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106화 (106/349)

제106화

106화. 편대사령관 베르파크 (2)

멈춰 버린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일렁이는 대기를 휘감은 말벌 인간과 타오르는 검을 든 미남자의 대치가 이어진다.

정확히는.

부…… 우…… 웅…….

둘 모두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야겠지.

특히나 일렁이는 대기를 휘감으며 돌진하는 말벌 인간의 속도는 느린 세상 속에서도.

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느린 세상의 주인.

레바테인을 휘두르는 시문은 베르파크에 비하면 그리 빠른 속도가 아니었으나.

화르르르.

레바테인에 휘감긴 불길 덕에 지척까지 도달한 베르파크에게 선공을 먹일 수 있었고.

[이 무슨!]

레바테인의 불길에 기겁한 베르파크가 몸을 비틀며 경악을 내뱉음으로써.

……우우웅!

느려졌던 세계는 다시 본래의 속도를 되찾았다.

‘와…… 이거 미쳤는데?’

본래의 시간으로 되돌아온 시문.

그는 놀란 눈으로 머리에 달린 황금색 날개를 매만졌다.

이내.

“타올라라.”

화르르르.

불길을 떨쳐 내는 베르파크에게 한 줄기 불꽃을 더 선사하고는.

헤르메스의 모자의 정보창을 빠르게 살폈다.

[페타소스]

등급 – 신화 (40%)

성좌 헤르메스의 모자.

착용자에게 통찰력과 하늘을 나는 능력을 선사해 준다.

신발 탈라리아와 함께 착용하면 능력이 배가 된다.

“역시…….”

육성으로 흘러나오는 감탄.

그도 그럴 것이.

‘등급이 신화였구나.’

이제껏 시문이 연성해 왔던 신화급 무구들.

그 모든 등급은 ‘모조품(%)’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하나 헤르메스의 후원으로 연성한 이 페타소스는 어떠한가?

비록 1회이긴 해도.

명백한 신화급의 무구로 연성이 되었다.

시문은 급히 신발의 정보창도 살폈다.

[탈라리아]

등급 – 모조품 (40%)

성좌 헤르메스의 신발.

하늘을 날 수 있다지만, 어째서인지 제힘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모자 페타소스와 함께 착용하면 능력이 배가 된다.

페타소스와 비슷하지만 다른 정보창.

시문은 두 무구의 차이를 단박에 파악했다.

‘모조품이 아닌 신화급 등급이 표기되면, 무구의 옵션이 더 생기나 보군.’

실제로 두 등급 모두 40%로 똑같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으나.

옵션에서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모조품 탈라리아의 경우, 하늘을 나는 능력만을 주었고.

신화급 표기인 페타소스는 같은 옵션에 ‘통찰력’까지 선사해 주었다.

‘아마 아까 갑자기 느려진 건, 저 통찰력 옵션 때문이겠지. 오딘의 눈도 비슷한 능력이 있으니.’

하나 등급의 유무 때문인지.

아니면 신발 탈라리아와 연계되어 배로 증가한 능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느리게 보이는 능력 자체는 페타소스가 오딘의 눈보다 한 수 더 위야.’

세상이 느리게 보이는 능력 자체는 페타소스가 더 높았다.

이로써 추정할 수 있는 건 하나.

‘모조품의 완성도를 다 채우면 신화급 아이템으로 바뀌겠군.’

모조품 100%가 되면 신화급 등급으로 바뀐다는 것.

동시에 지금의 페타소스처럼 특정한 옵션이 붙겠지.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옵션이 따로 생기는 걸 봐선 확실해.’

긍정적인 확신을 내린 시문은.

[미무우울!!]

분노에 찬 함성이 들려오는 뒤편을 향해 레바테인을 휘둘렀다.

화르륵.

이글거리는 불꽃이 궤적을 이룬다.

그러나.

[이따위 것!]

솨아아아.

어마어마한 돌진 중에도 입에서 암청색의 독액을 뿜어내는 베르파크.

치이이이!

