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14화
“……후우.”
뒤쪽에서 느껴지던 무시무시한 마력이 사라진 것을 깨달은 루이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봐온 마법들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마법.
이대로 죽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는데 어찌 해결된 것이다.
‘저게 그럭저럭 괜찮은 무구라니…… 하여간 미친놈이라니까.’
도대체 눈높이가 어디에 맞춰져 있길래 저런 마법에 대항할 수 있는 물건을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라고 표현하는 걸까.
그 의문에 루이제는 어렵지 않게 답을 깨달았다.
‘아마도 완등자겠지.’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자들이자 격이 다른 괴물들.
이세훈의 눈높이가 그곳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에 루이제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아……진짜 더럽게 까다롭네.”
S급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지만 그 위쪽, 완등자는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었다.
괜히 심란한 기분에 루이제가 머리를 긁적이며 바닥의 돌덩어리를 걷어차고 있을 때.
“푸하! 너 이 빌어먹을 애새끼가…… 나한테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아?!!”
앞쪽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 그에 루이제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이 상대한 두 마인을 바라보았다.
오른팔에 거대한 의수를 착용한 마인과 등 쪽에 기계촉수가 붙어 있던 마인. 둘 다 A급으로 꽤 강했지만, 이번에는 상성이 너무 나빴다.
끼기긱一
의수를 착용한 마인은 그대로 자신의 복부를 꿰뚫은 채 쓰러져 있었고, 기계촉수를 다루던 마인은 자신의 사지를 꿰뚫은 다음 꽁꽁 묶어서 스스로를 포박했다.
마치 자해라도 한 것 같은 모습.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루이제가 사용한 언령마법 때문이었다.
【Strangle】
루이제의 언령이 다시 한번 기계촉수에 파고들었고 잠깐 부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마인의 목을 졸랐다.
“커억…… 컥!”
자신의 기계촉수에 목을 졸려 버둥거리는 마인. 하지만 온몸이 단단히 묶인 상태라 아무런 소용도 없었고, 루이제는 그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이런 녀석들은 확실히 상대하기가 쉽네.’
정면에서 순수하게 힘 싸움으로 갔다면 제압하기 어려웠겠지만 언령으로 의체의 제어권을 강탈해 빈틈을 찌르자 스스로도 어이가 없을 만큼 쉽게 끝나 버렸다.
그 결과를 본 루이제는 새삼스레 전투에서 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타인의 마력을 동화시켜 간섭할 수 있는 힘인가.’
언령마법의 특성이라기보다는 자신이 타고난 재능.
자신이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그 힘에 루이제의 두 눈이 빛났다.
‘이걸 조금더 갈고닦는다면……'
완등자까지는 아니어도 그 근처까지는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루이제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끝났어?”
약간 피곤한 표정을 지은 이세훈이 다가왔다.
“둘 다 죽였어.”
“그래? 생각보다 쉽게 이겼네.”
죽은 마인들을 살펴본 이세훈은 전투가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곧장 알아차리며 살짝 감탄했다.
“이야…… 실력 많이 늘었다?”
“됐어. 그보다 넌 어디 안 다쳤어? 아까 보니까 엄청 요란하게 싸우더만.”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상처가 없는지 슬쩍 살피는 루이제. 그 모습에 이세훈이 웃으며 대답했다.
“다친 곳은 없어. 약간 뻐근한 정도?”
“흐음. 그러면……"
루이제가 이세훈의 맞은편에 서서 시선을 맞췄고, 그대로 복부를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억!
마력이 실리지 않았음에도 상당히 묵직한 일격.
그에 이세훈의 몸이 살짝 굽혀졌고, 자연스럽게 고개가 내려오면서 두 사람의 눈높이가 맞춰졌다.
“이걸로 화풀기다?”
상의도 없이 계획을 진행한 것에 대한 루이제의 불평.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상황이었기에 이세훈은 얌전히 맞아주었고, 그 모습에 루이제가 눈매를 찌푸렸다.
“아픈 척이라도 할것이지……"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모습에 루이제가 투덜거리며 주먹을 떼어 내자 이세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많이 아픈데.”
“뭔 개소리를……"
“내 마음이.”
"........"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가 아무런 대답 없이 바라보더니 곧장 주먹에 마력을 실어서 재차 복부를 후려갈겼다.
빠악!
“크윽……"
바로 방어했음에도 오장육부가 떨리는 일격.
이세훈이 복부를 움켜쥐자 루이제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았다.
“한 번만 더 그러면 진짜 죽어. 알았어?”
