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19화. 천마신공 (1)
[참가 인원이 모두 매칭되었습니다.]
[지역은 ‘식어 버린 폐광’입니다.]
익숙하게 떠오르는 시스템창들.
그러나 이어지는 시스템창은 그렇지 않았다.
[그간의 업적과 플레이어 김시문에게 측정된 MMR값으로 규정의 변화가 생깁니다.]
[이번 아레나를 기점으로 플레이어 김시문의 랭크 배치 구간을 종료합니다.]
‘이건 또 뭐야?’
내용을 확인한 시문은 고개를 갸웃했다.
배치고사 구간을 이번 1판으로 끝내 버리겠다니?
통상적으로 5~10판 정도를 거쳐 랭크를 배정받는 걸 고려해 보면 무척이나 파격적인 처사였다.
‘뭐, 그리 이상할 것도 없나.’
앞선 ‘그간의 업적과 측정된 MMR값’이라는 부분을 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없긴 했다.
어마어마한 연성 속도와 각종 신화급 무구들의 연성.
더불어 정규 아레나를 1레벨로 살아남은 경험까지.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하기 좀 낯 뜨겁지만.
이만하면 저랭크 구간에선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시문은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랭크를 부여하고 날 성장시킬 속셈인 거야.’
더 이상의 배치고사는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서둘러 적정 랭크대로 보내 버리고 싶다는 게 갤럭시 아레나 측의 입장이겠지.
‘뭐, 나도 수준만 된다면 올라가고 싶긴 하니까.’
회귀 전까지 쭉 1레벨이었던 자신이다.
마력불능이 회복되고 강력한 능력까지 얻은 지금.
1명의 플레이어로서 더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리라.
“아 참, 방송 켜야지.”
이번 아레나의 접속은 이유정이 건네준 성삼의 비공개 최신식 접속기기를 이용한 상태.
따라서 방송 기능의 활성화가 가능했기에.
시문은 옵션을 열어 방송 기능을 활성화했다.
“당장이야 시청자가 없겠지만…….”
앞으로 계속 좋은 성적을 보인다면 시청자는 알아서 생겨나리라.
그럼 방송 관련 업적도 하나둘씩 클리어가 될 테니.
‘업적 포인트도 짭짤하게 벌리겠지. 흐흐!’
그걸로 또 뭘 연성할까?
천마신공이나 옵시디언 태블릿의 뒤 내용?
아니면 새로운 연성물?
그렇게 행복한 고민을 하던 시문의 앞으로.
[성좌 제우스가 방송에 입장하였습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방송에 입장하였습니다.]
[성좌 천마가 방송에 입장하였습니다.]
믿기 힘든 알림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어?”
가만히 눈을 끔뻑이는 시문.
‘뭐야. 성좌가 방송에도 참여가 가능했어?’
회귀 전.
성좌의 후원을 받는 이들의 방송에도, 성좌가 나타났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었다.
한데 성좌들이 방송에 입장하다니?
하나 그런 성좌들의 등장에 놀랄 틈도 없이.
“잘 먹겠습니다!”
먹방에서나 볼 법한 멘트와 함께.
후우우웅!
강렬한 파공음이 시문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 * *
‘끝났군.’
사실 끝이니 뭐니 따질 것도 없었다.
잦은 패착으로 능력치 하락부터 온갖 페널티를 받긴 했으나.
결국 최대 스탯 10이 받는 90%와 100이 받는 90%의 페널티는 전혀 다르니까.
더불어 한때 다이아 랭크를 노리던 나름의 실력자 아니던가?
‘이래서 양학이 꿀잼이라니까.’
그간의 노하우와 센스, 스킬과 아이템까지.
이 구간에선 어느 누구도 돈킹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
분명 그래야 했는데.
터억.
“음?”
생활계 협회에서 맞춤으로 제작한 너클.
그것을 부드럽게 잡아챈 후드티의 눈빛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 증거로.
“꽤 빠르네.”
주먹을 막아 낸 후드티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진다.
그리고 돈킹이 뭐라 사태를 파악할 틈도 없이.
