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173화. 공성전 (1)
탁탁탁.
세련된 테이블이 일정한 간격으로 흔들린다.
위에 놓인 술잔이 출렁이며, 독한 내용물을 테이블 위로 흩뿌렸지만.
이곳에 있는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이내.
“후우…… 그래서.”
험상궂은 남자.
흡사 조폭을 연상시키는 남자가 뿌연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이제 어쩔 거냐? 뭐 찾아가서 칼빵이라도 놓을 거야?”
외모에 맞게 무서운 말을 쉽게 내뱉는 남자.
그에.
“역시 제 속을 잘 아는 사람은 선배뿐이네요.”
앞선 남자와 정반대로.
“근데 칼을 쑤셔 넣진 않을 거예요. 목을 잘라 버릴 거거든요.”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해지는 미청년이 더 살벌한 말을 내뱉었다.
미청년은 내뱉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나 미청년과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사이라면 모를 수 없으리라.
“성삼 타운 입구에 보란 듯이 걸어놔야 하니까.”
저 청량한 미소 위에 걸쳐진 살기 어린 눈빛을 말이다.
당연히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건달 같은 남자.
“야 인마!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해!”
박진욱은 물고 있던 담배를 뱉으며 빼액 소리쳤다.
“너 각성자법 모르냐? 이 회장 앞에서 칼만 뽑아도 넌 곧장 빌런행이라고!”
“괜찮아요. 앞에서 칼을 뽑았으면 목은 확실히 딸 테니까.”
“야이 미친!”
김시혁의 대답에 욕을 간신히 집어삼킨 박진욱은.
“하아…… 시혁아. 제발 말이 되는 소릴 좀 해라!”
이 껍데기만 멀쩡한 미친 후배놈에게 애원 아닌 애원을 토했다.
이내.
“그리고 인마. 가족이 바로 앞에 있는데. 그게 할 소리냐?”
옆에 앉은 청아한 미녀를 힐끔 하며 엄한 눈으로 김시혁을 꾸짖었다.
하지만.
“가족? 선배, 쟤가 과연 그 늙은이를 가족이라고 생각이나 할까요?”
김시혁은 한쪽 눈썹을 끌어올리며 삐죽댈 뿐이었다.
“김시혁!”
박진욱의 얼굴이 한층 더 엄해진다.
“네가 애냐? 아무리 화가 나도 정도가 있어! 가족 앞에서 그런…….”
꾸짖음을 내뱉던 박진욱의 말이 끊어진다.
정확히는 막혔다고 해야겠지.
“정도?”
어느새 날아든 괴물 같은 후배의 손에 말이다.
“선배. 그 늙은이 때문에 형이 어떤 고생을 했는데. 지금 정도란 소리를 해요? 예?”
박진욱의 입을 막은 채.
희번덕한 눈을 한 채 읊조리는 김시혁.
다이아 최상급의 암살계인 그가 반응조차 못 했다는 것은 둘째치고.
고작 한 손으로 입을 막은 것뿐인데도.
‘이 괴물 같은 새끼! 힘 하나는 더럽게 세선!’
박진욱은 이 망할 후배놈의 손을 떨쳐내지 못했다.
다행히도.
입을 막은 김시혁의 손은 단단했으나 그뿐.
그 힘에 걸맞은 조임과 고통은 수반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하나.
‘칠 거면 치던가! 새끼가 빡쳤는데도 힘 조절은 왜 하는 거야!’
반응조차 못 하고.
후배의 한 손에 제압당한 박진욱의 자존심은 더욱 금이 갈 따름이었다.
그런 박진욱을.
“김시혁. 그만해.”
청아한 목소리가 구해낸다.
이유정이었다.
“네가 할아버지를 뭐라고 욕하건 상관없는데. 선배님한테 애먼 화풀이는 하지 마.”
“하!”
단호한 이유정의 음성에 코웃음을 치는 김시혁.
그는 박진욱을 놓곤 이유정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스릉.
뒤편에서 조용히 상황을 주시하던 늘씬한 여성.
강다영이 단검을 뽑아 들며, 이유정의 곁으로 붙는다.
“언니, 괜찮아요.”
이유정은 팔을 들어 그런 강다영을 가볍게 물렸다.
“화풀이? 너 지금 화풀이라고 했냐?”
“그럼 아냐? 선배님이 뭐 못 할 말 했니?”
“와! 이유정. 너 진심 기분 나빴나 보네? 내가 너희 늙은이를 욕한 게?”
