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13화
-어제 오전. 상아탑의 특기생 선발 대회 도중 건물의 마력 공급 시설이 폭주하는 아찔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의 원흉은 몇몇 설비의 오작동으로 그 배후에는 놀랍게도 만마전이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만마전과 내통한 TL테크놀로지의 경영진과 연구진들이 현재 전원 구속되었으며 일반 직원들 역시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래서 일반적인 납품 비리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겁니다. 바벨과 상아탑의 직원들이 만마전과 엮여 있을 거라고 알았겠습니까? 그런 안일한 생각이…….
병실을 지나갈 때마다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그 소식에 이세훈이 다시금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놈이 잡혔단 말이지…….’
양팔과 다리에 구속구가 채워진 채로 이송되는 사내.
사건이 끝나고 찰스에게 달려왔던 상아탑의 관계자로 이번에 납품 비리와 만마전과의 내통 혐의로 잡혀간 것이다.
‘이러면 찰스는 처음부터 분리해뒀다는 건데…… 생각보다 직위가 높았던 건가.’
루이제에게 직접 마력침식기를 건네줬다기에 단원 수준이 아닐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낮잡아 본 모양이다.
‘리전은…… 아니겠네. 폭견 말로는 딱 보면 알 수 있을 만큼 이상한 놈들이랬으니까.’
상황을 보건대 리전보다 아래쯤에 위치한 간부. 하지만 그 추측에 이세훈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정말로 그만한 위치의 간부라면 어째서 본인이 ‘직접’ 루이제에게 마력침식기를 건네줬던 것일까.
‘은사라는 위치 때문에 건네기 쉬웠던 것도 있고, 마력침식기가 들키지 않을 자신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여러 가능성을 곱씹어보던 이세훈은 문득 회귀 전 폭견에게 들었던 이야기 하나를 떠올렸다.
‘도중에 빠져나올 수 있던 것도 리전 그 새끼들이 실패했다면서 흥미가 떨어져서 그렇지, 그러지 않았으면 죽을 때까지 부려 먹혔을걸.’
진절머리난다는 듯 이야기하던 폭견. 그 내용에 이세훈은 한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루이제의 가치를 높게 봤다는 거구만.’
그것도 자신이 직접 현장에 나서서 살펴볼 정도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제작자’로서 찰스의 행동을 이해한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럼 이번 활약상 때문에 눈이 돌았을 수도 있겠는데.’
상아탑에서 큰 손해를 보기도 했으니 어쩌면 아예 바벨에서 손을 뗄 각오로 마지막 한탕을 노릴지도 모른다.
매우 위험하며, 또 한편으로는 『여명』에게 제대로 한 방 꽂아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를 기회.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할지 이세훈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이제 진짜 괜찮다니까요!”
앞쪽의 병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사가 몸에 이상이 있다는데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잔말 말고 누워.”
“사람이 흥분하면 심박이 좀 빨라질 수도 있지 뭐 그런 걸로 전치 3주나 나와요. 뭔가 잘못됐다고요!”
“평균 심박수가 하루아침에 1.5배로 빨라졌는데 정상이라고? 레아. 말로 할 때 얌전히 누워.”
“싫어! 누가 할머니 속셈을 모르…… 읍읍!”
쿠당탕!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앞으로 다가간 이세훈이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
“이세훈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시끄럽던 방 안이 잠시 조용해지더니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레베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와요.”
“실례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병실의 안쪽으로 들어갔고, 이내 큼지막한 침대에 누워 있는 레아의 모습이 보였다.
“읍읍!”
머리핀과 비녀를 빼서 사방으로 펼쳐진 갈색 머리카락에 코 아래까지 돌돌 말려져 있는 새하얀 이불.
겉에 인챈트가 새겨진 것을 보아 레베카의 소행으로 보였는데 멀리서 보니 김밥 끝에 우엉이 삐져나온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입가가 씰룩거렸다.
“흠흠. 상태가 왜…….”
“퇴원할 거라고 자꾸 난리를 피워서 잠시 묶어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진절머리가 난 듯 고개를 가로저은 레베카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뭔가 마실 건 필요 없나요?”
