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91화
“…….”
눈앞에 나타난 괴물의 인사에 이세훈은 입안이 바싹 마르며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악몽의 여왕, 몽환의 성주, 환락가의 주인.
한때 저 아름다운 괴물을 나타내는 표현은 매우 다양했지만, 이제는 몽환마라는 명칭만이 남았다.
몽환마가 가진 악명과 힘을 전 인류가 알게 되면서 하나의 고유명사로 변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소름끼치게 예쁘구만…….’
선명하서도 흐릿하며, 사람들이 꿈에 그리는 이상형을 모조리 반영한 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이질적이다.
너무 이상적이기에 오히려 불쾌감이 느껴지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입을 열었다.
“어떻게 바벨 안으로 들어온 거지?”
이세훈의 직설적인 물음에 몽환마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모처럼의 만남인데 벌써 그런 이야기인가요? 우선은 서로를 알아 가는 게…….”
“헛소리에 어울려 주는 취미는 없어서.”
몽환마의 이야기를 잘라낸 이세훈이 적의가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말하든가, 싸우든가. 둘 중 하나야.”
타협의 여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단호한 말투.
자신이 눈앞에 나타났음에도 위축되기는커녕 제 호흡대로 이끌어 가려는 이세훈의 모습에 몽환마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이내 입가를 가리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후훗. 그래요. 그럼 일단 앉아서 이야기할까요?”
몽환마가 주변에 시선을 보내자 보랏빛으로 끈적이는 지면이 위쪽으로 솟구치더니 길이가 10m인 기다란 탁자와 의자로 변했다.
언뜻 봐도 고급스러운 형태의 가구. 반대편 의자에 앉은 몽환마는 여유롭게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괜한 수작은 안 부렸으니 편하게 앉으셔도 돼요.”
“…….”
몽환마의 이야기에 이세훈은 탁자와 의자를 슬쩍 훑어보고는 별다른 말없이 곧장 앉았다.
‘흐음…….’
자신이 권유하긴 했지만 거침없는 움직임.
그 모습에 몽환마가 흥미롭게 보고 있을 때, 이세훈이 담담히 물었다.
“그래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말 성급하시네요.”
쓴웃음을 짓던 몽환마는 옆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우웅─
오른쪽 눈의 샛노란 동공이 희미하게 빛나자 주변의 보랏빛 안개가 하나로 뭉치더니 성인 한 사람이 오고갈 정도로 큼지막한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구멍의 너머로 이곳과 다른 풍경들이 비춰지기 시작했는데 현실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하게 왜곡되어 있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세훈은 금방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꿈인가?”
“맞아요. 정확히는 바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꿈이죠.”
몽환마의 오른쪽 동공이 다시금 요사스럽게 빛났고, 구멍 너머에서 또 다른 몽환마들이 나타나며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 모습을 과시하듯이 보여준 몽환마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저의 꿈이기도 하고요. 이걸로 대답이 되었나요?”
몽환의 마력을 사용하여 타인의 꿈을 자신의 영역처럼 자유자재로 오가는 몽환마의 능력.
언뜻 보기에는 하찮게 보일 수도 있지만 과거 A급 영웅을 포함한 수백 명의 영웅들을 단번에 혼수상태로 만들었을 만큼 강력한 힘이었다.
이유를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압박하는 몽환마의 모습에 이세훈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구라치고 있네.’
어디까지나 겉으로는.
‘허세부리는 걸 보니 자신이 본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목적인가’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면 그런 의심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아미르를 통해 모든 수작을 확인한 이세훈은 금방 진상을 알아냈다.
‘루트비히가 다시 돌려보냈을 때 아미르가 새겨놓은 표식을 타고 안쪽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들어온 것은 본체가 아니라 보라색 보석 안에 넣어 뒀던 몽환마의 힘, 즉, 분신 같은 존재가 분명하리라.
‘뭔가 하려고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떠볼 생각으로 온 것 같은데…….’
