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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77화 (177/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77화

인챈트학부의 고대인챈트학 강의실.

한창 새로운 인챈트의 구상에 몰두하고 있던 레아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 인챈트에 부족한 점이 없냐고?”

“그래. 그래도 인챈트는 네가 훨씬 선배니까 보이는 게 있을 거 아냐.”

“…….”

이세훈의 물음에 레아가 말없이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파닥파닥!

전신에 인챈트가 새겨진 채 날갯짓을 하는 강철로 만든 참새.

각 관절이 매끄럽게 움직일 뿐만 아니라 인챈트가 희미하게 바람을 만들어내 공중에 떠오르게 만든다.

인챈트간의 연계는 물론 세세한 바람의 조절까지 흠잡을 곳 없는 복합적인 기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아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반년도 안 돼서 그런 걸 만들어 놓고 부족한 게 없냐고 물어보는 거야?”

“이게 뭐.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간단한 인챈트를 대충 끼워놓은 건데 뭐가 대단하단 말인가. 이세훈의 대답에 레아가 가만히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알겠어. 후배한테 뭐가 부족한지.”

“뭔데?”

“상식이랑 겸손함.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너 때문에 인챈트 때려치웠어.”

“……그런가?”

의아한 표정으로 인챈트를 살피는 이세훈. 장난치는 게 아니라 진지한 그 모습에 레아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제련 쪽으로는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면서 인챈트는 묘하게 신중하단 말이야.’

좋은 결과물이 나와도 본인의 인챈트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제련 쪽의 경험을 이용해서 ‘편법’을 썼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면서도 너무 과한 게 아닐까 하고 레아가 고민하던 그때.

“흠. 그럼 질문을 바꿔서 고대인챈트적으로는 어때?”

“응? 고대인챈트?”

“그래. 어차피 평가시험에서 보는 건 그쪽이잖아.”

“아. 아아. 그거 때문에 물어본 거구나.”

그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인 레아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거라면 할 말이 있기는 한데…… 후배는 굳이 거기에 맞출 필요 없어. 1학기는 어차피 기초적인 것만 보니까. 지금 수준이면 그냥 만점 받을걸?”

레베카 교수, 할머니의 1학년 평가시험 준비를 몇 번 도운 적이 있었기에 학기별로 난이도는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아마 저 정도 수준이라면 반쯤 졸면서 인챈트 해도 몸이 숙달되어서 만점을 받을지도 모르리라.

그런 레아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만점으로는 안 돼. 완전 정신 나간 만점을 받아야지.”

“그건 또 무슨 개소리…… 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레아가 무언가 깨달으며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학년수석 따려고?”

“당연하지. 그 정도는 해야 체면이 살 거 아냐.”

“…….”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재수 없는 말을 꺼내는 이세훈의 모습에 레아가 떨떠름하게 바라보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했다.

‘하긴…… 이놈이 안 그러면 누가 그러겠어.’

늘 본인이 인생을 수십 년 더 살아본 것처럼 행동하던 녀석 아니던가.

대수롭지 않게 넘긴 레아는 앞선 이세훈의 질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학년수석이 학부, 학과, 학년시험까지 전부 반영해서 평가한다고 했었던가?”

“맞아. 거기에 만점을 받아도 결과물에 따라 더 쳐준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최대한 좋은 평가를 받아야지.”

재학 중에 한 번이라도 만점을 받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생도들과 전혀 다른 사고방식. 그 모습에 레아는 여러 의미로 감탄하면서 이세훈의 인챈트를 다시 보았다.

“흐음…… 좋아. 일단 고대인챈트학이 어떤 개념인지는 기억하지?”

“인챈트로 기존의 사물을 모방해서 강화하는 방식이잖아.”

“맞아. 예를 들면…….”

레아가 자신의 머리카락에 꽂혀 있는 헤어핀 중 푸른색 보석이 박힌 것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옛날에 너한테 보여줬던 이 ‘머큐리 Mk.1’의 경우 수성을 모방해서 만든 거야. 그걸로 수속성의 성질을 강화시킨 건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

이세훈을 바라본 레아가 미소를 지었다.

“수성의 기원을 조금 모방했을 뿐인데 어째서 수속성 마력이 강화되는 걸까요?”

아직 강의에서 가르치지 않은 내용. 하지만 이세훈은 비슷한 개념을 알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수성에 대한 개념이 네 심상 속에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 일반적인 인챈트보다 강력한 효과를 내는 거고.”

