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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15화 (215/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15화

완등자는 인류의 편인가?

이 질문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답만 놓고 보면 모두가 긍정했다.

만마전과의 전쟁에서 완등자들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싸워온 것을 모두가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을 조금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완등자는 선한 자들인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라는 고리타분한 논의. 거기서 완등자는 상당히 논란이 많은 존재들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s급 영웅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하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숨기지 않고 전 세계에 간섭해 온다.

좋게 보자면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억압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완등자의 ‘선악善惡’에 대한 논의는 공개적으로는 아니어도 사람들 사이에서 잊을 만하면 언급되는 이야기였고.

“……그냥 미친 새끼아니야?”

몇몇 이들은 아주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도와주는 척하면서 몰래 뇌 속에다가 마력을 심어? 진짜 무슨 개 ㅈ......."

“진정해. 일단 해결했으니까.”

“내가지금진정하게 생겼어?”

우웅一

루이제가 푸른색 눈동자를 불태우며 분노를 드러내자 병실의 마력이 같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 고유스킬 ‘마력동화’의 흔적. 그 모습에 이세훈이 어깨를 토닥였다.

“마음은 알겠는데 계속 그러면 안 교수님한테 혼날걸.”

“……하아.”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가 한숨을 푹 내쉬었고 요동치던 병실의 마력들도 잠잠해졌다.

그렇게 한 차례 화를 가라앉힌 루이제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뭘?”

“잘못하면 다른 사람이 될 뻔했던 거잖아. 근데 별로 화난 것 같지도 않고……"

한참 지난 일이면 모를까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상할 정도로 태평한 반응에 루이제가 의아해하자 이세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뭐.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예상했다고?”

“당연하지. 완등자의 권능인데 정상일 리가 없잖아.”

본래 완등자의 권능이란 조금만 수틀려도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는 괴물 같은 것.

그런데 그걸 무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몸의 일부분을 내주면서 사용한다?

죽고 싶어 환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왜……"

“위험한 만큼 힘도 엄청나니까. 대응할 수 없다면 모를까 어느 정도 가능한 데도 안 쓰기는 건 너무 아깝지.”

“으음.. ”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낙관적인 게 아닌가 싶었지만 뭐라고 하기에는 다친 곳 없이 멀쩡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엄청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만약 저걸 사용하지 않았다면……『여명』도 속일 수 없었겠지.’

운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위험한 수단을 과감하게 사용한 덕분도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루이제가 끙끙거리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날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너그럽게……"

“ 닥쳐.”

이세훈의 농담을 단칼에 끊어낸 루이제가 잠시 고민하다가 표정을 풀었다.

“그래, 뭐. 너라면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렇게 한 거겠지........근데 앞으로 괜찮겠어?”

“어떤게?”

“탐구자랑은 사이가 틀어졌잖아. 이전처럼 써먹기는 힘들 것 같은데.”

자신의 계획이 다 들통나 버렸으니 탐구자도 이전과 달리 비협조적으로 대응하지 않을까.

그런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보통은 그렇겠지만…… 실제로는 조금 달라.”

“다르다고……?”

“이건 직접 보는게 빠르겠네. 있어봐.”

아공간 포켓에서 두꺼운 백과사전을 꺼낸 이세훈은 곧장 경계의 권능을 사용해 탐구자의 마력을 일부분 분리시켰다.

그리고 그 소량의 마력을 백과사전에 불어넣은 다음 경계로 고정시킨 순간.

콰드득

백과사전의 표지에 울긋불긋 솟아오르는 주름.

마치 혈관이 돋아난 것처럼 기괴하게 변형되던 백과사전이 순식간에 본래 형태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루이제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살피던 그때.

백과사전이 갑작스럽게 활짝 펼쳐졌다.

촤르르륵!

허공을 향해 솟구치는 수많은 글자.

마구 소용돌이치며 하나씩 짜맞춰져가는 글자에 루이제가 놀란 눈으로 보았고, 잠시 후 완전한 문장이 떠올랐다.

[에헤이. 조금 장난친 거잖아. 겨우 그런 걸로 삐져? 응?]

"........"

거창한 등장과 달리 애들 장난 같은 말투.

그 내용에 루이제가 루이제가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세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탐구자라고?”

“뭐, 일단은?”

"........"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는 살짝 현기증을 느꼈다.

몰래 뇌를 침식시키려고 해놓고서는 그게 조금 장난친 거라니?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수많은 말을 집어삼킨 루이제가 짧게 정리했다.

“미친새끼 맞네.”

사고방식 자체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다.

처음으로 본 완등자의 민낯에 루이제가 혐오스럽게 바라보자 허공에 떠오른 글자가 변했다.

[미쳤다니. 조금 억울한걸.]

“억울하긴 뭐가……"

[나는 네 남자친구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을 분이야. 아, 이성적인 그런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학문적인 관접이니까 질 투는 안해도…….]

【Bind】

촤라락!

루이제의 언령에 허공에 떠오른 글자들이 밧줄처럼 뭉쳐 백과사전을 꽉 묶었고, 그 위로 곧장 주먹을 내리쳤다.