그래도 상대가 상대인 만큼 절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생각을 정리한 이세훈은 한 차례 숨을 고른 다음 몽환마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지?”
“당신과 만나보고 싶어서죠.”
“그게 전부라고?”
“그 이외에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요?”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이 물어보는 몽환마의 모습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내가 잘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위험천만한 곳에 숨어 들어올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거든.”
이전처럼 루트비히가 자리를 비운 상태라면 모를까 시험 때문에 바벨 전체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
이곳에 있다는 것을 들키는 순간 몽환마의 본체라고 할지라도 쉽사리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위험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을 보러 왔는가. 그런 이세훈의 물음에 몽환마가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가치라…… 당신은 자신의 가치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굳이 대답해야 하나?”
“여흥이라고 생각하세요. 어차피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잖아요?”
“…….”
이세훈이 겉으로 티내지 않고 여러 시도를 해왔다는 것을 단번에 꿰뚫어 본 몽환마가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저와 대화한다면 준비할 시간도, 빠져나갈 단서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죠. 그러니까 지금은 서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
다과회라도 하는 것처럼 여유로운 목소리. 마치 어린아이의 재롱을 구경하는 듯한 그 모습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렸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못해도 S급 영웅 정도는 되겠지.”
난제로 꼽히던 검기 양산화에 성공하긴 했지만, 그것 하나 가지고는 완등자와 비견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세훈은 그 아래라고 볼 수 있는 S급 영웅을 골랐고, 몽환마가 미소를 지었다.
“상당히 자신이 넘치시는군요.”
“겸손할 필요는 없으니까.”
“후후. 그렇죠. 일단 그 가치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당신은 자신을 낮잡고 있어요.”
이세훈을 바라본 몽환마가 샛노란 동공을 반짝였다.
“만약 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존재를 뽑으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이세훈 씨, 당신을 고를 거예요.”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에게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존재라고 이야기해 준다.
겉만 보면 가슴이 뛸 수도 있었겠지만, 눈앞의 존재가 십악이라는 걸 알면 찝찝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였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짐작 가시나요?”
“…….”
말없이 바라보는 이세훈의 모습에 몽환마가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저랑 닮은 것 같거든요.”
“……뭐?”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리에 이세훈이 다시 물으려던 그때. 반사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틀면서 명치에 손을 얹었다.
화르륵!
보랏빛 불꽃이 피어오르며 몽환규도가 쥐어졌고, 이세훈은 곧장 자신의 오른쪽 눈이 있었던 자리에 찔러 넣었다.
푸욱!
무언가 꿰뚫리는 감각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보라색 나비.
자신의 오른쪽 눈을 앗아가려고 했던 괴물의 모습에 이세훈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콰아앙!
탁자를 걷어차 몽환마의 시야를 가린 다음 뒤로 물러서며 루트비히가 이곳의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승천제의 반지로 공간의 권능을 사용한다.
처음처럼 공간왜곡으로 약간의 빈틈만 만들어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지만.
“쉿…….”
몽환마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주변에 울려 퍼졌다.
파앗
승천제의 반지에 담겨져 있던 마력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더 나아가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 같은 모습. 그에 이세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앞을 바라보았다.
“저와 이야기 중인데 다른 사람을 부르려고 하다니. 예의범절은 다시 배워야겠네요.”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댄 채 장난스럽게 웃는 몽환마. 그 모습에 이세훈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
자신이 사전에 파악했던 것에 비해서 힘이 너무 크다. 그런 이세훈의 혼란을 알아차린 듯 몽환마가 검지를 떼어내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승천제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약해 빠진 분신으로 침입해서 본체인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그렇게 생각했었나요?”
“…….”
“확실히 올바른 추측이네요. 승천제가 지키고 있는 바벨에 당당하게 침입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몽환마의 몸에서 보라색 안개가 흘러나오고 오른쪽 눈의 샛노란 동공만이 더욱 요사스럽게 빛나며 힘을 부풀린다.