“뭐든 주신다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럼 편한 곳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요.”
레베카가 병실의 부엌 쪽으로 향했고,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은 침대 옆에 놓여 있는 의자 중 하나에 앉았다.
“멀쩡한 줄 알았는데 엄청 다쳤었나 보네?”
“으읍! 읍!”
이세훈의 물음에 억울하다는 듯이 외치는 레아.
그 모습에 이세훈은 굳이 레아를 풀어주기보다 침대 옆에 있는 장치를 살펴보았다.
‘심박수 120이라…… 꽤 늘긴 했구만.’
보통은 공급해야 할 혈류량이 부족해서 심박수가 늘어나지만 현재 레아의 상태는 그것과 조금 달랐다.
심장이 한 번에 공급하는 혈류량도 늘었고, 심박수 역시 빨라졌다.
한 마디로 전신의 신진대사가 기존의 1.5배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나름 조절을 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 부작용인가.’
이세훈이 레아의 상태를 살피고 있을 때. 레베카가 간단한 다과와 함께 차를 가져왔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요.”
“감사합니다.”
차를 건네받은 이세훈이 조심히 마셨고, 맞은편에 앉은 레베카도 말없이 자신의 차를 마셨다.
“읍! 으읍!”
침대에 강제로 누워 있는 레아만 마구 몸부림치는 상황. 그 모습에 레베카가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튕겼다.
찰캉─
겉에 그려졌던 인챈트들이 허공으로 녹아들더니 꽉 조이던 이불이 단숨에 풀렸다.
간신히 레베카의 포박에서 벗어난 레아가 서글픈 목소리로 외쳤다.
“왜 안 도와줘! 내가 눈빛을 얼마나 보냈는데!”
“교수님이 하셨다는데 내가 어쩌겠어. 가만히 있어야지.”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남 말을 잘 들었다고! 그리고 넌 내 편을 들어야지!”
“난 원래 말 잘 들었어. 그리고.”
레아를 힐끔 본 이세훈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아까 살펴보니까 이미 반쯤 풀려 있더만. 거기서 건드리면 더 곤란해지는 거 아니었어?”
“…….”
“…….”
이세훈의 이야기에 병실에 살짝 침묵이 감돌았고, 방금까지 억울해하던 레아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그게 갑자기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랬었군요.”
찻잔을 내려놓은 레베카가 레아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틈을 봐서 빠져나가려고 연기하고 있었던 거구나.”
“그, 그렇다기보다는 화장실 급할 때 쓸 생각으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이야기하며 슬쩍 시선을 피하는 레아. 그 모습에 레베카의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간단하게 펼쳤다고 해도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인챈트가 아니었을 텐데.’
하물며 묶여 있던 당사자가 풀어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몇 달 사이에 몰라볼 정도로 성장한 레아의 모습에 레베카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알았다. 자퇴는 없던 이야기로 하자.”
“……예? 입원이 아니고요?”
깜짝 놀란 레아의 물음에 레베카가 담담히 대답했다.
“계속 퇴원하려고 한 것도 이대로 병실에 가둬놓고 선발 대회에 부전패 시킬까 봐 그런 거잖아.”
“…….”
“조금 융통성 없게 굴긴 했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양심이 없지는 않단다. 너는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꼰…… 아닙니다.”
레베카의 날카로운 시선에 재빨리 말을 주워 담은 레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에 레베카가 눈매를 찌푸리며 골치 아프다는 듯 이야기를 이었다.
“애초에 널 자퇴시키려고 한 것도 네 재능이 세상에 알려질까 봐였다. 그런데 이번 일로 전 세계에 네 이름이 알려졌는데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
상아탑의 인지도가 인지도인 만큼 전 세계에 그 소식이 퍼졌고, 자연스레 사건을 해결했다는 레아에게도 엄청난 관심이 모였다.
특히 인챈터 업계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는데, 레아의 제출품인 스피어의 성능이 ‘너무’ 강력했었기 때문이다.
