀랄 틈도 없었다.

툭 우득! 툭 콰득!

이세훈의 손가락이 어깨를 두드릴 때마다 몸이 휙휙 움직이며 장애물을 아슬아슬하게 피했고, 그 대가로 온몸의 근육과 뼈가 살려달라며 비명을 내지른다.

“크윽…… 컥……!”

이 정도면 그냥 자신을 고문하려고 업어달라고 한 것이 아닐까. 계속되는 고통에 제이크가 정신을 못 차리자 이세훈이 엄격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뭐 해. 집중하라니까?”

“너무…… 아파서…….”

“어중간하게 근육을 쓰니까 아프지. 혈류에만 집중해.”

“…….”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제이크는 나쁜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쉬우면 누가 이런 고생을 해……!’

전신에 뻗어 있는 수많은 혈관을 하나하나 의식해서 조종하여 달리기 위해 필요한 근육을 움직이게 만든다.

마력의 분배. 혈압의 조정. 근육의 순서 등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수많은 과정이 찰나의 순간에 완벽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두근─!

그나마 심박이라도 느렸으면 모를까 앞선 전투와 혈술로 인해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는 상황.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렇게 달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자자. 아직 가려면 멀었어.”

툭툭툭

“아악!!”

무심하게 어깨를 두드리는 이세훈과 비명을 내지르며 달리는 제이크.

겉보기에는 제이크만 혹사당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세훈도 마냥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웅

흑백으로 바뀐 시야와 회색빛으로 물든 숲의 광경.

생명체의 마력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투안을 사용해 이세훈은 안개 너머로 대략적인 지형, 그리고 숨어 있는 몬스터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저쪽은 안 되겠…… 이런.’

그렇게 움직일 방향을 막 정한 찰나. 제이크가 눈앞의 장애물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본 이세훈은 재빠르게 어깨 쪽에 뭉쳐 있는 흑령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웅웅─

그 순간 제이크의 몸 곳곳에 연결된 흑령사로 마력이 퍼졌고, 잔뜩 예민해져 있던 혈류들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뚜둑!

“악!!”

눈앞까지 온 장애물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한 제이크의 몸.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명색에 학과수석이라는 놈이 이리 어설퍼서야.’

기껏 해봐야 C급 위험지역의 자연결계. 게다가 오감차단이라는 단순한 효과인 만큼 조금만 신경을 가다듬으면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좀처럼 안개에 대응하지 못했는데 혈술에 신경 쓰느라 바쁜 것도 있지만 실력에 비해 감각이 둔한 탓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신체 능력이 좋아서 위기에 둔해진 거겠지. 주변 환경도 좋고 좀 단련시켜줄까.’

본래 감각이란 위험한 상황을 자주 겪을수록 예리하게 연마되는 법. 본래 안전한 길로 안내하던 이세훈은 ‘약간’ 위험한 대신 빠른 길로 루트를 수정했다.

“잠깐 길이 뭔가…….”

“또 온다. 피해!”

우드득

“끄아악!”

외곽지역에서 헤매는 생도들과 다르게 눈 깜짝할 사이에 안개숲의 중심을 돌파하는 두 사람. 그렇게 쉴 새 없이 내지르던 제이크의 비명 소리가 점점 사라져갈 때쯤.

투웅!

두 사람이 안개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허억…… 허억…….”

초췌해진 얼굴로 숨을 고른 제이크는 시야가 탁 트인 눈앞의 공터를 바라보았다.

중심에 자라나 있는 30m 정도의 거대한 나무.

맨 위쪽에는 거대한 연꽃이 활짝 피어 있었는데 그 중심부에서부터 안개가 흘러나와 주변으로 퍼지고 있었다.

“저게…… 연꽃나무……?”

“그런가 보네.”

제이크의 등에서 내려온 이세훈은 공터를 둘러싼 안개를 살펴보았다.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잖아……?’

연꽃나무는 안개숲을 유지하는 핵.

그렇기에 지능이 높은 수해의 몬스터들이라면 이 주변을 지켜야 정상인데 어째서인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생도들이 동시에 많이 들어와서 그런가.’