레바테인의 불길과 독액이 맞닿으며 짙은 녹색의 연무가 피어오른다.

어지간한 플래티넘의 탱커들도 기겁할 만한 독무였지만.

‘많이도 뱉었네.’

베스파의 신체조직과 용체화.

그리고 레바테인의 불길을 휘감은 시문에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그걸 베르파크도 아는 것일까?

[캬아악!]

놈은 시문에게 타격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빙빙 돌며, 독액을 내뱉는 것에만 집중했다.

시문은 놈의 심중을 어렵지 않게 읽어 낼 수 있었다.

‘시야를 가리려는 건가.’

본래도 색이 어두운 암청색의 독이다.

레바테인과 만나 자욱한 독무를 만들어 내는 암청색의 독액은.

사아아아.

장마철의 우중충한 먹구름처럼 순식간에 푸른 하늘을 뒤덮었다.

이미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날아드는 독액.

슬슬 시문도 따끔할 정도로 축적된 독무를 보며.

‘그렇군.’

시문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각뿐만이 아니야. 독무로 내 모든 감각을 차단하려는 거야.’

대상자가 시문이라 그렇지.

이만큼 축적된 독무라면 다이아급 플레이어들도 제법 어지러울 수준이다.

애당초 편대사령관 베르파크는 같은 최상위종인 왕자 엔츠도 손쉽게 요리한 히든 보스니까.

‘슬슬 덤비려나?’

몇 분간 끊이지 않고 쏟아지던 독액의 세례가 드디어 멈춘다.

실제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태였으나.

시문의 입가엔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그에겐 이런 상황에 딱 적합한 능력이 있었으니까.

키이잉.

희미한 이명과 함께 시문의 왼쪽 눈으로 펼쳐지는 황금빛.

오딘의 눈은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던 독무 속을 훤히 보이게 해 주었고.

‘저기로군.’

시문은 손쉽게 베르파크의 위치를 포착할 수 있었다.

스윽.

제트기를 방불케 했던 소리는 온데간데없다.

베르파크는 날갯짓 소리마저 최대한으로 줄인 채.

독무 외곽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빈틈을 찾는 건가? 자신만만하던 아까와는 영 다른 행동이군.’

날카롭게 찢어진 베르파크의 눈알.

그 안으로 촘촘히 박힌 곤충 특유의 겹눈은 신중함을 담고 있었다.

‘섣불리 공격해 오진 않겠는데. 이러면 내 쪽에서 먼저 빈틈을…….’

그에 시문이 적당히 빈틈을 노출해 주려던 그때.

‘음?’

여유롭던 시문의 입가가 꿈틀했다.

시문은 미간을 찌푸리며.

키이잉.

정확히는 오딘의 눈을 더욱 활성화하며, 베르파크를 노려봤다.

‘저건…….’

익숙한 형태의 기운.

세계수와 하이엘프 에르넨을 타락시켰을 때와 다른 색감이긴 했으나.

이 익숙한 형태의 기운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용력? 저게 왜 여기에!’

용력.

요사스러운 검분홍의 용력이 베르파크의 심장으로 보이는 위치에서 포착된 것이다.

그것도 꽤 격이 높아 보이는 용력이었다.

‘같은 최상위종인 왕자 엔츠도 압도하고 히든 보스급이 된 이유가 저거였나.’

여왕을 중심으로.

용족만큼이나 계급과 그 힘의 서열이 철저한 것이 인섹터다.

아무리 전투력이 뛰어난 종인 베스파라 해도.

최상위종인 왕자 엔츠를 어떻게 탈태도 없이 몰아붙이나 했더니.

저 검분홍의 용력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를 증명하듯.

[용제의 흔적을 발견한 성좌 검은 염소가 눈을 부릅뜹니다.]

[성좌 제우스, 천마가 미간을 찌푸립니다.]

[성좌 오딘이 불쾌감을 토하며, 타 성좌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시문을 주시하던 네 명의 성좌들이 불쾌감을 표했다.

이내.

