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136화. 갈무리 (1)
랭커팰리스.
한국에서 가장 비싼 집값을 자랑하는 이곳은 그 값에 걸맞게.
“자자! 물러나세요!”
“한 발자국만 더 들어오면 주거침입죄로 고소하겠습니다!”
외부인과의 완벽한 차단을 자랑했다.
이윽고.
“김시문 선수! 한 말씀만…….”
“김시……!”
랭커팰리스의 입구가 닫히며, 끊임없이 시문을 괴롭혔던 기자들과 플래시들이 사라진다.
“후.”
한숨을 내쉰 시문은 익숙하게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벽에 기대 축 늘어지는 시문.
“어째 경기보다 이게 더 힘드냐…….”
빈말이 아니었다.
경기가 끝나고, 협회에서 준비한 차에 오르기까지.
시문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수의 기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중간에 빠져나오지 않았으면, 아마 같은 인터뷰를 수십 번은 더 했겠지.’
이 작은 나라에 언론사가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그나마 감코진, 선수들과 미리 인사를 나누어둬서 망정이지.
아니면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으리라.
그런 시문을 달래듯.
-내 말이. 안 그래도 사람 북적거려서 더운데, 똑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하는 건지!
가슴 정중앙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현자의 돌이었다.
-이게 다 오빠가 착해서 그런 거야.
“내가 뭘.”
-인터뷰 말이야. 싫은 내색 없이 하나하나 다 응해주잖아. 내가 중간에 끊고 나오라고 안 했으면, 오빠 거기 언론사들 인터뷰 전부 다 해줬을걸?
잠시 볼을 긁는 시문.
이내.
“음…… 아니라곤 못 하겠네.”
-그니까! 오빠는 나처럼 야무진 애를 만나서 참 다행인 줄 알아. 아니면 맨날 사람 좋게 헤실거리면서 이용만 당했을 거라고.
띵.
“그래. 참 다행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시문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뭔가 영혼이 없는 대답인데?
“영혼이 없긴. 진심인데.”
진심이긴 했다.
현자의 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테니까.
-쓰읍. 아닌데…… 뭔가 묘~하게 내 세심한 감각을 건드리…….
시문은 조곤조곤 이어지는 현자의 돌의 목소리를 BGM 삼아.
길고 세련된 복도를 지나, 펜트하우스 입구에 도착했다.
삑.
도어락이 해제되고 문고리를 잡자.
도도도도!
문 너머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몸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는지.
가벼운 데다 짧은 보폭으로 내딛는 발걸음 수도 많다.
위의 조건을 부합하는 인물은 자신의 주변엔 단 한 명뿐이었기에.
문을 열고 들어선 시문의 입꼬리는 어느새 쭉 올라갔다.
그렇게.
“시연아. 아빠왔…….”
문을 연 시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빠!!”
허리쯤에도 오지 않는 작은 아이가 도도도 달려와.
퍽.
“컥!”
시문의 명치를 강타.
아니, 품속으로 안겨 왔다.
작은 체구여도 가속도가 붙어서 그런지.
통증으로 인식되기 직전까지의 충격이 전해져왔지만.
“아빠다! 아빠!”
자신의 품속에 포옥 안겨, 머리를 비비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는 시연이를 보면.
“아구! 우리 시연이, 아빠 기다렸어?”
그깟 충격쯤은 사르륵 녹아내렸다.
“웅! 아빠가 쿵쿵쿵! 콰르릉! 하는 거 바써!”
초롱초롱한 눈으로 시문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시연.
“에?”
그에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시문의 의문을.
“형 경기 말하는 거야. 특별전, 우리랑 같이 독일전 경기를 봤거든.”
청량한 미성이 해결해 주었다.
동생 김시혁이었다.
시문은 동생을 필두로 다가온 일행을 바라봤다.
“오라버니. 경기 잘 봤어요. 버려진 철로에 그런 히든 피스가 있었다니…… 깜짝 놀랐어요!”
“으핫! 전 그것보다 레오니 볼프에게 수면제를 꽂아버린 게 더 놀랐습니다. 또 무슨 약을 만드신 겁니까?”
“……지리긴 하더라.”
이유정과 박진욱, 그리고 고말숙이었다.
시문의 눈매가 한결 부드럽게 휘었다.
“다들 보고 있었구나.”
“당연하지. 우리 시연이랑 같이 봤는 걸. 그치 시연아?”
