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55화 (55/349)

제55화

55화. 용족 (2)

크롸롸롸롸!

거대한 울부짖음.

전생에서 들었던 수많은 울음 중 단연코 잊지 못할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리는!’

정신을 차린 시문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획 들었다.

그럴 수밖에.

가장 많은 플레이어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던 울음소리를 어찌 잊겠는가?

‘드래곤?!’

드래곤.

이종족 중 최강이라는 용족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종.

압도적인 육체는 물론이요.

그 육체를 기반으로 쏟아지는 고수준의 마법은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에…….’

당황스러운 눈으로 정면을 바라본 시문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울음소리의 원인은 드래곤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전체적으로 비슷하기는 했다.

원래 알고 있던 드래곤보다 더 거대하고, 더 화려했으며, 더 위압적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시문은 저것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용제가 어떻게 여길!’

그것도 한둘이 아니다.

무려 다섯이나 되는 거대한 드래곤.

아니, 용제들이 한데 모여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눈에 다 담기지 않는 용제들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중압감을 선사했다.

그때.

‘잠깐.’

놀란 눈으로 무려 다섯이나 되는 용제를 보던 시문이 잠시 멈칫한다.

‘용제가 다섯이나 있으면 난 숨도 제대로 못 쉴 텐데? 그러고 보니 나, 목소리도 안 나오잖아?’

그러나 시문이 현 상황을 눈치챌 틈도 없이.

쿵.

다섯 용제들 중 가장 거대한 이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휘감은 거대한 드래곤.

마치 태양을 통째로 조각해 놓은 듯한 형체.

그의 입에선 겉모습과 같이 검붉은 불길이 넘실거리며 흘러나왔다.

“여기까집니다, 아버지.”

욱신.

분명 눈앞의 이 거대한 용제와 자신은 어떤 관련도 없을 터인데.

아버지란 말에 왜 이렇게 가슴이 아리단 말인가.

그러나 시문은 어떠한 답도 할 수 없었다.

단순히 가슴을 아리는 정체 모를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입이…… 안 움직여!’

근육과 신경이 무너져 내려 아예 기능을 상실해 버린 느낌이랄까?

비단 느낌뿐만은 아니었다.

‘잠깐. 뭐야, 이거?’

자신을 내려다보는 다섯 용제의 시선.

그와 함께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시문은 보고야 말았다.

‘내 몸은 또 왜 이래?!’

눈앞의 검붉은 용제.

용제들 중 가장 큰 그 용제조차 반도 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몸체를 말이다.

저 용제들을 거산이라고 칭한다면.

시문의 몸은 그것들로 이루어진 산맥이라 말할 수 있었다.

비록 처절하게 박살 나, 제대로 된 형체는커녕 핏물이 대다수였지만 말이다.

이어.

-그러느냐…….

꿈쩍도 하지 않던 시문의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용제들보다 거대해서일까?

그 목소리는 묘한 이명이 섞여 이 세상의 것이 아니게 느껴졌다.

그래.

꼭 필멸의 그것을 초월한 느낌이었다.

“끝까지 모든 것을 안다는 것처럼!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아버지, 당신은 패배한 겁니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지. 내 경우엔 잔혹했을 뿐. 너 역시 이 자리에 오르면 알게 될 것이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자신을 아버지라 불렀던 검붉은 용제의 얼굴이 확 일그러진다.

흡사 폭발 직전의 태양을 보는 듯한 그 모습은 무척이나 두려워야 했는데.

“아니, 그럴 일 없을 것입니다.”

이 갑작스러운 빙의 때문일까?

시문은 공포심이 1도 들지 않았다.

그저.

-안타깝구나. 네가 거절한다 하여, 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거늘.

안타깝고 후회스러운 마음뿐이었다.

“아니, 전 용신이 되지 않을 겁니다. 당신처럼 나약해질 순 없는 노릇이지요.”

검붉은 용제가 뒤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4명의 용제.

검푸른색, 검분홍색, 회갈색, 그리고 녹색의 눈동자를 지닌 용제들이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녹색의 눈동자와 시선을 맞춘 시문은.

‘읏!’

다시 한번 가슴이 미어지는 걸 느꼈다.

“당신을 소멸시키고 용신이 되어 봐야 결국 우리 중 하나, 그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말 그대로입니다.”

쿵.

아버지라 부른 검붉은 용제가 다시 한번 걸음을 내디딘다.

“용족은 이 우주의 그 어느 종족보다도 우월합니다. 우리가 바로 그 증거지요.”

어느새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민 그는 제 몸과 같은 검붉은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말했다.

“한데 고작 하나의 자리만으로 만족하라? 그게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크루아흐, 그건…….

“개소리는 이제 그만! 아버지,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이건 다 우리 용족의 우월함을 경계하는 버러지들의 수작이란 말입니다!”

저 막대한 육체에 휘감긴 불길 때문일까.

-크루아흐, 그건 오만이다.