묘한 이질감에 이세훈이 의미심장하게 보고 있을 때. 어느 정도 숨을 돌린 제이크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처리할 거야?”

“네가 베어야지. 실력 점검하기 딱 좋잖아.”

오색화도로 도끼질하듯이 베는 방법도 있지만 체력 소모가 심하니 여기선 힘 좋은 녀석을 부려먹는 게 가장 편하다.

이세훈의 대답에 제이크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것 때문에 일부러 안개숲에 온 거야?”

“……그런 거지.”

그냥 신목도 깨울 겸 굴리려고 데려온 거지만, 굳이 그걸 말해서 분위기를 깰 필요는 없다.

이세훈의 대답에 방금까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던 제이크가 힘차게 휘광검을 뽑았다.

“좋아. 맡겨만 둬.”

연꽃나무의 앞까지 다가간 제이크는 자신이 베어야 할 나무를 살펴보았다.

높이 30m에 둘레는 어림잡아도 40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굵직한 연꽃나무.

수해의 생물답게 상당한 내구도를 가지고 있을 테니 불완전한 휘광검으로 얼마나 잘라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아까처럼 적당히 힘 빼고 휘두르면 안 돼. 전력이야.”

“알겠어.”

고개를 끄덕인 제이크는 가볍게 숨을 고르며 휘광검을 쥔 두 손을 오른쪽 아래로 내렸다.

사선베기를 준비하는 기본적인 자세. 호흡을 고르는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곁에서 조언했다.

“심박은 좀 더 가속시키고 의식은 가라앉혀.”

뜨거운 것에 손이 닿으면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자신의 힘을 억제해 버리는 제이크.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무의식을 바깥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근육이 아니라 피로, 전신의 모든 반응을 인지해서 무의식적인 반응까지 제어하는 거야.”

이세훈의 조언을 들으며 제이크는 모든 의식을 혈류에 집중시킨 상태에서 그 움직임을 더욱 가속하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안 그래도 빠르던 심박이 몸을 터뜨릴 것처럼 빨라졌고 심장부터 손끝까지 움직이는 피의 흐름이 선명히 느껴진다.

그리고 휘광검을 쥔 두 손안으로 평소보다 많은 혈액이 있는 힘껏 밀려 들어간 순간.

까드득

푸른 섬광이 제이크의 눈앞을 갈라냈다.

파카앙!

팔을 휘두름과 동시에 산산이 조각나는 푸른 검신.

눈앞에 흩어지는 결정에 아무것도 맺혀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제이크가 방금 베어낸 연꽃나무를 바라보았다.

쿠구궁

나무 밑동이 약 70%가 잘려나간 연꽃나무.

처음에는 가늘게 시작됐던 자국이 끝에 갈수록 거칠고 커져 갔는데 불완전하게 생성된 검기로 인한 흔적으로 보였다.

“큭…….”

그 모습에 제이크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처음에는 분명히 힘이 제대로 모였지만 얼마 안 가서 도망치듯이 몸 곳곳으로 흩어졌던 것이다.

‘도대체 뭐 때문에…….’

무엇이 두려워서 지레 겁을 먹고 힘을 풀어버리는 것일까. 제이크가 분한 표정을 짓자 이세훈이 어깨를 두드렸다.

“도중까지 나쁘지는 않았어. 좀 더 연습하면……?”

제이크를 위로하며 연꽃나무의 틈새를 바라보던 이세훈이 그 안쪽에서 보이는 물건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것처럼 보이는 꼭두각시. 연꽃나무에서 나올 수 없는, 나와서는 안 되는 그 물건에 이세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이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틈새 안쪽에서 그 물건을 빼냈다.

투둑!

무언가 끊어지는 감각과 함께 손아귀에 쥐어진 물건. 그와 동시에 주변을 둘러싼 안개들도 조금 옅어졌는데 그 반응에 이세훈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이거…… 인형사의 괴뢰傀儡잖아.’

인형사가 몬스터들을 조종할 때 사용하는 소모품. 그 정체를 떠올린 순간 이세훈의 머릿속으로 몇 가지 정보들이 새롭게 보였다.