마치 정말로 몽환마의 본체가 이곳으로 건너온 것만 같은 거대한 존재감.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저도 조금 꾀를 부렸답니다.”
아미르가 가져온 보석함, 그 안에 들어 있던 보라색 보석이 몽환마의 ‘눈’이었다는 것을.
촤라라락!
바닥에서부터 수천 마리의 보라색 나비들이 솟구쳐 올랐고, 이세훈을 향해 파도처럼 쏟아졌다.
그 모습에 이세훈은 곧장 왼손에 천충검으로 백광을 만들어낸 다음 몽환규도와 함께 휘둘렀다.
콰가가각!
하지만 베어서 떨어뜨리는 나비들보다 덤벼드는 나비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하나씩 몸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몸이 갉아 먹힌 것처럼 흐릿하게 변했다.
몽환의 마력에 의한 꿈 치환.
이대로라면 야금야금 갉아 먹혀 결국 쓰러지는 것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떠올린 이세훈은 검을 휘두르는 대신 오히려 아래로 늘어뜨렸고.
촤라라락!
나비들이 이세훈의 몸을 완전히 휩쓸었다.
흔적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이세훈이 서 있던 자리에 계속해서 뭉쳐 달려드는 수천 마리의 나비. 몽환마가 조금의 동요도 없이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고.
화륵─
나비들의 몸에 보라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한 마리에서 시작된 불꽃은 순식간에 뭉쳐 있던 수천 마리를 불태웠고, 이내 거대한 보라색 불꽃이 주변을 휩쓸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것은 보라색 눈동자를 번뜩이는 이세훈.
자신의 꿈 치환을 완벽히 흘려낸 그 모습에 몽환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하핫.”
환희로 가득 찬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핫!”
새로운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웃음 이외에는 표현할 수 없는 쾌감과 기쁨으로 가득 찬 웃음소리.
주변의 공간이 떨릴 만큼 격렬한 반응에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몽환마가 자신을 습격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세훈은 그 목적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여러 번 고민했었다.
자신의 어떤 부분이 몽환마가 바벨에 다시 숨어 들어오는 무리수를 선택하게 만든 걸까. 그동안은 확실치 않았지만, 지금의 모습으로 확실히 깨달았다.
“내 눈을 노린 거냐?”
정확히는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안법, 몽환안을 노리고 숨어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 이세훈의 확신어린 물음에 몽환마가 웃음을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도 있죠. 상황을 보아하니 마키프를 쓰러뜨린 것도, 이전에 여객선에서 제 문양을 파훼한 것도 당신이었던 모양이네요.”
몽환안을 가지고 있으니 그 정도 문양을 가볍게 파훼했을 것이고, 공간능력은 승천제의 권능이 담긴 반지로 만들어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방금까지도 반신반의했는데 진짜였을 줄이야…….”
이렇게 어린 소년이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몽환안을 각성할 수 있을 만큼 재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기쁨으로 가득 찬 몽환마의 모습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려졌다.
“이걸로 뭘 할 셈이지?”
“할 수 있는 것들이야 많죠. 물론 그 전에 가르쳐야 할 것들이 산더미지만…… 아아. 그래, 혹시 모르니까 정식으로 제안 드릴게요.”
이세훈을 바라본 몽환마가 자신의 오른손을 뻗었다.
“제 후계자가 될 생각이 없나요?”
“뭐?”
“말 그대로예요. 당신에게 기술과 힘, 권력……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드릴 수 있어요.”
몽환마의 이야기가 귓가를 간질이듯 스며들었고, 이세훈은 가슴이 묘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제 뒤를 이어 환락가의 주인이 된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어요.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말이죠.”
“……모든 것?”
“맞아요. 따로 원하는 것이 있나요? 조금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시범을 보여줄 수도 있어요.”
몽환의 마력을 끌어올리며 미소를 짓는 몽환마의 모습에 이세훈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한 가지 있긴 하지.”
