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09화
“예선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3시험장에서 심사를 맡으신 교수님 세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후웅─
맨 앞쪽의 단상 위로 세 사람이 걸어 올라왔고 자연스럽게 위쪽으로 푸른색 화면이 만들어지며 교수들의 모습을 확대해서 보여줬다.
“원소학부의 찰스 레이놀즈 교수님. 인챈트학부의 레베카 클로델 교수님. 그리고 마도학부의 란 페이 교수님입니다.”
부드럽게 웃고 있는 인자한 노인. 무표정하게 서 있는 단아한 여인. 그리고 업무에 찌들어 있는 젊은 사내.
단상 위에 서 있는 심사위원들의 모습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찰스는 그렇다 치고…… 레베카 저 양반이 올 줄은 몰랐네.’
어떻게든 레아를 탈락시키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단순히 직접 평가하기 위해서일까.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등장에 이세훈이 살펴보는 사이 진행자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부터 이 심사위원들께서 시험장을 돌아다니며 여러분들이 만들어온 술식 혹은 그것을 활용하여 만들어낸 ‘술식병장術式兵仗’을 평가해 주실 겁니다.”
진행자의 이야기에 시험장에 있는 생도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단상 위에 선 이들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노력, 그리고 시간을 평가하는 이들. 이 안에서만큼은 그들이 절대적인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참가자분들은 심사위원들께서 도착하면 즉시 시연을 보일 수 있도록 준비를 끝내놓고 자리에서 조용히 대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행자의 안내가 끝나며 교수들이 단상의 아래로 내려왔고 허공에 떠 있는 영상도 포커스를 맞추며 따라붙었다.
“간단하게 소개 부탁하겠네.”
첫 번째 참가자의 책상 앞에 도착한 찰스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고 거기에 생도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 사령학부 2학년 대니 리들리입니다. 이번 제출품은 스켈레톤이 다양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마력회로를 변환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책상 위에 놓인 푸른색 수정에 대해서 설명한 생도, 대니가 곧장 옆에 대기시켜둔 스켈레톤의 흉곽 안에 집어넣었다.
우우웅!
푸른색 빛을 내뿜으며 스켈레톤의 뼈를 살짝 푸른색으로 변화시키는 대니. 그 모습에 레베카가 담담히 물었다.
“강화 마법인가요?”
“맞습니다. 그리고 이외에도…….”
“한 가지 묻지.”
피곤에 찌든 목소리가 이야기를 끊어냈고 란 페이가 스켈레톤을 퀭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외부의 마력 파동에 의한 발동 오류는 대비해 뒀나?”
“무, 물론입니다. 직접적인 타격만 아니라면…….”
짜악
대니의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란 페이가 가볍게 손뼉을 쳤고, 거기서 뻗어 나간 미약한 마력이 스켈레톤을 가볍게 훑고 지나갔다.
치지직─
그러자 수정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급격히 빛을 잃어버렸고 그 모습에 대니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이게…….”
“방금 내가 펼친 건 중급 마법인 라바 쉘의 발동 직후 흘러나오는 마력 파동이다. 이외에도 무력화 가능한 마력 파동이 한 72가지는 있는 것 같군. 대비를 한 게 맞나?”
“…….”
그 날카로운 질문에 대니는 대답을 하지 못했고, 란 페이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
“흐음…….”
생각에 잠긴 두 교수의 모습에 대니가 마지막 희망을 담아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취약점이 있긴 하지만 잠재력을 잘 봐주신다면……!’
게다가 찰스 교수와 레베카 교수는 생도들 사이에서도 성격이 좋기로 유명한 이들이 아닌가.
그렇게 대니가 부디 란 페이의 평가를 뒤집어주기를 간절히 빌었고.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게 좋을 것 같네.”
“변환술식의 단점만 가져오고 장점은 버린 물품이네요.”
일말의 자비도 없는 평가가 이어졌다.
“두 분도 나와 뜻이 일치하는 것 같군. 짐 챙겨서 바로 귀가하도록.”
“……알겠습니다.”
얼굴이 초췌하게 변한 대니가 쓸쓸하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고 교수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옆으로 이동했다.
“소개 부탁하네.”
그 이후로도 세 사람의 무자비한 평가는 계속되었고, 푸른 화면을 통해 그 과정을 살핀 이세훈이 턱을 쓰다듬었다.
‘완성도와 잠재력 모두 수준 이하면 탈락, 잠재력이라도 보이면 보류, 둘 다 확실하면 합격…… 이런 식인가.’