퉁.
명치로 파고드는 주먹에 돈킹의 육체는 허공을 날았다.
이내.
‘이것 봐라? 심해 주제에 이걸 받아쳤어?’
주먹을 가볍게 피해 공중제비를 돌며 착지하는 돈킹.
그는 놀람 반, 흥미 반이 섞인 눈으로 회색 후드티의 남자.
시문을 바라봤다.
“여러분. 저 사람 제법인데요?”
-??
-방금 뭐임? 맨몸으로 기습을 막고 카운터까지 박은 거임?
-에이, 돈킹 이 새끼 또 방송각 잡으려고 기를 쓰지!
-뭐래. ‘잘 먹겠습니다’는 돈킹의 킬 전용 대산데.
-그러게. 방금 진심 펀치 아니었냐?
순식간에 물음표로 도배되는 채팅창.
돈킹은 가볍게 목을 꺾으며 말했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좀 치는 분이시네요?”
그에 시문은 말없이 돈킹을.
정확히는 돈킹의 명치를 바라봤다.
‘그 찰나에 흘리기를 했다고?’
일순 타격 부위를 움직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고급 기술 ‘흘리기.’
착용한 장비를 보아 하니 격투가 쪽인 거 같은데.
아무리 몸을 쓰는 데 특화된 격투가라 해도.
반격을 받는 시점에서 저렇게 흘리기는 어려웠다.
‘그것도 특성의 도움이 아니라, 순수 실력으로 피한 거야.’
이 구간은 엄연한 배치고사.
흔히들 말하는 심해 구간이 아닌가?
방금의 흘리기는 특성만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거기에다 착용한 장비들도 범상치 않고…….’
시문의 시선이 빠르게 돈킹을 훑는다.
이내.
-오빠? 뒤쪽에 사람이 더 있어.
‘그래, 나도 방금 느꼈어.’
시문의 시선은 돈킹의 너머를 향했다.
영약으로 힘민체가 2씩 증가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8이나 되는 마기 스탯과 천마신공을 얻었기 때문일까?
시문은 돈킹의 뒤편에 숨어 있는 세 사람의 기척을 느꼈다.
‘저 사람의 기습은 가까이 올 때까지 눈치 못 챘는데.’
은신하고 있는 세 사람의 기척은 손쉽게 잡힌다.
이는 기습자와 숨어 있는 자들의 실력 차이가 상당하다는 뜻.
아울러.
“걱정 마시라니까. 아무리 심해라도 올라갈 사람은 있는 거죠. 저분은 올라갈 사람으로 보이네요.”
기습이 실패했음에도 조금의 당황도 없이.
아주 여유롭게 허공을 보며 소통하는 모습까지.
‘대충 견적이 잡히는군.’
시문의 눈빛이 서늘해진다.
시문은 돈킹의 뒤편을 흘낏하곤 말했다.
“당신, 버스 기사구나?”
“오오, 그건 또 어떻게 아셨대?”
“척 보면 알지.”
“대단하시네요. 근데…… 어째 말이 좀 짧으시다?”
“돈 받고 버스나 태우는 인간을, 존대라도 해 줘야 하나?”
버스 기사.
고의적인 패배 작업으로 함께 매칭된 플레이어들에게 피해를 주고.
그렇게 낮아진 MMR로 하위 랭크에 내려와 돈을 받고 손님의 랭크를 올려 주는 족속들.
이들은 시문이 가장 혐오하는 플레이어들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정규 아레나 때 저놈들 때문에 상당수의 플레이어가 죽었지.’
본인 실력도 아니면서 버스를 타고 랭크를 올린 플레이어들.
소위 말하는 ‘손님’들 때문이었다.
당연했다.
버스를 받고 올라온 플레이어가 해당 랭크대에서 1인분의 가치를 하기란 불가능했고.
모든 것이 현실이 되어 버리는 정규 아레나에선 여과 없이 걸러졌다.
문제는.
‘저 혼자만 죽는 게 아니라는 거지.’
특히나 협력 조건, 또는 협력을 요구하는 던전이나 레이드형 아레나가 걸린다면?
