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64화 (164/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64화

사르륵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몽환적인 보랏빛 안개.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을 뒤덮은 그 힘에 이세훈이 천천히 살펴보았다.

‘전이…… 는 아닌가. 몸의 감각이 남아 있어.’

현실과 거의 비슷하지만 확실히 차이는 있다.

이곳이 단순한 ‘꿈’이라는 것을 파악한 이세훈은 가장 먼저 몽환안을 사용했다.

스스슥

두 눈에 몽환의 마력이 차올랐고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뒤바뀐다.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 시야에 이세훈은 몽환안을 조절해서 초점을 현실 쪽으로 맞췄다.

그러자 안개로 뒤덮인 뒷좌석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고 그 위에 의식을 잃고 늘어져 있는 염진현과 염성하의 모습도 발견했다.

‘몸을 완전히 전이시키는 건 힘드니까 아예 의식만 노리고 펼쳤나 보구만.’

어느 정도 예상범위 내의 수작에 이세훈은 이대로 깨어나는 대신 다시금 몽환안을 조절하여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우우웅

벗어날 때만큼이나 빠르게 이세훈의 의식이 꿈속으로 파고들었고 잠시 후 보랏빛 안개가 사라지며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화악!

구름 한 점 없는 어두운 숲. 그 위에 자연스럽게 서게 된 이세훈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이라…… 현실로 속일 생각인가 보구만.’

꿈속이라는 게 알려지면 그 영향력이나 주도권이 떨어질 수 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행동이다.

상대의 의도를 파악한 이세훈은 그대로 차분히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도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텐데…….’

몽환안으로 찾아봐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앞쪽에서 무언가 인기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이내 한 사람이 나타났다.

“넌…….”

등에 염진현을 업고 있는 염성하.

처음에는 이세훈을 보고 반가운 듯 두 눈이 커졌지만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차갑게 굳어졌다.

꾸욱

언제라도 심장을 꿰뚫을 수 있게끔 팽팽하게 조여지는 왼팔의 근육.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가짜 아니니까 경계하지 마.”

“증거는?”

“그런 식으로 따지면 등에 업혀 있는 염진현 어르신은 어떻게 믿냐? 이럴 땐 처음부터 아예 안 믿거나 아니면 믿는 척하면서 끝까지 경계하는 거야.”

이세훈의 이야기에 염성하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왼팔의 힘을 풀며 이야기했다.

“……재수 없게 말하는 걸 보니 진짜가 맞나 보군.”

“뭐?”

“그보다 여기가 어디인지 아나?”

염성하를 흘겨보던 이세훈이 숲을 살피며 대답했다.

“나도 정확히는 몰라. 밤인 걸 보면 한참 떨어진 장소일 수도 있고.”

우선은 적의 장단에 맞추기로 했기에 이세훈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야기했고, 그 대답에 염성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정도 거리를…….”

등에 업힌 염진현을 바라보는 염성하. 혹시라도 자신들을 이동시키고 뭔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닐지 걱정하는 것이다.

‘보통 같으면 자길 배신한 건지 의심부터 할 텐데. 정말 지극정성이구만.’

염진현에게 보여주는 태도의 10분의 1만 다른 사람들에게 할 줄 알았어도 회귀 전에 광견 같은 괴상한 별명은 안 붙지 않았을까.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염성하를 보고 있을 때.

스슥

무언가 낯선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까운 소리. 그 위치를 종잡을 수 없는 소음에 두 사람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졌다.

“…….”

“…….”

이곳에 나타날 아군은 더 이상 없다.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이 반사적으로 움직였고.

푸욱!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에 두 자루의 창이 지면을 꿰뚫으며 깊숙이 박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물든 적. 그 모습에 이세훈은 재빠르게 염성하에게 소리쳤다.

“달려!”

두 사람은 곧장 적이 나타난 곳과 반대쪽을 향해 몸을 던졌고 기다렸다는 듯이 숲 곳곳에서 수많은 적이 나타나며 매섭게 창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카앙!

급소를 피하거나 다리를 노리는 공격들. 이쪽을 제압하려는 듯한 공세에 염성하가 눈매가 일그러졌다.

공격 자체는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지만 등 뒤에 업혀있는 염진현에게 오는 공격까지 신경써야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집요해지는 공세.

점점 조여오는 공격들에 염성하가 도주를 포기하고 막 받아치려던 그때.

터엉!

방패를 꺼내든 이세훈이 재빠르게 염진현을 노린 창을 쳐내며 외쳤다.

“뒤쪽은 내가 막아줄 테니까 계속 달려!”

콰앙!

그 외침에 염성하가 다시 공세를 꿰뚫으며 앞으로 달려나갔고, 이세훈은 뒤쪽에 서서 사방에서 덮쳐 오는 공격들을 방패와 소광의 망치로 요령 좋게 쳐내며 상황을 분석했다.