“거……까칠하기는……"
“아무튼, 그래서 어떻게 됐어.”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이 숨을 골라 통증을 퍼뜨린 다음 곧장 대답했다.
“처리했지. 몇 가지 해줄 말이 있는데 그건 나중에 다 끝나고 한 번에 설명할게.”
“……알았어.”
약간 불만스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루이제. 그 모습에 탐구자가 귓가에 속삭였다.
[괜찮은 애네.]
‘실력이 나쁘지 않긴 하죠.’ 루이제 재능과 실력이라면 완등자들이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런 이세훈의 대답에 탐구자가 슬쩍 웃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일부러 그렇게 대답한 거지?]
"........"
[애늙은이처럼 굴더니 귀여운 구석도 있는걸.]
건수 잡았다는 듯 능글맞게 놀리는 탐구자의 목소리에 이세훈이 침식된 마력회로를 싹 불태워 버릴까 고민하던 그때.
[이런. 바로 염탐 들어오네. 지금부터는 주의해.]
무언가 발견하고 바로 경고하는 탐구자. 그에 이세훈은 역시 어디선가 시선을 느끼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몽환마 아니면 『여명」이겠지.’
둘 다일 가능성도 있으니 지금부터는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생각을 정리한 이세훈이 루이제를 바라보았다.
“일단 이동하자. 잔당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루이제가 막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이세훈이 자연스럽게 옆에 붙어서 부축했다.
그에 루이제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위장을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할거면 미리 말좀 해.”
“다음부턴 그렇게 할게.”
“맨날 말로만……"
불만스럽게 이세훈을 바라보던 루이제가 물었다.
“야.”
“왜?”
“나 잘하고 있어?”
자신의 복수를 도와주느라 하려는 일에 발목을 잡히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이 담긴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이 곧장 대답했다.
“너만큼 하는 사람이 없지.”
염성하였다면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을 것이고, 아미르는 시도 때도 없이 의심해서 귀찮게 됐을 것이다.
진심이 담긴 이세훈의 대답에 루이제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목에 팔을 둘렀다.
“거짓말하기는……"
* * *
언덕 위에 세워진 집.
경찰들이 진을 치며 주변을 보호했고, 그 주변으로 동네주민들이 웅성거렸다.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난리래요?”
“저기 집주인이 이번 테러로 죽은 연구원이라더군.”
“아아......”
오고가면서 어쩌다가 한 번 얼굴을 본 것이 전부였지만 테러로 죽었다는 이야기에 주민들이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여기저기로 이야기가 알음알음 퍼지고 있을 때. 그 사이로 한 청년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옅은 녹색 머리칼에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청년의 모습에 경찰이 다가갔다.
“무슨 일로……"
“집주인의 형제입니다.”
서류상 알렌 모건에게 형제는 없다. 하지만 청년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에 경찰의 몸이 흠칫 떨렸고, 그대로 고개를 끄덕 였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경찰이 앞장서서 청년을 집 앞까지 안내했고, 거기에 지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공방의 안으로 들어온 뒤. 경찰은 별다른 말없이 문을 바라보며 섰고, 청년은 곧장 천장에 걸린 의체 하나를 잡아당겼다.
촤르르륵!
벽에 나타난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온 청년은 장고를 천천히 둘러보다가 한쪽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아공간 속에서 보관해둔 오른팔을 꺼낸 다음 그 안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창고 곳곳으로 흘러가는 검푸른색이 뒤섞인 주홍빛.
마치 노을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기운들이 끝없이 파장을 일으키더니 잠시 후 창고의 부품들이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찰칵찰칵!
왼팔과 눈, 몸통과 두 다리가 노을빛으로 대체되어 있는 네 개의 인형들.
그들과 마주한 청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렇게 무거운 침묵이 흐르던 그때. 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이세훈을 영입했다고 기고만장하던 알렌 모건, 우완은 결국 실패해 죽어버렸고 그분의 오른팔도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오른팔로 자신들을 호출한 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경계심 가득한 리전들의 모습에 청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세훈.”
그 짧은 대답에 다시 한번 침묵이 감돌았고 네 개의 인형들이 희미하게 떨렸다.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라 너무 놀란 나머지 감정의 동요가 고스란히 인형에 반영된 것이다.
[……네가 어떻게 그 팔을 사용할 수 있는 거지?]
리전은 우완을 죽인 사람이 이세훈이라고 생각했고, 앞서 시도했던 동화도 실패했다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그분의 오른팔을 저렇게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다니.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알렌도 그렇고 다들 당연한 질문을 하네. 당연히 그분의 은총이지.
[은총?]
“그래. 그분께서 나를 선택하셨으니 이렇게 힘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거지. 그거 말고 뭐가 있는데?”