“웅! 시여니 삼쫀이랑 같이 바써!”
“그래그래! 삼촌이랑 봤지!”
그렇게도 좋은 것일까?
시연이를 바라보는 김시혁의 눈에선 꿀이 뚝뚝 떨어졌다.
시혁이뿐만 아니었다.
“오라버니가 변신했을 때랑 히든 피스를 가동했을 때, 시연이가 그렇게 흥분을 했었어요.”
“맞습니다. 두 주먹을 마구 휘두르고 아주 난리가 났었죠.”
“덕분에 선배님의 턱이 돌아가서, 회복시킨다고 고생 좀 했어요.”
이유정과 박진욱까지.
뭔가 마지막은 저리 웃으면서 말할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으나.
시연이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 역시 무척이나 따스했다.
“그렇구나. 다들 고마워. 시연이 챙겨줘서.”
“뭘. 내 조카인데 내가 챙겨야지.”
“저도 마찬가지예요. 오라버니.”
두 동생의 말에 시문의 눈 역시 따스해진다.
박진욱은 무릎을 꿇고 반짝이는 눈으로 시연이를 꼬드겼다.
특별전을 진행하는 사이에 바짝 친해지기라도 했는지.
“자자. 시연아. 아저씨가 또 목말 태워 줄까?”
“목말?! 웅! 목말!”
시문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려.
박진욱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김시연.
“읏차! 길을 비켜라! 시연 공주님 나가신다!”
“아니아니. 시여니 공주님 아냐! 여왕님이야!”
“으잉? 하하하!! 그래. 아저씨가 잘못 알았네. 자, 우리 여왕님 나가신다!”
박진욱의 목을 타고 위엄 있는 여왕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시연.
그리곤 양옆으로 짧은 팔을 들었다.
“짜! 삼쫀이랑 이모도 여왕님이랑 행차하는 거야.”
“하하! 이거 영광인데?”
“푸흡. 잘 부탁드려요. 여왕님.”
김시혁과 이유정.
대한민국의 두 랭커를 호위 삼아 거실로 이동하는 시연.
그 와중에 시문을 슬쩍 돌아본 김시혁이 웃으며 턱짓했다.
“형도 와서 쉬어. 우리 여왕님이 형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알았어. 곧 갈게.”
그에 미소로 답해 준 시문은 네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진 이후.
한쪽 벽에 기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고말숙을 바라봤다.
“말숙아. 무슨 일 있어?”
시문의 물음에 고개를 드는 고말숙.
그녀의 얼굴은 당당하던 평소와 달리 꽤 어두웠다.
“……아니, 별로.”
말과 표정이 정반대인 고말숙.
성격답게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에 시문은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1분쯤 지났을까.
“있잖아.”
한참 바닥만을 내려보던 고말숙이 입이 움직였다.
“만약 내가 플래티넘으로 올라가도, 너랑 같이 아레나를 뛸 수 있을까?”
“응?”
잠시 눈을 끔뻑이는 시문.
이내.
“당연하지. 같은 랭크가 되잖아.”
시문은 아주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죽여야 하는 서바이벌이 아니고서야, 갤럭시 아레나의 파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물론 MMR 차이에 따른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같은 랭크면 파티가 가능했으니까.
하나 잘못짚은 것일까?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고말숙은 슬쩍 고개를 저으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아니, 아니다. X발 나답지 않게 해 보지도 않고 쫄아서는.”
욕설과 함께 나지막이 읊조린 그녀는 머리를 벅벅 긁고는 몸을 돌렸다.
잠시 고개를 갸웃한 시문은 그제야 짚이는 것이 있는지.
“아.”
살짝 고개를 까딱이고는 말했다.
“말숙아.”
“뭐.”
“넌 충분히 강해.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이번엔 정답이었는지 고말숙의 얼굴이 대번에 굳었다.
“내 말 믿어. 넌 나랑 함께 아레나를 뛰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실력자야.”
“야, 넌!”
그녀는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후…… 그래. 말 나온 김에 물어보자.”
짧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넌 대체 날 왜 그렇게 믿는 거냐?”
한번 말문을 터서일까?
“나도 나 자신을 못 믿는데. 대체 넌 내 어디를 보고 그렇게 믿어주는 건데?”
그녀는 거침없이 속내를 쏟아냈다.
잠시 멈칫하는 시문.
그러나 아무리 말숙이라도 회귀의 대해선 말할 수 없었기에.