“상아탑의 시설을 역으로 장악한 것도 모자라 특정 술식이 담긴 물건을 모조리 과부하시켜서 파괴하다니…… 이젠 본가로 돌아가는 게 더 위험해졌어.”
저런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물건도, 그것을 다뤄낼 수 있는 사용자도, 사리사욕에 눈이 먼 자들에게는 무척이나 탐스러운 존재다.
더 이상 자신이 레아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레베카가 차분해진 얼굴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이세훈 생도.”
“예.”
“내 딸, 레아의 엄마인 레이나는 십악의 인형사예요.”
“잠, 하, 할머니!”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에 레아가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지만 레베카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이야기를 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위, 데인을 죽이고 사라지더니 마인이 되어 다시 나타났죠. 레이나가 혼자서 연구하던 인챈트 술식이 인형사가 초기에 만든 인형에서 발견됐으니 확실해요.”
“…….”
“그리고 레아의 목표는 그런 인형사를 죽이는 겁니다.”
집안의 비밀을 숨김없이 말한 레베카가 진지한 눈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지금처럼 레아와 가깝게 지낸다면 당신은 원치 않아도 인형사와 엮이게 될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건가요?”
“예. 알고 있습니다.”
십악.
S급 영웅도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으며, 마신이 되어 완등자를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괴물들.
그런 녀석들에게 표적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목에 칼이 겨눠져 있다고 표현해도 결코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처럼 레아와 지낼 수 있나요?”
레베카가 갑작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거의 이세훈을 위해서였다.
자신들의 개인적인 사정에 휘말려 영문도 모른 채 십악의 표적이 된다니. 그만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어중간한 각오로 함께할 생각이라면 레아에게도 위험해.’
이번 일로 전 세계에 자신의 재능이 알려진 레아는 수많은 이들, 마인은 물론 썩어빠진 인간들에게도 노려질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난관이 닥쳐올지 모르는 만큼 그 곁에 있고자 한다면 나름의 각오를 해야 할 터.
레베카가 보려는 것은 그런 마음가짐이었고.
“지낼 수 있죠?”
이세훈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예상보다 너무 태연하고, 또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는 대답. 그 모습에 레베카가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섭지 않나요?”
“안 무섭다고 하면 거짓말이긴 합니다만…….”
머쓱한 표정을 지은 이세훈이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검은연꽃 수해에서 보니까 이미 인형사한테 찍힌 것 같더라고요.”
아예 안 엮였으면 모를까 이미 표적이 됐는데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 이세훈의 대답에 레베카가 그제야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이세훈 생도 역시 레아와 다를 게 없었구나.’
주목도로 따지자면 레아보다도 더한 관심을 받고 있는 유망주가 바로 눈앞의 청년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애초에 계속해서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십악이라고 해서 무적은 아니지 않습니까.”
십악은 분명히 위험한 존재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을 제멋대로 가지고 놀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S급 영웅들이 힘을 모아 상성을 파고든다면 쓰러뜨릴 수 있었고, 완등자에게 꼬리를 잡혀 허무하게 당할 수도 있었다.
그 과정을 봐온 이세훈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어중간하게 건드렸다간 박살 나는 건 그쪽이 될 겁니다.”
“…….”
자신이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약점을 명확하게 이해하며 틈을 노리려는 영웅의 눈.
처음으로 보게 된 이세훈의 진짜 모습에 레베카가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믿겠어요.”
남은 차를 한 번에 마신 레베카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잠시 나갔다 올 테니 둘이서 이야기 나눠요.”
레베카가 밖으로 나가고, 병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기대앉아서 어색하게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 레아와 별말 없이 차를 홀짝이며 과자를 주워 먹는 이세훈.
그렇게 한참 동안 침묵이 감돌더니 레아가 먼저 각오를 다지며 입을 열었다.
“어제 꿈을 꿨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
“…….”
“근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엄청 화가 나 있었고, 나처럼 어떤 녀석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거였어.”
흐릿한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한 레아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건 후배의 감정이야?”
레아에게 자신의 경험을 넘겨주기 위해 영연신마법으로 만들어냈던 ‘혈정血精’.
아마 레아가 꿈에서 느낀 것은 그 경험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던 자신의 감정이리라.
