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73화
[대상 ‘이노우에 렌’의 인연레벨이 Lv.2로 상승합니다.]
[인연레벨이 상승함에 따라 관계가 정립됩니다. 대상 ‘이노우에 렌’과의 관계는 ‘관찰’입니다.]
[관계 : 관찰觀察]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도, 끊는 것도 그것을 판단내릴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가 필요합니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모두 관찰당하여 어느 한쪽으로든 결론이 내려졌을 때 상대와의 관계가 결정될 것입니다.
*대상이 관찰에 성공할 때마다 인연석이 생성됩니다.
*대상에게 관찰당할 때 인연석의 숙성 속도가 증가합니다.
*현재 생성된 인연석 : 1개.
눈앞에 연달아 떠오르는 알림창.
방금까지 느껴졌던 시선들이 렌과 함께 사라진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손에 쥐고 있던 연금무구를 집어넣었다.
‘보아하니 어제 그놈들이었나 보네.’
계획이 틀어져서 자신을 인질로 잡아 뭐라도 해보려고 한 것일까.
예전 같았으면 금방 이유가 추려졌겠지만 지금은 그리 쉽지 않았다.
‘이제는 노릴 이유가 너무 많으니까 말이지.’
지금이라면 자신을 노리지 않는 쪽이 오히려 소수일 만큼 최우선 사살 혹은 납치 대상.
그렇기에 이세훈은 굳이 자신을 습격한 배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새롭게 맺어진 인연관계를 바라보았다.
‘관찰이라면…… 아직은 살펴보겠다는 거구만.’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일 것인지, 아니면 방해가 되지 않게 제거할 건지는 저 관찰이 끝나야만 결론이 날 것이다.
적인지 아군인지 확실치 않은 렌의 상태에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간단하게 정리했다.
‘뭐. 어느 쪽이든 크게 상관없지.’
아군이라면 적당히 도와주면 되는 것이고, 적이라면 그냥 박살 내면 그만이다.
지금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며 이세훈이 리무진에 몸을 기댔고, 아공간 터미널에 내려서 곧장 바벨로 넘어갔다.
덜컥
하루 만에 돌아온 기숙실.
자리를 비운 동안 달라진 게 없는지 간단히 확인한 이세훈은 침실로 들어가 침대 위로 몸을 내던졌다.
“후우우우…….”
한숨과 함께 전신의 긴장이 풀리고 온몸이 숨겨뒀던 피로함을 꺼내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몸 구석구석 느껴지는 탈력감에 이세훈은 몸을 뒤집으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피곤한 걸 보니 일이 많기는 했었나 보네.’
육체의 피로야 영연신마법을 사용하면 간단히 없앨 수 있을 정도지만, 그러기가 싫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오랜만에 느끼는 그 감각에 이세훈이 침대에 누운 채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편하게 있는 것도 오랜만인가…….’
회귀 직전의 세계는 지상의 9할이 멸해의 마신이 만들어낸 멸해에 휩쓸렸고, 남아 있는 1할의 땅도 마기에 오염된 상태였었다.
그 끔찍한 환경 때문에 어디에서든 편히 쉴 수 없었고 매일같이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면서 긴장했어야 했다.
‘지금도 긴장을 완전히 풀고 사는 건 아니지만…… 이래저래 느슨해지긴 했네.’
과거의 자신이나 삼견이 봤다면 물러 터졌다고 할 만한 상태. 하지만 이세훈은 그런 부분을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느슨하게 풀어뒀다.
너무 무리하다가 한계가 올 수 있기도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이 다른 이들에게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녀석들이 꽤 있으니까 말이야.’
문제가 있어도 어쨌든 멀쩡히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혼자 세상이 다 끝장났었던 것처럼 굴면 어떻게 보이겠는가.
그냥 미친놈이라고 넘어가면 다행이겠지만 완등자나 십악, 주시자와 같은 귀찮은 이들에게 지적당하면 어떻게 될지 또 모르는 법이다.
‘만약에 회귀한 게 알려진다면…… 음…… 뭐, 어느 쪽이든 해부하려고 하겠구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좋은 꼴을 보기는 힘들었기에 이세훈은 그러려니 하고 넘긴 다음 다른 생각들을 이어서 떠올렸다.
그동안 쌓아두기만 했던 고민거리와 의문점, 계획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서 한쪽에 정리한다.
일종의 최적화로 정신적으로 피로가 쌓였을 때 종종 했었던 일이었는데 시기적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수습도 거의 끝나가고…… 슬슬 누굴 노릴지 정해야겠지.’
십악과 주시자.
그리고 마경에 숨겨져 있는 파편.