갑작스러운 에어리어 보스의 등장. 수가 줄어들기라도 한 것처럼 잘 보이지 않던 몬스터들. 그리고 연꽃나무, 신목의 뿌리를 조종하고 있던 인형사의 괴뢰.

‘이 새끼들 설마…….’

마치 검은연꽃 수해 전역을 조종하고 있는 듯한 상황. 진상에 다가선 이세훈이 다급히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망토의 엠블럼을 붙잡았고.

콰아아앙!

저 멀리, 땅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거대한 나무가 수해의 위로 솟구쳐 올라왔다.

***

치직

“……음?”

귓가에 들린 잡음에 바쁘게 모니터링하던 조교가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로비의 풍경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고 모두 생도들의 전투를 살피고 있었다.

‘잘못 들었나.’

그 모습을 본 조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시선을 돌리려던 순간.

“어.”

자신처럼 주변을 둘러보던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

“…….”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감각. 두 사람 중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총책임자인 카사르를 부르기 위해 고개를 돌렸고.

후웅!

터미널 로비에 떠 있던 모든 화면이 사라졌다.

검은연꽃 수해 전역에 설치해둔 그 수많은 설비가 한순간에 먹통이 되었다.

자연적으로 볼 수 없는 그 상황에 교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긴급사태 발생!”

“당장 강제전이 장치 가동해!!”

매뉴얼에 따라 교직원들이 재빠르게 움직였고 곧이어 터미널을 중심으로 거대한 파동이 터져 나왔다.

파아앙─

눈 깜짝할 사이에 수해 전역에 퍼지는 파동.

보급 망토의 강제전이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지금처럼 내부와 연락이 끊어졌을 때를 대비한 긴급장치였다.

“뭐야…….”

“왜 아무도…….”

하지만 긴급장치를 가동했음에도 불구하고 터미널로 전이되는 생도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에 모두가 굳어 있을 때.

콰아앙!

굉음과 함께 터미널 건물의 천장이 박살 났다.

“적습이다!”

“카사르 교수님이 올라가신 거야! 진정해!”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한 채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온 카사르는 곧장 방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울창한 숲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새하얀 안개뿐.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 장소처럼 변한 수해의 모습에 카사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화? 아니, 하지만 에어리어 보스는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을 텐데…….’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자신의 직감은 검은연꽃 수해에 더욱 위험한 장소로 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결정을 내린 카사르는 재빠르게 부서진 구멍을 통해 터미널 아래에 소리쳤다.

“에어리어 진화다! 공간이동은 전부 막혔을 테니 학원장님께 연락하고 당장 안으로 돌입해서 생도들부터 구출한다!”

“알겠습니다!”

카사르의 외침에 일사불란하게 장비를 착용하고 내부로 진입할 준비를 갖추는 교직원들.

그 모습을 본 카사르는 다시 방벽 너머의 수해를 바라보며 이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해서 생각했다.

‘바벨에 이런 미친 짓거리를 할 만한 녀석들이라면 십악 그놈들밖에 없어. 그리고 지금 노릴 만한 상대는…… 나 아니면 학과수석인가.’

기대받는 유망주들을 처리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미끼로 자신을 끌어들여 사냥하려는 것인가.

무엇하나 확실치 않았지만 카사르는 깊게 고민하지 않고 곧장 허리춤의 아공간 포켓에서 자신의 무구를 꺼내 들었다.

후웅!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탁한 회색빛의 검신과 숯처럼 곳곳이 갈라져 있는 검은색 손잡이.

“흐읍……!”

2m는 족히 될 대검을 역수로 잡은 카사르는 곧장 팔을 뒤로 젖혔다가 안개를 향해 내던졌다.

파앙!

터미널의 방벽 위를 지나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대검. 그 모습을 바라본 카사르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놈들도 내가 개입하는 건 예상하고 있었겠지. 그렇다면 남은 시간 싸움…….’

자신이 먼저 찾아내는가, 아니면 녀석들이 먼저 확보하는가. 모든 것은 결국 학과수석들의 능력에 달렸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카사르는 늦지 않기만을 기도하며 안개 너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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