[……이해가 안가]
이세훈을 동화하는 데 실패한 게 아니라면 어째서 우완을 죽였단 말인가.
계속되는 의문에 그릇이 당황하고 있을 때.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이거라면 바로 이해할 수 있겠지.”
우우웅!
오른팔에서 다시금 노을빛이 흘러나왔고, 그 모습에 리전들이 움찔 떨었다.
아카식을 이용한 정보공유.
이야기로 전하는 것보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 종종 쓰는 방식이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섣불리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게 서로가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사태를 지켜보던 발걸음이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받아들이죠.]
발걸음이 이세훈이 보낸 정보를 받아들였고,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강림이라니…….]
그 단어에 남은 리전들의 분위기가 변했고 곧장 이세훈이 보내온 정보를 받아들였다.
[이건…….]
[아아…….]
[오오!!]
경악하는 좌완과 탄성을 내뱉는 눈. 그리고 기쁨에 환호성을 지르는 그릇. 그 각기 다른 반응에 이세훈이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알렌은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처리했어. 환락가에는 전부 그 녀석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었고 너희들이 직접 처리했다고 말해.”
이번 사건을 죽은 알렌에게 뒤집어씌운다.
몽환마가 그걸 진짜로 믿을 가능성은 낮지만 정성을 보이기도 했고 심상저장기의 납품건도 있으니 한 번은 봐주리라.
그런 이세훈의 이야기에 리전들이 잠시 고민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으로써는 그게 최선이겠군.]
[그런데 그렇게까지 몽환마와 손을 잡으려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환락가의 증축 프로젝트를 도우면서 상당한 대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우완을 죽여서까지 유지해야 하는 건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 리전들의 의문에 이세훈이 담담히 답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지. 첫 번째는 이세훈이 몽환마를 죽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
몽환마를 죽인다. 그 대범한 이야기에 리전들이 깜짝 놀라다가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이세훈이?’
왜 갑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는가. 리전들이 의아하게 보고 있을 때. 이세훈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두 번째는 내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몽환마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야.”
자신의 부활. 그 이야기에 리전들의 시선이 오른팔이 아니라 이세훈 그 자체를 향했다.
우우웅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노을빛. 그리고 자신들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지식으로 가득 찬 눈동자에 리전들은 자연스럽 게 그 정체를 깨달았다.
쿠웅!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네 개의 인형은 절을 올렸고 그 모습을 바라본 이세훈, 그 몸을 빌린 탐구자가 담담히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이야기했다.
“우선은 이 아이의 계책에 맞춰 몽환마를 처리한다. 그 다음 루이제 발렌트의 몸을 사용해 부활을 준비할 터이니 너희들은 그에 맞춰 움직이도록 해라.”
탐구자의 지시에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라면 자살을 하라고 해도 곧장 따르는 것이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대답이 필요하지 않은 절대적인 순응. 그 모습에 탐구자가 이어서 이야기했다.
“앞으로 환락가에 지급될 물품은 이세훈의 검수를 받고 보낸다. 대외적으로는 좌완 네가 관리하고 마지막에만 이세훈을 호출하여 살피게끔 하도록.”
역시 돌아오지 않는 대답. 그 반응에 탐구자는 천천히 마력을 거둬들이며 이야기했다.
“곧 돌아올 것이다. 그날을 기다려라.”
후웅!
이세훈에게서 흘러나오던 노을빛이 사라졌고, 리전들은 탐구자를 배웅하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후우…… 이제 일어나.”
약간 피곤해진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하자 리전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켰다.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부르르 떨리는 몸. 기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들의 모습에 이세훈은 굳이 뭐라 하지 않고 나머지 방침을 전달했다.
“지금은 상황이 뒤숭숭하니 사태가 정리되면 내 쪽에서 연락하지. 각자 연락수단을 보내.”
리전들이 얼빠진 상태로 자신들의 연락수단을 마력공유로 알려주었고 이세훈은 그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받아들였다.
“슬슬 마력이 다 떨어져가니까 다음에 보자고.”
후웅!
창고를 가득 채운 노을빛이 점차 사그라들었고 리전들과 연결되어 있던 부품들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조용해진 창고. 오른팔을 다시 아공간 안에 집어넣은 이세훈이 물었다.
“어떤것 같아요?”
[어떻긴. 완벽하지.]
탐구자의 오른팔과 자아를 이용해 『여명』을 환락가를 공략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순조롭게 폴린 상황에 이세훈이 흡족한 표정을 짓다가 눈매를 찌푸렸다.
“윽........”
