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69화
파나케아에서 강의를 듣는 생도들은 기본적으로 담력이 강한 편이었다.
의학과 관련된 학부들이다보니 참고자료로 비위가 상하는 자료들을 많이 접하기도 하고 실습에서는 그보다 더한 경험들도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바벨에서는 ‘파나케아의 생도들이 놀랄 정도면 문제가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갑니다.”
“허억……!”
“무, 뭣…….”
안정완의 강의를 듣기 위해 참석한 생도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꿀꺽
앞에 준비되었던 파란색 영약 하나가 또다시 이세훈의 입안으로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몸 곳곳에 퍼졌다.
우우웅─
옆에 놓인 스캔장치가 그 과정을 생도들에게 자세히 보여주었고, 소화를 끝낸 이세훈은 이어서 앞에 것과 비슷하지만 하얀색이 섞여 있는 영약을 집어 들었다.
“두 번째 갑니다. 잘 보세요.”
꿀꺽
이번에도 이세훈은 망설임 없이 영약을 삼켰고 안쪽에 녹아내린 마력이 방금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퍼지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생도들은 멍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고 흡수가 모두 끝나자 옆에 있던 안정완이 설명을 시작했다.
“방금 흡수 과정을 봤으면 알겠지만, 마력회로를 중점으로 퍼지는 일반 영약과 다르게 신성력을 첨가한 영약은 신체를 중심으로 퍼집니다. 이로 인해서 어떤 변화가 생기냐면…….”
안정완이 여러 자료를 띄우며 설명을 이어갔지만 자리에 앉은 생도들은 그보다 옆에서 멀쩡하게 서 있는 이세훈을 힐끔힐끔 보았다.
‘왜 안 터지지?’
‘영약을 저렇게 먹었는데 최소한 피 한 바가지는 토해야 되는 거 아닌가?’
‘겉만 멀쩡하지 어디 마비 온 거 아니야?’
아무리 등급이 낮다고 해도 영약은 영약.
정제된 마력을 흡수하면 체내마력이 반응할 수밖에 없고, 육체가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렇기에 영약을 안전하게 섭취하기 위해서는 보조 장치와 마법, 그리고 소화와 안정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는데 이세훈은 그런 전제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흡수율이 높은 건가? 아니지. 제어능력이 뛰어나서 거부반응을 억누르는 걸지도…….’
‘영약을 섭취하고 몸이 반응하는 증세가 없었지. 전신을 완벽하게 조정하고 있는 게 분명해.’
이세훈의 몸은 도대체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생도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살피던 그때.
탕탕!
안정완이 칠판을 가볍게 두드리며 시선을 모았다.
“여러분들 마음도 이해하지만 지금은 집중하세요. 1학기 평가시험도 이제 한 달도 안 남았습니다.”
“시, 시험…….”
“끄윽…….”
잠시 잊고 었던 시험의 존재에 생도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강의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앞에서 그 모습을 바라본 이세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째 수업에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방해하는 기분이네.’
조금 앓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나 싶어진 이세훈은 수업 중에 섭취한 영약의 기운들을 살펴보았다.
‘흐음. 등급은 낮지만 이 정도면 나쁘진 않네.’
특히 안쪽에 담긴 소량의 신성력들이 몸 곳곳에 퍼져 있었는데 나중에 싹싹 긁어모으면 신성마법을 한 번 쓸 정도는 모인 것 같았다.
몸 상태를 확인한 이세훈은 다음 차례가 오기 전까지 안정완에게 들었던 안토니오 재활병원에 대해서 떠올렸다.
‘마리오넷 팩토리란 말이지…….’
지금은 골렘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유명하지만 훗날 의체분야로 전환하여 부상을 입은 영웅들을 지원하고 연합군을 도왔던 기업.
최후에는 조율자에게 습격당해 전멸하기는 했지만 마지막까지 인류를 도운 기업으로 이세훈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환락가랑 엮이게 될 줄이야.’
물론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기는 했지만 회귀 전에 여러 사건들을 겪은 이세훈은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다.
고집불통에 타협을 모르던 이들도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면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유혹에 넘어가 버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재활병원으로 가서 내부를 살펴봐야 확실히 알 것 같은데…… 문제는 어떻게 가느냐네.’
이전처럼 하선우를 통해 특무과로 압수수색을 펼치는 것이 가장 쉽기는 하겠지만 그쪽은 단점이 많았다.