“전혀. 그리고 그것과 네가 선배님한테 무례한 거는 상관없어. 괜한 걸로 엮지 마.”
“착한 척 오지네. 사람들이 성녀다 뭐다 해 주니까, 네가 진짜 성녀라도 된 거 같냐?”
“너, 대가리 나쁜 거 티 내니? 내가 그 별명 싫어하는 거 아직도 몰라?”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서로를 노려보는 두 남녀.
둘 다 한국에서 가장 핫한 랭커들답게.
고오오오오!
고급스러운 펜트하우스의 내부는 두 사람의 기세만으로 박살 나고 있었다.
박진욱과 강다영은 다급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으나 그뿐.
저 두 괴물을 진정시킬 순 없었다.
그때.
띠링.
박진욱의 품속에서 구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박진욱만이 아니었다.
띠링. 띠링.
기세만으로 난장판을 만들고 있는 김시혁과 이유정의 휴대폰에서도 같은 알림음이 울렸고.
박진욱은 얼른 제 휴대폰을 확인하며 마법의 단어를 내뱉었다.
“시, 시문 님이 방송을 켰어!”
“…….”
“…….”
언제 싸웠냐는 듯.
단숨에 사라져버리는 두 랭커의 기세.
데구르르.
굴러다니는 가구의 파편과 반쯤 깨진 유리잔만이 아까의 살벌함을 알려 주었다.
김시혁과 이유정은 제 휴대폰의 화면을 확인하고는 다시 서로를 노려봤다.
물론 시문의 방송을 담은 휴대폰 화면은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자자! 진정들하고. 하던 이야기나 얼른 마무리하자. 시문 님 방송 안 볼 거야? 어?”
박진욱은 연이어 마법의 단어를 내뱉으며 두 괴물을 진정시켰다.
효과는 확실했는지.
김시혁과 이유정은 얌전히 반파된 소파에 엉덩일 붙였다.
그러곤.
“선배. 화내서 미안해요. 제가 너무 앞뒤 분간을 못 했습니다.”
웬일로 사과까지 하는 김시혁.
이 망할 놈이 웬일이냐? 라는 티는 내지도 않은 채.
“시혁아.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는데. 제발 그 성질 좀 죽여라.”
재차 김시문을 거론하며 김시혁을 달래듯 나무랐다.
“너 자꾸 이런 식으면 언젠가 시문 님한테 걸려 새끼야!”
“네. 선배. 주의할게요.”
잘 조련된 야수처럼.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 김시혁은 건너편의 이유정을 바라봤다.
“너, 그 늙은이한테 정말 아무런 감정도 없는 거 맞지?”
“없어. 조금도.”
“그래? 그럼 내가 그 늙은이의 목을 쳐도 막지 마라.”
“그건 안돼.”
“……야. 너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또다시 사나워지는 김시혁의 얼굴.
이유정은 무표정하게 답했다.
“장난 아냐. 할아버지는…… 내 손으로 처리할 거야. 네가 아니라.”
“뭐?”
예상치도 못한 답이었는지.
김시혁은 물론.
“유, 유정아.”
“그게 무슨 소리니?”
박진욱과 강다영 역시 놀란 눈으로 이유정을 바라봤다.
이유정은 여전히 변화 없는 얼굴로 답했다.
“말 그대로예요. 할아버지는 제 손으로 끝낼 거예요. 그게 맞아요.”
강다영은 얼른 이유정의 어깨를 붙잡았다.
“유정아! 회장님은 네 할아버지야!”
“알아요. 그러니까 더더욱 제가 끝내는 게 맞아요.”
강다영을 돌아보는 이유정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어린다.
“오라버니도, 엄마도. 전부 할아버지가 그렇게 만든 거니까.”
“유정아…….”
그건 지독한 배신감, 그리고 분노였다.
“언니는 알잖아요. 내가 그 사건의 범인을 얼마나 찾고 싶어 했는지.”
이유정의 으르렁거림에.
강다영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입술만 질끈 깨물었다.
10년 전의 사건이 이유정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았으니까.
“할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10년 전 사건까지는!”
헛숨을 삼키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이유정.
그녀의 하얀 목으론 선명한 핏대가 섰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이내.
“후…… 괜찮아요 언니. 할아버지를 미워하는 건 익숙하니까.”
호흡을 가다듬은 그녀는 입꼬리를 끌어올렸고.