“오만? 우린 수많은 차원에서 신령한 존재, 혹은 신으로 추앙되어 왔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부정의 여지가 없지요.”

아니면 속에 가득 담긴 욕망 때문일까.

“게다가.”

크루아흐라 불린 검붉은 용제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뒤편의 용제들을 하나하나 훑으며 말했다.

“우리 모두 상위 서열 성좌의 위치에 오를 ‘자격’도 있지 않습니까?”

-헛소리! ‘자격’이 있어도 용계에 허락된 ‘자리’는 하나다. 그게 법칙이야!

“그것이 웃기는 점이지요. 그렇다면 저편은 그 넷은 뭐란 말입니까? 그곳을 지배하는 그 존재는요!”

-그곳은 예외다. 규격 외의 세계란 말이다!

“크핫! 그렇겠지요. 어디에나 예외는 있으니.”

크루아흐가 이글거리는 팔을 들어 올린다.

그의 손아귀엔 하나의 구체가 떠올랐다.

“해서, 저도 예외를 찾았습니다.”

‘저, 저건!’

그것을 본 시문은 경악을 토했다.

검붉은 구체.

그 안에 파충류의 그것처럼 길게 찢어진 동공.

시문이 회귀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눈동자였다.

“생각보다 쉽게 말해 주더군요. 저편이 어떻게 여러 자리를 얻었는지.”

-네 이놈! 제정신이냐! 저편은 늘 경계하라 일렀거늘! 특히 네가 손잡은 그자는…….

“아버지,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저와 우리 용족에게 당신의 가르침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것을.”

콰직!

시문의 가슴으로.

정확히는 빙의하고 있는 이 거대한 존재의 가슴 속에 처박혔다.

“저편에 대해선 제가 알아서 합니다. 당신은 그저…….”

달아오르던 몸의 열기가 더더욱 뜨거워진다.

“이대로 사라지시면 됩니다. 당신이 가진 그것들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 말이죠.”

온몸이 달구어진 칼날로 조각조각 나뉘는 고통이 엄습하고.

“우리 용계는 용신이 탄생하지 않은 그때로 다시 돌아갈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마저 사방으로 빨려 나가는 허무감이 밀려든다.

잘못 느낀 것이 아니다.

콰드득.

실제로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거대한 육신과 핏물은 다섯 용제에게로 빨려들고 있었으니까.

이어.

“‘자격’조차 아까운 미개한 것들에게서. 우리가 마땅히 받았어야 할 ‘자리’를 쟁취할 겁니다.”

오만을 넘은 광기.

육체를 나뉘어 가진 용제들이 각자 어마어마한 기세를 내뿜었고.

[‘티아메트의 피’가 현자의 돌과 성공적으로 동화되었습니다.]

한줄기의 메시지가 떠오르며 시문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 * *

“허억!”

오랫동안 물속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었던 것처럼.

깨어난 정신이 몸의 감각을 확 일깨운다.

가장 먼저 든 감각은 다름 아닌.

“으윽.”

어지러움.

그 강렬한 두통에 이마를 짚은 시문은 숨을 고르며 어지러움을 가라앉혔다.

‘용족 놈들…… 저런 계획이 있었을 줄이야.’

소용돌이치던 머릿속이 점차 가라앉자, 아까 보았던 환상들도 빠르게 정리되었다.

‘이제야 감이 잡혀. 왜 유독 중국이 아웃브레이크에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

같은 2강인 미국도 아웃브레이크에.

특히나 고위험군이던 용족 관련 아웃브레이크에서 자유롭지 못했거늘.

‘대륙성 뒤에 용족이 있는 거야.’

그게 아니고서야.

유난히도 중국이 용족들에게서만큼은 큰 피해를 받지 않았던 이유가 설명이 되질 않는다.

애당초 유럽을 필두로 멸망한 모든 나라의 플레이어를 모두 흡수한 미국과 아시아권만 겨우 흡수한 중국이 비빌 수 있었던 것도.

고위험군인 용족 관련 아웃브레이크가 기이할 정도로 중국만 비껴갔기 때문이 아니던가?

문제는.

‘놈들이 왜 그렇게 시혁이를 죽이고 싶어 했냐는 건데…….’

김시혁이 아무리 망국의 하이랭커라도 중국에 귀화한 이상, 그 나라를 지켜 주는 존재다.

심지어 시혁이는 종리추와 함께 아시아의 양대 수호신으로 불렸고.

미국보다 플레이어의 숫자는 달릴지언정.

개개인의 전투력은 중국이 훨씬 뛰어나다는 평가까지 만든 요소가 아니던가.

한데도 중국은 그렇게나 동생 녀석을 죽이려고 안달을 냈었다.

지금까진 창왕 종리추의 추한 열등감이 주라고 생각했지만.

방금의 환상, 티아메트의 기억을 보곤 생각이 좀 달라졌다.

‘용족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아. 아마 크루아흐가 말했던 자리와 자격이라는 것 때문이겠지.’

자격에 대해선 대충 감히 잡히는 부분은 있었다.