‘진짜로 붙잡으려고 한다기에는 뭔가 어설픈데. 꿈에 몰입시키려는 건가?’

본래 이런 정신적인 공간에서의 공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혼동시키는 것이 가장 정석적인 방법.

아마 지금의 추적도 정말 붙잡으려고 한다기보다는 정신없게 만들어서 이곳이 꿈이라는 걸 들키지 않게 하려는 것이 분명하리라.

‘그럼 이다음은…….’

지지부진하게 추격전이 계속되던 그때. 갑작스레 두 사람의 앞으로 탁 트인 공터가 펼쳐졌다.

몸을 숨기기도, 도망치기에도 좋지 않은 장소. 그에 염성하가 재차 숲 쪽으로 몸을 내던지려 했지만.

콰앙!

그보다 먼저 거대한 창이 하늘 위에서 떨어지며 염성하의 앞을 가로막았다.

쿠구구궁!

수십 개의 창이 화살비처럼 연달아 두 사람에 쏟아졌고, 그 무시무시한 공세에 어쩔 수 없이 공터의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숲에 포위되듯 중심부에 서게 되었고 어두컴컴한 숲속 너머에서 한 명씩 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어림잡아도 백은 넘어 보이는 수. 그 모습에 염성하가 굳은 표정으로 단창들을 움켜잡았고 이세훈 역시 방패와 망치를 고쳐 잡았다.

그렇게 흉흉한 분위기가 계속되던 그때.

“이제 그만 포기하시죠.”

비웃음을 머금은 목소리가 숲에서 울려 퍼졌다.

스스슥

수풀을 헤치며 나타난 네 사람.

전신을 검은 옷으로 두르고 있는 다른 적들과 다르게 이들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모두 50대를 훌쩍 넘기는 중년의 사내들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할 만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중에서도 맨 앞의 선 사내가 노골적으로 비웃었고, 그 얼굴을 확인한 염성하의 눈매가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들 모두가 염진현이 처음 염화문을 세웠을 때부터 함께 활동해 온 사범들이었기 때문이다.

“쓰레기 같은 놈들…….”

“새삼스러운 말씀을 하시는군요. 뭐, 이해는 합니다. 아직도 그 산송장의 옆에 붙어 있으니.”

한심스럽다는 듯이 이야기한 염화문의 사범이 아직도 의식을 잃고 있는 염진현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허무하지 않습니까? 인류를 위해, 그리고 염화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쳤는데도 무엇 하나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

“닥쳐라.”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죠. 이 세상에 힘없는 자가 뭘…….”

콰아앙!

사범이 말이 끝나기 전. 등에 업은 염진현을 이세훈에게 넘긴 염성하가 곧장 바닥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폭발하듯이 터져 나오는 두 속성마력과 모든 것을 불사를 기세로 만들어진 검붉은 불꽃.

소문으로만 듣던 흑염륜의 모습에 사범, 권장운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고.

“……그렇군.”

입가를 비틀며 마주 창을 휘둘렀다.

카앙!

두 창이 서로 격돌한 순간. 그 안쪽에서 터져 나온 마력의 파장에 주변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나가며 사방에서 폭발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

당장에라도 적을 집어삼킬 듯이 휘둘러지는 창과 그 뒤를 따라서 터져 나오는 폭발. 사방을 뒤덮는 그 불꽃 속에서 염성하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이건…….’

처음 돌격했을 때. 화를 참지 못한 것도 있지만 어느 정도 전략적인 판단도 있었다.

네 명의 사범 중 한 명이라도 수를 줄여야 이 포위망을 뚫고 나갈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 단기승부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승부를 노렸던 공격은 허무하게 막혔고.

“자세가 어설픕니다!”

오히려 정면에서 압도되어 완벽히 밀렸다.

터엉!

목을 노리고 휘둘렀던 두 창이 허무하게 튕겨 나가고 권장운의 창이 불꽃을 휘감은 채 심장을 노리며 찔러 들었다.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염성하는 공격을 더 이어나갈 생각도 못 하고 재빠르게 두 창을 교차하며 마력을 공명시켰다.

파앙!!

두 사람 사이로 충격파가 터져 나왔고, 달려나갔던 염성하의 몸이 다시금 공터의 중심부로 튕겨져 나갔다.

“큭…….”

“허. 설마 이렇게 쉽게 막아낼 줄은…….”

다른 사범이었다면 저항도 못 하고 심장을 꿰뚫렸을 텐데. 감탄하는 권장운의 모습에 염성하가 비틀거리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네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갑자기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B급까지 떨어졌던 기량이 어떻게 갑자기 올랐냐는 말이다.”

부상이 없다 해도 노화는 피할 수 없는 법.

