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66화. 치료제 (4)
“오라버니?”
“형? 갑자기 왜 그래?”
“시문 님?”
이유정과 김시혁, 그리고 박진욱까지.
갑작스러운 시문의 경악에 의문을 표하며 다가왔다.
그러다 황금색의 마법진이 겹겹이 떠올라 있는 시문의 눈을 보곤 움직임을 멈췄다.
“형, 뭔가를 본 거구나?”
이미 시문의 방송을 놓치지 않고 시청하던 3인이다.
심지어 모두 다이아 이상에 버금가는 최상위 플레이어들.
저 황금색의 신묘한 눈이 특정의 무언가를 보는 능력이라는 것쯤은 진즉 눈치채고 있었다.
“맞아. 근데 이게…… 말이 안 되는 건데…….”
충격이 상당한지.
시문은 좀처럼 얼굴을 펴지 못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어째서 용력이 이모님의 몸에 있는 거지?’
오딘의 눈.
정확히는 사안에 비치는 용력.
마력의 자취가 거의 사라져 일반인과 다름없어진 이모님의 상태와 달리.
용력은 여전히 쉬지 않고 움직이며, 그 건재함을 표하고 있었으니까.
이로써 추측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하나는 이모님께서 자신처럼 용력 스탯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용력이 강제로 주입됐다는 건데…….’
시문의 예상은 당연히 후자였다.
왜냐하면.
“유정아.”
“으, 응?”
“이모님은 순수 전투계의 랭커셨지?”
“네. 엄마가 도후(刀后)로 불리신 건 오라버니도 잘 아시잖아요.”
“그래, 그러셨지.”
도후(刀后) 이영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1세대 랭커 중 1명이었으며, 후에 하이랭커를 가르는 척도인 강기를 자유롭게 다루는 플레이어.
아직까지 하이랭커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미 전투계 랭커들 사이에선 강기를 얼마나, 어떻게 다루느냐로 그 급이 나누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여기 있는 괴물 같은 두 동생.
김시혁과 이유정 역시 강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해, 랭커 중에서도 상위급으로 분류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영희는 아레나 활동 당시 단 한 번도.
‘용력을 사용한 적이 없으셨지.’
강기 이외에 다른 기운은 일절 사용한 적이 없었다.
순수 전투계라는 것은 그런 의미다.
기타 마력이나 마기, 성력 등을 섞어 전투계의 약점인 이능을 보완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순수 무력 하나만으로 경지를 이륙하는 이들.
고로 타 기운을 섞은 전투계보다 성장이 더딜지라도.
깨달음 한 번으로 랭크를 한 단계씩 건너뛰기에, 재능에 따라 실력 편차가 천차만별인 영역이었다.
그리고 도후 이영희는 그런 순수 전투계의 대표 주자.
당연히 용력과 같은 타 기운은 사용한 적도, 얻은 적도 없겠지.
그렇다면.
‘어디서 용력이 주입된 게 확실하단 말인데…….’
시문의 미간이 찌푸려지자, 불안하게 지켜보던 이유정이 다시 한번 물었다.
“오라버니,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
“아. 그게 말이지…….”
말끝을 흐리는 시문.
그도 그럴 것이.
몰랐다면 모를까.
용력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선뜻 치료제를 사용하기가 꺼려진 것이다.
자칫 어떤 충돌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잠깐 치료제 사용을 고려해 봐야겠어.”
“예? 갑자기요? 왜 그래요? 설명이라도 해 주세요.”
“맞아, 형. 치료제는 잘 완성됐다고 했잖아. 왜 그러는데?”
청천벽력 같은 말에 이유정은 애원하듯 물어 왔고.
김시혁 역시 마찬가지로 물었다.
“이모님의 몸에 타 기운이 깃들어 있어서, 자칫하다간 치료제와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어.”
“타 기운? 설마 마기나 성력 같은 걸 말하는 건가요?”
시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유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거라면 저 때문일 거예요. 제가 올 때마다 신성 마법을 걸어 드리거든요.”
“아니, 성력이 아니라서 하는 소리야.”
“네? 성력이 아니라고요?”
“그래. 이건 용력이야.”
“예에?!”
휘둥그레지는 이유정의 눈.
뒤에 있던 김시혁과 박진욱 역시 마찬가지였다.
“용력이라고?”
“시문 님, 용력이면 저희가 아는 그 용력이 맞습니까?”
“맞아요.”
시문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 사람의 얼굴이 일제히 어두워졌다.
다룰 수 있는 수단이 없으면 독에 불과한 타 기운.
