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113화 (113/349)

제113화

113화. 플래티넘 랭크 데뷔전 (1)

어두컴컴한 잿빛의 하늘.

[플래티넘 랭크 데뷔전을 시작합니다.]

[이번 데뷔전의 종목은 서바이벌이고, 참가 인원은 516명입니다.]

[지역은 차원 혼돈계의 ‘탐식의 몰락지’입니다.]

[차원 혼돈계는 천계와 마계의 유일한 접경지로 위험이 가득한 곳입니다. 다른 플레이어를 모두 처치하세요.]

그곳으로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와 함께.

하늘의 빛깔과 동일하게 무채색의 황폐한 대지가 듬성듬성 자리했다.

황량한 일대를 슥 훑은 시문의 시선은 그리 좋지 못했다.

크고 작은 군도들을 모아 두고.

바닷물만 싹 빼 버린 형태랄까?

마치 우주에 떠도는 행성의 파편에 덩그러니 유기된 기분이었으니까.

실제로도 그러했다.

‘혼돈계라니. 어쩜 난 치르는 아레나마다 이러냐.’

지난 차원 인섹티아도 제법 악명이 높았지만.

차원 혼돈계는 인섹티아와는 비교하기가 불가했다.

시문의 시선이 우주를 연상시키는 하늘과 휑한 지평선을 향했다.

고오오오…….

거리가 얼마나 먼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으나.

차원이 요동치는 희미한 메아리가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래에서도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십중팔구 아래에도 저처럼 수많은 차원의 이상 현상들이 즐비하겠지.

-오오! 플래티넘 데뷔전!!

-드디어 시작하는구만!

-미친 혼돈계 ㅋㅋㅋㅋ. 분위기 보소.

-이 형은 미친 맵만 골라서 가네. 이것도 재능임 ㅋㅋㅋ

-차원 소용돌이 봐 ㅋㅋㅋ 개무섭네.

어느새 방송으로 입장한 시청자들 역시 한마디씩 보탠다.

하나.

‘사실 저런 건 가까이 가지만 않으면 위협조차 되지 않아.’

시문은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기본적으로 잿빛이지만.

먹구름에 가려진 해처럼 한쪽 편에선 눈부신 빛살이 스며 나오고 있었고.

그 대칭점을 이루는 아래쪽에선 지면을 타고 시커먼 어둠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빛과 어둠.

이 두 가지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며 혼돈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잿빛으로 자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혼돈계의 특징에 어울리는 위험 요소가 존재했다.

‘정작 위험한 건 천족과 마족이지.’

설원 맵의 눈보라, 혹은 바다 맵의 폭풍우와 해일처럼.

혼돈계는 간간이 등장하는 천족과 마족이 일종의 자연재해였다.

천족과 마족은 기본적으로 다이아 랭크부터 등장하는 강력한 종족.

고로 일대일로 만나도 제법 골치 아픈 놈들인 데다.

그런 것들이 다수로 나타나 전투를 치르면 일대는 쉽게 박살이 난다.

그 결과가 바로 이곳.

대지가 듬성듬성 자리하는 혼돈계인 것이다.

‘놈들의 전투에 휘말리지 않아도, 그 여파만으로 지면이 박살 나지.’

그러면 별다른 비행 수단이 없는 이상.

플레이어들은 곧장 아래로 추락하게 될 것이고.

자연스레 저 아래에 존재하는 차원 이상 현상에 빠져, 그대로 죽어 버리겠지.

심지어 곱게 죽는 것도 아니다.

-으으…… 저 차원 이상 현상들. 보기만 해도 어지럽네.

-어후! PTSD X나 심하게 오네 ㅋㅋㅋ.

-온 감각이 다 뒤틀리는 기분 진짜 ㅋㅋ. 난 떨어질 거 같으면 일부러 자살함.

-22 나도요.

채팅창을 본 시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기 직전까지 차원 이상에 갇혀서 멘탈만 탈탈 털리니까.’

3D멀미라든가.

그 비슷한 무언가를 앓고 있지 않더라도.

차원 이상 현상은 사람의 정신을 박살 내 버릴 정도로 괴랄한 경험을 선사했다.

최대한 빨리 죽어 버리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인 것이다.

-탱커 미만 다물어라…….

-옳소. 딜딱이 힐딱이들은 모두 다물라!

-약코하지 마라…… 니들이 겪은 건 탱들에 비하면 세 발의 피니까…….

-탱커 새끼들 또 맷집으로 부심 부리네.

-ㄹㅇ ㅋㅋㅋ. 저기에 떨어진 게 자랑이냐?

당연히 평균적으로 체력이 높은 탱커라면 더욱 큰 고통을 받을 것이고.

평균 스펙이 플래티넘 상위권에서 다이아를 오가는 자신 역시 상당히 고생을 하겠지.

시문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시연이를 데려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야.’

플래티넘 데뷔전에 입장하기 직전.

아빠를 따라가겠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아이가 떠올랐다.