떨리는 그 입꼬리에 강다영은 이유정의 어깨를 꽉 쥐었다.
하나 그뿐.
“유정아. 아무리 미워도 가족이잖니.”
“가족? 언니. 오라버니가 아니라 저였어요.”
그녀는 이유정을 막을 수 없었다.
“엄마는 당연하고. 할아버지는 애당초 저까지 노리신 거라고요!”
“…….”
제 딸인 이영희를 죽이려 했고.
손녀인 이유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이순철이 말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유정을 어찌 위로할 수 있겠는가?
꾸욱.
이유정의 어깨를 쥔 강다영의 손에 힘이 실린다.
그 손에서 느껴지는 강다영의 마음을 감싸듯.
“언니. 저 괜찮아요.”
이유정은 강다영의 손등을 부드럽게 쥐었다.
“오히려 홀가분한걸요? 그렇게 힘들게 했던 범인을 찾아내서.”
“유정아. 차라리 부회장님께…….”
“엄마는 안 돼요.”
이영희를 거론하는 강다영에 단호히 고개를 젓는 이유정.
“전 할아버지께 미운 기억밖에 없지만…… 엄마는 아니거든요.”
이유정은 안다.
어미인 이영희는 배경보단 사랑을 택해, 할아버지와 틀어졌을 뿐.
그 이전까진 굉장히 화목했던 관계였다는 걸.
‘늘 하던 이야기가 아버지랑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였으니까.’
어느 모녀간이 그렇듯이.
항상 집안의 남자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으니까.
이영희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버지와 혼인 전, 할아버지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이었는지를 이야기했었다.
그때를 향한 그리움을 숨기지 않고 말이다.
그러니.
“제가 할게요. 언니.”
이 일은 자신이 맡아야 했다.
결연한 이유정의 태도에 강다영은 마지못해 고개를 돌렸고.
“야. 그냥 내가 할게.”
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김시혁이 입을 열었다.
“네가 나서면 패륜이 되잖아. 그냥 나한테 넘겨.”
“빌런이 되는 마당에. 그깟 패륜이 뭐가 문제야?”
“이유정. 강한 척할 필요 없어.”
“강한 척이 아니라 실제로 신경 안 써. 평생 날 미워하신 분이니까.”
본래의 얼굴로 돌아온 이유정은 방송이 진행되고 있는 휴대폰을 바라봤다.
시청자와 소통하는 시문.
그것을 본 이유정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린다.
이내.
“마침 오라버니도 방송 중이시니. 지금 적기겠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야이 씨! 장난하냐!”
“아무리 김시문이랑 같은 편이라도 이건 심하잖아!!”
당황을 넘어.
경악을 표하는 9명의 플레이어들.
그러나.
[지역은 ‘야만의 요새’입니다.]
[공성으로 배정되었습니다.]
[수성 측 인원을 전멸시키거나, 목표 지점을 점령하십시오.]
시스템은 묵묵히 제 할 말만을 이어갈 따름이었다.
“엿됐다! 개조졌다고!”
“하씨…… 차라리 적이나 될걸…….”
“너 때문이야! 새끼야! 괜히 같은 팀이니 뭐니 헛소릴 해서!”
절망하는 플레이어들.
하나 정작 당사자인 시문은 태연하다 못해 즐거울 따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능력에 제재라도 가할 줄 알았는데. 고작 인원수 조정으로 끝내 줄 줄이야.’
당장 주 스탯인 연성력만 212였다.
레벨로만 환산해도 무려 212레벨의 수치란 말이다.
거기다 귀속 스탯인 마기와 용력, 사기가 각각 그 절반인 106.
물론 사기는 현시점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기본적인 죽음 계열의 저항력 등 깨알 같은 옵션들이 있었다.
고로 귀속 스탯의 총합만 318.
거기에 연성력 212를 더하면.
‘연성력 하나가 내는 스탯 효율이 총 530인데…….’
단순 레벨로 환산해도 무려 530레벨에 달하는 수치다.
여기서 큰 영향이 없는 사기 스탯을 제외한다 해도.
424 스탯이라는 괴랄한 숫자가 나온다.
117레벨이라곤 믿을 수 없는 스펙이란 말이다.
한데.
‘이걸 너프를 안 해?’
갤럭시 아레나에서는 고작 인원수 조정으로 마무리한다고?
그것도.
‘9명까지 친히 붙여주고?’
적어도 199대 1이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시문의 미간이 모호하게 찡그려졌다.
