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38화
팔다리에 붕대를 감고 헤진 도복을 입은 야만인과 검은 라이더 슈트에 검은 가죽 자켓을 걸친 양아치.
그리고 새하얀 전통복을 차려입은 재수 없는 샌님.
자신이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삼견과 똑같은 모습에 이세훈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성공…… 인가?’
겉으로 봤을 때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기억이나 힘까지 완벽하게 재현됐을지는 지금으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모든 부분이 성공적으로 재현됐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삼견 모두가 심각한 인성파탄자라는 점이었다.
‘나도 마인의 끄나풀이라든가…… 아무튼 수상한 놈이라고 일단 죽여 놓고 볼 수도 있으니까.’
특히나 자신의 겉모습과 능력이 이전과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달라졌기 때문에 삼견이 의심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준비한 대로 목줄을 채울 수 있을지 이세훈이 살짝 긴장하며 바라보고 있던 그때.
“음?”
그 시선을 느낀 회귀 전의 루이제, 폭견이 뒤돌아보았다.
“…….”
“…….”
두 사람이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고 이내 눈동자를 깜빡거리던 폭견이 자신의 눈매를 매만졌다.
“이런 느낌의 고문인가…… 저승도 좀 특이하네…….”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눈가를 비비적거리며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는 폭견.
그 모습에 회귀 전의 아미르, 빙견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뒤이어 돌아보았다.
“갑자기 무슨…… 어…….”
이세훈을 본 빙견의 두 눈이 천천히 휘둥그레졌고, 이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형님?”
예상과 달리 한 번 만에 자신을 알아보는 빙견의 모습에 이세훈도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어떻게 알아봤냐?”
“예? 그야 옛날 졸업사진이랑 똑같이 생기셨으니까…….”
“졸업사진? 아! 거긴가.”
바벨에 떨어지고 들어갔던 삼류 육성기관.
제대로 된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육성기관이었기에 졸업하면서 사진을 찍어둔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근데 네가 그 사진은 어떻게 아냐?”
“그야 형님 뒷조사할 때 싹 알아봤죠. 갓난아기 시절부터 제가 모르는 모습이 없을 걸요?”
태연하게 대답하는 빙견의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회귀 전에도 저런 짓을 했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었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기분이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음침한 새끼…….”
“장사입니다. 장사. 그리고 형님이 보시기에는 쓸모 없어 보여도 이게 은근히 수요가…….”
“잡소리 그만하고.”
빙견의 말을 잘라낸 폭견이 다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넌 누군데?”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폭견.
앞서 빙견도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기는 했었지만 실제로는 조금만 미심쩍어도 자신의 팔다리를 잘라냈을 만큼 날이 서 있는 상태였다.
‘역시 쉽지 않네.’
이 의심덩어리인 녀석들을 어떻게 진정시킬 것인가. 이세훈이 머릿속으로 적절한 방법을 찾던 그때.
“비켜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광견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내가 누구지?”
밑도 끝도 없는 질문.
그게 자신이 진짜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는 질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개새끼?”
“…….”
대답을 듣자마자 광견의 두 눈이 가늘어지며 주먹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꽈악─
지금의 몸으로는 살짝 스치기만 해도 머리통이 터져 나갈 수 있는 힘. 그에 이세훈이 재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이쑤시개도 제대로 못 쓰면서 매번 무구 탓만 하는 배은망덕한 개새끼!”
이세훈의 외침에 광견이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주먹에 힘을 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개소리를 하는 걸보니 맞는 것 같군.”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을 인정하는 광견의 모습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걸로 구분해도 되나……?’
물론 질문 이외에도 눈썰미로 구분한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런 바보 같은 문답에 곧장 확신한다는 것이 미묘했다.
그에 이세훈이 혹시나 싶어서 뒤에서 지켜보던 폭견과 빙견을 바라보았다.
“이세훈 맞네.”
“역시 형님이실 줄 알았습니다.”
“…….”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폭견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뢰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빙견.
예상보다 수월하게, 그리고 어이없는 방법으로 의심을 벗어난 이세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이 새끼들을 부르는 게 맞았나?’
좀 더 똘똘한 다른 사람을 재현하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이세훈이 그리 고민하던 그때.
파악!
곁으로 다가온 폭견이 어깨동무를 하며 이세훈의 볼을 장난스럽게 꼬집었다.
“이야. 탄력 봐라. 젊음이 좋긴 좋아.”
“인상도 훨씬 보기 좋네요.”
“전보다 강해 보여서 마음에 드는군.”
태연하게 어린 이세훈의 몸을 보면서 평가하는 삼견.
너무 빨리 적응하는 셋의 모습에 이세훈이 볼을 잡아당기는 손을 쳐내면서 물었다.