쾅쾅쾅!

백과사전을 으깨 버릴 기세로 주먹을 내리치는 루이제. 통각을 느끼든 말든 분풀이에 가까웠는데 종이 사이사이로 글자들이 하나씩 삐져나왔다.

[아] [아] [악] [!]

고통에 비명을 지리는 듯한 내용. 그 모습에 이세훈의 두 눈이 빛났다.

‘역시......'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인한 이세훈이 재빠르게 루이제를 말렸다.

“야야. 진정해. 그래봐야 안죽어.”

“후욱...... 후욱......"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탐구자가 깃든 백과사전을 노려보는 루이제.

얼마나 화가 났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는데 아마 중요한 물건만 아니었으면 바로 찢어버렸으리라.

후웅

조금 진정된 루이제가 언령마법을 해제했고, 조심스레 펼쳐진 백과사전의 위로 찌그러진 글자들이 문장을 형성했다.

[왜……왜아프지? 아플 리가 없는데……뭐지…….]

방금 일어난 일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혼란스러운 듯한 말투. 그것을 슬쩍 바라보던 이세훈이 다시금 루이제에게 설명했다.

“방금 보면 알겠지만 이번 일에 대한 별다른 감정이 없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느낌인 거지.”

“그게 뭔……"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야. 명칭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잖아?”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탐구자……"

완등자들의 명칭은 보통 성향이나 기술에서 따오는데 그것만큼 그들의 본질을 잘 설명하는 게 없었다.

“내 몸을 탐구하고 싶으니 뇌를 침식해서 장악한 다음 차근차근 살펴본다. 정말 순수하게 그것뿐이었던 거야.”

[역시 똑똑하네.]

이세훈의 말에 맞장구치듯 떠오르는 문장. 그 내용에 루이제는 살짝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위 영웅일수록 어딘가 확고한 면이 생긴다는 것은 들었지만 탐구자, 완등자가 보여주는 것은 그와 조금 달랐다.

비틀림을 넘어서 무언가 다른 것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

그에 루이제가 탐탁지 않게 쳐다보자 이세훈이 설명을 이었다.

“뭐,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써먹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다는 거지.”

[몸을 연구하게 해주면 더 열심히 도와줄 수도 있는데.]

“헛소리하지 마세요.”

태연하게 탐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세훈의 모습에 루이제가 묘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뭐. 아무렴 어때.’

어차피 이미 죽은 사람이고, 저 꺼림칙한 사람을 부활시키려하는『여명」은 자신이 전부 죽여 버릴 것이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루이제가 물었다.

“그럼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거지?”

“아마 그렇겠지. 대신 이대로 놔두는 건 조금 위험할 것 같아서 ‘살짝’ 손 좀 보려고.”

씩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이세훈. 그 모습에 무언가 알아차린 루이제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 설마……"

“그 설마지.”

침대에 달려 있는 테이블을 펼친 이세훈이 승천제의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어 아공간을 열었다.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새하얀 오른팔. 막 잘라낸 것처럼 상한 곳 하나 없는 그 모습에 루이제가 눈매를 찌푸렸다.

“이거랑 또……"

그다음으로 이세훈이 몽상수납 안에 넣어둔 순례자의 향로를 꺼냈고, 이어서 명계에 보관해둔 압그룬트도 불러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전설 등급 혹은 그에 준하는 물건들로 가득 찬 테이블 위.

그에 루이제가 살짝 질린 표정으로 내려다보자 이세훈이 설명을 이었다.

“지금부터 탐구자의 권능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구를 만들어낼 거야. 너는 옆에서 내가 지시하면 그대로 언령마법을 사용하면 돼. 알겠지?”

“으음…… 알겠어.”

[호오……재밌는 물건들이 많네?]

자신을 무구로 만든다고 하는데도 여유롭기 그지없는 탐구자. 그 모습에 이세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언제까지 그럴수 있나 보자.’

가장 먼저 순례자의 향로를 집어든 이세훈은 사전에 흡수해둔 신성력을 끌어올려 내부에 담긴 권능을 이끌어냈다.

‘신성봉인.’

우우웅!

향로로부터 하얀빛과 황금빛이 섞인 안개가 흘러나오더니 황금색 쇠사슬로 변해 탐구자의 오른팔을 꽁꽁 둘러싸기 시작했다.

키이잉一

그러자 여태껏 아무런 미동도 없던 탐구자의 오른팔이 노을빛을 흘리며 저항했고, 백과사전 위로 문장이 형성되었다.

[순례자의 권능을 응용한 신성마법으로 봉인한다. 나쁘지 않지만 힘이 모자라.]

순례자의 권능에 대한 이해도가 있었다면 모를까 힘을 빌려 쓰는 수준에서는 완등자의 육체에 간섭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기에 이세훈이 곧장 루이제에게 이야기했다.

“언령마법으로 탐구자의 오른팔을 잠재워.”

무슨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루이제는 이세훈이 시키는 대로 곧장 하티를 장착하고 언령마법을 사용했다.

