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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70화 (270/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70화

쿠구궁!

이른 아침부터 울려 퍼지는 요란한 소리.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 이세훈은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쳐져 있는 커튼을 걷어냈다.

후웅!

공중에 뜬 채로 어디론가 향하는 건축자재들의 행렬.

그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이세훈이 창문을 열어 건축자재들이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쿵쿵쿵!

공터 위로 건축자재들이 순서대로 떨어지며 건물을 만들어내고, 땅 아래에서 올라온 지맥의 힘이 결계와 주술을 새겨 넣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복원되는 건물의 모습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지하시설을 응용하는 건가.’

이노우에 가문의 본가와 연구시설은 서로 그림자와 같은 대칭관계.

그 연결고리를 이용해서 파손되지 않은 연구시설의 형태를 재현하는 것처럼 단숨에 복원하는 것이다.

‘이번처럼 지맥을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 공략하기 힘들겠구만.’

그마저도 에리카가 본가에 있다면 천정으로 제어할 수 있을 테니 이 일대를 완전히 날려 버리는 게 아니고서는 힘들리라.

십악도 쉽게 건드릴 수 없게 된 이노우에 가문의 모습에 이세훈이 멍하니 수리되는 건물들을 보고 있을 때.

“좋은 아침.”

눈앞에 에리카가 불쑥 나타났다.

2층 높이에 아무렇지 않게 떠 있는 에리카.

그 자체는 이전에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테니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달라진 것은 등장의 전조였다.

‘기척이 더 줄어들었네.’

그동안이 ‘여기서 나타난다.’ 라는 확신이었다면 지금은 ‘이쯤인가?’ 같은 애매모호한 감각.

이번에야 정면에서 나타나서 금방 알아차렸지만 뒤쪽에서 나타났다면 위치를 헷갈렸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재수 없으면 뒤통수 맞고 끌려가는 건가.’

지금도 노려지는 듯한 느낌에 이세훈이 뒤통수를 긁적이고 있을 때. 앞에 있던 에리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잠이 덜 깨서. 근데 저건 누가 수리하고 있는 거야?”

이세훈이 공중을 떠다니는 건축자재를 가리키자 에리카가 자신을 가리켰다.

“나.”

“너 혼자서? 다른 사람은 없고?”

“연습도 겸하는 거라 혼자서 하고 있어. 있어 봐야 방해되기도 하고.”

“연습이라면…….”

“있어봐. 부를게.”

이세훈의 물음에 에리카가 건설 중인 곳을 바라보며 뭐라고 속삭였고, 잠시 후 반투명한 천이 빠르게 날아와 어깨와 팔에 둘러졌다.

스르륵

살아 있는 생물처럼 팔락거리는 날개옷.

천정을 봉인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그 물건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천우의랑 비슷하게 생기긴 했네.’

회귀 전의 에리카가 사용한 신화등급 무구 ‘천우의天羽衣’.

지금의 날개옷에 주술식이 빼곡하게 새겨진 형태였는데 S급인 에리카를 십악과 정면승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매우 강력한 주술무구였다.

‘보아하니 미완성인 거 같은데…… 어느 정도이려나.’

이세훈이 눈으로 날개옷을 살펴보고 있을 때. 에리카가 그 끝부분을 앞으로 내밀었다.

“보고 싶으면 봐도 돼.”

“괜찮아?”

“응. 애초에 보여주려고 온 거니까.”

처음부터 날개옷을 보여주기 위해 왔다는 말에 이세훈은 의아해하면서도 끝부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찰싹!

그러자 끝부분이 재빠르게 손등을 후려치며 피했고, 그 날선 반응에 이세훈이 에리카를 다시 보았다.

“네가 싫은가봐.”

“……그래 보이네.”

미안해하기는커녕 신기하게 쳐다보는 에리카. 그 모습에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며 날개옷을 향해 다시금 손을 뻗었다.

휘익!

또다시 손을 피하며 후려치려는 날개옷.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이세훈도 곧장 대응했다.

쾅!

천충검으로 만들어낸 검은색 검, 진철이 단숨에 길어지면서 날개옷을 창틀에 고정시킨다.

그러자 날개옷이 벗어나려는 듯 마구 파닥거리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야…… 안 뚫렸네?”

천충검으로 만들어낸 검들은 기본적으로 검기로 이뤄진 검.

어지간한 무구들보다는 훨씬 날카로운 편이었지만 날개옷은 당연하다는 듯이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최소 전설 등급 이상으로 보이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턱을 쓰다듬었다.

‘기왕 이리된 거 얼마나 버틸지 실험이나 해볼까.’

무구의 특성상 수리도 쉬울 터. 이세훈이 두 눈을 빛내며 소광의 망치를 꺼내려던 순간.