시혁이와 유정이, 그리고 말숙이의 품속에서 울먹거리던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비록 자신이 낳은 아이가 아님에도 친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가. 참 데려오기 껄끄럽단 말이야.’

아무리 날먹 아레나라도 결국 전투와 피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그런 곳에 대여섯 살의 어린아이를 데려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문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물론 본질 자체는 제작 골렘이니 안전이야 하겠지만…….’

미스릴, 오리하르콘, 아다만티움에 드라고니움, 미미르의 샘물에 의도치 않은 여왕의 알까지.

당장 들어간 재료들만 해도 억 소리가 절로 난다.

그러한 것들로 연성된 시연이다.

아마 기초적인 체력에 한해선 시문 자신을 가볍게 뛰어넘을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냥 데리고 왔어야 했나?’

시문은 볼을 슬쩍 긁었다.

시연이의 이름을 정하자 난데없이 이어진 각인, 결속 작업.

또한 시스템은 분명 주인인 자신의 상태창을 공유한다고 했었다.

본디 상태창 공유는 소환수 중에서도 최고 등급만 가능한 기능이다.

그리고 상태창을 공유하는 소환수들은 대다수 주인과 경험치도 공유했었지.

해서.

‘혹시 나와 경험치도 같이 공유하는지, 아니면 다른 성장 조건이 있는지 알아내야 하는데…….’

본래라면 제작 골렘은 연성자만 볼 수 있는 상태창이 존재하기 마련이었지만.

예정에 없던 여왕의 알 때문일까?

시연이는 특별 케이스라 상태창이 전혀 나타나질 않았다.

고로 경험치를 공유하는지.

아니면 다른 제작 골렘들처럼 파츠 업그레이드로 강해지는지 등등.

시연이의 성장 방식에 대해선 직접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고민하던 시문은 결국 혀를 차며 아쉬움을 표했다.

“쯧. 그냥 시연이랑 같이 올 걸 그랬군.”

근데 같이 아레나에 참가는 할 수 있나?

애당초 상태창도, 시스템도 시연이가 소환수라고 말한 적은 없었잖아?

다른 제작 골렘처럼 독자적인 아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읊조리는 시문의 귓가로.

“웅! 시여니랑 같이 와써!”

결코 들려선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뚝.

그에 순식간에 얼어 버리는 시문.

시문은 삐걱대며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온 뒤편으로 몸을 돌렸고.

“헤헤! 아빠 까꿍?”

조막만 한 손을 양 볼에 대고 앙증맞게 웃는 소녀를 보며.

“…….”

그저 멍하니 입을 벌렸다.

* * *

쿠웅.

묵직하게 울리는 타격음.

“큭!”

그것에 직격당한 판금의 남성은 이를 악물곤, 정면의 남녀를 노려봤다.

“비겁한 새끼들! 협공이라니!”

“푸하핫!”

그에 묵직한 타격을 날렸던 큼직한 샴쉬르를 든 남성이 거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봐, 유럽의 코쟁이. 여기 플래티넘 랭크 데뷔전이야. 몰라?”

“데뷔전이 서바이벌이라는 것도 잘 안다! 망할 중동 놈아!”

씹어 먹을 듯 내뱉는 판금의 남성.

“그래그래, 그러시겠지.”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인 샴쉬르의 남성은 옆에 있는 여성에게 턱짓했다.

“수아드, 독이 바짝 오른 우리 뉴비 코쟁이에게 설명 좀 해 줘.”

“네, 자예드.”

수아드라 불린 여성은 간결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플래티넘 데뷔전의 티밍은 사실상 합법이에요. 비겁할 게 없다는 거죠.”

“무슨 개소리를!”

“이봐, 코쟁이. 모른 척은 그쯤하자고.”

자예드라 불린 남성은 샴쉬르를 어깨에 턱 하니 걸쳤다.

“여기 참가할 정도면 다 알 거 아냐? 이게 무슨 골드 데뷔전도 아니고, 국가적인 공적치까지 걸린 마당인데 뭘 그리 따져?”

“그러게요. 정작 본인의 소속인 유럽도 지금 어딘가에선 티밍을 하고 있을 텐데요. 아닌가요?”

“그, 그건!”

판금의 남성이 입을 꽉 다문다.

사실이었으니까.

플래티넘 랭크부터는 국내가 아닌 국외로 매칭이 확장된다.

동시에 상위권 플레이어로 나눠지는 랭크인 만큼.

데뷔전이나 국가대항전과 같은 이벤트성 아레나들은 국가적인 공적치까지 매겨졌다.

이는 갤럭시 아레나가 해당 국가에 부여하는 여러 특권들로 이어졌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전 세계적으로 공인된 아레나 채널.

TWC의 중계권이었다.

“너, 보아하니 프랑스 출신 같은데 아닌가?”

“마, 맞다!”

“그럼 더더욱 불만 가져선 안 되는 거 아냐?”

