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2화 (2/349)

제2화

2화. 제자리로

무저갱에 떨어지는 것처럼 아득해지던 감각들.

그것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기 시작한다.

이내.

“으음.”

김시문의 감긴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여기는…….”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다소 바랜 천장.

익숙한 방 안의 모습은 다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내 자취방이잖아?!”

벌떡.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 시문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그 검붉은 눈알이 환영 같은 수작이라도 부린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죽음처럼 느껴지던 그 아득한 감각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그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저승인가?’

그때.

드르르르륵.

침대맡에 놓인 폰이 요란하게 진동한다.

그것을 본 시문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폰? 폰이라고?’

중국과 미국.

최종 두 국가가 남고 나서부터 폰은 작동을 하지 못했는데?

TV나 컴퓨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을 유지할 기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멸망했고.

그 두 나라마저 무정부였던 세상이 자신이 알고있던 세상이다.

그 때문에 폰은 버린 지 오래였는데.

“설마…….”

시문은 귀신에 홀린 듯.

진동하는 폰을 들어 화면을 켰다.

[2030년 1월 17일. 오전 7시 20분.]

그 화면을 확인하는 순간.

“아.”

툭.

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 * *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은 말한다.

2015년 1월 1일은 지구에서 가장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당연했다.

[축하합니다. 자격 만족으로 지구는 갤럭시 아레나에 초대됩니다.]

[정규 아레나로 승급되기 전까지, 갤럭시 아레나의 보호를 받습니다.]

갑작스러운 이 두 메시지의 등장은 2015년의 지구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으니까.

당시 13살이었던 김시문은 그때의 메시지창이 아직도 생생했다.

2015년 1월은 지구의 역사상, 그 어떤 때보다 거대한 변화를 겪었고.

인류는 늘 그렇듯.

이 변화에 빠르게 적응했다.

“정확히 11년 전인가?”

한국이 멸망한 뒤로 굳이 나이를 세어 보진 않았으나.

곧 마흔으로 꺾인다는 말숙이의 한탄과 이 자취방을 떠올려 보면.

“28살로 회귀라니…… 하. 이렇게 겪고도 믿기지 않네.”

자신은 2041년에서 11년 전인 2030년으로 회귀한 것이 분명했다.

<39살에서 28살로 회귀한 건에 대하여>

책 하나 뚝딱하기 아주 좋은 소재다.

그게 자신이 아닌 가상 인물일 때의 이야기겠지만.

물론.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해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그때, 현자의 돌이 멋대로 내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연성했었지.’

오우거에게 산 채로 쥐어짜이는 듯한 기분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시각이 사라져서 결과물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어마어마한 존재감이었던 검붉은 눈알이 경악한 것으로 보아, 범상치 않은 것임은 분명할 터.

“잠깐. 그러고 보니…….”

생각에 잠겼던 시문은 놀란 눈으로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봤다.

‘뭔가 이전과 느낌이 달라.’

비록 28살로 11년이나 되돌아왔다곤 하나.

이 시기의 자신은 ‘그 사고’로 얻은 마력불능 때문에 한창 힘들 때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속이 꽉 막힌 것 같았던 그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어.’

또한 연금술을 익히기 전인 이 당시엔 안경을 썼었다.

시문의 시선이 침대맡 선반을 향한다.

검은 뿔테 안경은 여전히 선반엔 자리하고 있건만.

“잘 보이잖아?”

주변의 모든 것들이 안경을 쓰고 있던 것처럼 말끔히 보였다.

‘시각뿐만이 아니야.’

싸구려 이불에서 오는 거칠거칠한 촉감과 환기되지 않은 특유의 텁텁한 공기.

그리고 닫힌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흔한 도시 소음까지.

“모든 감각이 선명해졌어.”

정확히는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해야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김시문의 시선은 자연스레 자신의 가슴 정중앙을 향했다.

그러곤 아주 조심스레.

그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뭐, 뭐야! 아무것도 없어?”

분명 회귀를 했다면 현자의 돌이 자리해야 하는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으나, 어찌 보면 납득이 되기도 했다.

다른 것도 아닌 무려 11년의 회귀다.

거기에다 한결 선명해진 감각으로 추측건대.

평생의 낙인이던 마력불능도 고쳐졌을 것이다.

애당초 자신이 현자의 돌에게 원했던 요구는 두 가지.