[네 명의 성좌들이 당신에게 미션을 겁니다.]

한줄기의 메시지창이 눈으로 떠올랐다.

시문은 즉시 미션을 확인했다.

[미션]

-상위 서열의 네 성좌들은 차원 인섹티아에 있는 4용제의 흔적을 무척이나 불쾌히 여깁니다.

히든 보스 ‘편대사령관 베르파크’를 처리하고, 그의 용력을 회수하십시오.

보상 : 업적 포인트 5,000

‘호오?’

시문의 눈이 슬쩍 커진다.

거저 주는 미션인 것도 있지만, 미션의 내용에 적힌 한 단어 때문이었다.

‘4용제라?’

용제가 여럿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

그중 세계수를 타락시킨 것이 5용제 니드호그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나 4용제의 정보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는데.

‘저 검분홍의 용력이 4용제의 용력이란 말이지?’

단순 보상만이 아니라.

주적인 용제의 정보까지 얻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바로 처리해야겠군.’

스륵.

레바테인을 쥔 시문의 어깨가 미세하게 내려간다.

전투의 긴장감을 계속 팽팽하게 지속할 수는 없다.

라는 상식을 알려 주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고.

부아아앙!

베르파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날아들었다.

[역시 미물답구나!]

환희에 찬 그의 이명이 뒤에서 들려온다.

시문은 급히 몸을 돌렸다.

어깨의 긴장을 잠시 풀었던 탓일까?

돌아가는 시문의 고개에 비해, 쥐고 있던 레바테인은 한발 느리게 움직였고.

[크하핫! 잘 가라! 미물!]

그에 신이 난 베르파크는 독액이 뚝뚝 떨어지는 손톱을 내질렀다.

그 탓에 베르파크는 보지 못했다.

고개를 돌린 시문의 슬쩍 올라간 입꼬리와.

쩌억.

세로로 길게 갈라지는 왼쪽 동공을.

[무…….]

그 섬뜩한 동공이 촘촘히 박힌 베르파크의 겹눈에 포착되자.

움찔.

날아들던 베르파크의 움직임은 순간적으로 경직되었고.

시문은 뒤로 돌던 원심력에 그대로 몸을 맡겨, 베르파크의 일격을 피해 냈다.

이윽고.

“타올라라.”

화륵.

지속적인 사용으로 소멸을 앞둔 레바테인이 마지막 불꽃을 지폈고.

“레바테인.”

서걱.

이글거리는 검이 경직된 베르파크의 반신을 갈랐다.

* * *

“미쳤군.”

단출한 한 마디.

그러나 굵직하고 남자다운, 그리고 위엄 있는 목소리는 단출한 한 마디를 더도 없는 감탄사로 만들었다.

실제로 더도 없는 감탄사이기도 했다.

“저게 골드란 말인가?”

잘빠진 각진 턱에 구레나룻까지 이어져 수컷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수염.

그리고 뚜렷하면서도 강렬한 이목구비까지.

누가 봐도 거친 수컷 그 자체인 이 남자의 ‘미쳤군.’이란 말은.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이젠 플래티넘이죠, 데릭. 저 아레나는 승급전이라고요.”

그에 금발의 젊은 미남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그렇군. 플래티넘이라…….”

톡, 톡.

의자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데릭.

그는 불길에 휩싸여 추락하는 베르파크의 두 육신까지 보고서야 말을 이었다.

“하나 그마저도 부족하다. 내 눈엔 당장 다이아 랭크로 편입시켜도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군.”

“예?!”

그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금발의 미남자.

아메리칸드림의 최고 유망주 중 하나인 앤드류 번스가 뭐라 말을 잇기도 전에.

“데, 데릭! 그게 무슨 말이야!”

옆에서 격렬한 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년의 흑인 남성.

아메리칸드림의 부길드 마스터 콜린이었다.

“다이아 랭크라니? 저 아시안이 강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너무 오버스러운 발언 아닌가?”

여유로웠던 평소와 달리.

콜린의 목소리는 미세하게나마 떨리고 있었다.