증축 프로젝트의 핵심일 수도 있는 만큼 보안이 철저할 가능성도 높고, 무엇보다도 이번이 허탕일 경우 다른 곳에 숨겨진 꼬리가 모조리 잘려 나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가능한 조용히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밤에 숨어들어가야 하나?’
뭔가 뾰족하게 떠오르지 않는 방법에 이세훈이 계속해서 고민하던 그때.
“……?”
앞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시선.
그에 이세훈이 고개를 들어 시선이 느껴진 곳을 바라보자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어깨까지 오는 웨이브진 갈색 단발에 황금빛이 은은하게 맺힌 눈동자. 차분하면서도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의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눈은…….’
체내의 신성력이 일정이상 도달했을 때 나타난다는 ‘신의 눈.’.
단순히 힘이 넘쳐서 흘러나오는 증상이지만 그렇다고 절대 얕봐서는 안됐다.
그도 그럴 것이 신의 눈이 발현된 이들은 모두 순례교의 대주교, 순례자 칼 안데르센의 수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저 녀석이 그 최연소 대주교인가.’
본래 교단에서 활동하며 교육받는 다른 대주교들과 다르게 바벨에 입학했다던 별종.
언젠가 한 번은 만나리라 생각했던 상대의 등장에 이세훈은 담담하게 그 시선을 마주보았고, 그 반응에 상대의 두 눈이 살짝 휘둥그레졌다.
그리고는 무언가 결심한 듯 두 눈동자를 빛냈다.
-수업 끝나고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나요?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목소리에 이세훈은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을 본 최연소 대주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고 그 반응에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순례교라…….’
가능한 엮이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어쩌면 이번 일을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번뜩인 계획에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고.
“그럼 다음 영약으로…….”
꿀꺽
“두, 두 개를 동시에……!”
“이번에는 진짜 터진다……!”
“아.”
가벼운 실수로 강의실이 떠들썩해졌다.
* * *
“수고했네…….”
“교수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 안정완의 모습에 이세훈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별생각 없이 두 영약을 동시에 집어먹은 탓에 강의실이 한 번 뒤집어진 데다 생도들의 집중력이 완전히 박살 나버렸기 때문이다.
“다음부터는 스캔만 따서 자료로 쓰는 게 좋겠군. 설마 생도들이 저렇게까지 자네의 몸에 관심이 많을 줄은…….”
“죄송합니다. 도중에 실수하는 바람에…….”
“아닐세. 그보다 정말 몸에 문제는 없나?”
살짝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안정완의 모습에 이세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멀쩡합니다.”
“으음…… 그래도 오늘은 다른 일은 하지 말고 돌아가서 푹 쉬게나. 몸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바로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안정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세. 이건 다음에 이야기하지. 조심히 돌아가게나.”
이야기를 얼버무린 안정완이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턱을 쓰다듬었다.
‘분명히 뭔가 의뢰를 하려는 것 같은데…… 뭐, 어련히 알아서 말하겠지.’
굳이 털어놓으라고 닦달할 필요가 없었기에 이세훈은 안정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걸음을 옮겼다.
‘기도실이 이쪽이랬나…….’
파나케아의 내부에 마련된 기도실.
바벨에 재학 중인 순례교인을 위한 장소였는데 말이 기도실이지 실제 용도는 거의 회복실에 가까웠다.
마력과 다르게 신성력은 기도를 통한 집중 상태가 되면 회복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면 참 신기한 힘이란 말이지…….’
신이라는 존재에게 공급받는 힘.
마기와 상극이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가끔씩은 그에 못지않게 찝찝하게 여겨질 때가 있었다.
‘그 신이라는 게 어떤 녀석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순례자는 과연 그 존재를 제대로 본 적이 있을까.
이세훈이 그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 기도실의 안쪽으로 향했다.
벽면에 걸린 큼지막한 황금색 고리와 의자에 앉은 채 기도하는 생도들.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모두가 얼굴이 퀭했는데 이세훈은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옆으로 빠졌다.
‘왼쪽 복도…….’
최연소 대주교에게 들었던 위치를 떠올리며 이세훈이 안쪽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응접실’이라고 붙은 방문 앞에 도착해 가볍게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상대의 허락에 이세훈은 곧장 안으로 들어섰고, 수업 중에 보았던 최연소 대주교가 부드럽게 웃으며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이세훈 생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인 대주교님.”