머릿속으로 대상을 떠올리며 이세훈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우웅─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 그에 이세훈이 휴대폰을 꺼내 도착한 메시지를 살폈다.
[뭐해?] - 루이제 발렌트
루이제가 보내온 메시지.
그리 중요한 이유로 보낸 것 같지는 않았기에 이세훈은 간단하게 답장했다.
[숨셔]
답장을 보내기 무섭게 읽었다는 표시가 떴고, 잠시 동안 아무런 반응도 없는가 싶더니 답장이 돌아왔다.
[어디서?]
“흐음. 생각보다 덤덤하네…….”
예상과 다른 반응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답장을 보냈다.
[내 방. 보고 싶으면 놀러와.]
이번에도 곧장 읽었다는 표시가 떴고, 방금보다 빠르게 답장이 돌아왔다.
[이게 진짜 뒤질라고. 너 딱 기다려라.]
“음음.”
예상 그대로의 반응에 이세훈이 만족스럽게 쳐다보며 휴대폰을 집어넣었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초인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러 퍼졌다.
딩동딩동딩동─
당장 문을 열지 않으면 부수고 들어올 것 같은 기세.
그 격렬한 반응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침대에 누운 채로 흑무사를 사용해 열어주었다.
“야! 너 이새…… 응?”
방문 밖으로 들리는 당황한 루이제의 목소리.
그렇게 잠시 발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더니 침실의 문이 살짝 열리면서 루이제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너 거기서 뭐 하냐?”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아까 말했잖아. 숨 쉰다고.”
“뭐? 그걸 지금 말이라고…….”
이세훈의 대답에 루이제의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뭐라고 하려던 찰나. 갑자기 멈칫하더니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루이제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문을 닫으며 나갔고, 밖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알아서 기어 나와라 이건가…….’
뭐 때문에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찾아온 것을 보면 나름대로 중요한 이유일 수도 있다.
침대에 꼼지락거리던 이세훈이 마지못해 몸을 일으키며 방 밖으로 나갔고.
【Chop】
루이제의 언령이 도마 위의 고기와 야채를 난도질했다.
촤자작!
자로 대고 자른 것처럼 네모반듯하게 썰린 재료들. 그 결과물을 내려다본 루이제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음…… 뭐…… 괜찮나.”
어깨를 으쓱인 루이제가 재료들을 프라이팬에 몽땅 집어넣어 볶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너…… 거기서 뭐 하냐?”
뭔가 중요한 물건이라도 꺼내고 있는 줄 알았더니 왜 갑자기 주방에서 안하던 요리를 한단 말인가?
이세훈의 물음에 어설프게 프라이팬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던 루이제가 담담히 대답했다.
“보면 몰라? 요리 중이잖아.”
“아니, 그러니까 그걸 왜…….”
“먹으려고 하지. 귀찮게 굴지 말고 누워서 기다…… 아오 진짜 못 해먹겠네!”
여기저기 재료를 흘려대던 루이제가 흉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곧장 새로운 언령마법을 펼쳤다.
【Shake】
파바박!
“으악! 이거 왜 이래!”
프라이팬이 언령 때문에 미친 듯이 흔들리며 사방으로 재료를 날렸고, 그걸 수습하겠다고 언령마법을 펼치다가 더욱더 개판이 된다.
요리를 빌미로 주방을 테러하고 있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문득 한쪽에 놓인 봉지를 바라보았다.
‘아까 부스럭거리던 게 저거였나?’
엿먹어보라고 한 줄 알았는데 재료까지 직접 사온 걸 보면 그냥 요리를 해보고 싶었던 걸까.
이유는 몰라도 주방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소매를 걷었다.
“비켜봐.”
허공에서 재료와 함께 360도로 회전하던 프라이팬을 집어 들어 제자리에 올렸고, 불 조절을 한 다음 평범하게 볶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리를 빼앗겨 버린 루이제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 이제 막 감 잡히고 있었는데…….”
“헛소리하지 말고 재료나 손질해. 어질러놓은 것도 치우고.”
입술을 삐죽 내민 루이제가 툴툴거리면서도 시키는 대로 재료 손질과 청소를 시작했고, 이세훈은 사온 재료들을 활용해서 눈치껏 음식을 만들었다.
‘좋아하던 음식은 비슷하구만.’
회귀 전에 삼견과 다닐 때도 요리할 여유가 있으면 모두 자신이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익숙했다.
찹스테이크를 비롯하여 파스타와 필라프 등 요리들이 곧장 테이블에 차려졌고 그 모습을 본 루이제가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보기엔 그럴싸하네.”
