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71화 (71/349)

제71화

71화. 특수 아레나 자연의 몰락 (2)

어두운 공터.

유일하게 빛이 내리쬐는 중앙엔 한 여성이 주저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속박되어 있다고 해야겠지.

듬성듬성 파충류의 비늘이 덮인 덩굴에 휘감긴 미모의 여성은 힘겹게 눈을 떴다.

그녀의 시야엔 그녀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 덩굴처럼.

곳곳에 파충류의 비늘이 덮인 거대한 나무뿌리들이 보였다.

‘어버이께서도 이제 한계이신가…….’

제아무리 존귀하신 어버이라 할지라도.

이 지독한 부패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보통 존재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꾸드득.

“으으…….”

비명조차 힘겹다.

점차 몸을 옥죄어 오는 넝쿨에 미모의 여성은 점차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이젠 정말 한계였다.

“어버이시여…… 부족한 저를 용서하소서…….”

나지막한 읊조림과 함께.

축 늘어지는 여성.

그런 여성의 하얀 피부 위로.

파스스스.

파충류의 비늘이 오소소 돋아났다.

* * *

“크긴 어마어마하게 크네.”

고개를 직각으로 꺾어야 보일 정도로 거대한 나무.

그마저도 일부분일 뿐.

전체는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정말 지독하군. 몰락의 원인은 따로 찾아볼 필요도 없겠어.’

앙상하게 마르다 못해, 괴상한 비늘과 종양들이 득실거리는 거목.

특히나 오딘의 눈을 활성화하지 않았음에도.

세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쾌한 기운은 일대를 몰락시킨 원인이 자신이라는 걸 대놓고 광고하고 있었다.

앙상한 세계수를 유심히 보던 시문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이걸 어떻게 처리하지?”

커도 너무 크다.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구름을 꿰뚫을 정도로 높은 나무를 어떻게 제거한단 말인가?

‘아스트라페를 업적 포인트 없이 난사한다 해도, 하루는 족히 걸리겠는데.’

아니면 나무이니 불과 관련된 다른 신화급 무구를 찾아봐야겠지.

이리저리 고민하던 그때.

-세계수 본체를 작살 내겠다는 오빠의 터프함은 마음에 드는데. 굳이 이거 전체를 없애 버릴 필욘 없어.

가슴 정중앙에서 이명이 들려왔다.

현자의 돌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세계수는 본체와 영체가 따로 있거든. 뭐랄까, 몸과 영혼의 관계랄까? 물론 진짜는 영체고.

‘그러니까 눈앞에 이 거대한 나무는 본체, 즉 일종의 껍데기다?’

-정확해. 그렇다고 본체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냐. 저게 있어야 세계수도 제대로 힘을 쓸 수 있거든.

현자의 돌은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영체만 있다면 언제든지 이런 본체를 만들어 낼 수 있어.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지.

‘아아. 이해했어.’

영체만 존재하면 껍데기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러한 형태는 몬스터들도 제법 많았으니까.

‘그럼 껍데기를 제거해 봐야 의미가 없으니, 영체를 처리해야겠네?’

그게 이 몰락의 원인일 테니까.

-맞아. 그리고 영체는 대대로…… 하이엘프들이 맡고 있지.

‘하이엘프?’

하이엘프.

엘프 중에서도 극소수로 나타나는 엘프들.

전생에서 다양한 이종족들을 만나고, 엘프들 역시 만나 본 적이 있는 시문이었지만.

하이엘프만큼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하이엘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거 아니었어?’

하이엘프는 아예 존재하질 않았으니까.

실제로 이는 전생에서 만났던 엘프들이 본인들의 입으로 직접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하이엘프가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다.

라고 말이다.

-그렇기는 한데, 여긴 아레나잖아. 세계수의 상태를 보아하니 이 안에 있는 게 분명해.

‘여기에 하이엘프가 있다고?’

시문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자, 현자의 돌은 긍정을 표했다.

-응. 저걸 봐. 본체가 열심히 활동 중이잖아. 영체가 없으면 저런 건 불가능해. 당연히 영체를 관리하는 하이엘프도 있는 거지.

그 말에 시문은 눈앞의 거목을 바라봤다.

크기에 걸맞은 기운을 내뿜는 거목.

비록 그게 부패와 사기이긴 했으나, 분명 세계수가 직접 뿜어내고 있는 기운이었다.

세계수를 보던 시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잠깐. 그럼 아직 저 세계수가 살아 있다는 거잖아?’

앙상하고 썩어버린 거목.

사람으로 따지면 시체와 다름없는 몰골인데.

세계수는 꾸준히 주변을 부패시키고 있다.

이는 언데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지 않은가?

-응. 역겨우면서도 영악한 방법이지. 자연을 다루는 힘을 타락시켜, 역으로 일대를 더럽히고 있으니.

‘하…… 지독하네.’

사실 세계수에 대해선 회귀자인 시문도 잘 알지 못했다.