“맞아.”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이세훈의 대답에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레아가 결심을 내린 듯 바라보았다.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거 정식으로 제안할게.”
“제안?”
“아빠를 죽인 그 괴물…… 인형사를 내가 직접 죽일 수 있도록 도와줘.”
더 이상 부모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 그렇게 단호하게 적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레아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나도 그 누군지 모를 원수를 죽일 수 있도록 도와줄게.”
여태까지는 대장장이와 인챈터로서 기술만 빌려주며 협력을 했다면, 이제는 서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힘을 합친다.
‘나쁠 건 없지.’
이번 일로 레아의 재능을 다시금 확인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회귀 전보다 인형사를 쉽게 죽이기 위해서는 레아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스피어의 안에 숨겨둔 ‘독’.
그것을 제대로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레아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뭔데?”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웃으며 덧붙였다.
“힘들다고 우는소리 하지 마라?”
이세훈의 이야기에 레아가 살짝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후배야말로 인형사랑 만났을 때 쫄지나 마. 십악은 차원이 다르니까.”
십악은 물론 그보다 더 심한 마신과도 만나고 싸워도 봤지만, 이세훈은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설명할 수 없기도 하고 겨우 이런 걸로 우위에 섰다고 우쭐대는 건 회귀한 나이로도 좀 그렇지 않은가.
‘그나저나 아쉽구만. 좋은 분위기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인연석 하나 안 만들어지다니. 이세훈이 살짝 아쉬워하던 그때.
“……근데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슬쩍 눈치를 살피던 레아가 물었다.
“후배도 스피어 쓸 수 있어?”
“음? 그건 갑자기 왜.”
“내가 받은 게 후배의 경험이니까…… 그러면 직접 다룰 수도 있나 싶어서.”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자신이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라도 된 것일까.
조심스레 물어보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안 될걸?”
“……정말?”
“내가 계산 쪽은 잘 안 되거든. 푸는 방법은 알지만 암산이 서투르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너처럼은 못하지.”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고 패턴을 찾아내는 건 쉽지만, 스피어처럼 온갖 난해한 연산을 바로바로 처리해야 하는 쪽은 상당히 더디다.
“흐음. 흠…….”
그런 이세훈의 대답에 레아가 얼굴을 몇 번 씰룩이는가 싶더니 이내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이겼네.”
[대상 ‘레아 클로델’이 우위에 섰습니다.]
[대상 ‘레아 클로델’의 인연석이 생성됩니다.]
“…….”
눈앞에 뜬 알림창을 본 이세훈이 살짝 멍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흐흐…….”
뭐가 그리도 좋은지 히죽거리는 레아. 그 모습에 이세훈이 한 가지 생각했다.
“역시 선배가 대단하긴 하네.”
“그, 그래? 으하핫!”
나잇값 못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 * *
레아와 대화를 끝마친 뒤. 병실을 나서기 전 이세훈은 레베카에게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3주 동안 절대 안정이니까 그동안은 일 시키면 안 돼요.”
“예? 저 멀쩡…….”
“퇴원 대신 자퇴하고 싶으면 더 말해보렴.”
“휴가 중에 연락하지 마!”
자퇴를 물러주는 대신 3주 동안 혹시 모를 부상을 대비해서 얌전히 입원해 있기로 한 레아.
건강이 걱정되는 것도 있지만 아마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 꺼질 때까지 기다리려는 것이 분명하리라.
‘뭐. 그쯤 되면 완전히 가라앉을 테니 문제없겠지.’
레아의 심박수가 빨라진 것은 혈정에 담긴 자신의 경험이 육체에 녹아드느라 생긴 반발 같은 것이기에 조금만 지나면 본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별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이세훈이 개운하게 걸음을 옮기던 그때.
부우웅
눈앞에 멈춰 서는 검은 리무진. 그 익숙한 차량에 이세훈이 가만히 보고 있자 차창이 내려가며 한 사람이 드러났다.
새카만 흑발에 무테안경을 쓴 엘리트 같은 인상의 청년.
“오랜만이야.”
에리카의 오빠, 이노우에 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