“그러게요. 말이 연합이지 사실 유럽은 독일, 영국, 프랑스 세 나라가 공적치를 독점하잖아요?”

“이봐 수아드, 영국은 빠진 지 꽤 되었어. 이젠 이탈리아라고.”

“아, 그랬죠. 후후, 참 신기해요? 그렇게 함께할 것처럼 굴더니 홀라당 탈퇴해 버리고.”

“애당초 돈에 미친 예수쟁이들의 결속력이 그거밖에 안 되는 거지.”

명백한 비웃음으로 조리돌리는 두 남녀.

그에 이를 악문 판금의 남성이 소리쳤다.

“네놈들도 그 잘난 알라를 두고 서로 싸우지 않냐!”

하나 끝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미사일로 부족해서 이젠 각성 테러까지 벌이는 놈들이 지금 누구한테! 그 유명한 빌런인 폭탄마도 너희…….”

서걱.

허공을 나는 금발의 머리통.

자예드의 샴쉬르가 판금 남성의 목을 쳐 버린 것이다.

“쯧. 돈에 미친 예수쟁이 놈들이 어디서 감히 알라를 들먹여.”

“그러게요. 예나 지금이나, 정말 신앙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족속들이네요.”

힘없이 쓰러지는 판금의 시체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두 남녀.

이내.

콰아앙.

머지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폭음에 수아드는 몸을 돌렸다.

“어서 움직이죠, 자예드. 빨리 우리 소속 플레이어들을 찾아야 해요.”

“그래. 저 코쟁이 꼴 안 나려면 어서 다른 형제들을 만나야지.”

고개를 끄덕인 자예드가 땅을 박차려던 찰나.

“헙!”

눈을 부릅뜬 그는 역으로 몸을 날려, 달려 나가려던 방향을 틀었다.

판단은 훌륭했다.

콰가가각!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갈려 나가는 바닥.

자예드가 서 있던 그곳에 무언가가 처박혀, 순식간에 자욱한 흙먼지를 자아냈으니까.

“자예드, 괜찮아요?”

어느새 자예드의 곁으로 다가온 수아드가 둥근 륜을 들고 방어 태세를 취했다.

“그래. 자칫 골로 갈 뻔했지만.”

흙먼지가 가시고.

움푹 파이다 못해, 깊은 구렁을 본 자예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곤.

스릉.

“온다.”

샴쉬르를 빼어 든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사박.

잿빛 지면을 디디는 가벼운 발소리가 들린다.

‘상당히 가볍군. 암살계인가? 아니, 암살계의 암기가 구렁까지 만들진 못해. 그럼 마법계?’

자예드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간다.

곁에 있던 수아드 역시 기척을 느꼈는지, 한층 몸을 낮추며 둥글고 날카로운 륜을 그러쥐었다.

이내.

사박.

모습을 드러낸 무언가에 자예드와 수아드는 입을 슬쩍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헤헤! 차자따!”

천진난만한 웃음과 함께 나타난 아이.

그 이쁘장하고 귀여운 외모를 논하기 이전에.

허리쯤에도 오지 않는 아이는 이 아레나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아, 아이?”

“어린애가 왜 여기에…….”

자예드와 수아드는 대번에 혼란에 빠졌다.

갤럭시 아레나에 갑자기 무슨 어린애란 말인가?

그것도 이 황폐한 혼돈계에서?

하나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따악.

머지않은 곳에서 맑고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예드와 수아드는 본능적으로 바닥을 박찼다.

드드드득!

기다렸다는 듯 치솟는 바닥.

그것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이어.

따악.

또 한 번의 소리가 들려온다.

드드득.

“이런!”

그러자 치솟았던 돌가시가 순식간에 거대한 손의 형태가 되어 두 사람의 다리를 붙잡았고.

천마신공(天魔神功).

파(波) 섬멸포(殲滅砲).

묵색의 광선이 날아들어 자예드의 머리를 꿰뚫었다.

“자, 자예드!”

그녀는 힘없이 허물어지는 자예드를 잡으려다, 곧장 손을 회수했다.

예민한 그녀의 감각이 경고를 보내온 것이다.

기습자가 가까이 다가왔다고.

“이!”

이를 악문 그녀가 습격자를 향해 둥근 륜을 던졌다.

하나.

터억.

너무나 손쉽게 막혀 버리는 륜.

둥근 륜에 그녀의 오러가 둘러져 있음을 돌이켜 보면.

‘내 륜을 맨손으로 잡아?!’

맨손으로 그녀의 륜을 잡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따질 수도 없었다.

정확히는 그럴 틈도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피잉.

또 한 번 쏘아지는 묵색의 광선.

륜을 잡지 않은 손에서 쏘아진 그것이 순식간에 수아드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간 것이다.

해당 부위를 둥글게 도려낸 듯.

가슴 중앙이 휑하니 뚫려 쓰러지는 수아드.

그녀가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건.

“시연아! 아빠가 혼자서 막 다니면 안 된다고 그랬지!”

마치 제 자식을 혼내는 듯한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