“니들 너무 태연한 거 아니냐?”
“죽었다 살아난 마당에 아무렴 어떨까.”
“환술 같진 않으니 일단 즐기고 보는 거죠.”
“초조해야 할 이유가 있나?”
정말 아무런 위기감도 느끼지 못하는 삼견. 그 모습에 이세훈이 그들이 무시하고 있는 적을 상기시키려던 찰나.
후웅!
거대한 뇌전의 구체들이 주변을 둘러쌌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생겨난 마법.
그것들이 서로 번개의 사슬로 연결되더니 이내 무지막지한 전격을 끌어 올렸다.
환락가의 주민이 꿈속에서 S급이 되어 개발한 비전마법.
대상에게 끝없이 벼락을 쏟아내는 뇌전의 구체들이 멸각에 의해 뇌전의 감옥으로 재탄생하려던 순간.
짜악!
광견이 가볍게 손뼉을 마주쳤다.
파앙─!
두 손의 중심에서 뻗어 나오는 무형의 파동.
힘의 총량으로만 따지면 주변에 펼쳐진 마법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약했지만, 그 파동이 뇌전의 구체 사이사이로 깊숙이 파고들어 연결을 살짝 비틀어냈다.
콰르르릉!
도미노처럼 무너져 텅 빈 허공을 향해 전격을 쏘아내는 뇌전의 구체. 자신의 마법이 허무하게 파훼당한 것을 본 멸각은 곧장 다음 수를 펼쳤다.
촤악!
수면 아래에서 분열된 멸각들이 일제히 솟구쳐 올라왔고, 환락가의 주민들이 꿈속에서 도달한 기술을 펼쳐냈다.
바깥에서 위르겐의 정예 언데드, 아인헤랴르를 상대하며 쌓아올린 합격진.
오직 고위영웅을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연계기가 순식간에 네 사람을 덮쳤고.
스각─
그 몸이 수십 조각으로 토막 나며 쓰러졌다.
“……?!”
어떻게 공격했는지, 그리고 무엇에 당했는지 보지도 못했다.
그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멸각이 눈을 부릅뜨며 올려다보자 빙견이 의아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이거 아까 맞은편에 서 있던 그 녀석이죠?”
“맞는 것 같은데…… 더럽게 약하네.”
“별 볼 일 없군.”
긴장은커녕 깊은 흥미도 보이지 않는 삼견.
그 반응에 멸각이 격노하며 다시금 현실을 개변하여 공격을 펼쳐냈다.
쿠구궁!
하늘 위에 펼쳐진 뒤집힌 도시.
어중간한 기술이 통하지 않도록 질량으로 깔아뭉개기로 한 멸각이 네 사람의 머리 위로 도시를 통째로 낙하시킨 순간.
【Gravity Core】
폭견의 언령이 검은 구체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콰드드득!
떨어져 내리던 도시가 검은 구체에 빨려 들어가며 단단히 압축되었고, 잠시 후 거대한 구체가 완성되었다.
“무슨…….”
도시가 통째로 압축되어 만들어진 구체.
그 상상을 뛰어넘은 광경에 멸각이 멍하니 올려다보자 폭견이 무심하게 손가락을 가리켰다.
“가져가.”
콰아아앙!!!
아래로 떨어져 내린 구체가 멸각의 몸을 짓뭉개며 수면을 강타했고, 그 엄청난 질량에 피바다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휩쓸리기 전에 곧장 뛰어오른 네 사람은 폭견이 만들어낸 발판에 올라서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흐음. 죽었을까요?”
“글쎄. 아까부터 계속 꾸역꾸역 살아나는 걸 보면…….”
콰아아앙!
수면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괴물.
십악은 물론 완등자와도 대등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 육체를 강림시킨 멸각이 하늘에 떠있는 네 사람을 바라보며 적의를 드러냈다.
────!
울음소리를 넘어 공격이나 다름없는 무지막지한 포효. 본격적으로 싸우려는 멸각의 모습에 이세훈이 뒤늦게 설명하려던 그때.
“대강 알겠군.”
오른쪽 팔을 한 바퀴 돌린 광견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놈을 죽이면 되는 거겠지.”
후웅!
말릴 새도 없이 광견이 아래로 몸을 던졌고, 두 손에 각각 불꽃과 어둠이 뭉치며 두 자루의 단창을 투박하게 만들어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휘둘러져오는 멸각의 손바닥을 향해 전신을 회전시키며 두 창을 휘둘렀고.
콰아아앙!!
멸각의 왼손이 터져 나가며 다시 한번 싸움이 시작되었다.
────!
거대한 괴물과 작은 인간이 대등하게 맞서 싸우는 비현실적인 광경.