이세훈의 인사에 최연소 대주교, 제인 로즈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제 이름을 알고 계셨네요?”
“바벨의 유명인 중 한 분인데 이름 정도야 파악하고 있죠.”
정확히는 몽환규도를 통해 봤었던 빙견의 자료에서 알게 된 것이지만 어쨌든 기억하고 있으면 된 거 아니겠는가.
“이런 쪽으로는 조금 관심이 없다하셔서 모르실 줄 알았는데…… 아, 일단 앉으시죠.”
“알겠습니다.”
이세훈이 소파에 앉았고 제인은 미리 준비해둔 찻주전자와 찻잔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찻잔을 채워 넣은 다음 이세훈에게 내밀었다.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차예요. 수업 중에 있었던 피로를 푸는 데도 도움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별로 마실 생각은 없었지만 차려준 정성이 있었기에 이세훈은 얌전히 받아들여 찻잔을 홀짝였다.
‘카말 영감이 끓여주던 거랑 똑같네.’
신성력으로 재배한 특수한 찻잎.
마시기만 해도 정신을 회복시켜주고 피로를 풀어줬는데 돈 많은 영웅들은 물 대신 마실 정도로 쓸 만한 물건이었다.
자신의 찻잔에도 차를 따른 제인은 그대로 조용히 마시기 시작했고 응접실에 잠시 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풀어졌을 때쯤. 찻잔을 내려놓은 제인이 입을 열었다.
“오늘 이렇게 갑자기 뵙기를 요청한 이유는…… 저희 교단에서 이세훈 생도께 한 가지 제안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예요.”
“말씀하시죠.”
“혹시 ‘성법기聖法器’가 어떤 물건인지 알고 계시나요?”
어느 정도 예상한 질문이었기에 이세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력을 사용해 만들고 신성력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무구로 알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신성력을 보유한 이들만이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물건.
그렇기에 외부에 거의 유통되지 않고 순례교 내부에서만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물건이었다.
“맞습니다. 세간에는 순례교인을 위한 무구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쓰이고 있죠.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빈 찻잔에 다시 차를 채우며 제인이 씁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본래는 마력을 신성력으로 변환시켜 순례교인이 아닌 영웅분들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교단의 장인분들도, 외부에서 초청한 장인분들도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음…….”
“그래서 교단 내부에서도 포기하자는 말이 나오려던 그때…… 이세훈 생도가 갑작스레 나타났죠.”
성법기, 신성력 변환 장치와 마찬가지로 무구산업의 난제로 꼽혔던 양산형 검기.
그것을 올해 막 입학한 1학년 생도가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낸 것이다.
그 모습에 교단은 신성력 변환장치 프로젝트를 순순히 포기하는 대신 마지막 시도를 하기로 했고.
“그게 바로 이세훈 생도께 부탁드리자는 겁니다.”
양산형 검기도 성공했으니까 신성력 변환 장치도 해봐라!
참 속편한 계획이었지만 또 나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안 될 것 같으면 자신들보다 똘똘해 보이는 사람에게 맡기는 게 나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순례교는 모르고 했겠지만 그들의 선택은 아주 정확했다.
‘신성력 변환 장치라…… 오랜만에 들어보는구만.’
만마전과의 전쟁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인류 연합의 모든 기술자를 끌어 모아서 진행했던 연구.
신의 존재를 위협한다는 극단주의자와 만마전에게 정보를 팔아넘긴 배신자. 오랜 연구로 미쳐서 자폭스위치를 만든 정신병자 등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연구는 성공이었다.
계획한 것보다 효율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마력을 신성력으로 변환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지금도 몇 가지만 준비하면 만들 수는 있지만…… 당장은 좀 그렇지.’
신성력을 각성했다는 소문만 퍼져도 난리가 날 텐데 신성력 변환 장치 같은 걸 만들었다가는 장담건대 십악이 자신을 죽이려고 발작을 할 것이다.
물론 그때는 완등자가 직접 자신을 보호해 줄 수도 있겠지만 재수 없으면 싸움의 여파에 휩쓸려 허무하게 죽게 되리라.
‘일단 의뢰는 받고…… 상황을 봐가면서 만들자.’