권장운 역시 기량이 떨어지고 있는 상태였고 재심사를 받진 않았으나 사실상 B급까지 떨어졌다고 추측 받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방금 보여준 실력은 왕년의 A급, 아니, 그 이상인 준 S급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실력이 단숨에 오른 것이다.

그 의심 섞인 시선에 권장운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하하핫.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묻습니까. 도련님. 그야 당연히 ‘깨달음’ 아니겠습니까.”

“……깨달음?”

“격의 상승. 벽의 파괴. 무의 진보…… 수십 년간 정체되었던 경지가 이제야 새로운 곳으로 나아갔다는 겁니다.”

희열감에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한 권장운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심상 투영기로 보았던 벽을 넘은 자신.

바깥에서는 신기루처럼 잠깐 느끼는 것이 한계였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정말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고리타분한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다면 나도 진작 S급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

안타까움과 후회. 그리고 분노가 묻어나는 중얼거림. 어딘가 이상해진 듯한 권장운의 모습에 염성하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마인이 된 건가?’

몸에서 마기가 따로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저 이질적인 분위기는 어딜 봐도 마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권장운뿐만 아니라 다른 사범들 역시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깨달은 염성하가 잠시 숨을 고르다가 두 단창을 움켜쥐며 뒤쪽의 이세훈에게 중얼거렸다.

“내가 어떻게든 저 넷을 붙잡고 있겠다. 그동안 사부님을 데리고 도망쳐라.”

“같이 싸우는 게 가능성 높을 텐데.”

“그러면 사부님이 죽는다.”

두 사람이 싸우면 의식을 잃은 염진현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 굳이 공격을 당할 필요도 없이 그 여파만으로 숨이 끊어질지도 몰랐다.

“언제는 어르신이 죽든 말든 신경 안 쓰겠다며.”

염성하의 성격상 그 말은 어느 정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자신보다 염진현을 더 중요히 여기는가.

이세훈의 물음에 염성하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담담히 이야기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했겠지.”

“지금은?”

“눈앞에 녀석들만 죽이면 나도 사부님도 살 수 있다.”

두 눈을 빛낸 염성하가 두 단창을 으스러져라 움켜쥐며 마력을 힘껏 끌어올렸다.

“그렇다면 싸우지 않을 이유가 없지.”

준S급으로 추정되는 사범 넷을 혼자서 죽이겠다.

무모함을 넘어서 오만하기 그지없는 말이었지만, 염성하는 그걸 진짜로 해내겠다는 각오밖에 보이지 않았다.

‘완전 개판이구만.’

말이 신경 안 쓴다지, 진짜 죽기 직전 아니면 전부 구한다는 전제하에 싸운다는 것 아닌가.

‘아니, 뭐, 그래도 항복한다거나 그런 답답한 짓은 안 하니까 양반인가?’

어쩌면 염성하가 말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항복이나 그런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각오를 다진 염성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니까 이 근처에 숨어 있는 건 확실한데…… 나올 기미가 안 보이네.’

좀 더 자극해야 직접 모습을 드러낼까. 결정을 내린 이세훈은 염성하에게 속삭였다.

“뭐,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나한테 숨겨둔 물건이 있으니까.”

“……그게 뭐지?”

“학원장님한테 받은 물건이야. 이거면 우리 셋 다 여기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이동할 수 있을 거야.”

주변의 공기가 일순간 일렁였고, 그 흐름을 놓치지 않은 이세훈이 오른손 약지에 끼워진 금색 반지를 보여줬다.

“지금 바로 사용할 테니까 이동되면 바로 움직여.”

“……알았다.”

두 사람이 재빠르게 의견 교환을 끝냈고, 이세훈이 곧장 승천제의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금빛의 마력이 선명하게 빛나던 그 순간.

촤라락

보라색 나비가 오른손 약지 위에 나타났다.

“뭐…….”

반지가 사라지고 그 위에 자연스레 앉아 있는 나비.

그 모습에 이세훈과 염성하가 놀란 사이 나비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이내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사내의 손가락 위로 자연스레 앉았다.

“뭔가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런 물건일 줄은 상상도 못 했군.”

연보라색 피부에 짧은 흑발. 관자놀이에는 날카로운 뿔이 하늘 높이 솟구쳤고, 두 눈동자는 검은 공막에 샛노란 동공으로 요사스럽게 빛났다.

누가 봐도 마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외형. 그 모습에 이세훈이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넌 뭐야?”

“환락가의 17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마키프다. 앞으로 마키프 구역장님이라고 부르도록.”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마인, 마키프가 손에 앉아 있던 나비를 가볍게 움켜쥐었다.

스륵

그러자 방금까지 나비였던 것이 승천제의 반지로 돌아왔고, 그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런 물건이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처리해두는 건데. 하마터면 십 년 감수할 뻔했군 그래.”