아메리칸드림의 길드 마스터인 데릭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데릭이 저깟 아시안 따위에게 눈독을 들일 줄이야…….’

현재 세 사람이 보고 있는 방송.

그 방송의 주인인 한국의 플레이어 김시문 때문이었다.

“오버라…….”

오버란 단어를 곱씹는 데릭.

그의 성격상 비꼬려고 곱씹는 것이 아닌.

자신의 판단이 정말 오버인지를 객관적으로 고민하는 것이었지만.

콜린은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내.

“아니, 오버가 아니다, 콜린.”

데릭의 강직한 턱이 좌우로 움직였다.

“기본적인 스펙도 말이 안 되지만, 그건 검성 길드의 성장 버프 때문이라 쳐도…….”

데릭은 추락하는 베르파크의 사체를 내려다보는 흑발의 미남자.

김시문을 가리켰다.

“마법인지 아이템인지 모를 저 화염검부터 황금색 눈과 날개, 그리고 보고서의 뇌창과 기타 등등의 능력.”

데릭의 강직한 푸른 눈이 화면 속의 시문을 철저히 해체한다.

세계 2강 길드 중 하나인 아메리칸드림을 이끈 사내인 만큼.

“거기에다 첫 전투부터 히든 보스의 페이즈에 맞춘 능력 배분까지, 하나하나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부분이 대단하다.”

방송으로 보았던 시문의 활약을 완벽히 해석했다.

부길마 콜린의 눈이 슬쩍 구른다.

“저, 저자가 그 정도야?”

“이건 콜린, 자네로선 알 수 없는 부분이네. 앤드류 역시 마찬가지겠지.”

그 말은 즉.

데릭급의 랭커가 아니고서야, 시문의 활약상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뜻.

“저기요, 데릭?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거든요?”

앤드류의 잘빠진 입술이 삐쭉 튀어나온다.

“뭐…… 페이즈에 맞춘 능력 배분까진 몰랐지만.”

“거기까지만 알아도 충분하다, 앤드류. 자네는 올라갈 일만 남은 젊은이니까.”

그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데릭.

“한데…….”

그런 그의 입가의 미소가 사라진다.

“콜린, 저런 인물을 지금까지 그냥 놔뒀다고?”

“그, 그게 말이야…….”

데릭의 물음에 당황스러워하며 말을 더듬는 콜린.

“뭐, 어느 정도는 이해하네. 자네가 부길마에 오른 건 랭크 때문이 아니니까.”

데릭의 말에 콜린의 얼굴이 붉어진다.

“내가 볼 때 김시문은 다이아도 노려 볼 만한 실력자야. 플래티넘인 자네가 알아보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겠지.”

그것도 생산계라면 더더욱.

그렇게 읊조리는 데릭에 콜린의 시선은 바닥까지 처박혔다.

“그래도 실무를 비롯한 뛰어난 안목 때문에 부길마에 앉힌 것이건만…… 이번 판단은 조금 아쉽군.”

“……미안해, 데릭. 내 판단 미스였어.”

데릭이 말끝을 흐리자,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답하는 콜린.

그에 데릭은 앤드류를 힐끔했고.

앤드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브로, 그렇다고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어.”

데릭의 크고 강직한 손이 콜린의 어깨를 두드린다.

“데릭…….”

“자넨 아메리칸드림의 부길마 아닌가. 그런 것보단 당장 현실에 집중하자고. 아직 기회는 있잖아?”

그는 미국의 수많은 팬들을 양성한 시원한 미소로 말했고.

“무, 물론이지! 이미 정보부에 김시문의 소속에 대해 조사 중인 상태야.”

“콜린, 설령 소속이 있더라도 데려와야 하네.”

“그럼! 당장 미팅부터 잡을게! 일단 달러 100만 단위로 후원부터…….”

그렇게 허겁지겁 후원 메시지를 준비하는 콜린을 보며.

‘다행히 그놈의 아시안 소리도 쏙 들어갔네.’

앤드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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