어찌되든 회귀 전보다는 빠르게 완성될 테니 지금 중요한 건 환락가의 공략에 차질이 없게끔 조절하는 것.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이세훈은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제인을 바라보았다.
“워낙 어려운 주제라 확실하게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기회를 주신다면 저도 한번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저, 정말인가요?”
“예. 다만 이 의뢰에 대해서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외부에 퍼지면 조금 위험해질 것 같아서요.”
이세훈의 이야기에 제인이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교단에서도 이 이야기는 교주님과 대주교들끼리만 이야기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자세한 이야기들은 앞으로 차근차근 맞춰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체결만 하고…… 혹시 저희들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그런 일은 없으신가요?”
생각보다 쉽게 체결된 계약에 미소를 지으며 물어보는 제인. 그에 이세훈은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제가 알기로 교단에서 병원이나 재활시설에 종종 자원봉사를 간다고 한다던데…… 대주교님도 자주 가십니까?”
“예? 아, 뭐 그렇죠. 강제는 아니어도 교단에서 권장하는 편이라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전장의 지원뿐만 아니라 민간봉사도 활발하게 하는 순례교. 기대한 그대로의 대답에 이세훈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럼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만…….”
* * *
이탈리아의 해안가에 위치한 안토니오 재활병원.
광활한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장소로 풍경만큼이나 건물 역시 깔끔하게 지어져 있었는데 내부의 분위기는 그렇게까지 썩 좋지 않았다.
“눈깔이 하나밖에 없어서 앞이 잘 안 보이나? 그럴 거면 남은 것도 하나 파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보고도 못 피한 네가 잘못이지. 이 다리병신새끼야.”
쿠구구궁
한쪽 눈이 탁한 노인과 목발을 짚은 노인이 서로를 마주보며 으르렁거렸고 그와 동시에 주변의 대기가 떨렸다.
노쇠하고 은퇴했다고 해도 현역시절 A급, 혹은 준S급으로 평가받았던 고위 영웅들. 그렇다보니 신경전만 벌여도 그 여파가 심상치 않은 것이다.
“또또 지랄이군…….”
“누가 저 개새끼들한테 의체 같은걸 준 거야?”
그 모습을 본 다른 환자들은 도망치기보다 지긋지긋하다는 듯 혀를 찼고, 두 노인의 분위기는 점차 가열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두 사람이 막 서로에게 주먹과 목발을 휘두르려던 그 순간.
“어르신!!!!!”
병원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거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외침에 두 사람의 몸이 멈칫했고, 그대로 고개를 돌려 소리를 지른 사람을 바라보았다.
“오늘 외부에서 자원봉사자 분들 오시니까 얌전히 있으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어요!!! 진짜 저 목구멍 찢어지는 꼴 보고 싶으세요!!?!?”
2m를 훌쩍 넘기는 건장한 간호사의 우렁찬 외침에 노인들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저놈이 먼저 부딪쳤단 말이다.”
“저 새끼가 나한테 먼저 시비 걸었어.”
서로 한 마디씩 하고는 다시 노려보는 두 사람. 그 모습에 간호사, 알레시아가 다시금 소리쳤다.
“두 분 다 자리로 돌아가세요!!!”
“끄응…….”
“쯧…….”
두 노인이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제 자리로 돌아갔고, 한숨을 푹 내쉰 알레시아는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에게 향했다.
“이제 들어오시면 됩니다.”
신부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부로 들어왔고 제인이 모두를 대표하듯이 앞에 나서서 환자들을 바라보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순례교에서 나온 제인 로즈라고 합니다.”
환자들이 자리에 앉은 채 무심히 바라보았고, 그 다음으로 뒤쪽에 서있던 청년이 걸어 나왔다.
흑발에 인상이 부드러운 나긋한 청년. 자연스럽게 변장한 이세훈이 고개를 꾸벅였다.
“제임스 리 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성의 없는 이름이었지만 환자들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러려니 했고 이세훈은 소개를 끝낸 뒤 곧장 물러섰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긴 은발의 여인에게 속삭였다.
“잘해.”
“……닥쳐.”
작게 대답한 여인이 그대로 앞으로 걸어 나갔고 이내 어색하게 웃으면서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루, 루이스 아리스프라고 합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루이스, 변장한 루이제의 어색한 인사에 환자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고.
‘……저 새끼 끝나면 무조건 팰 거야.’
루이제가 이를 갈며 뒤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