그중에서도 용력은 지금까지 어떤 플레이어도 다룬 적이 없다는 걸.
저 위치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모를 수 없었으니까.
“미세한 양이긴 하지만, 그게 일정하게 이모님의 회로를 따라 흐르…….”
갑자기 뚝 끊어지는 시문의 답.
시문은 고개를 홱 돌려, 이영희를 바라봤고.
“잠깐. 설마!”
급히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시문의 행동은 갑작스러웠지만.
이유정은 잠자코 오라버니를 지켜봤다.
그녀가 아는 오라버니는 결코 이유 없는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닐뿐더러.
‘어차피 엄마를 살릴 수 있는 건 오라버니뿐이야.’
지난 7년 동안 부정적인 답만 듣던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긍정적인 해답을 제시해 준 이 아닌가.
그저 시문을 믿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 이유정의 믿음이 닿은 걸까.
“역시.”
오딘의 눈으로 이영희의 상태를 살핀 시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로역행. 이 질병의 원인은 용력 때문이었어.’
본디 용력이란 용족 중에서도 중급 용족 이상만 사용이 가능한 용족 고유의 기운.
당연히 인간의 몸으로는 버틸 수 없을뿐더러, 용족과 마력 회로의 구조조차 달랐다.
결국 그 반작용으로 인해 마력 회로를 역주행해 버리는 것이다.
‘멋대로 역행하는 용력을 제어하려고, 본래의 마력이 억지로 용력에 따라붙게 되는 거야.’
본래대로 흐르라고 말이다.
당연히 용력은 그런 마력의 손길을 뿌리칠 것이고.
자연스레 마력 회로는 전체적인 역행을 시작한다.
이게 시문이 본 회로역행의 원인이었다.
‘그리고 회로역행의 치료제는 그런 역행을 강제로 정순환을 시켜 버리지.’
그로 인해 제 의지대로 흐르지 못한 용력은 불만을 터뜨리며, 반발 작용을 일으키게 되고.
‘결국 마력 회로는 망가지게 된다.’
아무리 대단한 플레이어라도 이런 식으로 회로가 손상되면 되돌리기 힘들다.
심지어 회로역행을 앓는 동안.
지속적인 회로의 손상과 스탯 저하가 일어나니.
걸리자마자 회로역행의 치료제를 투여하지 않는 이상, 불구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력결손증. 이것도 뭔가 용력에 기반을 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아직 사안을 완벽하게 다루지 못해서일까?
회로역행보다 경미한 아레나 질병인 마력결손증에 대해선 제대로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우선은 이걸로도 충분해.’
원하는 답은 다 얻었기에.
시문은 진중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이어.
“유정아.”
“네, 오라버니.”
긴장을 한 탓인지.
슬쩍 목소리가 떨리는 이유정을 바라봤다.
“잘하면 후유증 없이 이모님을 치료할 수 있겠다.”
“저, 정말이요?!”
* * *
‘조금만…… 조금만 더…….’
앙상하게 마른 새끼손가락.
검성 김시혁이 신중히 베어 낸 그 작은 한 치의 상처 앞에서.
시문은 식은땀을 흘리며 양손을 모으고 있었다.
사실 치료 방법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회로역행에 근원인 용력.
그것을 체외로 빼내 버리면 그뿐이었으니까.
단지.
‘여기로, 여기로 오라고!’
미량의 용력이거늘.
사안을 활성화한 시문으로서도.
마력 회로를 신나게 역행하는 용력을 다스리기란 버거웠다.
사실 용력을 배출시키는 건 그리 어렵진 않았다.
사안의 강제력으로 뽑아내면 되니까.
단지 그렇게 용력을 배출시켰을 때.
이미 약할 대로 약해진 환자의 마력 회로에 손상이 간다는 것이다.
고로.
‘자, 얘들아 착하지? 제발 좀 와라!’
시문은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신중과 인내를 더하며 용력을 인도했다.
다행히도.
-됐다! 오빠, 이제 70% 가까이 배출시켰어!
진행이 더뎌서 그렇지.
용력은 시문의 인도하에 착실히 움직였다.
파스스.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시문.
시문의 손아귀에선 그간 꼬셔서 배출시킨 용력들이 미세한 아지랑이를 피우고 있었다.
“오라버니, 지치시면 언제든 신호 주세요. 바로 신성 마법을 걸어 드릴게요!”
곁에 있던 이유정은 점차 크기가 부푸는 아지랑이를 보며 힘찬 응원을 보냈다.
그러나 시문은 슬쩍 웃을 뿐.
랭커의 신성 마법을 바라진 않았다.
