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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215화 (215/224)

215화

검제(劍帝) 킨카르논 (5)

킨카르논은 검에 잔뜩 응집시킨 오러를 폭발시키다시피 했다.

콰르르릉-

낙뢰가 부서지면서 수십 수백 개의 파편이 날아다니고.

차차차차창!

킨카르논은 그것들을 일일이 쳐내느라 검을 쉴 새 없이 휘둘러야만 했다.

쳐내고, 또 쳐내고. 이대로 팔이 부서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격전 끝에.

푸스스……!

킨카르논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자리 위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몰골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결승전을 치를 때까지만 해도 단정하던 복장은 불에 그슬렸고, 칼날은 이가 다 빠져 당장 부러질 것만 같았다.

무대는 이미 반쯤 망가져 모양조차 찾아볼 수 없는 상태.

주변에 일렁이는 불길이 너무나 수상해 보였다.

“너무 많이 뒷걸음질 치신 거 아닙니까?”

테오의 비웃음에 킨카르논의 인상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자리에서 몇 수 가르침을 주겠다고 말한 건 그였으니.

문제는.

‘절대 내 아래가 아니다……!’

불길을 휘감은 테오의 위세가 절대 그에 못지않다는 점이었다.

아모레나 르제도 테오를 쉽게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런 힘을 지니고도 어째서 항룡전에 나서지 않았던 거지?

그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그의 실력을 의심했는지 알고 있으면서?

항룡전에 나서기만 했었어도 충분히 그런 우려 따윈 불식시켰을……!

‘설마. 나 때문에?’

한순간, 킨카르논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섬뜩함을 느꼈다.

킨카르논을 비롯한 르제와 안시오가 항룡전에 매달린 이유.

간단하다.

자신들도 권좌 경쟁에 절대 모자라지 않다는 사실을 가솔들에게, 그리고 가주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여전히 권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으므로.

테오에게 있어서는 ‘잠재적 불만분자’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항룡전을 이용해 자신에게 도전하려는 자들을 솎아낸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터.

그리고.

마지막에 적당한 혐의를 씌워 결승전에 오른 이들을 꺾기만 한다면.

‘……항룡전의 모든 화제는 테오에게 쏠리게 되겠지.’

남들이 힘들게 실컷 차려둔 걸 숟가락만 들어 날름 먹어치우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딱 그 꼴이 되었으니.

모사를 꾸밀 줄 아는 건 자신만 있는 게 아니었다.

테오는 아무래도 자신보다도 더 몇 수를 내다봤을지도 몰랐다.

약속과 달리 패룡이 자취를 감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자식뻘밖에 되지 않는 한참 어린 동생에게.

그것도 서자 따위에게 농락당했단 사실이 어찌 이리도 분에 겨운 건지.

“…….”

킨카르논은 길게 숨을 골랐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차라리 잘 되었다 싶기도 했다.

여기서 깔끔하게 테오를 꺾는다면. 그래서 제왕의 홀을 얻기만 하면 모든 건 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테니.

“내가 했던 말실수를 인정하지. 너는 절대 하수가 아니구나. 누구보다 강하다. 내가 라그나르를 위해 뛰었던 전장에서 만난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리고.”

테오는 자세를 정갈하게 가지는 그를 가만히 살피기만 했다.

“수많은 형제들이 내게 칼을 겨눴지만, 이렇게까지 날 막다른 곳에 밀어 넣은 것은 네가 처음이다.”

“칭찬치고는 서두가 너무 긴데?”

“설마 내 목숨을 노리는 적에게 그런 칭찬을 할 리가. 사실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피식!

킨카르논이 웃었다.

처음으로.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내가 죽는다고 해도 딱히 억울하지는 않겠다고. 최소한 나보다 강한 이의 손에 당한 것이 될 테니.”

화아아악!

킨카르논을 중심으로 열풍이 불어닥쳤다.

불길을 머금은 열풍은 곧 회오리를 그리면서 하늘 높이 닿았으니.

<비전 - 화염와(火焰渦)>

킨카르논이 무수히 많은 전장을 전전하면서 창안했다던 그만의 비기.

넓게 퍼지려는 <불지옥>과 반대로 하늘로 치솟는 불길은 마치 라그나르를 상징하는 용을 연상케했다.

“물론, 그건 너 역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콰아아앙!

