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161화. 타르타로스 (4)
달그락.
그그그극.
익숙한 광경과 작업 소리.
그것이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아레나 ‘저승의 강 스틱스’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셨습니다.]
[압도적인 활약을 선보였습니다.]
[활약에 따라 클리어 보상이 증가합니다.]
[귀속된 특성 ‘현자의 돌’이 일정량의 경험치를 분배받습니다.]
[레벨이 6 올랐습니다.]
[현자의 돌 레벨이 4 상승했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저승의 강물’을 획득합니다.]
아레나 완료 보상이 줄줄이 지급되었다.
하지만 시문은 그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연했다.
‘하긴…… 두 번 살았으니 필멸자는 아닌가?’
‘부디 세 번째는 없길 바라요.’
밤의 여왕 닉스.
타르타로스에서 나오기 전.
그녀가 속삭였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으니까.
“내 회귀를…… 알고 있다고?”
무척 놀랍다 못해 경악스러웠으나.
그것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의문이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내 회귀 사실을 아는 거지?’
그녀가 프로토게노이라는.
상위 서열 성좌나 갤럭시 아레나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건 몸소 경험했다.
하지만.
‘이건 검은 염소도 눈치채지 못한 회귀인데?’
닉스가 스스로 친구라고 부르는 이.
실제로도 닉스와 버금가는 존재감을 지닌 검은 염소는 자신의 회귀를 전혀 알지 못했는데.
어찌 닉스만 자신의 회귀 사실을 알고 있단 말인가?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거야 언니가 오빠를 회귀시킨 자와 관련이 있으니까.
플라스크 속의 눈알.
현자의 돌이 어느새 둥둥 몸을 띄워 다가온 것이다.
“날 회귀시킨 자라면…… 그 이름이 검열된 존재?”
-응. 그래서 자세히는 말해 주지 못하지만, 그 자는 지금 자고 있거든. 그쪽이랑 관련이 있어.
“자고 있다고? 근데 그게 닉스랑 무슨…… 아.”
작게 탄식하는 시문.
“잠은 밤에 자니까?”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언니가 그자의 잠과 연관이 있다고만 보면 돼.
“그리고 난 그자의 힘으로 회귀했으니, 닉스가 내 회귀 사실을 아는 거다?”
-그렇지. 아마 언니 말고도 아는 존재가 더 있을걸.
“더 있다고?!”
시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현자의 돌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와 같은 프로토게노이는 다 그자의 꿈과 연관이 있거든. 아마 프로토게노이들은 다 알 거야.
“으음…….”
시문의 미간이 슬쩍 좁아진다.
하나 그뿐.
“뭐, 그쪽이 알아도 크게 상관없겠지. 어차피 프로토게노이를 또 만날 리는 없으니까.”
-그렇긴 해. 다들 타르타로스에만 있기도 하고, 갤럭시 아레나도 딱히 참가하지 않으니까.
“현자의 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설마 닉스가 회귀 사실을 발설하고 다니진 않겠지?”
-노노노. 절대 안 그래.
대번에 고개를 젓는 현자의 돌.
그에 시문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렇겠지? 왠지 모르게 나한테 호의도 보여줬으니까.”
-오빠 ‘왠지 모르게’ 가 아니야. 완전 대놓고 보여준 거라고.
“대놓고?”
-그래!
현자의 돌은 플라스크 속 눈알을 부르르 떨며 격하게 반응했다.
-언니가 아레나 새끼들이 조작한 타르타로스의 조각을 직접 감정해서 줬잖아.
“그랬지.”
-그 언니가 그런 걸 손수 해줬다는 것부터가, 오빠는 엄청난 호의를 받았다는 증거야.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당연하지! 본래라면 당장 빼앗아서 타르타로스한테 넘겼을 거야.
“하긴…….”
닉스가 갤럭시 아레나에게 날을 세웠던 부분이 바로 타르타로스의 조각 때문 아니던가?
시문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자의 돌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언니가 세상 조곤조곤해 보여도, 염소 언니보다 더 지X맞은 부분이 있거든.
“세상에. 그 정도야?”
검은 염소보다 더하다니?
믿기 힘든 비유에 시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다니까!
현자의 돌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애당초 닉스 언니한테 선물 같은 걸 받은 존재가 드물어. 하물며 필멸자다? 오우 쉣!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팔로 이마를 턱하니.
아니, 플라스크 표면을 턱하니 짚었다.
-아마 제우스를 비롯해서 오빠를 주시 중이던 성좌들은 죄다 기겁을 했을 거야.
“믿기지 않는데. 그냥 물건 하나 받았을 뿐이잖아.”