말이 싸움이지 일방적으로 당하는 멸각의 모습에 폭견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재주는 많은데 제대로 하는 게 없네요.”
“근데 평범한 마인이라기에는 끈질기고…… 저 새끼 저거 뭐 하는 놈이야?”
폭견의 물음에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멸각의 마신이야.”
이세훈의 대답에 두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내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딴 게……?”
“그보다 마신은 여섯 아니었습니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이세훈은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엄지를 깨물어 상처를 낸 다음 피로 결정을 만들어냈다.
“자, 먹어.”
영연신마법으로 피에 기억을 담아서 전달하는 방법. 회귀 전에도 급할 때 종종 사용하던 방식이었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는 딱 맞았다.
“으…… 더럽게…….”
“여전히 비위생적이시네요.”
불평하면서도 익숙한 듯이 결정을 집어삼키는 두 사람.
그리고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기억에 눈매를 살짝 찌푸리더니 그 내용을 이해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이건…….”
회귀부터 시작해서 지금 이 순간까지 간략하게 정리된 기억들.
좀처럼 믿기지 힘들었지만, 자신들만 알고 있는 과거의 행적들만 봐도 부정하기 쉽지 않았다.
“믿기 힘들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진짜야.”
이세훈의 이야기에 두 사람이 잠시 생각에 잠겼고, 이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유령보다 더 어이없는 처지가 있을 줄은 몰랐네.”
“그러게 말입니다.”
죽은 것도 아니고 자신들이 존재하던 세계 자체가 없던 일로 되어버렸다니.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그에 대한 의문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멸각의 마신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쪽을 처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성장형에다 현실개변 능력이라…… 지금 못 잡으면 멸륜만큼 골치 아파지겠네.”
지금은 광견 한 사람도 어찌 못 하고 있지만 만약에라도 여기서 살아나가면 그때는 어지간한 희생으로는 잡을 수 없다.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폭견이 빙견을 바라보았다.
“넌 어쩔래?”
멸각, 그 안에 있는 자예드에 관한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빙견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뭐, 해야죠.”
아래를 내려다본 빙견은 동천안을 끌어올려 멸각의 안쪽에서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는 자예드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보는 풍경.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자신과 달리, 이곳에서는 아직 그것이 남아 있다.
이세훈의 기억에서 본 미숙하던 시절의 자신을 떠올린 빙견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기 자신한테 미움 받으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 난 괘씸할 거 같은데.”
“그거야 당신이 감수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콰앙!
폭견에게 걷어차이기 전에 박차고 뛰어오른 빙견이 이세훈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세부적인 건 맡기겠습니다!”
콰드드득!
빙결연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얼음동상이 멸각을 짓누르며 전투가 새로운 양상으로 돌입했고, 이세훈은 자신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폭견에게 물었다.
“너는 어쩔 거냐?”
광견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고집이 강하고, 빙견은 이해득실을 따지며 상대를 끝까지 의심한다.
그렇기에 두 사람 모두 상대하기 까다로웠지만 그럼에도 폭견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다.
‘이 녀석은 그냥 안 믿으니까.’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믿지 않는 배타적인 가치관.
언령마법을 강화하기 위한 자기암시의 일환이기도 했고, 과거 『여명』의 실험체로 쓰이던 트라우마 때문도 있었다.
그렇기에 폭견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이해관계가 일치하거나 그럴 마음이 들게끔 유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루이제한테 이것저것 잘해주긴 했지만…… 이 녀석이라면 나한테 잘해준 게 아닌데 뭔 상관이냐고 할 것 같단 말이지.’
어떻게 해야 이 까다로운 녀석을 전투에 끌고나갈 수 있을까. 이세훈이 고민하던 그때.
“뭘 어째. 싸워야지.”
폭견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진짜로?”
이세훈이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되묻자 폭견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난 이미 뒤졌는데 뭐 때문에 싸워야 하냐고 할까?”
“크흠. 그건 아니지만…….”
멋쩍게 헛기침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폭견이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귀엽네.”
“……뭐?”
“귀엽다고 새꺄. 전에는 허구한 날 한숨만 빽빽 내쉬면서 인상만 찌푸리더니…….”
“뒤질…… 으그윽.”
꽈아악!
볼을 마구 꼬집어대며 한숨을 푹푹 내쉬던 폭견이 어깨동무를 풀면서 한창 싸우고 있는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생각해둔 방법은 있어?”
폭견의 물음에 이세훈이 뒤늦게 정신 차리며 아래쪽에 한창 싸우고 있는 멸각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죽여도 꿈속에서 다시금 강림하는 괴물. 위르겐과는 다른 불사의 능력을 지닌 멸각의 모습에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합쳐졌으면, 다시 쪼개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