눈알에게 한 방 먹이는 것과 마력불능이 없는 삶이었으니까.

‘그럼 내 염원을 이룬 탓에 현자의 돌이 사라진 건가?’

연금술의 근본은 등가교환.

무언가를 연성하려면 반드시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파충류 눈깔에게 한 방 먹이는 것과 마력불능의 회복에 더해 11년 전으로 회귀까지 이루었다면.

현자의 돌이 소멸했다 하여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럴 게 아니지. 확실히 알아보면 돼.’

현자의 돌은 분명 귀속 아이템이었으니까.

시문은 곧장 상태창을 열었다.

칭호 : 연금술의 선구자 (외 1)

계통 : 마법계

레벨 : 1

소속 : 대한민국

힘 : 4

민첩 : 4

체력 : 5

연성력 : 10

보유 특성 – 현자의 돌 (불안정)

업적 포인트 – 1,012,500

상태창을 본 시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럴 수밖에.

“역시…… 사라졌구나.”

당장 한평생의 발목을 붙잡았던 마력불능.

그 족쇄와도 같던 문구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현자의 돌’이라는 문구가 자리했으니까.

보아하니 현자의 돌은 귀속 과정을 거치며 특성으로 변한 듯했다.

“후. 맨정신으론 도저히 안 되겠다.”

잠시 눈을 감고 북받치는 감정을 다스린 시문은 걸음을 옮겼다.

“뭐라도 마셔야겠어.”

낡은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낸 시문은 곧장 들이켰다.

맥주 특유의 맛과 청량감이 목을 타고 속을 일깨운다.

“캬아!”

잠에서 깨자마자 맥주를 때려 부어서인지 속이 그리 좋진 않았으나.

덕분에 정신을 번쩍 든 시문은 차분히 상태창을 살폈다.

‘회귀 전 내 스탯은 힘1, 민첩1, 체력3, 마력0이었지.’

마력불능이 주는 페널티.

그것은 단순히 플레이어의 마력만 막는 것만이 아닌, 육체적 쇠약까지 가져올 만큼 악랄했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내가 처음 각성했을 때의 수치와 똑같아.’

물론 그래 봐야 고작 1레벨이고.

평균적으로 대부분의 1레벨이 모든 스탯을 5에서 시작한다는 걸 따져 보면, 힘과 민첩은 평균보다 1씩 부족했다.

하지만 반대로.

슈퍼 루키들이나 지닌다는 무려 10짜리의 스탯도 보유하고 있었다.

바로 마력스탯.

“잠깐. 마력이 아니라 연성력이라고? 아!”

고개를 갸웃하던 시문은 손뼉을 마주쳤다.

현자의 돌이 완전히 자리하고 나서 얻었던 스탯.

[스탯 마력과 체력이 ‘고유 스탯’인 연성력으로 변환됩니다.]

당시 시스템은 분명 그것을 ‘고유 스탯’이라고 칭했다.

‘미친! 그럼 내가 고유 스탯의 보유자가 된 거야? 그것도 1레벨부터?’

성력, 마기 등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얻을 수 있는 스탯과 달리.

고유 스탯은 한 사람밖에 얻지 못하는 스탯이었다.

당연히 고유 스탯을 얻은 플레이어는 전생에도 그리 많지 않았고.

그들 중 다수가 하이랭커급의 위치에 올랐었다.

대표적으로.

‘시혁이 녀석이나 종리추가 그랬지.’

중국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던 김시혁과 종리추.

두 사람 모두 고유 스탯을 보유한 하이랭커였다.

물론 말이 양대 산맥이지.

전생의 김시혁은 종리추라는 인물을 치켜세우기 위한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소속, 즉 국가를 잃은 플레이어에게 미래는 없으니까.’

이 빌어먹을 게임의 진정한 시작인 ‘정규 아레나’로 승급되기 전까지.

상태창의 소속인 국가를 잃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누구도 몰랐다.

알았다면 어마어마한 부와 지위를 주더라도.

플레이어들이 함부로 국가를 옮기는 일은 없었겠지.

“하.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더니…….”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맥주 한 모금을 더 마신 시문은 유독 숫자를 과시하고 있는 상태창의 하단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업적 포인트가 1,012,500점이라니? 이건 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분명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업적 포인트는 엘릭서 연성으로 얻은 5,000점.

거기에다 같은 급인 현자의 돌도 연성했고 첫 칭호 획득으로 500점을 더해서.