스륵

방금까지 발악하던 날개옷이 얌전히 늘어졌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리카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이제 저항 안 하겠대.”

“그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쯧.”

살짝 떨리는 날개옷을 바라보던 이세훈은 진철을 해제하며 곧장 끝부분을 집어 들었다.

검기를 견뎌낸 것치고는 얇고 부드러운 감촉.

안쪽에는 마력이 아주 세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의 혈관처럼 빼곡했다.

“흐음…….”

한참 동안 날개옷을 살펴보던 이세훈은 이어서 정보창을 확인했다.

[───]

[등급 : 전설] [품질 : 하]

신화 등급 무구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

지맥으로부터 힘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주술식을 각인하여 주술발동을 보조받을 수 있습니다.

각인된 주술식의 구성에 따라 보조방식이 달라지며 경험이 누적될수록 세밀하게 조정됩니다.

*주변 지맥을 장악하여 힘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주술식을 각인할 수 있으며 그 구성에 따라 보조효과가 달라집니다. 현재 구성 : 없음.

‘전설 등급인가…….’

정보창의 내용을 모두 읽은 이세훈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등급 자체는 신화 등급 무구, 천정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니 조금 떨어져도 이상할 것 없다.

다만 이상한 점은 완성된 무구치고는 여기저기 비어 있는 부분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구성도 그렇고…… 뭣보다도 이름이 표기 안 되는 게 영 이상하네.’

회귀 전에는 천우의라는 이름이 존재했고, 그 정보창을 본 이들도 수없이 많았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날개옷에는 아무런 표기도 뜨지 않는가.

이세훈이 고민하는 사이 에리카가 입을 열었다.

“이름이 필요해.”

“이름?”

이세훈의 물음에 에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사물의 방향성을 정하니까. 주술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야.”

“흐음…… 어떻게 하면 되는데?”

“네 생각이 담겨 있는 주술식을 여기에다가 새겨 넣으면 될 거야.”

에리카의 설명에 이세훈은 백지처럼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은 날개옷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미완성인 상태로 만들었던 건가.’

회귀 전과 똑같이 천우의로 할지 고민하던 이세훈은 이내 에리카가 말한 대로 자신의 생각, 앞으로의 방향성을 담아서 흑무사를 펼쳐냈다.

스스슥

바느질을 하듯이 흑무사가 안쪽으로 스며들며 주술식을 새겨 넣었고 가운데 부분에 뼈대처럼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주술식이 완성되며 이세훈이 손을 떼어낸 순간.

[무구 ‘봉신우의’가 완성되었습니다!]

[새로운 경지를 개척 중인 대장장이가 새롭게 만들어낸 초월적인 무구! 신화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이 무구는 언젠가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판정 결과 ‘봉신우의’의 등급은 ‘전설’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눈앞에 알림창이 연달아 떠올랐고 이세훈은 정보창에서 달라진 부분들을 살펴보았다.

‘이름도 정상적으로 표기되고…… 무구스킬도 생겼구만.’

새롭게 생겨난 무구스킬의 이름은 ‘봉신주封神柱’.

무구의 효과를 생각해보면 아마 각인된 주술식의 효과를 반영하는 것이 분명하리라.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어때?”

이세훈의 물음에 에리카가 날개옷, 봉신우의를 말없이 내려다보더니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것 같아.”

보기 드문 만족스러운 표정. 그 모습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던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 아침밥은 언제 먹을래?”

“조금만 더 하면 마무리니까 그때 먹을 거야. 배고프면 먼저 먹어도 돼.”

“그럼 일단 보고 정하지 뭐. 가서 일봐.”

“응.”

고개를 끄덕인 에리카가 수리 중인 곳으로 가볍게 날아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어제 새롭게 갱신된 관계를 살펴보았다.

[관계 : 갈망渴望]

대상의 값어치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판정된 순간. 그 뒤에 남는 것은 가지고 싶다는 갈망뿐입니다.

하나의 목적밖에 모르는 상대는 앞으로 당신을 가지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 방향성이 어디로 향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갈망이 풀리기 전까지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대상의 갈망이 커질 때마다 인연석이 생성됩니다.

*대상의 갈망이 유지되고 있을 때 인연석의 숙성 속도가 증가합니다.

*대상의 갈망하는 것을 해결해줬을 때 인연석의 심상발현 확률을 증가시킵니다.

*현재 생성된 인연석 : 1개.

‘이걸로 두 번째 4레벨인가.’

회귀 전에 인연이 깊었던 이들과 달리 에리카는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된 사이.

그런 부분을 감안하면 반년 만에 엄청난 성과였지만, 이세훈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악연까지는 아니지만…… 썩 좋은 관계가 아니네.’

기본적으로 인연관계에 있어 극단적인 성향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엇나가기 매우 쉬웠다.