-그 물건이 타르타로스의 것이고, 닉스 여신이 주었다는 사실만 빼고 보면 그렇지.
“……뭐냐 그게.”
-뭐긴! X나 대단하다는 거지! 여하튼, 성좌랑 가벼운 마찰이라도 일어나면 그 언니 이름 팔아도 되겠다.
“에? 허락도 안 받고?”
-이미 받았잖아?
시문의 손에 있는 타르타로스를 눈짓하는 현자의 돌.
-거기다 회귀한 것도 비밀로 해줬고. 내 말 믿어. 오빠가 이름을 팔고 다녀도, 그 언니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거야. 장담을 한다. 내가!
아주 호언장담을 하는 현자의 돌에.
“듣기만 해도 든든하네.”
피식 웃은 시문은 플라스크를 슥슥 쓸어주다.
-아잉! 위에만 쓸지 말궁. 딴 데도 쓸어줭!
“…….”
눈을 찡끗하며 몸을 비트는 현자의 돌에 얼른 손을 떼며, 둥둥 떠있는 보상을 향했다.
‘그나저나 6레벨업이라…… 역시 레벨이 높아져서 그런가. 좀 짜네.’
작은 아쉬움이 시문의 눈가를 스친다.
사실 4레벨이 오른 현자의 돌까지 계산하면 무려 10레벨업을 한 셈이지만.
이미 폭렙업에 절여져 버린 시문에겐 그저 아쉽게만 느껴졌다.
다행히도.
‘그래도 이 레벨대에서 이 정도면 나름 준수한 경험치양이니까. 나쁘진 않아.’
일말의 양심이 살아 있는지.
시문은 금세 아쉬움을 추스르고 상태창을 열었다.
“우선 연성력에 전부 투자하고…….”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 얻은 잔여 스탯 6을 모두 연성력에 투자한 시문은.
“캬!”
절로 감탄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197이라니. 거의 내 레벨에 2배잖아?”
현재 시문의 레벨은 117.
그에 2배에 가까운 197이라는 숫자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다.
‘지난 검은 제련소의 보상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아르스 마그나때 얻은 추가치가 컸나보네.’
아르스 마그나.
연금술의 극의, 또는 깨달음이라 칭해지는 그것을 얻고서, 무려 20이라는 추가 연성력을 획득한 시문이었다.
그리고 12레벨업을 시켜준 검은 제련소와 지금의 6레벨까지 더해져.
연성력은 무려 197이라는 수치를 달성한 것이다.
‘200까지 딱 3이 부족하긴 하지만…… 100을 넘을 때처럼 확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주 스탯 100이 넘어갈 때의 보여주는 막대한 성장과 달리.
100에서 200으로 넘어간다고 그때만큼의 성장은 주워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단순 계산으로만 보면 100이었단 당시보다 2배는 강해지는 셈이었고.
시문에겐 2배 그 이상으로 적용되었다.
왜냐하면.
“어디보자. 그럼 마기와 용력이…….”
연성력의 귀속 스탯인 마기와 용력.
연성력의 절반에 해당하는 영향을 받는 둘 역시 연성력의 성장에 영향을 받았으니까.
“각각 101씩 달성했네.”
기본 연성력 197에 칭호 [왕들의 픽]으로 +5를 더해 총 202인 연성력.
거기서 절반인 101의 수치를 각각 달성했으니.
‘그냥 잔여 스탯으로만 계산해도 202라는 스탯을 공짜로 얻은 거네.’
주 스탯 하나로 무려 404라는 괴랄한 수치의 효율을 내는 것이다.
“연성력. 이거 진짜 성장할수록 사기같단 말이지.”
-사기 맞지. 누구 스탯인데.
대번에 코를 드는 현자의 돌.
“그래. 우리 현돌이 덕분이지.”
-꺄웅! 현돌이 그거 마음에든다. 오빠, 더 줄여서 현아 어때? 이름 이쁜데.
“알았다.”
시문은 피식 웃으며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을 톡톡 두드려주곤.
인벤토리를 열었다.
뼈로 윤각된 큼직한 유리병이 딸려나온다.
찰랑.
시문은 그안에서 찰랑이는 잿빛 액체를 바라봤다.
“저승의 강물이라? S급이라 그런지 양도 많네.”
저승의 강물.
비록 아레나를 치루었던 스틱스나, 다른 독자적인 이름을 지닌 저승의 강만큼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맹독과 맞먹는 효력을 지닌 재료 아이템.
더군다나.
여러 제작이나 네크로맨서의 시약으로도 쓰이는 팔방미인의 아이템이었다.