“믿을 만하니까.”
그저 믿는다는 말에 진심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시문의 답에 잠시 눈이 동그래지는 고말숙.
이내.
“그래. 무력에 관해서라면 인정해.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나 X나 세거든? 당장 아레나 들어가면 파티고 뭐고 죄다 혼자서 두들겨 팰 정도로.”
그녀는 피식 웃으며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렸다.
“근데 X발 그래서? 너, 내가 너보다 세다고 말할 수 있냐? 아니, 비슷한 급이라고는 할 수 있어?”
“그건…….”
잠시 멈칫하는 시문.
당연했다.
그녀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고말숙은 자신과 견줄 수준이 아니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당장 플래티넘 수문장들이나, 다이아를 바라보고 있을 플래티넘 최정상의 유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좌의 힘을 빌린 레오니 볼프조차 자신의 상대가 안 되지 않는가?
물론 오딘과 브륀힐드 사이의 이슈로 제대로 싸워보진 못했으나.
시문은 연성력과 마기가 봉인된 상태에서도 충분히 레오니 볼프를 이길 자신이 있었다.
진짜 무력인 신화급 무구 연성과 여타 특성들은 멀쩡했으니까.
주춤하는 시문에 이미 대답을 들었다는 듯.
“거봐. 말 못 하잖아.”
고말숙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말숙아. 들어봐.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 난 일반적인 케이스가…….”
“알아.”
시문의 말을 끊으며, 입술을 질끈 깨무는 고말숙.
“네가 유달리 강하다는 거. 이레귤러니 뭐니 하며 전 세계가 떠들잖아. 하지만.”
주먹까지 불끈 쥔 그녀는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결국 내가 같이 아레나를 뛰어야 할 사람은 그런 너잖아?”
“…….”
시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하…… X! 이딴 소리나 하려고 말을 꺼낸 게 아닌데.”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곤 제 머리를 헝클 듯 긁었다.
“야, 그렇게 풀 죽을 필요 없어. 내가 약해서 일어난 일인데, 왜 네가 풀이 죽어?”
“말숙아……,”
한결 깊어진 눈으로 고말숙을 응시하는 시문.
이내.
“미안한데. 풀 죽은 적은 없어. 너무 팩트라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입 닫고 있었을…….”
“으아아악! 개자식! 그럼 닫아! 계속 닫고 있으라고!!”
끓는 주전자처럼 순식간에 펄펄 뛰는 고말숙.
이제야 평소의 그녀다운 모습에.
“말숙아. 그렇게 주먹 쓰다 카운터 박히는 수가 있다.”
“오냐 X새끼야! 박아 봐! 박아 보라고!”
시문은 여유롭게 다소 거친 그녀의 투덜거림을 받아주었다.
정확히는.
“으아악! 이 괴물 같은 놈! 어떻게 그걸 다 피하냐!”
정말 단 한 대도 맞아주지 않는 시문에 목덜미를 잡은 고말숙이 먼저 뻗었다고 해야겠지만.
한동안 씩씩거리며 얄미워 죽겠다는 얼굴로 시문을 노려보던 고말숙은 이내.
“슬슬 가자. 네 딸이 어찌나 아빠를 찾던지. 귀에 딱지 앉는 줄 알았어.”
픽 웃으며 몸을 돌렸다.
본래의 고말숙다운 힘 있는 목소리.
그에 시문은 미소로 답해주었다.
“아직 어린아이잖아. 한창 부모 찾을 때니까.”
“……하긴, 어릴 땐 다 저랬지.”
또 무슨 생각에 빠진 듯.
“아이고! 우리 여왕님! 여기 주스를 대령했습니다요~!”
“헤헤! 참으로 충직한 아저씨다! 아빠 다음으로 좋아!”
“시연아, 삼촌은? 삼촌은 주스 두 잔으로 가져올 건데?”
“움? 그러엄…… 아빠 다음은 삼쫀이야!”
“어머! 시연아. 그럼 이모는 주스 세 잔에 과자도 가져올게.”
“이것들이! 이게 애 앞에서 무슨 비열한 짓이야?!”
시연이로 인해 시끌벅적한 거실을 어딘가 아련하게 바라보는 고말숙.
이내.
“아 참, 네 인터뷰 봤어. 너 말 X나 잘하더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는 시문의 어깨를 툭 쳤다.
“당연하지. 똑같은 소릴 몇 번이나 했는데.”