예를 들어 류은하의 인연관계인 ‘공감’은 무구의 맛을 이해한다는 단순한 동질감으로 시작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향한 집착으로 변질되었다.

‘이해하는 사람이 나 혼자뿐이라는 것과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지.’

이렇듯 긍정적인 관계도 대상의 상황, 그리고 성향에 따라서 얼마든지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다.

그나마 류은하는 근본적으로 틀어진 게 아니었기에 대화로 잘 풀었지만 문제는 에리카였다.

‘관계도 극단적이고, 상황이나 성향도 좋지 않아.’

신화 등급 무구를 제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생명체.

출신이나 목적도 위험천만한데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서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좋게 보자면 대체 불가능한 위치가 된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언제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감금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집안 꼴이 정상이 아니라는 건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만…… 너무 개판이라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만.’

이노우에 가문은 무엇을 위해서 신화 등급 무구, 천정을 연구하고 에리카라는 인공생명체를 만들어낸 것일까.

마이어스 가문처럼 단순히 강한 후손을 만들려고 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걸리는 부분들이 많았다.

‘주시자와 손잡고 마신을 만들려고 한 건가? 하지만 그게 목적이라면 목숨을 바쳐서 봉인할 이유가 없었을 텐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렸다.

알아낸 비밀은 많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주제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에 이세훈이 한참을 고민하던 그때.

“……아.”

불현듯 머릿속에서 떠오른 한 사람.

설마 싶지만 이번에 에리카의 정체를 알아맞힌 것도 그 설마였으니 무시할 수는 없다.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은 이세훈은 경계의 권능을 발동하여 탐구자를 불러냈다.

[흐음…… 너 엄청 부지런하네. 여름방학인데 좀 쉬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일이 몰려오니 어쩔 수 없죠. 그보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 이노우에 가문도 나랑 협력했었냐고?]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듯한 탐구자의 모습에 이세훈이 이야기를 이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전에 마이어스 가문 이외에는 안 남았다고 하셨으니까요.’

[그러면?]

‘주술로 생명체를 만드는 게 가능합니까?’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지만 그래도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편이 좋다.

이세훈의 물음에 탐구자가 히죽거렸다.

[주술로 생명체를 만든다. 아주 재밌는 이야깃거리네. 이걸 내가 왕년에 얼마나 고민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하세요.’

[……너 진짜 나쁘다.]

설명할 생각에 잔뜩 신났던 탐구자가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안 될 건 없지. 막말로 주술로 만들어지는 식신도 생명체처럼 보이잖아?]

‘하지만…….’

[그래그래. 근원이 되는 심상도 없고, 마력이 없으면 육체도 유지할 수 없지. 그런데 그걸 반대로 말하면 뭐지?]

탐구자의 물음에 이세훈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심상과 육체만 해결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단 거군요.’

[바로 그거야. 툭 까놓고 말해서 심상까지도 필요 없어. 육체만 갖춰지면 주기적으로 조정해서 유지가 가능하니까.]

‘……많이 만들어 보신 느낌이군요.’

[그때는 살아남기에도 벅찬 시기였으니까. 지금은 규제니 협약이니…… 다들 패기가 없단 말이지.]

인체실험을 두고 그립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탐구자.

탐구를 위해서라면 도덕과 윤리조차 무시하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렸지만 굳이 뭐라 하지는 않았다.

회귀 전의 자신역시 그 선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쳤었기 때문이다.

‘그럼 얼마나 어렵습니까?’

[당연히 엄청 어렵지. 조금만 삐끗해도 심상과 주술에 영향을 받아서 변질될 텐데. 도중에 개조로 방향을 튼 것도 가성비가 너무 나빠서 그랬던 거야.]

탐구자의 설명에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노우에 가문은 전쟁 이전부터 있었던 화족 출신이기에 이름을 버리고 새롭게 만들었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들여왔다?’

죽은 에리카의 어머니가 탐구자의 지식을 알고 있는 이들, 『계승』과 관련됐다면 주시자와의 교류도 얼추 설명이 된다.

이세훈의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가고 있을 때.

[아니, 근데 너는 왜 무슨 수상한 것만 발견하면 나를 의심하는…… 음?]

귓가에 재잘거리던 탐구자의 목소리가 끊어졌고, 이세훈의 시선이 자연스레 문 쪽으로 향했다.

스르륵

“실례하겠습니다.”

그러자 미닫이문이 자연스럽게 양쪽으로 열렸는데 얼굴을 천으로 가린 사내가 무릎을 꿇으며 앉아 있었다.

‘식신인가.’

겉모습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안쪽에서 심상치 않은 마력이 느껴진다.

이전에 본 적 없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물끄러미 보고 있을 때.

“당주님께서 이세훈 님을 뵙길 원하십니다.”

기다리던 인물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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