킨카르논이 지면을 거세게 박찼다. 그동안 보였던 싸움과는 전혀 기세가 달랐다.

쐐애애액-

그가 지나간 자리로 일그러진 화염와가 사방으로 소용돌이치고.

불지옥의 불길이 그걸 통째로 맞서면서 하늘 높이 불길의 벽을 세웠다.

쉬쉬쉬쉭!

킨카르논을 잡기 위해 네 자루의 검들이 일제히 화살처럼 쏘아졌다.

네 명의 테오가 추가로 있는 것과 다름 없을 만큼 화려하고 변칙적인 투로가 많은 공세.

하지만 킨카르논은 이번에도 자신이 왜 ‘검술의 제왕’이라 불리는지를 어김없이 증명해 보였다.

정면에서 날아온 영묘검을 쳐내고, 뒤쪽 사각지대를 노리던 용살검을 살짝 고개를 비트는 것만으로 피하며, 발을 걷어차 올리는 것으로 용활검을 튕겨냈다.

월백검이 일부러 한 박자 타이밍 늦게 하체를 쓸어왔지만, 그마저도 화염와를 안쪽으로 감으면서 옆으로 쳐냈으니.

모든 것이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듯한 동작들.

테오가 검의 구슬이 주는 영감을 빌려야만 겨우 볼 수 있는 투로를 그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해내고 있었다.

‘역시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나보다 몇 배는 위야.’

테오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킨카르논을 절대 제압하기 어렵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의 실력은 비등비등하다.

하지만 검술에 대한 이해도는 킨카르논이 월등하게 높다.

그렇다면 그 격차는 어떻게 메울 것인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테오는 니르바나를 활짝 열었다.

그 순간, 의식 속도가 빨라지면서 외부 세계를 구성하던 시간이 모두 느려지기 시작했다.

[<니르바나>를 발동하여 외부 세계에 대한 인지 용량을 확장합니다.]

[<시계태엽의 나열>의 구성 중 일부를 발동하여 의식 시간을 가속화합니다.]

째깍째깍째깍째각-

테오의 귓가로 시계 태엽의 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았다.

이것이 바로, 테오가 광룡제의 사념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마도여제의 술식을 해체하면서 자기 식대로 재해석하여 만들어낸 응용법.

덕분에 뇌문이 활짝 열려 머리가 타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뜨거웠지만.

반면에 한껏 느려진 세계에서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영감은 테오에게 여러 선택지를 나열했다.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이냐?

그 선택 이후에는 어떤 변화나 결과값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위험값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또 이런 선택은 어떠냐?

위험한 선택이긴 하지만 성공한다면 킨카르논의 머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이것과는 반대로 수비적인 선택도 있으며…….

.

.

수많은 가능성과 기대되는 결과값들이 잔상처럼 스쳤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번뜩이는 통찰.

이것 또한 마도여제가 자랑하던 일종의 미래시(未來視)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문제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때때로 선택하는 사람에게 망설임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지만.

테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중에서 충동이 가는 대로 손을 뻗었다.

파앗-

테오의 선택은 아주 간단했다.

정면 충돌.

차아아아앙!

드레이크의 날붙이와 킨카르논이 자랑하는 애검 ‘페리오드’가 강렬하게 충돌했다.

“나와 정면에서 싸우겠다고? 너는 마법도 어느 정도 부릴 줄 알고, 타고난 이능도 여럿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건 딱히 그렇게 좋은 선택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만.”

킨카르논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검사가 검을 쓴다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테오는 오히려 반문만 던질 뿐이었으니.

“검사라서 검을 쓴다……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로군.”

콰콰콰쾅!

순식간에 여러 합이 충돌했다.

드레이크의 날붙이와 페리오드가 부딪칠 때마다 불길이 몇 번씩 폭발을 일으키면서 검신을 흔들었다.

쩌저적-

대검의 면에 처음으로 균열이 퍼졌다.

킨카르논의 검격이 그만큼 강하단 뜻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도 결국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

그리고 이어지는 난타(亂打).

쉬쉬쉬쉭!

따다다당!

그건 차라리 폭격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았다.

검격은 오로지 균열만 집요하게 노렸고,

쩌어엉!

부러진 검신이 허공으로 튀어 오르고 말았다.