머리 안쪽을 칼날로 쑤시는 듯한 통증.
아주 잠깐 경계의 권능을 느슨하게 만들어 탐구자의 자아를 받아들였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후유증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 이세훈의 모습에 탐구자가 살짝 감탄했다.
[진짜 두통으로만 끝날 줄은 몰랐는데. 너 좀 신기하네.]
잠깐이긴 하지만 완등자의 자아가 겹쳐진 상황.
거기에 전지의 권능이 가진 특성을 생각하면 더욱더 위험했고, S급 영웅조 차 정신이 온전하다고 장담키 어려웠다.
그런데 그걸 거뜬히 견뎌내는 것도 모자라 두통 선에서 끝내다니. 육체에 비해 정신력이나 영혼이나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 인했다.
“이런 쪽으로 재능이 있어서요.”
[재능인가…… 그거랑은 다른 거 같은데 말이지.]
자신의 상태에 흥미로워하는 탐구자. 그 의문에 이세훈은 굳이 대답해주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스위치가…… 저거구만.’
창고의 한 벽면으로 다가간 이세훈은 곧장 한 부분을 손으로 눌렀다.
쿠구궁
지면이 열리며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고, 이세훈은 그 앞으로 다가가 탐구자의 마력을 불어넣어 잠금장치를 풀었다.
우우웅
안쪽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수십 개의 심상저장기. 영웅들에게서 한 차례 추출한 것인지 보석 안쪽에 희미한 일렁거림이 엿보였다.
[그런데이걸 어떻게 쓸거야?]
“뭐,그리 거창한건아닙니다.”
오른팔의 소매를 걷어붙인 이세훈은 왼손가락에 백광을 끌어낸 다음 팔뚝을 살짝 그었다.
주르륵
아래로 흘러내리는 피. 그것들이 심상저장기에 닿더니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호오…….]
그 과정에 탐구자가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았고 이세훈은 작업을 끝낸 다음 상처를 봉합하고 상자를 다시 닫았다.
[밑밥을 깔아두는건가 보네.]
“그런 셈이죠.”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 구경하는 맛이 있겠어.]
잔뜩 신난 것 같은 탐구자의 목소리에 이세훈이 우두커니 선 채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전부터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
“왜 저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뭘 물어보든 순순히 대답해 주고 협력을 아끼지 않는 탐구자.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리긴 했지만 매번 의문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신을 이렇게 도와주는 것인가.
그 질문에 탐구자가 담담히 대답했다.
[전에 말했잖아 나는 인공지능 같은 거라고. 겉보기에는 자유로워보여도 물어보고 도와달라고 하면 그냥 따르는 거야.]
우연히 자아가 반영되었을 뿐.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탐구자가 생전에 지녔던 전지의 권능일 뿐이다.
“그런 것치곤『여명」보다 저를 더 많이 도와주시는 것 같아서 말이에요.”
[아아. 그건 아마 내 사상 때문일걸?]
“사상?”
이세훈의 물음에 탐구자가 담담히 대답했다.
[멍청한 놈들은 가지고 놀고, 똑똑한 놈들은 지켜본다. 그게 내 사상이었거든. 전지의 권능에도 그게 좀 반영된 거지.]
탐구자의 설명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참 성격 나쁘시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뭐, 이걸로 궁금증은 풀렸어?]
“예. 이 정도면 된 것 같네요.”
탐구자가 자신을 왜 도와주는지 확실하게 알게 된 이세훈은 희미하게 두통이 남아 있는 미간에 손을 가져다댔고.
푸욱!
두 손가락을 머릿속으로 집어넣었다.
화르륵
손을 휘감은 몽환의 불꽃. 꿈 치환 능력으로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던 이세훈은 재빠르게 자신이 찾던 것을 붙잡아 끄집어 냈다.
우웅!
노을빛으로 뭉친 얇고 기다란 실. 살아 있는 생물처럼 발버둥치는 마력덩어리의 모습에 이세훈이 곧장 움켜쥐었다.
파앙!
손 안에서 뭉개지는 탐구자의 마력.『여명』을 속이기 위해 몸을 빌려줬던 그 잠깐 사이에 저것을 머리 안쪽에 숨겨뒀던 것이다.
그대로 놔뒀다면 뇌에 침식하여 정신에 영구적으로 영향을 줬을지도 모를 행동.
그것을 단숨에 처리한 이세훈이 물었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이세훈의 물음에 침묵이 흘렀고 잠시 후 옅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듯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얼마 지니자 않아 웃음소리가 멎으면서 탐구자가 즐겁다는 듯이 대답했다.
[너 똑똑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