예를 들어 붉은색을 모방해서 인챈트할 때. 거기서 연상되는 요소들을 나열하면 불꽃과 피, 사과와 장미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렇기에 이 경우에는 모방으로 인한 효과가 떨어졌는데 그 범위를 불꽃, 더 나아가 태양을 좁힐 경우 달라진다.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느끼면서 쌓았던 태양에 대한 개념. 그게 강력한 심상으로 변한다.’

일반적인 인챈트가 처음부터 끝가지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라면 고대인챈트는 기존의 사물을 모방하면서도 자신의 방식대로 고친다.

그 덕분에 고대인챈트는 일반적인 인챈트보다 간단하게 그 힘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어…… 그…….”

“틀렸어?”

“아니. 정답이긴 한데…… 쓰읍…….”

저렇게 깔끔하게 설명하면 자신이 할 것이 없어지지 않은가.

오랜만에 잘난 척할 수 있나 싶었던 레아가 입맛을 다시며 이야기를 이었다.

“뭐, 아무튼 설명을 계속하자면 고대인챈트학에서 중요한 건 무엇을 모방할 것인지, 그리고 그걸 어디에 대응시킬 건지가 중요해. 간단히 말해서 퍼즐 맞추기인 거지.”

지구의 생물을 보살피는 태양을 모방한다면 보조적인 효과로, 모든 것을 불사르는 태양을 모방한다면 파괴적인 효과에 대응시켜야 제대로 강화된다.

레아의 설명에 이세훈은 그제야 고대인챈트학의 중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했다.

“즉, 모든 걸 모방할 사물에 맞춰서 진행해야 한다는 거네.”

“바로 그거야.”

“흐음…… 좀 까다롭긴 하구만.”

이세훈의 평가에 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배우고 있지만 솔직히 귀찮기는 해. 자세히 파고들면 재료와의 상성도 따져야 하고 인챈트 술식에 상징 같은 것도 끼워넣어야 되니까.”

기존의 인챈트는 그냥 차곡차곡 쌓아 올리듯이 만들면 그만이지만 고대인챈트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방할 사물에 맞춰서 만들어야 했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주도적인 기술이라 나쁘지 않아.’

기존의 인챈트가 뼈대를 덮는 살이었다면 이쪽은 인챈트가 뼈대로 쓰인다. 까다롭고 어려운 만큼 제대로 완성된다면 잠재력은 이쪽이 훨씬 뛰어나리라.

‘흐음…… 좋아. 시험 때는 그걸 만들면 되겠군.’

이세훈이 참새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을 때. 주머니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잠시 할 이야기가 있어.] - 이노우에 에리카.

“흐음…….”

짤막한 메시지의 내용에 이세훈이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이만 가 볼게.”

“그래그래. 시험 준비 열심히 하고.”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았다.

“뭘 남 일처럼 말하고 있어? 너도 슬럼프 극복했으니 이제 다시 학과수석 따야 될 거 아냐.”

“어? 아. 뭐 그렇기는 한데…….”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꼬리를 흐리는 레아. 그 자신감 없어 보이는 모습에 이세훈이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학과수석 못 따면 전에 줬던 카드 정지야.”

“뭐, 뭐?! 치사하게 줬다 뺏는 게 어디 있어!”

“검기 양산화도 끝냈으니까 줄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 나중에 회사 만들어도 안 넣어 줄 거야. 학과수석도 아닌 녀석이 들어올 만큼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거든.”

“이…… 이런…….”

분하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니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부들거리는 레아.

그 모습에 이세훈은 약간의 미끼를 던졌다.

“대신 학과수석 따내면 선물 하나 줄게.”

“……선물?”

선물이라는 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이 귀를 쫑긋거리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이야기했다.

“천운철이라고 알아?”

“음? 알지. 전설 등급 재료 중에서 유명한…….”

담담하게 대답하던 레아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내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 설마…….”

“조만간 그걸로 무구를 하나 만들 생각이야. 그때 인챈트할 수 있는 기회 줄 테니까 공부 좀 열심히 해봐.”

담담하게 이야기한 이세훈은 강의실 밖으로 나갔고, 홀로 남은 레아는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천운철…… 전설 등급…… 인챈트…….’

고장 난 녹음기처럼 세 단어가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돈다. 그리고 멍하게 풀어져 있던 레아의 눈동자에 천천히 생기가 돌아왔고.

“……까짓 것 잠 좀 안 자지 뭐!”

커피와 에너지 음료 수십 개를 주문해 놓고 자신의 공방으로 재빠르게 달려갔다.

* * *

에리카와 만나기로 약속한 공원으로 향하던 이세훈은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그대로 횡단보도의 앞에 멈췄다.