도합 10,500점이어야 정상이었다.

한데 100만이 넘는 이 얼토당토않은 숫자는 대체 뭐란 말인가?

“이 정도의 업적 포인트를 대체 어디서 얻은 거지?”

설마 최초 회귀 보너스로 막 주고 그런 건가?

“정신 차리자, 김시문.”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시문은 헛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게 있었으면 일어나자마자 시스템이 알려 줬겠지.”

뭐가 어떻든 간에.

중요한 건 이 괴랄한 양의 업적 포인트는 후반에 굉장한 도움을 줄 거라는 것이다.

‘분명 업적 상점에서 스탯이 구매 가능하다고 했었지?’

하이랭커인 시혁이와 말숙이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바로 업적 상점에선 스탯도 판매를 한다는 것.

물론 아무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스탯 판매엔 등장 조건이 있다고 했었으니까.’

본디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업적 상점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이유야 간단했다.

길드 관련을 제외하곤 크게 구매할 게 없으니까.

그럼에도 김시혁과 고말숙이 업적 상점에서 스탯을 구매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

‘높은 수준의 업적량 보유.’

당연했다.

업적 상점은 단어 그대로 플레이어의 ‘업적’에 걸맞은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니까.

시문의 시선은 자연스레 상태창의 최상단을 향했다.

‘분명 업적보다 칭호의 숫자가 영향이 더 크다고 했었지?’

칭호는 여러 옵션이 붙긴 하나 아이템에 비해 상당히 짠 편이고.

그마저도 획득 루트가 극악이거나 희귀해서 랭커들조차 보유한 이들이 많지 않았다.

‘반면 하이랭커인 시혁이와 말숙이는 칭호를 꽤 많이 지니고 있었어.’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한 가지 가설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쩌면 칭호의 숫자가 하이랭커와 일반 랭커를 가르는 척도일지도 모르겠네.’

더불어 스탯을 판매할 수준이면 다른 판매품들도 어마어마할 터.

진화한 업적 상점은 성장에서 무조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일단 이건 업적 상점이 열리면 다시 고민하는 걸로 하고.”

시문은 시선을 들어 칭호 카테고리를 터치했다.

그리고 펼쳐지는 세부 정보를 보곤.

[연금술의 선구자] - 성장형

연금술의 신화적인 산물을 모두 연성한 연금술사에게 주어지는 칭호.

-연성 관련에 아주 작은 보너스를 받는다.

“미친!”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당연했다.

대부분의 칭호가 보조적인 옵션에 그치거나 그마저도 없는 경우가 다수거늘.

“지, 직업 관련 칭호라고? 그것도 성장형?!”

이게 얼마나 대단한 칭호인지는 천마 고말숙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하이랭커 중 비교적 후발 주자라 볼 수 있는 고말숙.

그럼에도 그녀가 하이랭커로 군림할 수 있었던 건.

성좌 천마에게서 얻은 사기적인 칭호 때문이었다.

자연스레 언젠가 병나발을 불며 제 성좌 천마를 욕하던 고말숙이 떠올랐다.

‘있잖아, 변태 영감한테 처음 칭호를 받았을 땐 존X 짜증 났거든?’

‘어떻게 지 이름인 천! 마! 같은 칭호를 주냐고! 쪽팔리게!’

‘근데 써 보니까 아니더라. 내 바로 영감한테 대가리 박았잖냐.’

성장형 칭호 ‘천마.’

정확한 옵션은 모르지만.

분명 말숙이는 하이랭커가 되는 데 칭호가 큰 도움을 주었다고 했었다.

“그런 걸 나도 얻게 될 줄이야…….”

이거 또 맥주가 마려워지네.

‘참자. 정신 차리려는 거지, 취하려고 마신 게 아니잖아.’

그 욕구를 간신히 진정한 시문은 다른 칭호로 시선을 돌렸다.

[저편의 시선을 받는 자]

스스로가 저편이라 칭할 수 있는 존재의 시선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일이라는 건 확실하다.

“이런 건 또 언제 얻었대?”

저편의 시선이라니.

애당초 저편이 뭔데?

시문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그냥 똥옵션인가.’

칭호에 능력치가 붙지 않는 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이다.

“뭐, 없는 거보다야 낫겠지.”

업적 상점의 격을 높이려면 일단 칭호가 많을수록 좋으니까.