팅!

손가락으로 승천제의 반지를 가볍게 튕겼다가 품속에 집어넣는 마키프.

그 모습에 염성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유일한 탈출구가 사라진 것은 물론 사범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해 보이는 적이 한 명 더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나?’

차라리 사부님을 포기하고 이세훈과 협력한다면,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눈앞까지 다가온 막다른 상황에 염성하가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을 때. 마키프가 반대편에 서 있는 사범들을 바라보았다.

“재밌는 건 알겠지만 슬슬 마무리하고 가지. 너무 시간 끌어도 추적대가 도착할 수 있으니.”

실제로는 그런 추적대도 없지만, 너무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면 그 역시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마키프의 경고에 권장운이 속으로 혀를 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래야겠군요.”

사범들이 저마다 창을 뽑아 들었고, 마키프도 본인의 몽환의 마력을 끌어올리며 혹시 모를 변수를 차단할 준비를 갖췄다.

아무런 방법도 없어 보이는 막막한 상황. 그에 염성하가 손이 새하얗게 물들 정도로 두 창을 꽉 움켜쥐었다가 이내 쥐어 짜내듯이 입을 열었다.

“이세훈. 사부님을…….”

“하아. 아쉽네.”

염성하의 말을 잘라낸 이세훈이 염진현을 부축한 채 일어서며 중얼거렸다.

“S급 영웅 한 명만 있었어도…… 이렇게 어이없게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

이세훈의 이야기에 염성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마키프가 눈매를 찌푸렸다.

‘애송이가 도대체 가지고 있는 장비가 몇 개야……?’

제때 차단하지 못하면 꿈이라는 사실을 들키게 된다. 마키프가 한창 긴장하고 있는 사이 이세훈이 염성하를 바라보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이유를 알 수 없는 물음에 염성하는 의아해하면서도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아마…… 그랬겠지.”

제대로 된 S급 영웅, 사부님이 멀쩡하셨다면 이 모든 소란도 없었을 텐데. 그런 염성하의 대답에 이세훈이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제자가 그렇다고 하네요……!”

후웅!

가슴팍에서 단숨에 몽환규도를 뽑아 염진현에게 휘둘렀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을 본 순간. 마키프는 재빠르게 몽환을 마력을 끌어올려 꿈 왜곡을 사용했다.

치환된 꿈을 전혀 다른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힘. 일종의 눈속임에 지나지 않지만 지금은 상대를 속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사르륵

앞의 승천제의 반지처럼 나비로 변하기 시작한 몽환규도. 그 모습에 마키프가 재빠르게 그것을 회수하려던 그때.

“그런 방식이구만.”

두 눈을 보랏빛으로 물든 이세훈이 입가를 비틀며 날아가려던 나비를 단숨에 움켜쥐었다.

화르륵!

손안에서 보랏빛 불꽃이 터져 나오며 나비를 다시금 몽환규도로 바꾸었고, 그 모습에 마키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이세훈이 다시금 뒤바뀐 몽환규도를 염진현의 가슴팍에 찔러 넣었고.

우웅

몽환규도에서 퍼져 나온 불꽃이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눈 깜짝할 사이에 염진현을 집어삼키며 타오르는 보랏빛 불꽃.

그 몽환적인 풍경에 공터에 있는 모두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새카맣게 타버린 염진현의 시체 속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울려 퍼졌다.

“어쩔 수 없군…….”

파앙─

염진현의 시체, 그 껍데기가 산산 조각났고 그 안쪽에서 나온 거대한 무언가가 바닥을 부수며 적을 향해 질주했다.

처음 쇄도한 것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멍청하게 서 있는 마키프.

“……!”

어느새 자신의 앞에 나타난 적의 모습에 마키프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고, 무어라고 말하는 것보다도 먼저 강골의 육체가 먼저 움직였다.

콰드득!

특별한 기술도 없이 두 손에 의해 마키프의 팔다리가 종이처럼 찢겨나갔고 창끝처럼 세운 손날이 복부를 비롯한 급소를 무자비하게 꿰뚫었다.

“────!”

푸하아악!

경악에 물든 외침 대신 고통에 찬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졌고 단숨에 무력화된 마키프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리고 그 피를 뒤집어 쓴 거구의 사내가 천천히 뒤돌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염화문의 사범들을 바라보았다.

“다…… 당신은…….”

“그럴 리가…… 이건…… 이건 말도 안 돼…….”

얼굴을 가득 채운 흉터와 피비린내 나는 살기.

수많은 마인을 학살한 사냥꾼이자 영웅의 모습에 사범들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오랜만이군.”

S급 영웅. ‘염마炎魔’ 염진현이 시간을 거슬러 돌아왔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