“그래그래. 알겠으니까 먹어보기나 해.”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가 불만스럽게 보다가 요리를 하나씩 맛보기 시작했다.
“……?!”
한 입씩 먹을 때마다 루이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이내 요리와 이세훈을 번갈아보다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너…… 요리도 배웠냐?”
“배운 것까지는 아니고 하다 보니 늘어난 거지. 이 정도는 기본 아닌가?”
“…….”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다시 입술을 삐쭉 내민 루이제. 그 반응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일단 먹기나 하자. 식으면 맛없으니까.”
“……그러든가.”
얼떨결에 점심식사를 끝낸 뒤. 이세훈이 빈 그릇을 치우면서 루이제에게 물었다.
“근데 뜬금없이 웬 요리?”
“……답장하는 꼴 보니까 나가서 먹자고 하면 귀찮다고 할 것 같아서 그랬지.”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지. 요리도 안 해본 놈이…….”
이세훈이 한심하다는 듯이 이야기하자 루이제가 눈매를 팍 찡그렸다.
“네가 피곤해 보이니까 그런 거지 나도 내가 직접 할 생각은 없었……!”
말을 쏟아내던 루이제가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으며 그대로 굳어졌고,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은 날 위해서…….”
“너 또 이상한 소리하면 나한테 죽는다.”
귀와 목덜미를 붉게 물들이면서도 험악하게 바라보는 루이제. 그 날선 반응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기특하네.”
“이런 개새─.”
* * *
달려드는 루이제와 가볍게 식후운동을 즐긴 뒤. 디저트와 음료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흐음. 그럼 남은 방학 동안은 쉬는 거야?”
“별다른 일이 없으면 아마 그렇겠지.”
남은 방학이라고 해봐야 이제 2주도 채 안 되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개학하기 전까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세훈의 대답에 루이제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안 될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라면 그렇구나 하고 넘기겠지만 이세훈은 이전에도 몇 번이고 쉰다고 말해놓고 나갔었기에 신용이 가지 않았다.
의심어린 루이제의 시선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이번에는 진짜 쉴 거야. 할 일도 딱히 없고.”
여름방학 전에 이야기가 나왔던 약속은 거의 다 끝났고, 외부도 이제 막 혼란이 가라앉고 있는 상태라 완전히 진정되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러니 이전과 다르게 남은 기간 동안은 정말로 편하게 쉴 수 있으리라.
“흐음…….”
그런 이세훈의 대답에 루이제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이내 헛기침하며 분위기를 잡았다.
“그러면 그…… 우리 둘 다 이래저래 바빴으니까 조금 쉴 겸 어디라도 놀…….”
우웅!
절묘하게 울려 퍼지는 휴대폰의 진동.
그에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이세훈이 휴대폰에 도착한 메시지를 힐끔 보았다.
[거래명세서 확인바랍니다.] -제리-
낯선 이름으로 도착한 문자.
표면적으로는 몇 가지 소모품을 구매하면서 날아온 듯한 문자지만 실제로는 주시자 중 하나 『여명』과 소통하는 창구였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뭔가 일이 있었던 것인가.
휴대폰을 집어 들어 도착한 거래명세서를 확인한 이세훈은 곳곳에 숨겨진 암호를 해독하여 『 여명』이 자신에게 보낸 내용을 읽었다.
[이틀 뒤. 학술회. 중대사안. 전원 소집.]
‘학술회?’
무언가 모임으로 보이는데 저게 무엇이길래 중대사안이라는 내용까지 있는 것일까.
의아해하던 이세훈은 문득 맨 끝에 있는 전원 참석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향했다.
‘전원…….’
『여명』의 간부인 리전이 모두 모인다는 뜻이라기에는 단어가 이상했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수장인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리가 없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경우는 단 하나.
‘주시자.’
『여명』을 비롯하여 주시자를 구성하는 다섯 집단의 수장이, 모종의 이유로 한 자리에서 모인다.
위험해 보이지만 그만큼 엄청난 기회가 될 것 같은 상황에 이세훈이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연락하려 할 때.
“야.”
맞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에 이세훈이 고개를 들자 루이제가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까 이번에는 진짜 뭐라고? 응?”
“…….”
뭐가 그리 불만인지 빈정거리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헛기침하며 대답했다.
“이거 끝나면 진짜 쉴 거야.”
설마 이것 때문에 남은 여름방학이 다 날아가겠는가.
그런 이세훈의 대답에 루이제가 빤히 바라보았고.
“쯧…… 바랄 걸 바라야지…….”
한숨을 내쉬며 남은 방학 계획을 모두 폐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