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24화 (224/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24화

벨기에의 국경에 인접해 있는 독일의 마을.

과거 만마전과의 전쟁 때 반파되었던 곳으로 특별한 게 없는 장소였었지만, 재건된 지금은 유명 관광지 중 하나였다.

“지금 보시는 장소는 불명자 위르겐 크루거 님께서 ‘시귀 屍鬼’를 토벌한 장소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시귀는 S급 영웅을 두 명이나 살해한 강력한 마인으로 현재의 십악과도 견줄 수 있는…….”

관광객들을 바라보며 나긋나긋하게 설명하는 가이드. 그 이야기를 듣던 검은 머리의 청년이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휘우웅

거대한 괴물이 파헤친 것처럼 흉측하게 파인 땅.

주변에 제초제라도 뿌린 것처럼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았고 한가운데는 아예 땅의 일부분이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시귀가 최후의 순간에 흩뿌렸던 독이 주변에 영향을 끼치면서 지금처럼 황폐한 땅으로 변한 것이다.

“현재 이 땅은 정화를 거듭하여 독성이 전혀 남아 있지만 마기에 한 번 침식당한 탓에 영구적으로 변질되어 버렸죠. 지금도 수많은 연구가들이 이 환경 상태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마땅한 성과가…….”

다시 한번 장황하게 설명하는 가이드. 그 내용에 검은 머리의 청년, 변장한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보기에는 마기가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중앙에 검게 죽은 땅을 비롯해 황폐화된 땅 곳곳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

자신의 감각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전부 명계의 힘이 분명했다.

‘독을 뿌린 게 거짓말은 아닐 테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일대를 경계로 반전시켰던 건가.’

그 과정에서 토양이 명계에 침식당해 지금처럼 생명이 자라나지 않은 황폐한 땅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불명자 위르겐 크루거님은 수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위르겐에 의해 황폐화된 땅을 두고 위르겐을 찬양하는 가이드와 관광객들.

물론 악의가 있던 게 아니니 문제는 없었지만, 단번에 진상을 파악한 이세훈으로서는 떨떠름할 수밖에 없었다.

[위르겐 그 양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 자기가 박살 낸 마을을 관광지로 복원시켜서 팔아먹다니…….]

부끄럽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하는 탐구자. 그 모습에 이세훈이 신기해하며 물었다.

‘위르겐 님이랑 사이가 안 좋으신 모양입니다.’

[안 좋을 수밖에. 연구를 위한 기부 좀 해달라니까 얼마나 성질을 내던지…… 진짜 돈밖에 모른다니까.]

‘무슨 기부였는데요?’

이세훈의 물음에 탐구자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사령술의 적합한 사용자의 조건을 연구하기 위해서 마력과 그 본질을 조금…….]

‘본질이라면…… 설마 영혼을 달라고 하신 겁니까?’

[그, 그땐 위르겐도 연구하고 있었다고! 그럼 달라고 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시겠죠.’

억울해하는 탐구자의 목소리에 이세훈이 대충 대답하며 무시했다. 자기 영혼을 떼어서 기부해 달라는데 그걸 누가 좋다고 해주겠는가.

‘위르겐처럼 보상이라도 주면 몰라.’

물론 그쪽은 영혼을 받아간 다음에 자식을 만든다는 부분이 좀 꺼림칙하긴 하지만 그냥 기부해 달라고 뻔뻔하게 나오는 사람들보다는 나았다.

‘완등자가 되려면 나도 저렇게 나사가 완전히 풀려야 하나.’

자신처럼 선량하고 건실한 사람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필요하다면 조금 힘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세훈이 그렇게 속으로 한숨을 내쉬던 그때.

꼬옥

옆에서 같이 걷던 여인이 갑자기 품에 안겼다.

한 줄기로 두껍게 땋은 갈색 머리칼에 반짝거리는 초록색 눈. 거기에 밀짚모자와 새하얀 원피스를 입었는데 어딘가 그림 같은 그 모습에 자연스레 사람의 이목을 끌어 모았다.

같이 다니는 관광객들에게 주목받는 여인, 변장한 레아를 본 이세훈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그래?”

“계속 보고 있으니까 무서워…… 더워서 땀도 나고…… 우리 먼저 숙소로 가면 안 돼?”

품에 안기면서 응석부리는 레아. 그 모습에 이세훈의 눈매가 꿈틀거려다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래도 아직 일정이…….”

“아 몰라몰라! 돌아다니기 싫어~”

이마로 가슴을 툭툭 들이박으면서 불평을 쏟아내는 레아. 그 모습에 주변 관강객들이 슬쩍 웃으면서 바라보았고, 이세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그래. 알았어.”

레아를 토닥거려서 진정시킨 이세훈이 앞서 움직이던 가이드에게 향했다.

“저희는 먼저 빠져도 될까요?”

“아, 넵 물론이죠! 내일 집합시간에 맞춰서 나와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더워~”

덥다고 칭얼거리면서 연신 이세훈의 품에 달라붙어 있는 레아. 그 모습에 주변 관광객들이 흐뭇하게 보았다.

‘젊구만 젊어.’