‘이 정도면 팔아도 돈이 꽤 되겠지만…….’
S급이면 양도 질도 제법 높은 축에 속하는지라.
다이아급 생산계나 네크로맨서의 사령술에도 적합했다.
하지만.
“쟁여둬야지.”
시문은 저승의 강물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잘 생각했어. 언제 요긴하게 쓰일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연금술.
마법계와 생산계의 두 영역에 발을 담근 분야답게.
연금술 역시 죽음의 강물이 사용되는 곳이 더러 있었다.
결정적으로.
‘돈이 급한 게 아니니까.’
아레나 질병 치료제부터 성장 버프 대여까지.
이미 돈이라면 차고 넘치는 시문이라, 아이템 판매보단 이렇게 모아두는 쪽이 여러모로 유용했다.
“아참. 세계수의 씨앗 조각을 연성해야 하는데.”
-맞아. 올리비아인가? 그 여자한테도 약속했잖아.
현자의 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시문.
‘슬슬 성장 버프 수준을 올릴 때도 됐고.’
이번 아레나의 보상이 나름 실망적?이지 않았던가.
세계수의 성장 버프를 향상시키면, 작게 느껴지는 경험치량도 어느정도 커버되리라.
“현아. 세계수의 씨앗 조각은 아직 만 포인트밖에 안 들지?”
-응.
마침 업적 포인트의 여유도 있으니 딱이네.
“그럼 연성부터…….”
그렇게 시문이 손가락을 튕기려던 그때.
벌컥!
“형!”
“오라버니!”
“시문님! 괜찮으십니까?”
김시혁과 이유정, 그리고 박진욱이 문을 부술 듯 열어재끼며 난입했다.
시문은 놀란 눈으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뭐야? 다들 왜 그래?”
“뭐긴! 형이 데스페라도를 건드렸잖아.”
“맞습니다. 그 정도면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요!”
“갑자기 방송도 꺼지셔서 더 놀랐어요.”
우려가 가득한 목소리들.
시문은 그제야 이들이 이렇게 급하게 달려온 이유를 깨달았다.
‘데스페라도 때문이구나.’
세계 최대의 빌런 조직인 데스페라도.
모두가 인정하는 싸이코 범죄 집단답게.
아레나가 끝나자마자 테러라도 당할까 봐, 다들 개인 일정을 접고 달려온 것이다.
‘실제로 전적이 있기도 하고.’
신림의 원룸.
초라했던 그곳에 무려 폭탄마 모가담의 수제자인 제이스 클라크가 찾아오지 않았던가?
뭐, 테러를 당한 당시에도 그리 당황하지는 않았으나.
데스페라도의 조직원이 찾아왔다는 전적이 있는 이상, 동료들의 우려는 당연하다 볼 수 있다.
‘뭔가…… 기분이 묘하네.’
전생에도 시혁이나 말숙이가 잘 챙겨주긴 했다만은.
이렇게 누군가의 걱정을 받는 기분은 참 묘했다.
물론 좋은 부분으로.
“다들 진정해. 여기 랭크팰리스잖아. 아무리 데스페라도라도 여길 어떻게 와? 그것도 하루만에.”
시문은 절로 흘러나오는 미소를 머금으며, 세 사람을 진정시켰다.
하나 데스페라도의 무게는 저들에게도 제법 무거운 것인지.
“그건 시문님이 놈들을 잘 모르셔서 하시는 소립니다!”
“형. 우린 그쪽 핵심 멤버들을 다 아레나로 만나봐서 잘 알아. 진짜 미친놈들 밖에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안 이상하다고.”
“맞아요. 오라버니. 그놈들은 백악관도 폭발시켰던 전적이 있어요.”
세 사람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답했다.
이내.
“안 되겠다. 경비는 2배로 늘리고. 우리 아레나 일정 조절해서 교대로 형 펜트하우스를 살피자.”
“좋아. 난 방금 아레나가 끝났으니까. 오늘은 나부터 볼게.”
“그럼 오늘은 유정이 네가 맡고. 길드 결제할 것도 있으니 내가 붙어 있으마.”
저들끼리 자체 경계 스케줄까지 짜는 세 사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내가 따로 함정이나 장치들을 설치하면…….”
그에 시문이 세 사람을 말리려던 순간.
우우웅.
인벤토리에서 익숙한 이명이 들려온다.
‘이건!’
그리고 시문이 어찌 반응할 틈도없이.
쩌억.
멋대로 인벤토리가 열리며.
슈아아아아.
시커먼 암흑의 기운이 세 사람을 향해 뻗어나갔다.