“으아! 어지럽다!”

시문은 침대로 몸을 던졌다.

그냥 눈 한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일단 제일 중요한 건, 내 마력불능이 회복되었다는 거지.”

제 입으로 이런 소리 하기가 좀 그렇지만.

1레벨의 마력 스탯이 10이라는 건, 마법계의 내로라하는 유망주들도 비비기 어려운 스펙이었다.

단지 그게 연성력으로 변했을 뿐.

‘한번 시험해 볼까?’

시문은 오른손을 들어 올리곤 연성력을 집중했다.

마력을 다루지 못한 지는 꽤 오래되었으나.

마력불능이 회복된 지금, 기운 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사아아.

혈관에 피가 아닌 무언가가 주입된 것처럼.

정체 모를 기운이 팔을 타고 손바닥으로 모여들었다.

‘역시 마력과는 느낌부터가 달라.’

시문은 손바닥에 모여든 연성력을 꼼지락거렸다.

‘다루기도 엄청 편하네.’

현자의 돌 때문일까?

자세히 집중하지 않으면 이게 기운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연성력은 시문의 뜻대로 움직여 주었다.

‘이 정도면 마력 없이 마법도 사용이 가능하려나? 안 될 거 같긴 한데…….’

연성력을 꼼지락거리던 시문은 몸을 일으켰다.

‘한번 해 보자. 일단 발화 공식을 분해해서…….’

연금술에서 사용하던 발화 공식을 분해, 재수정하여 마법에 적합한 형태로 바꾼다.

아무리 연금술이 천대당해도 결국 마법 계통으로 근본은 같았기에.

기초 마법인 발화 공식 정도는 어렵지 않게 준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성력을 주입하자.

피이이.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아무런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쯧. 예상대로구나.”

정령력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같은 마법계라도 연성력으로 마법 사용은 불가했다.

굳이 궁수가 아니더라도.

숙달만 되면 화살에도 오러를 부여할 수 있는 전투계와는 분명 다른 부분이었다.

하지만 시문은 실망하지 않았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의 페널티를 준 만큼.

‘연성에 큰 리턴이 붙을 테니까.’

괜히 연성력이라는 고유 스탯으로 분류되었겠는가?

시문은 낡은 책상의 서랍을 열었다.

28살의 자신이라면 이미 절망적인 현실을 인정하고 연금술을 접한 시점.

“역시 있네.”

연성용 분필.

그것을 꺼낸 시문은 곧장 바닥에 엎드려 연성진을 그렸다.

아니.

그리려 했다.

멈칫.

몸이 저절로 멈추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 뭐지?’

몸을 숙이려는 자세 그대로 굳어 버린 시문.

어떤 초자연적인 요소 때문이 아니었다.

‘몸이…… 거부하고 있어?’

땅에 엎드리는 행위 자체를 육체가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연성진을 그리는 걸 거부하고 있는 거야.’

왜지?

연성력이라는 고유 스탯에 연금술의 선구자라는 칭호까지 지니고 있지 않은가?

전생에서도 반평생을 연금술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대체 왜 연성진을 그리는 걸 거부한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우웅.

가슴에서 희미한 이명이 울렸다.

수명이 다 된 전구처럼 희미하고 불규칙했지만.

시문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현자의 돌?’

이내 깨달았다.

순간적으로 연성에 거부감을 느낀 것은 현자의 돌 때문이라는 걸.

회귀 전의 현자의 돌을 떠올리면 더없이 희미한 이명이었으나.

현자의 돌은 분명하게 제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미개하고, 야만적이라고?’

현자의 돌은 몸을 숙여 연성진을 그리는 이 행위 자체를 혐오하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런 ‘비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하냐는 듯.

그 귀족적이고 오만한 감정에 왠지 모르게 동화되어 버린 시문은 자연스레 몸을 일으켰고.

‘그러고 보니 나, 현자의 돌을 얻고 나서 어떻게 연성을 했었지?’

그때.

검붉은 눈알을 눈앞에 두고 순식간에 연성했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동시에.

스윽.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오랜 습관처럼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저도 모르게 연성의 구상 단계로 빠져들었다.

‘지금 내가 연성하고자 하는 것.’

지금 자신의 연성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산물.

‘모양은…… 창. 그래, 종리추 그 자식이 썼던 것처럼 창의 형태가 좋겠어.’