이유야 간단했다.
[사안과 용력을 극도로 제어하고 있습니다.]
[용체화가 미세하게 성장합니다.]
[사안이 미세하게 성장합니다.]
인고의 용력 제어.
그로 인해 관련 능력인 용체화와 사안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용력 제어의 베이스가 되는 사안이 성장하니.
용력을 제어하는 지구력도 자연스레 늘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수단으로 체력을 회복시켜 버리면 수련의 효과가 사라질 터.
‘내 정신력이 갈려 나가서 그렇지, 수련 효율은 미쳤어.’
그야말로 물고 물리는 무한 동력.
전생의 온갖 스탯 수련법을 알고 있는 시문으로서도 기가 차는 상황이었다.
‘특히 스탯이 아니라 능력의 성장은 진짜 쉽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날려 버릴 순 없었기에.
‘집중하자, 집중!’
시문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이를 악물며, 용력 배출의 작업을 지속했다.
얼마 가지 않아.
-오빠, 다 됐어!
현자의 돌의 당찬 목소리와 함께.
“흐아…….”
용력을 완전히 배출시킨 시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물론 용력을 제어하는 집중력은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용력은 따로 사용처가 있었으니까.
그때.
화아아.
따스한 온기를 담은 빛무리가 시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몸이 절로 가벼워지는 느낌에 시문은 고개를 들었다.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눈치를 보던 이유정이 신성 마법을 걸어 준 것이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김시혁과 박진욱 역시 한 걸음 다가왔다.
“형, 괜찮아?”
“시문 님, 괜찮으십니까?”
시문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주었다.
“역시 랭커의 신성 마법이라 그런지 효과가 장난이 아니네.”
너스레를 떨며 몸을 일으키는 시문.
여전히 그의 두 손엔 압축된 아지랑이, 용력이 모여 있는 상태였고.
“형, 이제 그거 어쩔 거야?”
“어쩌긴! 오라버니, 그거 당장 소멸시켜 버리죠.”
어머니를 오랜 시간 괴롭혀 온 원흉이기 때문일까.
이유정은 환하게 응축된 성력을 쥐며, 용력을 노려보았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그에 고개를 저은 시문은 용력을 자신의 가슴께로 가져다 댔다.
“오, 오라버니?”
“형!”
“시문 님!”
곁에 있던 3인이 깜짝 놀란다.
하나 그들이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해.
스륵.
눈이 녹듯 자연스레, 용력은 시문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고수준의 용력을 흡수하였습니다.]
[용력이 2 증가합니다.]
[연성력의 귀속 스탯으로 치환되어 연성력이 1 상승합니다.]
눈앞으로 이어지는 메시지창.
그에 시문은 눈을 반짝였다.
‘예상대로 별 충돌 없이 흡수되네.’
-당연하지. 오빠도 알다시피 우리가 얻은 용력은 무려 용신의 용력이잖아.
현자의 돌은 신이 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용족 새끼들이 위계질서는 철저하잖아. 애당초 종족 기운부터가 이따구라 그래. 격 높으면 꼼짝을 못하거든.
이영희에게서 용력 추출을 시작할 때부터.
시문과 현자의 돌은 이미 해당 용력을 흡수하기로 이야기해 둔 상태였다.
용족 중 최고 격인 용신 티아메트의 힘을 얻은 시문.
당연히 그 어떤 용력이라도 시문에겐 약이 되어 적용할 테니 말이다.
‘근데 이렇게 미세한 기운인데도 고수준이라 그런가? 용력이 2나 증가하네.’
-그러게.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나 했더니, 엄청난 고위 용족의 용력이라 그런 거구만!
넌더리를 내는 현자의 돌에 시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사안은 최상급 용족인 나가조차 움찔하게 만드는 격을 지니고 있었다.
한데도 자신의 제어를 이토록 미세한 양으로 저항하는 용력이라면.
‘최소 드래곤, 어쩌면 용제급의 용력일 수도 있겠어.’
뭐라 형용할 수는 없지만.
시문은 방금 흡수한 용력이 보통 격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하나.
“오라버니,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형, 혹시 모르니까 지금 바로 검사라도 받아 보자. 응?”
“그게 좋겠습니다, 시문 님.”
이런 시문의 사정을 모르는 세 사람은 연신 불안감을 표했다.
그에 시문이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담으려던 순간.
“으음…….”
모두를 침묵시키는 신음이 들려왔다.
이유정은 삐걱거리는 고개를 힘겹게 돌렸고.
“아…….”
퀭하지만 온화한 눈동자를 마주하곤.
“어, 엄마아아!”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