평균적으로 봤을 때 탈락이 30%. 보류가 50%. 합격이 20% 정도였는데 거기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생각보다 3학년이나 4학년 중에도 탈락이나 보류가 많네.”
화면을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루이제.
각 학년의 최상위권들은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평균적으로 봤을 때는 학년이 높을수록 실력이 뛰어나기 마련.
하지만 이곳에서는 마치 학년의 구분이 없는 것처럼 모든 학년에서 탈락과 보류가 비슷하게 나왔다.
“전투면 몰라도 이쪽은 학년 구분이 없지.”
“그런가? 내가 보기엔 그래도 학년이 높은 쪽이 잘 만든 것 같은데…….”
“완성도는 어느 정도든 상관없어. 잠재력이 중요한 거야.”
아무리 완성도가 높다고 한들 그게 기존에 만들어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면 상아탑도 굳이 특기생으로 뽑아가면서까지 투자할 이유가 없었다.
“잠재력이라…… 그러면 너도 탈락할 수도 있겠네?”
이번에 만들어진 무구도 엄청나긴 하지만 저쪽에서 잠재력이 없다고 판단해 버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긴장감을 부추기며 놀리려는 듯한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진짜 그럴 것 같아?”
“……재수없긴.”
재미없다는 듯 루이제가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렸고, 이세훈도 다시 화면 속의 채점 과정을 자세히 살폈다.
‘잠재력으로 인정해 주는 범위도 꽤 넓은 것 같고…… 『여명』의 영향력이 그렇게 크진 않나 보네. 아니면 좀 자중하고 있거나.’
특정한 계열의 마법을 숭배하는 『여명』의 사상과는 반대되는 모습. 과연 어느 쪽일지 이세훈이 고민하고 있을 때.
“소개 부탁하네.”
세 교수가 책상 앞에 도착했다.
“제련학부 1학년 이세훈. 그리고 이번 제출품의 시연을 도와줄 마투학부 2학년 루이제 발렌트입니다.”
이세훈의 소개에 루이제가 가볍게 고개를 꾸벅였고, 교수들의 시선이 텅 비어 있는 책상으로 향했다.
“제출품은 어디 있지?”
책상 위뿐만 아니라 몸을 살펴봐도 제출품처럼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런 란 페이의 물음에 이세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금 조수가 착용하고 있습니다. 루이제.”
이세훈의 부름에 루이제가 곧장 하티에 마력을 불어넣어 가동시켰다.
촤자작!
목에서부터 올라와 하관을 뒤덮는 검은 철판. X자 무늬가 새겨진 마스크의 형태에 교수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제가 만들어낸 물건은 술식 제어 장치로 사용자가 마법을 사용하는 중에 마력을 낭비하거나 폭주했을 때 그것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술식 제어 장치라고?”
이세훈의 설명에 란 페이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기본적으로 술식에 힘을 더하거나 빼는 효과는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을 제어하는 물건은 만들기가 쉽지 않다.
술식의 형태가 정해져 있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서 변칙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것이 마법인데 거기서 어떻게 ‘올바른 형태’라고 정의를 내리고 제어한단 말인가.
미심쩍게 바라보는 란 페이의 모습에 이세훈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일단 시범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만 그전에 간단하게 정보창부터 살펴보시죠.”
후웅!
루이제가 하티의 정보창을 앞에 만들어냈고 그것을 읽어본 세 교수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허어. 영웅 등급이라니…….”
“다른 것도 아니고 묵중암으로 이런 물건을…….”
정보창을 읽고 감탄하는 찰스와 레베카.
어떤 술식병장이든 해당 효과가 정보창에 설명이나 무구 스킬로서 존재한다면 일정 이상의 완성도와 잠재력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안쪽이 왜 이렇게 잘 안 보이나 했더니 묵중암으로 만들어서였군. 외부에서의 개입을 대비한 건가?”
“그런 의도도 있습니다.”
짜악!
이세훈의 대답에 란 페이가 곧장 처음처럼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마력의 파동을 만들어냈다.
후웅!
주변을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파동.
하지만 하티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란 페이는 두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대단하군…….”
허공의 화면을 통해 퍼진 란 페이의 칭찬에 시험장에 있는 모든 생도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채점이 시작되고 수십 명의 생도가 합격하긴 했지만 그중에서 란 페이가 칭찬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란 페이 교수님도 칭찬을 하실 줄 아는구나.’
‘예전에 내가 제출한 과제는 분쇄기에 넣을지 쓰레기통에 넣을지 고민해 보라고만 하시더니.’