심상으로 원하는 연성을 도안화하고.

‘특수 능력이나 추가 옵션은 강하면 강할수록 더 좋고.’

그것을 보다 구체화한 다음.

‘연성에 지불할 대가는 내가 지닌 연성력.’

따악.

등가교환의 법칙을 성립시키고 손가락을 튕기자.

키이이잉!

“끄아악!”

가슴 정중앙.

그 속에 자리한 현자의 돌을 중심으로 격렬한 통증이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요구치에 맞는 연성을 이루기엔 연성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연성할 수 있는 수준에 비해.

지닌 연성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마, 망할!’

아프다.

마력불능이 회복되고 보다 선명해진 감각 때문인지.

아파도 정말 혼이 나갈 정도로 아팠다.

이 와중에.

우웅.

가슴 속에 자리한 현자의 돌에선 희미한 이명이 울렸다.

그것에 담긴 감정은 불쾌감.

녀석은 ‘연성을 하지 못한다는 것’에 굉장한 불쾌감을 내비쳤다.

[현자의 돌(불안정)이 다른 방향을 모색합니다.]

[소유자가 보유 재화에서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현자의 돌이 자신의 ‘불안정’ 상태 회복을 위해 업적 포인트 1,000,000점을 요구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떠오르는 메시지창에 시문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 100만 점이나 달라고?’

무슨 상태를 회복하는 데 업적 포인트를 100만이나 소모한단 말인가?

하지만 막상 따져 보면 납득이 가기도 했다.

‘엘릭서나 치료할 수 있다는 마력불능에, 11년 전으로 회귀까지 시켜 줬지.’

이건 애당초 업적 포인트로 살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다.

‘좋아. 넌 이미 가치를 증명했으니 믿는다, 현자의 돌.’

스윽.

시문의 손이 망설임 없이 ‘예’를 향했다.

[업적 포인트 1,000,000점이 소모됩니다.]

[현자의 돌이 ‘불안정’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메시지창과 함께 엄습하던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동시에 소화불량을 앓다 회복된 것처럼.

편안하고 시원한 감각이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비단 느낌 때문만은 아니리라.

‘연금술의 운용이 한결 더 편해졌어. 그럼 이젠 되겠지?’

시문은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올렸다.

대신 최대치를 구상했던 아까와 달리.

‘그냥 지금 내가 해낼 수 있는 수준으로만 하자.’

현재 자신의 연성력에 맞춰 연성을 재구상했다.

그러곤 연성력을 담아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요구치에 맞는 연성을 이루기에는 연성력이 부족합니다.]

“또야?”

이번엔 통증이 동반되지 않았으나, 조금 짜증이 솟았다.

대체 뭐 그리 대단한 걸 요구했다고?

심지어 지금은 연성 조건을 축소하지 않았는가?

“좀 열받는데.”

시문의 입술이 슬쩍 튀어나왔다.

마력불능이라는 절망적인 조건 속에서도 신화적인 산물을 연성한 자신이거늘.

고작 이능 좀 섞인 창 하나 연성하지 못한단 말인가?

“무려 100만 점이나 투자해서 불안정을 고치고, 연성 수준까지 낮췄어. 나도 이 이상은 못 물러나.”

우웅.

그러한 오기가 마음에 든다는 듯.

그에 현자의 돌이 희미한 이명을 토했다.

이내 시문의 눈앞에 또다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현자의 돌이 부족한 등가교환을 성립시키기 위해, 업적 포인트 500점을 요구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하! 업적 포인트 100만 점으로 부족하다 이거야?”

물론 현자의 돌에 쓰인 100만 점은 불안정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였지.

지금 하는 연성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단지 1레벨이라도 유망주 취급을 받을 10짜리 스탯을 지녔는데.

이리 까이는 게 자존심이 상했을 뿐.

“좋아! 100만 점도 털었는데 그깟 500점이 뭐 어렵다고!”

어차피 100만 점을 쓰고도, 업적 포인트는 아직 12,500점이나 남아 있었다.

주저 없이 ‘예’를 선택한 시문은 곧장 손을 들어 올렸고.

“부디 투자한 가치가 있기를 빈다.”

따악.

연성력을 담아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쿠르르르릉!

엄청난 뇌성과 함께.

한 줄기의 벼락이 창문을 뚫고.

“우, 우왓!”

파지직!

시문의 앞으로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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