모두 최상위권 플레이어답게.
“기습?”
“선배가 목표야!”
“조심하세요!”
순식간에 무기를 빼어 들고, 길게 뻗어오는 암흑을 쳐냈으나 그뿐.
두 랭커의 강기를 쉽사리 뚫어버리고.
“이, 이건 밤의……!”
“선배!!”
똑같은 기운으로 대응하던 박진욱을 집어삼켜 버리는 암흑.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박진욱에, 두 랭커는 서둘러 이 암흑의 원인을 파악했다.
그리곤 얼이 빠진 얼굴로.
“형……?”
“오, 오라버니?”
시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당연했다.
갑자기 박진욱을 공격하다니?
그러나 오해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스으으으.
박진욱을 집어삼킨 암흑.
그것이 점점 강렬하게 휘몰아치더니, 박진욱을 툭 뱉어낸 것이다.
이어.
“하, 하하…….”
허망한 얼굴로 제 두 손을 내려다보는 박진욱.
그의 두 손은.
아니, 그의 전신은 밤사냥꾼이란 위명과 맞지 않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박진욱은 떨리는 시선 그대로 시문을 바라봤고.
“시, 시문님? 이게 뭡니까? 왜 제 특성이 SSS급으로 성장한겁니까?”
“뭐, 뭐라고?”
“SSS급으로 성장을 했다고요?!”
김시혁과 이유정 역시 깜짝 놀란 눈으로 시문을 홱 돌아봤다.
그리고 이 사태의 당사자는.
“어음…… 그게 말이죠…….”
무척이나 난처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었다.
* * *
또각.
높은 힐의 소리가 넓은 복도를 울린다.
그에 어울리는 깔끔한 오피스룩의 여성이 크고 고급스러운 문을 향해 걸어갔다.
“엇! 부회자…….”
그녀를 본 비서가 얼른 몸을 일으켰으나.
“됐어요. 업무보세요.”
여성은 가볍게 손을 들어 제지하곤.
똑똑.
“회장님. 저예요.”
크고 고급스러운 문을 두드렸다.
이내 두어 걸음 정도 물러나는 여성.
그녀의 걸음이 딱 멈추는 순간.
끼익.
문이 열리며 통통한 중년의 남성이 밖으로 나왔다.
“하하! 이게 누구십니까? 우리 성삼의 기둥이신 도후아니십니까?”
그는 사람 좋은 미소로 깊게 벗겨진 머리를 슥 쓸었다.
하나.
“안호진 과장. 여긴 사내입니다.”
이영희는 싸늘한 미소로 답했다.
그녀의 사정을 아는 이라면.
싸늘한 미소가 아닌, 수척한 미소라고 생각할 것이다.
도후 이영희는 지난 수년간 아레나 질병으로 혼수상태였으니까.
하나.
“하, 하하! 그렇지요. 부회장님. 제가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100% 싸늘한 미소라고 확신한 안호진은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그런 안호진의 휑한 정수리를 내려다보던 이영희는 입을 열었다.
“안 과장. 혹시 저도 결례를 범했을까요?”
“예? 아, 아닙니다!”
“그래요? 그럼 안호진 씨는 아직도 과장이라는 말이네요?”
한쪽 눈썹이 슬쩍 올라가는 이영희
그와 함께 그녀의 입꼬리 역시 올라갔다.
이번엔 진심이 담긴 미소라는 것을 눈치챈 안호진은 주먹을 슬쩍 쥐며.
“아…… 에헤헤! 그렇지요.”
사람 좋게 헤실거렸고.
“뭐, 직급이야 중요하겠습니까? 회장님을 잘 모실 수 있는 위치면 그걸로 된 거지요.”
“그래요. 여전히 변함없으시네요. 마음에 들어요.”
그에 싱긋 웃어준 이영희는 안호진을 스쳐,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지나가자마자.
‘X발년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안호진.
그러나 속내와 별개로.
조심스럽게 문을 닫은 그는 부글거리는 감정을 다스리며 자리를 떠났다.
안호진의 인기척이 사라짐을 확인한 이영희는.
“아버지. 이게 뭐죠? 대체 제가 쓰러진 사이, 무슨 일을 벌이셨던 거예요?”
곧장 쥐고 있단 서류를 흔들며, 회장실에 앉아있는 한 노인을 향해 다가갔고.
“쯧. 오랜만에 아비를 보고도, 어째 안부 한 마디가 없구나.”
턱을 괸 채.
창밖을 응시중이던 노인.
“내가 널 그리 가르쳤더냐?”
이순철 회장은 가라앉은 눈으로 이영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