함께 매칭된 플레이어들 모두가 몰살이다.
버스로 랭크를 올린 플레이어들 때문에 멀쩡한 플레이어들까지 목숨을 잃는 것이다.
물론 돈까지 내 가며 버스를 타는 손님 쪽도 문제였지만.
‘기사가 더 문제야.’
일종의 마약 중독자와 마약 공급자의 차이랄까?
시문의 눈엔 버스를 운영하는 기사들이 더 악질로 보였다.
그 곱지 않은 눈초리에.
“이야! 역시 심해는 패기가 남다르네요. 제가 버스 기사인 걸 알면서도 이런 태도라니.”
-ㅋㅋㅋㅋ 그냥 미친 거지 뭐.
-유인원 수준의 능지로 사태 파악이 되겠음?
“어허, ‘유인원 수준의 능지’라니요. 말들이 심하시네. 그냥 올라갈 사람인 거죠. 하핫!”
돈킹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과장된 제스처를 취했다.
사람 좋게 웃으며 굳이 채팅창의 비하 발언을 되짚기까지.
의도는 뻔했다.
‘자, 빡치지? 들어와라.’
도발.
돈킹은 방금의 반격으로 시문이 평범한 심해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걸 파악한 것이다.
하나 아레나는 외적인 요소로만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정면으로 붙어도 지지야 않겠지만, 확실한 게 좋으니까.’
멘탈을 건드려 상대의 페이스를 흔드는 것 또한 실력.
더불어 감히 심해 새끼 주제에 자신의 기습을 반격한 수모를 그대로 갚아 줘야 했다.
하지만.
“하위 매칭으로 들어와 놓고 뻔한 도발까지 하다니…….”
돈킹의 의도를 파악한 것일까?
시문은 헛웃음을 흘리며 다가갔다.
“너무 저급하게 노는데?”
“하! 그렇습니까? 그런데 말하는 것치곤…….”
다가오는 시문을 보며, 돈킹의 미소는 한결 짙어졌다.
“잘 먹힌 거 같은데요? 혹시 빡치셨습니까?”
“아아, 빡친 건 아니고.”
걸음을 멈추지 않고 돈킹을 향해 여유롭게 걸어가는 시문.
“내 귀한 시청자께서 방금 미션을 걸어 주셔서, 뒤로 빼기가 좀 그렇네?”
“푸하하핫!”
시문이 발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왔음에도.
돈킹은 대소를 터뜨렸다.
어쩔 수 없었다.
“이거 제가 대단한 분을 몰라봤네요. 이 랭크대에서 미션까지 다 받으시고.”
브실골 방송에서 미션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였으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존X 웃기네 ㅋㅋㅋ.
-아이고! 우리 돈킹은 미션도 없어서 어쩌나~.
-저런 애 잡는 데 미션 걸렸으면 돈킹 지금 재벌 됐엌ㅋㅋ.
돈킹과 함께 박장대소하는 채팅창.
그러나.
“그러게, 배치 구간에서 미션을 다 받네. 내가 좀…….”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단한가 봐!”
진각과 함께 주먹을 뻗어 오는 시문.
당연히 반격을 대기 중이던 돈킹은 곧장 시문의 주먹으로 팔을 뻗으며 엎어치기를 준비했으나.
파팍.
‘무슨!’
돈킹의 눈이 부릅떠진다.
마치 질주하는 트럭을 맨손으로 잡아채려던 것처럼.
손목과 팔꿈치를 잡아 반격하려던 그의 양손을 그대로 뚫고.
빠악.
시문의 주먹이 가슴으로 틀어박힌 것이다.
쿠웅.
“컥!”
폐광의 벽면에 그대로 처박히는 돈킹.
벽면이 갈라지며 일어난 자욱한 흙먼지는 처박힌 돈킹을 완전히 파묻어 버렸다.
‘좋아. 이번엔 제대로 들어갔네.’
시문은 손등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에 미소를 지었다.
‘왜 뻔한 도발까지 하나 했더니…… 역시 반격을 노리던 거였어.’