“킥! 너도 방송 체질은 아닌가 보네.”
어깨를 들썩인 고말숙은 장난기가 가득한 눈으로 시문을 바라봤다.
“애 잠들면 각오해라. 승리 기념으로 아주 진탕 마실 거니까.”
“나 술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새끼가! 이런 날엔 마셔줘야 하는 거야. 잔말 말고 각오해.”
그냥 네가 마시고 싶은 건 아니고?
하는 말을 가까스로 삼키며.
시문은 엄한 얼굴로 꾸짖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마법계는 체력이 약하니 뭐니 하면서 숙취 약 같은 거 만들어 먹지 마라. 연구실 폭파시켜 버린다.”
* * *
다음 날.
“으으…….”
“드르렁!”
거실 바닥과 소파엔 4명의 남녀가 뻗어 있었다.
데구르르.
아레나산 술병이 바닥을 구른다.
넓은 거실 바닥을 구른 술병은 한 남자의 발끝을 톡 건드리고 나서야 배회를 멈췄다.
“참…… 많이도 마셨네.”
발끝의 주인.
시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림잡아도 200병이라니.’
아무리 술을 마신 대부분이 최상위권 플레이어라지만.
아레나산 술을 200병 이상을 하룻밤 만에 마시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시문의 시선은 바닥에 철푸덕 뻗어 있는 한 여성을 향했다.
“으…… 으으!”
잠이 들었음에도 잘게 신음을 흘리는 여성.
고말숙은 눈만 감았을 뿐, 사실상 언데드나 다름없는 몰골이었다.
시문은 그런 고말숙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게 적당히 마시라니까.’
어젯밤.
시연이를 재운 시문은 술자리에 참가해, 저 200병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을 마시게 되었다.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괜히 쓸데없는 데서 오기가 발동해서는.’
술만이라도 이겨보겠다는 심리인 걸까?
벼루던 고말숙이 대작을 걸어왔고, 그에 응한 결과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애당초 그것은 고말숙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후후. 어때 오빠, 저렇게 뻗어 있는 거 보니까 내 위대함이 체감되지?
‘그래.’
가슴 정중앙에 위치한 현자의 돌.
녀석의 자잘한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체내에 침입한 불순물을 정화하는 것.
고로 플레이어도 취하게 만드는 아레나산 술 역시 시문에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고.
그 사실을 모르는 고말숙은 몰래 도핑이라도 한 거 아니냐고 연신 의심하며, 끝까지 대작을 이어간 것이다.
중간에 시혁이와 박진욱이 자기들이랑도 붙어보자며 끼어든 건 덤이었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광경이었다.
“으으…….”
술을 마셨던 5인 중 가장 레벨과 랭크가 낮아서일까?
유독 신음을 흘리는 고말숙.
“쯧.”
그에 작은 담요를 덮어준 시문은 곧바로 몸을 돌려 연구실을 향했다.
“현자의 돌. 나 없는 동안 치료제 작업은 문제없었지?”
-물론이지. 오빠가 없어도 시연이가 있어서 쉬지 않고 만들었으니까.
“우리 시연이가 고생 많았구나. 그럼 내가 도울 만한 건 없고?”
-응 이제 포장 작업만 남은 거라, 나 혼자서도 충분해.
“잘됐네.”
시문은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을 바라봤다.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그럼 슬슬 보상을 확인해 봐도 되겠어.”
이전 아레나인 국가대표 특별전.
그것의 보상을 확인해야 했으니까.
‘진작 확인하고 싶었지만, 너무 바빴단 말이지.’
장감독과 이상민을 비롯한 감코진, 국대들과의 인사.
또 곧바로 수많은 언론사를 상대해야 했고.
돌아와선 일행들과 축하 술자리까지 이어가지 않았던가?
딱히 보상 때문에 급할 일도 없어서, 오늘 아침까지 미뤄둔 시문이었다.
보상창을 열자.
[국가대항전 특별전에서 완승을 거두셨습니다.]
[부족한 인원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활약에 따라 보상이 증가합니다.]
[귀속된 특성 ‘현자의 돌’이 일정량의 경험치를 분배받습니다.]
[레벨이 3 올랐습니다.]
[현자의 돌 레벨이 2 상승했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오우거 파워 건틀렛’을 획득합니다.]
눈앞에 한가득 시스템창이 범람했다.
보상을 확인한 시문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진다.