하이엘프와 마찬가지로.

세계수 역시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생의 엘프들이 말했었으니까.

졸지에 세계수의 비사를 알게 된 시문은 걸음을 옮겼다.

‘그럼 이 안의 영체를 처리하면 이 몰락의 근원도 제거되겠네?’

-맞아. 근데 괜찮으려나? 이런 짓을 할 놈이면 중요한 영체를 그냥 두진 않았을 텐데.

‘그거야 크게 문제되진 않아.’

어차피 특수 아레나라 해도 제한 랭크는 골드.

이미 플래티넘 중에서도 상위권을 구가하는 시문에게 문제될 난도는 아니었으니까.

저벅.

울퉁불퉁 솟아난 세계수의 뿌리.

그 사이로 들어서자, 불쾌하고 지독한 기운이 한결 더 짙어졌다.

‘이거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쉬겠어.’

최소 골드 상위권.

또는 제법 실력 있는 힐러의 보조 마법의 도움이 없다면 들어서는 것조차 부담이 될 정도로.

세계수 내부의 사기는 지독했다.

시문은 연성력을 운용하며 세계수의 내부를 거닐었다.

얼마 가지 않아.

“여기구나.”

시문은 불쾌한 기운의 중심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넓은 공터.

사방이 세계수의 뒤틀린 뿌리로 메워진 이곳은 흡사 오래된 감옥을 연상시켰다.

그곳의 중앙.

동굴과도 같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빛이 스며드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시문.

이유야 간단했다.

‘저자가 하이엘프겠지.’

뾰족한 귀와 빛바랜 머리칼, 입 아래만 보이는데도 절로 느껴지는 미모까지.

틀림없이 전생에 봤던 엘프의 외형 그대로였다.

다만.

‘덩굴에 묶여 있네?’

자연과의 친화력이 상당한 엘프가 덩굴에 구속되어 있다는 건.

꽤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때.

스륵.

죄수처럼 푹 숙이고 있던 엘프의 머리가 들린다.

“저건!”

그녀의 얼굴을 본 시문의 눈이 부릅떠진다.

엘프 특유의 사람 같지 않은 미모 때문이 아니었다.

‘비늘이 왜 하이엘프에게?’

파층류 특유의 비늘.

그것이 하이엘프의 아름다운 얼굴 절반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한쪽 눈동자 역시 파충류의 눈처럼 길게 찢어진 동공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내.

키이잉.

‘그렇군.’

오딘의 눈을 활성화한 시문은 볼 수 있었다.

‘이 사태의 주범이 한 짓인가?’

하이엘프의 반신을 뒤덮은 검녹색 비늘에서 부패한 숲과 똑같은 기운이 느껴진다는 걸.

그리고.

‘이건 용족의 짓이야.’

그 기운의 근원은 용력이라는 걸 말이다.

“침입자…….”

나지막이 울리는 목소리.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목소리에 취할 틈도 없이.

용체화(龍體化).

우드득.

곧장 용체화를 활성화한 시문은 용력을 한껏 끌어올리며, 변화된 오른팔을 내질렀다.

콰아앙!

강렬한 폭음을 실은 충격이 오른팔을 타고 묵직하게 전해져 온다.

시문은 이미 용력이 타고 흐르는 회로에 마기를 더했다.

그러자.

파파팟.

코카트리스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하이엘프의 연격을 물 흐르듯 흘려 버렸다.

우월한 육체 용체화와 신공절학 천마신공이 만들어 낸 절경이었다.

그런 현실과 별개로.

‘역시 엘프는 엘프구나. 움직임이 장난이 아니네.’

시문은 속으로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본디 엘프라는 종족 자체가 이종족 중 상위종으로 분류될 정도로 우월했지만.

눈앞의 여성은 하이엘프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종의 기술이 담긴 공세를 쏟아 냈다.

하나.

‘투로가 너무 단순해.’

시문은 무척이나 여유롭게 억수 같은 공격 속을 거닐었다.

이는 단순히 압도적인 스펙과 천마신공, 용체화에서 나오는 여유만은 아니었다.

‘아마 제정신이 아닌 탓이겠지.’

이지를 상실한 하이엘프.

오로지 본능적인 공격만을 해 왔기에, 손쉽게 피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대로 틈을 보다 섬멸포로 마무리 해 버리면 끝이겠군.’

세계수의 영체를 담은 하이엘프를 처리하면.

특수 아레나의 목표인 몰락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겠지.

“쉽네.”

스펙이 높아져서일까?

이번 특수 아레나는 특수라는 이름이 아까울 정도로 쉬웠다.

우웅.

코웃음을 친 시문이 마기를 응집하던 그때.

‘잠깐.’

섬멸포를 뻗어 내려던 시문이 멈칫했다.

그 틈을 노리고 하이엘프의 다리가 파고들었으나.

손쉽게 피해 낸 시문은 곧장 거리를 벌렸다.