‘회귀 전에는 이런 것도 그냥 뛰어넘고 다녔는데. 지금은 좀 눈치가 보인단 말이야.’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어지간히 급한 일이 없다면 그렇게 힘을 휘두르지 않는 영웅들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암묵적인 규칙이기에 무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는데 당연하게도 영웅들 사이에서 썩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니까.’

산을 부수고, 호수를 뒤엎으며, 바다를 가를 수 있는 S급 영웅들도 자신보다 한참 약한 사람들의 기준에 최대한 맞춰서 생활한다.

그렇게 강해지기 전에 생활습관을 기억하기 때문도 있지만,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그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마음대로 힘을 휘두르면 어떻게 될 것인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고, 실제로 과거에 일어나기도 했었다.

‘유럽 집단 쿠데타 사건이었나…….’

만마전과의 냉전 초창기.

S급 영웅 세 명이 무장조직을 만들어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그리스의 수뇌부를 죽이고 국가를 장악하는 사건이 일어났었다.

쿠데타가 성공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시간.

수뇌부와 그 경호부대는 모조리 몰살당했고 그 생중계를 본 시민들은 저항을 포기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대항 자체가 불가능했고, 세 국가의 다른 고위 영웅들 역시 자신들의 목숨과 혜택을 생각하여 침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쿠데타의 결과가 전 세계에 퍼지자 고위 영웅들 사이에 불온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약고에 불이 붙은 것처럼 거대한 폭발이 터져 나오려던 그때.

퍼억─!

지켜보던 완등자들이 움직였다.

연설을 펼치던 S급 영웅들의 전신이 짓눌려 으깨지고, 머리통이 화살에 꿰뚫려 폭발했으며, 어둠 속에 끌려간 다음 망자가 되어 돌아왔다.

영웅들의 지배를 암묵적으로 지지해 주리라 생각했던 완등자들의 응징.

단 한 번의 무력행사로 폭발 직전이던 사회가 진정되었고, 지금의 형태로 변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평화롭게 풀렸다고 할 수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참 찝찝하단 말이야.’

완등자들은 정말 선의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그들은 영웅들을 통제하여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이것도 언젠가는 알아봐야 할 일이지.’

만마전을 이기기 위해서는 완등자의 힘을 적재적소로 사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을 부려먹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견본도 많이 필요하고.’

학년수석이 되어 완등자에 대해서 좀 더 심도 깊게 이해하고, 연구한다.

이세훈이 그 목적을 되새기는 사이 신호등의 불이 바뀌었다.

“흠.”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횡단보도를 향해 걸음을 옮겼고.

“언제 왔냐?”

“방금.”

어느샌가 옆에 나타난 에리카가 자연스럽게 따라 걸었다.

“전부터 궁금한 건데 뒤에서 나타나는 게 취미야?”

“아니. 그런 이상한 취미는 없어.”

“…….”

그런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매번 앞이 아니라 뒤에서 나타나 걷는 걸까. 참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이었지만 이세훈은 그러려니 하며 물었다.

“그래서…… 아, 걸으면서 이야기하기는 좀 그런가?”

“아니. 딱히 상관없어. 바로 이야기할까?”

“그래. 어차피 시간 끌 필요도 없으니까.”

“응.”

이세훈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에리카가 정면을 바라보고 걸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이번에 내가 학년수석이 될 거야.”

“흐음…… 되고 싶다가 아니라?”

“응. 될 거야.”

확신이 담긴 에리카의 대답에 이세훈이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씩 웃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내가 학년수석이 되면 완등자와의 특별체험을 양도할게. 대신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

“흐음. 뭔지는 말 안 해주고?”

“응. 아직은 안 돼.”

에리카의 대답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러다가 내가 학년수석이 되면 어쩌려고?”

“…….”

그 질문에 에리카가 걸음을 멈췄고, 몇 걸음 더 걸어가던 이세훈이 그대로 뒤돌아보았다.

흔들림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보랏빛 눈동자. 무표정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서늘한 그 시선에 이세훈이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안 될 건 없지.”

“……그렇구나.”

계속해서 이세훈을 바라보던 에리카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땐 내가 네 부탁을 들어줄게. 뭐든지.”

“뭐 안 걸어도 되겠어? 그러면 나한테만 유리한데.”

“괜찮아.”

천천히 몸을 돌린 에리카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까악─!

검은 그림자가 솟구치는가 싶더니 까마귀의 울음소리와 함께 에리카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저 멀리 날아가는 까마귀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작게 중얼거렸다.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일까.

피식 웃은 이세훈이 다시 몸을 돌리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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