“고작 3업밖에 안 해?”
현자의 돌과 레벨을 나눴다 해도 총 5레벨.
고생한 것치곤 꽤나 밋밋한 보상이었다.
-어쩔 수 없지. 오빠도 국가대항전의 경험치가 구린 건 알고 있었잖아.
“그렇긴 한데…… 막상 체감하니 좀 아쉽네.”
설마 승급전보다 경험치가 구릴 줄이야.
더욱이 아쉬운 건.
“쯧. 1업만 더하면 100레벨인데. 딱 99레벨이 됐네.”
본래 96이던 시문의 레벨.
4업만 더하면 100레벨이 될 수 있었는데, 딱 1업이 모자라 100레벨을 찍지 못한 것이다.
‘100레벨을 찍어야 파라켈수스의 실린더 옵션이 성장하는데.’
그래도 혹시나 싶어.
“현자의 돌. 혹시나 해서 묻는데. 나 연성력은 높으니까 1레벨 차이는 어떻게 비벼…….”
-응. 안 돼. 돌아가.
물어봤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시문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보상창을 바라봤다.
“오우거 파워 건틀렛이라…… 이건 나쁘지 않네. 특별전은 SS급으로 지급되니 옵션도 최고일 테고.”
본래 국가대항전 특별전의 진미는 아이템 보상.
그에 걸맞게 오우거 파워 건틀렛(Ogre Power Gauntlet).
통칭 OPG는 모든 전투계가 바라는 최고의 장비 중 하나였다.
전사계에겐 보다 더 강력한 힘을.
암살계나 궁수계는 부족한 힘을 채워주고, 탱커들에겐 공격력마저 챙겨주는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었으니까.
그러나.
“나한테는 별 쓸모가 없는데.”
신화급 무구와 인체 연성을 지닌 시문에겐 의미 없는 아이템이었다.
-그러게. 오빠는 이미 자연산 오우건데. 이런 거 껴서 뭐 해.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묘하게 얻어맞는 기분이다?”
-에이! 연성에 방해된다, 뭐 그런 뜻이지. 건틀렛이라 손가락 튕기기도 힘들잖아.
헤헷! 거리며 웃는 현자의 돌.
그런 녀석을 게슴츠레하게 바라보던 시문은 고개를 슬쩍 젓고는 보상창을 닫았다.
‘OPG는 나중에 말숙이나 챙겨줘야겠다.’
자신을 이어 골드 데뷔전 1위를 달성한 고말숙.
나름 축하도 해주고 싶었고, 어제 보였던 그 모습이 마음에 걸리기도 한 탓이었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나야 연성해서 쓰니까 그렇다지만, 걘 어떻게 맨손으로 아레나를 뛰는지 몰라.’
현재의 고말숙은 자신만큼이나 장래가 유망한 괴물 루키였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벌었을 텐데.
고말숙은 이상하리만치 아이템이 없었다.
심지어 전투계가 아니던가?
전투계면 장비빨도 오지게 받을 텐데.
‘뭔가 이유가 있는 건가? 뭐, 장비가 없어도 아레나 성적은 잘만 나오긴 하더라만은.’
맨몸으로 골드 데뷔전 솔로 참가해서 무려 1위를 했었지.
자신의 두 동생에 버금가는 괴물이었다.
실제로 전생에서 그들과 맞먹는 하이랭커가 되기도 했었고.
‘그런데도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다니…… 말숙아. 너란 여자의 마음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시무룩했던 어제의 고말숙을 떠올린 시문은 피식 웃었다.
이내.
“자, 그럼 현자의 돌? 미션으로 5,000점도 벌었겠다, 슬슬 메인디쉬를 준비해야지.”
-웅웅! 안 그래도 준비해놨어.
[요구치에 맞는 연성을 이루기에는 연성력이 부족합니다.]
[현자의 돌이 부족한 등가교환을 성립시키기 위해, 업적 포인트 50,000점을 요구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무려 5만 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요구치.
그러나 지난 아레나에서 바알의 미션으로 업적 포인트 5천 점을 벌어들인 상태다.
덕분에 기존의 업적 포인트를 합쳐, 현재 업적 포인트는 총 54,100점.
시문은 일말의 고민 없이 ‘예’를 택했고.
따악.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성좌 검은 염소가 두 눈을 반짝입니다.]
스아아아아아아아!!
솜털이 바짝 솟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검보랏빛 기류가 연구실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