특히, 마도학부의 생도들은 환청을 들은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시험장이 술렁이고 있을 때. 이세훈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럼 바로 시연에 들어가겠습니다.”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가 곧장 준비해둔 언령을 펼쳤다.
【Spin Ball】
우웅!
허공에 만들어진 머리만 한 구체.
멀리서 볼 때는 그냥 동그랗게만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구체가 아주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교수님들도 아시겠지만 형태를 흩트리지 않고 회전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약간만 신경이 분산돼도 변화가 나타나고, 마력이 약간만 엇나가도 해제되기 쉽죠.”
세 교수가 집중해서 보고 있을 때. 이세훈이 하티에 손을 가져다 댄 다음 기습적으로 마력을 불어넣었다.
후웅!
하티의 안쪽에서 서로 충돌을 일으키며 빛을 내뿜는 두 사람의 마력.
당장 제어하지 않으면 마력 폭주 후 역류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스아악
제어에서 벗어난 마력들이 자연스럽게 하티의 안쪽에 녹아들었고 회전 중인 구체는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유지되었다.
루이제가 폭주하는 마력을 제어하는데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았다는 증거.
우우웅!
거기에 처음보다 회전 속도가 더욱 빨라지기까지 했는데 그 모습에 란 페이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마법을 붕괴할 수 있는 폭주는 제어하지만 가속은 술식의 범주로 파악하는 건가…….’
도대체 술식 구조를 어떻게 만들었기에 저런 유동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단 말인가.
그 광경도 광경이지만 란 페이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결과를 만들어낸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둘 다 폭주가 일어났을 때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어.’
자신이 만들어낸, 착용한 장비가 완벽하게 제어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모습.
그 확신이 담긴 반응에 란 페이는 담담하게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했다.
“완벽하군.”
[대상 ‘란 페이’와의 인연이 성립되었습니다.]
‘흐음.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인연 성립에 이세훈이 흥미롭게 바라보았고, 란 페이가 고개를 돌려 다른 교수들에게 물었다.
“다들 저랑 생각이 비슷하실 것 같습니다만, 어떠십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란 페이 교수께서 대표로 말씀하시지요.”
“저도예요.”
찰스와 레베카의 동의를 얻은 란 페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합격. 그리고 검증 절차도 생략할 테니 보완할 게 있으면 알아서 준비해라.”
본래 예선전이 끝나면 교수들이 채점 결과를 토대로 취약한 부분을 건드려서 안정성을 확인하는 검증 절차가 있었지만, 교수들은 그것을 생략하고 이세훈을 곧장 본선에 올렸다.
자신들이 보기에 이세훈의 제출품이 가진 취약점은 ‘때리면 부서진다’ 같은 불변의 진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수고했어요.”
란 페이와 찰스가 다음 책상으로 이동하면서 화면이 움직였고, 그것을 확인한 레베카가 뒤쪽을 힐끔 본 다음에 이세훈을 노려보았다.
“레아를 저렇게 만들어둔 게 이세훈 생도인가요?”
“예. 책상 아래에 숨으려고 해서 위에 올려뒀습니다.”
“저 애는 하여튼 간에…….”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쉰 레베카가 표정을 가다듬으며 이세훈에게 이야기했다.
“조금이라도 엉성한 부분이 보인다면 탈락할 거예요. 그만큼 위험한 물건이니까요.”
사적인 감정이 없이 한 명의 인챈터로서 이야기하는 모습. 그 반응에 이세훈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고했어요.”
마지막 말을 남긴 레베카가 다음 책상으로 향했고, 그것으로 이세훈의 예선전 심사가 끝났다.
촤자작!
하티를 다시 초커의 형태로 되돌린 루이제는 옆으로 이동한 교수들, 그중 찰스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는 척도 안 하…… 시네.”
“그러게.”
겉으로는 아꼈던 제자, 속으로는 눈여겨보고 있던 실험체였는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지나가다니.
‘하다못해 뭔가 수작질이라도 부릴 줄 알았는데…….’
저번에 침식된 마력을 자극하는 장치처럼 『여명』이 마음만 먹는다면 방금 루이제에게 얼마든지 간섭을 할 수 있었다.
이세훈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외부 개입에 대응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두고 대비한 것이다.
‘찰스의 권한이 그리 높지 않던가…… 나를 그만큼 경계하고 있다는 뜻이겠구만.’
루트비히는 물론 각종 고위 영웅들에게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아무리 과격한 『여명』이라도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것은 꺼릴 법도 하다.
그렇게 이세훈이 막 판단을 내린 순간.
후웅─
제3시험장을 밝히던 조명이 모조리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