“좋아요. 뭐든지 말…….”
“네 머리.”
몽환마를 바라본 이세훈이 입가를 비틀었다.
“살아 있는 거 말고 죽은 걸로 건네주면 고민해 볼게.”
이세훈의 비아냥에 몽환마가 쓴웃음을 지었고,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우선 예의범절부터 가르쳐야겠네요.”
촤라라락!
몽환마의 주변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나비들이 솟구쳐 올랐고 주변을 가득 채워 나갔다.
자신의 몸을 갉아 먹히는 것을 넘어서 공간 전체가 몽환마의 제어 하에 들어간다.
그 압도적인 광경을 올려다보며 이세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째서 몽환성을 불러내지 않지?”
“……?”
“본체에 가깝다면 일부라도 불러낼 수 있잖아. 날 데려가는 게 목적이라면 그 안에 집어넣고 도망치면 될 텐데 왜 안 하는 거냐.”
“그건…….”
“그리고 아까 나보고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했었던가?”
시종일관 우위를 점한 것처럼 행동하는 몽환마의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한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처음 몽환마가 이곳에 숨어 들어왔다고 했을 때. 이세훈이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은 루트비히가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영웅의 탑과 연결된 공간에 들어가면 시련을 완수하는 데 집중하게끔 조정을 가해둔 상태였네. 하지만 자네의 심상이 너무 견고해서 그런지 조정이 아예 안 통하더군.’
완등자조차 쉽게 개입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심상.
거기에 숨어 들어오는 것까지야 빈틈을 노려서 가능하지만, 과연 빠져나가는 것까지 그렇게 쉬울 수 있을까.
이세훈은 그때부터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척 몽환마가 만들어낸 공간을 자세히 살펴보았고, 금방 비밀을 알아차렸다.
“여기는 네가 완벽히 장악한 꿈이 아니야. 그렇게 할 만한 힘도 없었고, 설사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이상을 알아차린 학원장님이 바로 개입했겠지.”
“…….”
“그래서 그럴싸하게 꾸며놓기만 한 거지. 몽환안을 확인하고, 내 심상을 무너뜨린 다음에 여기서 빠져나가려고. 그래야 본체와 연결돼서 그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
이세훈의 이야기에 몽환마, 그녀의 눈으로 만들어낸 분신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래서?”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고 분신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걸 알아낸 걸로 네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죠? 날 여기서 제압이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겨우 그 정도 힘으로?”
흘러나오는 살의에 주변의 공간이 같이 공명하며 전신을 짓눌러 온다. 분신이라 할지라도 신체의 일부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개체.
거기에 꿈과 비슷하게 만들어낸 이 공간이 분신의 힘을 더더욱 본체에 가깝게 만들어냈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조종하는 몽환마의 힘.
지금 이세훈으로 상대하기가 벅찼지만.
“그래.”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린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
푸욱!
이세훈의 몽환규도가 승천제의 반지가 끼워져 있던 손가락을 꿰뚫었고, 방금까지 사라져 있었던 금색 반지가 돌아왔다.
그 모습에 이세훈은 재빠르게 마력을 불어넣어 공간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물러요.”
키잉─
하지만 공간이 비틀리기도 전에 주변이 고풍스러운 성의 홀, 몽환성의 일부로 변하며 일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 상태라면 잠깐이지만 승천제의 개입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
‘이대로 저자의 정신을 완전히 제압하는 수밖에.’
혹시라도 흠집이 생길까봐 피하고 싶었지만, 이대로 계속 갇혀 있다가 승천제가 개입해 오면 모든 것이 틀어진다.
그렇게 분신이 다시 움직이려던 그때.
휘익
허공에 작은 아공간이 열렸고, 그 안에서 주문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손가락뼈가 빠져나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꺼림칙한 물건. 그에 분신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인연각인’
[인연각인 ‘탐철’이 발동됩니다.]
콰드득!
불명자의 지골이 이세훈의 손아귀에서 으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