그냥 흘리기를 시도했다면 이렇게 정타를 허용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뻔한 도발과 똑같은 반격으로 되돌려 주려다, 되레 정타를 맞은 것이다.
‘역시 버스 돌리는 걸 방송까지 하는 애들의 심리는 너무 뻔해.’
소위 말하는 양민 학살을 일삼으면서 실력 있는 척 허세를 부리는 것들.
눈앞의 저 버스 기사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세상에!”
“도, 돈킹 님!”
뒤편에서 당황스러운 목소리들이 울린다.
은신해 있던 손님들이었다.
그들에겐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시문은 다시 전투태세를 갖췄다.
아무리 인체 연성과 천마신공을 운용한 주먹에 맞았다 해도.
‘버스 기사에 저 정도 장비면 이 정도로 뻗을 리는 없지.’
그것을 증명하듯.
“이 망할 새끼가!”
자욱한 흙먼지를 가르고.
욕설과 함께 돌려차기로 날아드는 돈킹.
“뒈져!!”
쐐애애액!
버스를 운영하는 기사답게 발차기에서 흘러나오는 파공음은 가히 범상치 않았다.
하나.
그것을 묵묵히 응시하며.
시문은 아까와 같이 현자의 돌에서 기운을 끌어올렸다.
스으으.
저돌적인 흑색 기운이 시문의 회로를 타고 오른손으로 뻗어 간다.
‘마는 곧 패도이고…….’
흡수한 천마신공의 구결에 따라.
저돌적인 마기는 시문의 주먹 끝에 도달했고.
우웅.
희미한 이명을 띠며 돈킹의 정강이와 마주했다.
그리하여.
우드득.
“끄아아아악!”
충격 흡수에 뛰어난 가죽 재질 방어구와 격투용 각반이 무색할 만큼.
썩은 나뭇가지처럼 꺾여 버리는 돈킹의 정강이.
그러나.
“빌어먹을 놈이!!”
버스 기사 짓은 괜히 하는 게 아닌지.
돈킹은 정강이가 꺾이는 고통 속에서도 몸을 비틀며 주먹을 내질렀다.
파앙.
돈킹이 내지르는 주먹에서 갑작스레 공기가 터진다.
주먹뿐만이 아니다.
파앙. 파앙!
그의 허리와 어깨, 팔꿈치까지.
주먹을 휘두르는 데 필요한 모든 부분에서 공기가 터지며, 회전력에 힘과 속도를 더했다.
시문은 단번에 그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A급 특성, 격발이군.’
순간적으로 기운을 격발시켜 힘과 속도를 더하는 특성.
전투계라면 전사나 암살자, 그리고 궁수까지.
그 어떤 직업과도 잘 어울리는 높은 티어의 특성이었다.
‘그럼 아까 그 발차기도 격발을 이용한 거였구나.’
비록 천마신공이라는 절세의 무공 앞에 무너지긴 했으나.
방금의 발차기는 분명 이 구간대에서 구경할 위력이 아니긴 했다.
“뒈져라아아!!”
부아아아앙!
특성 격발의 도움으로 어마어마한 파공음과 함께 날아드는 주먹.
‘원래라면 피하는 게 맞는 선택이지만…….’
아무리 천마신공을 익히더라도 레벨과 스탯, 아이템의 차이를 메꿀 순 없다.
하지만.
‘미션을 놓칠 순 없지.’
성좌 천마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시문은 회피 대신 손가락을 튕기는 걸 택했다.
따악.
꿈틀.
오른손부터 팔의 끝까지.
[오우거의 신체조직]이 연성된 근육이 요동친다.
후우웅.
돈킹의 주먹에 뒤지지 않는 속도로 뻗어 나가는 시문의 주먹.
그 속엔 천마신공의 구결에 따라 연성력의 정제를 거친 마기가 야생마처럼 질주했고.
천마신공(天魔神功).
격(擊) 패황쇄(覇皇碎).
천마신공의 초식이 돈킹의 주먹과 맞닿는 순간.
쿠르르르르르!
어둑한 폐광이 깊은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