‘남자가 복 받았어.’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보이는 애정이 넘치는 커플. 그 모습에 관광객들이 흐뭇하게 바라보았고.

“크아아앗!”

숙소로 들어온 레아는 곧장 침대로 달려들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침대 위에서 사정없이 몸을 굴러대는 레아. 부끄러워 죽으려고 하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부끄러워할 거면 대충 하지 뭔…….”

왜 혼자 오버하고 혼자 부끄러워한단 말인가? 그런 이세훈의 말에 레아가 새빨개진 얼굴을 마른세수하듯 마구 문지르며 답했다.

“연인을 연기하는 시점에서 이미 뭘 하든 부끄러우니까…… 그럴 거면 안 들키게 열심히 해야 할 거 아냐……!”

“음…… 그건 맞는 말이네.”

쪽팔리는 건 변함없으니까 기왕 하는 거 확실하게 한다. 생각보다 진지한 레아의 태도에 이세훈이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가기 싫다고 그렇게 난리를 피우더니…….’

역시 사람은 시키면 다 하게 되는 것일까. 이번에도 자신의 지론이 맞았음을 확인한 이세훈이 만족스러워하고 있을 때.

“근데.”

한참 몸부림치던 레아가 이불 밖으로 고개를 슬쩍 내밀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왜 하필 연인이야? 어차피 변장할 거면 남매나 그런 쪽으로 해도 되잖아.”

혹시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가.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그게 익숙해서인데…….’

회귀 전에 폭견이랑 변장할 일이 있으면 매번 연인을 연기해서 자연스럽게 이쪽을 고른 것이지만, 아무래도 그걸 그대로 설명할 수 없다.

잠시 고민하던 이세훈은 회귀 전에 자신이 물어봤다가 들었던 대답을 고스란히 말해주었다.

“가족은 뭔가 특유의 분위기나 느낌 같은 게 있거든. 그건 연기로 재현하기가 쉽지 않아서 잘못하면 들키기 쉬워.”

“그런 게 있다고?”

“진짜야. 특히 가까운 가족일수록 심상을 공유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주기도 한다더라고.”

물론 평범한 사람의 눈에 보일 만큼 큰 차이는 아니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주의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조금 진정되었는지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 위에 앉은 레아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근데 진짜 여기가 거점이 있는 곳 맞아? 아무리 봐도 아닐 것 같은데…….”

다른 곳도 아니고 UD그룹이 직접 관리하는 관광지 안에 인형사의 거점이 숨겨져 있다니?

아무리 인형사가 은밀하게 움직인다고 해도 쉽사리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여기 맞아. 아까 돌아다니면서 정확한 위치도 알아냈고.”

“……벌써?”

이세훈의 이야기에 레아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늘 낮 동안 한 거라고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관광지를 돌아다닌 게 전부였는데 도대체 언제 찾았단 말인가?

“자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아주 기초적인 방법이지.]

인형사의 거점이 가지는 특성과 흐레스벨그를 통해서 알아낸 공간 좌표, 거기에 마을의 지리 정보까지 더해지자 탐구자가 곧장 위치를 알아낸 것이다.

‘확실히 머리 쓸 일이 줄어들어서 편하긴 해.’

가끔씩 개수작을 부려서 의심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에게 파고들 틈이 보이는 상황이 아니니 별다른 문제는 없으리라.

“오…… 방금 좀 똑똑해 보였어.”

“쓸데없는 소리는…… 저녁쯤에 숨어 들어갈 생각이니까 지금 미리 자둬.”

“흐음…… 알았어. 그럼 조금만 잘게.”

어디선가 수면안대를 꺼낸 레아가 침대 위에 다시 누웠고,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잠들어 버렸다.

밤샘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듯한 모습. 그에 이세훈은 소파에 앉았고, 탐구자가 신기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겉보기에는 영 범생이처럼 보였는데 생각보다 적응력이 좋네. 갑자기 끌려오면 조금 긴장할 법도 한데.]

‘보기에는 저래도 꽤 과감한 편이에요.’

아마 회귀 전에도 저런 과감함이 있었기에 갤럭시 컴퍼니라는 거대한 회사를 이끌며 마에스트로라는 거창한 명칭까지 생겼던 것이리라.

레아를 바라보던 이세훈은 문득 회귀 전을 떠올렸다.

‘그때는 어떻게 죽은 걸까…….’

인형사에게 스피어가 있었던 걸 생각해 보면 레아가 인형사에게 살해당한 것은 어느 정도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거기에 한 가지 의문이 있었는데 바로 레아의 시체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인형사라면 그걸로 인형을 만들었어야 정상인데…… 그런 목격담을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이지.’

모종의 이유로 훼손되어 제대로 쓰지 못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뒤늦게 인간성이 되살아나 딸을 묻어준 것일까.

어느 쪽일지 궁금했지만 이미 회귀하면서 사라진 일이었기에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뭐,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우선은 오늘 있을 잠입에 집중해야 한다. 소파에 앉은 이세훈은 저녁까지 최대한 몸 상태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해가 지며 마을이 어둑어둑해진 뒤. 레아를 깨운 이세훈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지금부턴 내가 지시하는 대로만 움직여야 돼. 알겠지?”