【Sleep】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언령이 탐구자의 오른팔에 스며들었고, 밖으로 빠져나오던 노을빛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뭐…….]

“좋았어. 그대로 계속해.”

탐구자가 당황하는 사이 루이제가 연이어 언령마법을 발동시켰고 마침내 저항하던 마력이 모두 사라졌다.

이세훈은 그 순간을 노려 재빠르게 신성봉인을 안쪽 깊숙이 새겨 넣었다.

치이익!

팔 전체에 낙인처럼 새겨진 황금색 쇠사슬 문양.

오른팔에서 느껴지던 완등자 특유의 존재감이 많이 옅어진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이어서 엄지 끝을 깨물어 상처를 낸 다음 피로 기다란 장침을 만들어냈다.

“어디보자……"

투안으로 마력의 흐름을 확인한 이세훈은 피로 만들어진 장침을 곳곳에 찔러 넣었다.

안쪽 깊숙이 박혀 마력의 흐름을 방해하는 장침. 본래라면 탐구자의 마력을 견디지 못하고 침식됐겠지만, 신성봉인 덕분에 견딜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영혼도 꽤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제압하려면 이만큼이나 약화시켜야 되는 건가.’

질린 표정을 지은 이세훈은 계속해서 장침을 꽂아 넣었고, 모든 처리를 끝낸 다음 잠시 숨을 골랐다.

“후……일단이 정도면 되겠네.”

“뭘 한거야?”

“ 그건......"

이세훈이 막 대답하려던 찰나. 탐구자가 먼저 문장을 형성하여 대답했다.

[마력의 특성을 억눌러서 앞으로 만들어질 무구를 침식하지 못하게 만든 거야.]

“대충 저런 거야.”

“침식을 막으려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진짜 징글징글하네.”

루이제가 살짝 질린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탐구자가 다시금 문장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침식을 차단한 것도 대단하지만 오른팔을 잠재운 게 제일 신기하네. 언령마법이 가진 특성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힘의 차이가 너무…….]

계속해서 나열되는 글자들. 루이제의 언령마법이 상당히 인상 깊었는지 연산을 이어갔는데 이세훈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완등자의 육체도 자아가 없으면 그냥 특이한 의체랑 다를 게 없지.’

그리고 고유스킬 ‘마력동화’가 잠재되어 있는 루이제는 그런 대상들에 한해서 절대적인 상성을 자랑한다.

이세훈이 제작 중에 루이제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자료가 너무 부족한데. 몸을 연구하고 싶은데 잠깐 살펴봐도…….]

“야. 빨리해. 저거 꼴 보기 싫어.

“그래그래. 알았어.”

압그룬트로부터 명계의 마력을 흡수해 경계의 권능을 강화한 이세훈은 곧장 탐구자의 오른팔에 경계를 둘렀다.

그리고 내부에서 자아가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승천제의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어 다시금 아공간을 만들어냈다.

후웅!

아공간 너머로 다시 들어가는 탐구자의 오른팔. 거기에 이세훈은 공간을 닫기 직전에 얇은 실 같은 것을 빼냈다.

탐구자의 오른팔과 맞닿아 있는 경계의 일부. 거기서부터 이세훈은 모든 정신을 집중해 공간과 경계의 맞닿은 지점을 살펴 보았다.

‘공간을 닫으면서 경계의 선은 밖으로 빼낸다.’

닫힌 공간과 바깥을 연결한다는 모순적인 과제. 하지만 이세훈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과거 루트비히에게 소환 당했을 때 보았던 새하얀 공간. 그 ‘여백餘白’이라고 불린 공간을 통해 우회하면 되는 것 아닌가.

스르륵

아공간의 구멍이 천천히 닫혔고 허공에 떠있던 경계의 선이 희미하게 떨렸다.

하지만 걱정과 다르게 잘려 나가지 않았고 이세훈은 재빠르게 그 선을 백과사전에 연결시켰다.

우우웅!

[윽…… 뭔가…… 멍청해지는 느낌이…….]

백과사전이 요동치면서 문장들이 무너져 내리더니 잠시 후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세훈의 집중이 깨질까봐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던 루이제가 살짝 분위기를 살피다 물었다.

“됐어?”

“써봐야 알지. 앞으로 뭐라고 부른다……"

백과사전을 집어든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안쪽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불렀다.

“아카샤.”

이세훈의 부름에 백과사전이 희미하게 떨리더니 허공에 문장을 형성해냈다.

[말해.]

“너는 얼마나 멍청해졌지?”

이세훈의 물음에 탐구자, 아카샤가 문장을 만들어냈다.

[네 허락을 받기 전에는 뭔가 탐구할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멍청해졌어…….]

“음. 완벽해.”

자아는 유지하되 침식, 무언가를 탐구하려고 하는 본능을 억누른다.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에 이세훈이 만족하던 그때.

[무구 ‘승천제의 반지’의 등급이 ‘전설’로 상승됩니다.]

승천제의 반지가 찬란하게 빛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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