전생엔 동생 김시혁만.

그리고 이번 생엔 자신까지도 지니고 있는 특성이 있지 않은가?

‘성흔. 그 특성 때문에 내게 암살을 시도한 거라면?’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용족이 대륙성에 암살을 의뢰했다.’

라는 아귀 정도는 들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후우……. 이것도 결국 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시문은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뭐든 당장 확신하기엔 일러.’

이 전제가 성립하려면.

우선 중국이 용족과 진짜 관련이 있냐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건 운이 좋게도 마침 밑 작업을 해 둔 상태다.

‘숙부라면 알아낼 테지.’

우리의 뛰어나신 숙부 김무열 씨께서.

데스페라도의 암살 의뢰를 미국과 중국 중 어느 나라에서 했는지만 알아내면.

모든 게 명확해질 터.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시 생각하고. 우선 몸 상태부터 체크하자.’

생각을 정리하자 잊고 있었던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티아메트의 피’의 영향으로 특성 ‘오딘의 눈’에 사안(蛇眼)이 추가됩니다.]

[‘티아메트의 피’의 영향으로 현자의 돌에 귀속된 ‘옵시디언 태블릿’이 반응합니다.]

[현자의 돌의 특성에 용체화(龍體化)가 추가됩니다.]

‘사안? 용체화? 이게 다 뭐야?’

하나 눈에 들어온 메시지를 다 읽을 틈도 없이.

[창의적인 연금술로 신화적인 아이템을 복구하였습니다.]

[연성력이 10 상승합니다.]

[칭호 ‘연금술의 선구자’의 옵션이 성장합니다.]

[현자의 돌에 용신의 인자가 완벽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현자의 돌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스탯 용력이 연성력의 귀속 스탯으로 추가됩니다.]

또다시 메시지의 파도가 범람했다.

‘뭐가 어마어마하게 많구만.’

하나 방금 겪었던 환상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었기에.

시문은 바닥에서 일어나 차분히 몸을 살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네.’

어마어마했던 열기와 통증.

그것들이 줬던 악랄한 고통과 달리 몸 자체는 멀쩡했다.

시문은 가슴 정중앙을 내려다봤다.

“현자의 돌, 있어?”

-으으…… 살아는 있어…….

탈진감이 물씬 묻어 나오는 목소리.

실제로 가슴 중앙에 있는 현자의 돌은 열받은 기계처럼 따끈따끈했다.

-근데 어떻게 된 거야? 오빠 막 기절해서도 움찔움찔하던데. 악몽이라도 꿨어?

“기절? 아.”

기절한 상태였구나.

하나 아까 누군가에게 빙의된 떠올려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갔었다.

“그럼 넌 못 봤겠네?”

-응? 보긴 뭘?

“그게…… 아니다. 나중에 차차 설명해 줄게.”

-말하다 끊으니까 무척이나 불편하긴 한데, 오빠 말대로 나중에 듣는 게 좋겠어. 꼴에 신의 피라고, 안정시키느라 아주 진땀을 뺐거든.

메시지들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감을 잡은 시문이었기에.

“고생했어. 그래도 등급이 올랐으니까 기쁘네.”

시문은 가슴 중앙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헤헤! 그건 그래. 꼴에 신이라고 피 주제에 대단하긴 하더라. 강해진 느낌이 팍팍 들어!

“그렇지?”

-응. 근데 오빠는 괜찮아?

“나?”

고개를 갸웃하는 시문.

그는 가볍게 팔다리를 털며 몸을 슥 훑고는 답했다.

“음. 괜찮은 듯?”

-괜찮다고?

“어. 뭐…… 몸이 더 가벼워진 느낌이 들긴 해.”

실제로 두꺼운 옷으로 꽁꽁 싸매고 있다가 벗어 버린 느낌.

그 정도로 몸이 가볍고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그래? 신기하네. 우리 오빠가 아무리 잘났기로서니, 신의 인자를 동화시켰는데 페널티는커녕 가벼워…….

“응? 뭐라고?”

-아, 아니야! 좋으면 된 거지! 오빠, 나 엄청 피곤하거든? 좀만 잘게.

말끝을 흐리더니 아예 얼버무리는 현자의 돌.

그러나 녀석이 자신에게 독이 될 짓을 할 리는 없었기에.

“그래, 고생했어. 푹 쉬어.”

시문은 부드럽게 웃으며 녀석을 보내 주었다.

곧바로 숙면에 든 것일까?

뜨겁던 현자의 돌이 온도가 차츰 내려간다.

시문은 줄줄이 떠오른 메시지창들을 다시 읽어 나갔다.

‘이러면 용체화는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네.’

옵시디언 태블릿처럼 현자의 돌의 특성으로 추가된 용체화.

현자의 돌이 잠들어 버린 지금, 용체화를 확인하긴 어려웠다.

‘뭐, 굳이 급한 것도 아니니까.’

어깨를 으쓱한 시문은 곧바로.

“상태창.”

상태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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