“그건 알겠는데…… 이대로 입고 가도 돼?”

자신이 입고 있는 새하얀 원피스를 본 레아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밤중에 어디 잠입할 때는 몸에 딱 붙는 시커먼 옷을 입는 게 보통 아니던가?

의아해하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어중간한 장비를 입으면 오히려 들키기 쉬워. 차라리 알몸에다가 페인트칠하는 게 낫지.”

“흐음. 아무래도 그건 좀 그렇지.”

“그리고 이번에 들어갈 방식은 이쪽이 더 효율이 좋기도 하거든. 준비할 거니까 이리로 와.”

아공간 포켓에서 묵주환을 꺼낸 이세훈은 자신의 손목과 레아의 발목에 각각 착용시켰다.

그런 다음 레아의 허리를 감싸 안아 자신의 몸에 딱 붙인 다음 진지하게 경고했다.

“떨어지면 위험해지니까 안 되겠다 싶으면 아예 확 달라붙어. 알겠지?”

“걱정 마.”

고개를 끄덕인 레아가 아침보다 더욱 찰싹 붙었고, 그 모습을 확인한 이세훈이 천천히 몽환안을 발동했다.

우우웅

두 눈이 보랏빛으로 물들자 두 사람의 몸이 조금씩 흐릿하게 변했고, 이내 꿈의 경계로 완전히 들어섰다.

“윽…….”

온몸이 흩어져 버릴 것 같은 섬뜩한 감각.

난생 처음 겪어보는 그 상황에 레아가 눈매를 찌푸리고 있던 그때. 이세훈이 곧장 경계의 권능을 이끌어냈다.

우우웅

두 사람이 나눠서 착용한 묵주환이 희미하게 떨렸고, 흐릿해져가던 전신의 윤곽이 선명해졌다.

“오…….”

몸은 반대편이 비칠 정도로 흐릿한데 윤곽 쪽은 또렷하게 선이 그어져 있다. 그 기묘한 상태에 레아가 신기하게 바라보자 이세훈이 담담히 설명했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는 상태야. 여기에 주변의 환경과 동화를 하면…….”

잠시 목을 가다듬은 이세훈은 곧장 언령각인을 발동했다.

“〈공간동화〉”

스스스

“으으…….”

몸에 무언가 스며드는 것 같은 감각. 그 낯선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던 레아는 문득 숙소의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

거울에 비친 텅 빈 숙소.

온몸이 투명하게 변한 것을 알아차린 레아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지금 상태에서는 목소리도 다른 사람한테 안 들려. 하지만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가급적 크게 말하지는 말고.”

“으음…… 알았어.”

“그럼 출발하자.”

레아와 함께 숙소의 벽으로 향한 이세훈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스륵─

두 사람의 몸이 자연스럽게 숙소의 벽을 통과했고, 그대로 허공의 위를 자연스럽게 걷는다.

“…….”

어영부영 이세훈을 따라서 허공을 걷게된 레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것도 가능한 건가…….’

비행이 아니라 완전히 개별적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정말 자연스럽게 걷고 있다.

상상치도 못 한 풍경에 레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있을 때. 한창 걷던 이세훈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 아래야.”

이세훈의 이야기에 아래를 내려다본 레아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위르겐이 시귀를 토벌하면서 생겨난 황무지.

그 중심에 있는 검은색 땅 위에 이세훈이 멈춰선 것이다.

“진짜 여기라고?”

“정확히는 이 부근인데 이쪽으로 들어가는 게 제일 좋아.”

땅 곳곳에 남아있는 명계의 힘. 그 사이를 지나서 안으로 숨어든다면 인형사가 알아차리지 못할 가능성이 더욱 증가하리라.

“후우…… 어떻게 들어가는데?”

“그냥 이대로 바로 들어가는 거지.”

“이대로?”

숨겨진 출입구라도 있는지 레아가 공중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때. 이세훈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소리 지르지 마.”

“그게 무슨…….”

후웅!

제대로 물어보기도 전에 땅으로 추락하는 몸.

눈 깜짝할 사이에 가까워지는 지면에 레아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고, 반사적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는 표정뿐 그 여유로운 모습에 레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이세훈의 몸이 완전히 매달렸고.

스륵─

두 사람의 몸이 지면을 통과해 지하 속으로 파고들었다.

“!?!!”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어두컴컴한 땅. 생매장을 당한 것 같은 상황에 레아가 이세훈을 쥐어짜낼 기세로 달라붙었다.

‘역시 놀라네.’

[아마 안 놀라는 네가 비정상일 걸?]

탐구자와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며 땅 속 깊이 내려가던 그때.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감각에 이세훈이 조금씩 속도를 조절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앞에 토양대신 특수한 금속들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

후웅

새하얀 통로가 눈앞에 나타났다.

“…….”

지상으로부터 수백 미터 아래에 숨겨져 있는 구조물. 그 이질적인 공간을 본 레아가 자연스레 깨달았다.

이곳이 바로 인형사의 숨겨진 거점이라는 것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