그동안 테오가 가장 아끼는 병기로 사용하던. 그리고 야차성이라 불리게 만들었던. 트레이드마크가 부러진 것이다.

하지만 테오는 일말의 당황하는 기색 없이 와락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킨카르논과의 간격을 바짝 좁혔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킨카르논의 목덜미를 노렸다.

마치 먹이를 낚아채려는 듯한 매의 발톱과 같은 모습.

킨카르논은 자신도 똑같이 힘겨루기로 가려다 말고, 순간 본능적인 위압감이 들어 몸을 뒤로 물리면서 검을 쳐올렸다.

그 때문에 테오는 아슬아슬하게 킨카르논의 검날 안쪽을 붙잡게 되었으니.

우지끈-

쾅!

테오가 힘을 바짝 쥔 순간 페리오드도 똑같이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

도저히 인간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악력.

사실 페리오드 역시 드레이크의 날붙이와 충돌하면서 내구도가 다다랐던 데다가, 테오의 [괴력]까지 보태지니 버티지 못한 것이었지만.

이미 그것만으로도 사람의 수준을 훨씬 뛰어난 것이었다.

용인 각성을 이용해 고대룡의 근력까지 보태어 괴력을 더 강화시켰다는 것을 그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지만 위험하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킨카르논은 테오에게 간격을 좁혀줬다간 정말 큰일이 벌어지겠단 생각에 다시 연달아 뒷걸음질을 쳤다.

검이 부러진 이상, 그 역시 새로운 무기를 손에 쥘 때까지는 공세를 피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간격이야말로 테오가 원래 원하던 것이었으니.

쉭!

여태 바닥에 꽂혀 있던 월백검과 용살검이 어느새 테오의 양손에 붇잡힌 것이다.

‘아뿔싸!’

킨카르논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강렬한 영감이 투로를 제시합니다.]

테오는 또다시 무한한 세계에 잠긴 채 영감이 가리키는 대로 월백검과 용살검을 잇달아 휘둘렀다.

좌에서 우. 위에서 아래. 십여 번의 대각선이 겹치고 또 겹치면서 불지옥의 불길을 끌어모으고, 터뜨리고, 퍼졌다.

콰아아아앙!

킨카르논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어 밀려나고 말았다.

무기를 잃으면서 생긴 힘의 공백이 너무 컸던 것이다.

화염와도 거의 불지옥에 잡아먹힌 상태.

“검을…… 하아…… 부수면…… 하아…… 내 전력이…… 하아…… 약해질 거라는 걸…… 하아…… 눈치채고…… 하아……! 그것도…… 하아…… 모르고……!”

킨카르논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자신의 실수를 한탄했다.

드레이크의 날붙이의 파괴.

그것은 사실 그가 잘나서 해낸 게 아니라, 오히려 테오가 노렸던 바에 가까웠다.

아주 한순간이지만 킨카르논에게 승기를 잡아주었다는 방심을 심어주는 것과 동시에,

그 틈에 간격을 바짝 좁혀 킨카르논도 검을 잃게 만들기 위해서.

“당신은 검을 쥐고 있는 동안에는 무적에 가깝지. 그래서 검제라는 별호를 얻었던 거고.”

테오는 여전히 불지옥의 유황불이 들끓고 있던 두 개의 검을 바닥에 도로 꽂았다.

대신에 주머니에서 하얀 구슬을 꺼냈다.

셀퍼드 일행을 구속시켰던 유물.

“하지만 정작 그 검을 잃고 나면 어쩔 줄 몰라 방황하지. 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단 거야. 반대로 나는 아니고.”

용인의 재능을 깨우친 테오를 육박전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단언컨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테오는 자신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판으로 킨카르논을 끌어들이고자 했고, 이에 성공해서 승기를 완전히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파아아아!

그 순간, 하얀 구슬이 빛났다.

[‘사슬 감옥의 구슬’을 해킹하여 소유권을 임시 터득하였습니다.]

촤르르르륵!

지면과 허공 곳곳에서 쇠사슬이 튀어나오면서 킨카르논을 꽁꽁 묶었다.

그래도 여전히 꼿꼿하게 서서 어떻게든 버티려는 킨카르논에게 다가가 정강이를 세게 걷어찼다.

퍼억!

쿵!

양쪽 무릎이 지면을 찍었다.

싸움의 끝이었다.

회귀검가의 서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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