-뭐야? 이 형 갑자기 왜 뺌?

-엘프 누님이 즉사기 같은 거 쓰려고 하나?

-전혀 아닌데. 걍 뺀 거 같음.

시문의 시선이 초점 없는 하이엘프의 눈을 향한다.

그리고 떠오르는 한 가지 의문.

‘꼭 하이엘프를 죽여야만 하나?’

분명 이번 특수 아레나의 목표는 ‘몰락의 원인 제거’다.

자연을 몰락시킨 타락한 세계수의 영체.

따라서 그것을 지닌 하이엘프의 죽음이 가장 보편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실제로 이렇게 대놓고 공격을 가해 오지 않는가?

하지만.

‘하이엘프를 살리고, 타락한 세계수의 영체만 죽인다면?’

아니지.

더 나아가서.

‘하이엘프를 살리고, 타락한 세계수의 영체도 살려 버린다면?’

결국 몰락의 ‘원인이 제거’되는 것은 같은 결과 아니던가.

그런 시문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오빠. 정말 참신한 생각이지만, 타락한 세계수를 구하는 건 불가능해.

현자의 돌이 먼저 말을 걸어 왔다.

‘어째서?’

-세계수는 격만 놓고 보면 성좌와 맞먹는 수준이라, 치유 관련 성좌가 직접 강림하지 않는 이상 힘들어.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게 뭔데?’

-XXXX의 서. 그거만 있다면 가능하긴 해.

중간에 필터링이 들어가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으나.

‘날 회귀시켜 준 물건 말하는 거지?’

시문은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맞아. 크로노스의 모래시계보다 상위인 신물이라, 그거라면 가능은 해.

‘결국 불가능하다는 거네.’

당시 현자의 돌의 근원이던 엘릭서를 소모함과 더불어.

녀석이 불안정한 상태가 될 정도로 무리해서 연성한 물건이다.

다시 엘릭서를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을 회귀시킨 물건을 당장 연성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럼 하이엘프만 살릴 수밖에 없나.’

-그것도 큰 문제가 있어.

현자의 돌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하이엘프는 본디 세계수와 영혼을 공유한 동반자거든. 오빠가 타락한 세계수의 영체만 뜯어낸다 해도…….

‘하이엘프는 오래 살지 못할 거다?’

-응. 육체도 타락이 잠식했으니, 아마 한 시간도 못 버틸 거야.

골치 아프군.

이마를 슬쩍 짚은 시문은 머리로 날아드는 하이엘프의 돌려차기를 피했다.

후웅.

위협적인 파공음이 귓가를 스친다.

시문은 아쉬운 얼굴로 돌기둥 몇 개를 연성하며, 하이엘프와의 거리를 벌렸다.

“결국 죽일 수밖에 없나?”

이대로 끝내 버리기엔 뭔가 아쉬운데.

망설이던 주먹을 움켜쥔 시문이 다시 마기를 활성화하던 그때.

“잠깐.”

눈을 번뜩인 시문은 급히 하이엘프의 품으로 파고들어.

뻐억!

그녀의 명치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다행히 천마신공의 초식을 펼칠 정도로 모은 마기는 아니었기에.

“…….”

하이엘프는 비명 없이 허공을 날았다.

시문은 손가락을 튕겨, 주변 바닥을 연성해 흙사슬로 그녀를 꽁꽁 묶고는 물었다.

‘세계수의 영체. 그거 내가 만들면 안 돼?’

-오빠, 혹시 몇만 년 전에 사라진 세계수의 씨앗이라도 있어?

‘없지만 만들면 되잖아.’

-그게 무슨…… 어, 어라?

의아한 목소리를 내는 현자의 돌.

그도 그럴 것이.

-그러고 보니 이번 아레나의 입장 아이템이?!

‘그래. 망가진 세계수의 씨앗 조각이잖아.’

망가진 세계수의 씨앗 조각.

비록 이름처럼 망가진 씨앗 조각이긴 했어도.

씨앗의 구조는 이미 훤히 꿰뚫어 놓은 상태.

‘어때?’

-……비록 조각이라 나눠서 연성해야겠지만, 하이엘프를 살릴 수는 있겠어.

‘그걸로 충분해.’

저번 특수 아레나에서 마르넬 건으로 느낀 건데.

당장 이번 아레나의 보스 격으로 보이는 하이엘프만 살려 놔도.

클리어 보상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근데 타락한 세계수의 영체는 어떻게 분리하게?

‘그건 생각해 둔 게 있어.’

시문은 작게 미소를 머금으며.

드드득.

어느새 두툼한 흙사슬을 모조리 끊어 버린 하이엘프를 바라봤다.

“침입자…… 처리…….”

고저 없는 목소리.

동시에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그녀를 향해.

사안에 용력을 최대치로 불어넣은 시문이 힘주어 말했다.

“멈. 춰. 라.”

그러자.

뚝.

코앞까지 파고들던 하이엘프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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