“뭐, 나야 좋긴 한데…… 묘하게 자존심이 좀 상하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스펙을 잘 아는 것이 갤럭시 아레나일 텐데.
밸런스를 이렇게 널널하게 잡아주다니?
그러나 이는 시문만의 생각인지.
-?
-갑자기 자존심이 왜 상함?
-설마…… 밸런스 조정 때문에 그런 거?
-지금 인원수 조정해 준 걸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ㅅㅂ! ㅋㅋㅋ 거짓말이지?
-형…… 지금 존심 챙길 때가 아니야…… ㅈ됐다고!!
채팅창은 대번에 불타올랐고.
“자존심이 상해? 설마 지금 밸런스 조정을 보고 하는 소리예요?”
“이봐요. 김시문 씨, 지금 이 밸패가 불편해야 하는 건 우리라고요!”
“미스터 킴. 실제로 보니 굉장히 오만한데.”
“아무리 마법계라지만 오버 아닌가? 여기 플래티넘 상위권이라고.”
시문과 함께 남은 9명의 플레이어들 역시 눈에 불을 켜며 언성을 높였다.
정확히는 8명이라고 해야겠지.
“…….”
단정한 차림의 미소년.
아레나에 어울리지 않게 교복을 입고, 또 그런 의상과 더더욱 어울리지 않게,
기다란 일본도를 등에 멘 그는 가만히 시문을 바라봤다.
이내.
저벅.
미소년이 걸음을 옮긴다.
그에.
“저 녀석은…….”
“뭐야. 쟤도 이 팀에 걸렸어?”
“하긴, 요즘 날아다니잖아. 10명이면 소수 정예로 줬겠지.”
미소년을 힐끔 한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수군거렸고.
뚝.
걸음을 옮기던 미소년은 잠시 멈췄다.
그리곤.
“소수 정예?”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들은 것처럼.
불쾌감이 가득한 얼굴로 돌아보는 미소년.
“어째서 소수 정예라는 말이 나오는 거죠?”
소년의 반응에 플레이어들은 당황스럽게 서로를 힐끔 하곤 답했다.
“유우토 너랑 김시문만 해도 이미 여기 매칭에선 최상위권이잖아.”
“우리도 어디 가서 그리 밀리는 수준은 아니고.”
“맞아! 아마 우리 10명의 MMR을 통계 내면 190명인 저쪽보다도 더 높을…….”
“하!”
더 듣기도 싫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플레이어의 말을 자르는 유우토.
“김시문. 저분까진 인정하겠습니다.”
그는 다소 앳된 나이와 맞지 않게.
“하지만 당신들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쪽 MMR을 깎아 먹는 존재니까요.”
경멸이 가득한 눈초리로 플레이어들을 쏘아보았다.
“그러니 은근슬쩍 우리라는 말로 엮지 말아 주세요. 불쾌하니까.”
당연하게도.
“뭐, 뭐라고!”
“저 어린놈의 새끼가!”
“마사무네가 밀어준다고 뭐라도 된 것 같냐? 어!”
8명의 플레이어들은 눈을 부릅뜨며 핏대를 세웠다.
하나 유우토는 그들의 성을 깔끔히 무시한 채.
“오랜만이군요. 시문 씨.”
김시문을 향했다.
“오랜만입니다. 유우토.”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보다 한참 형이신데.”
편하게 다가오는 유우토에 시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우토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냉담하게 바라보던 것과 달리.
“저번 플래티넘 데뷔전에서도 느꼈지만, 당신은 늘 파란을 몰고 다니시는군요.”
호의가 어린 눈으로 시문을 바라봤다.
그에 시문은 의아한 얼굴로 답했다.
“어, 음…… 그런가?”
“파란으로도 느끼지 않는 겁니까? 하긴, 당신 정도 되는 분에겐 그럴 수도 있겠네요.”
혼자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
“강자는 늘 차분한 법이니까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까 당신이 하신 그 발언까지도 말이죠.”
진중한 표정으로 저 혼자 말하곤 고개를 끄덕이는 유우토.
이내.
“그런데…….”
무언가를 찾는 듯.
유우토는 시문의 주변을 힐끔거렸다.
“그 아이는 이곳에 없는 걸까요?”
“아이?”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시문은.
“아! 시연이 말하는 거구나.”
시연이를 떠올리곤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시여니. 그런 이름이었죠.”
유우토 역시 고개를 끄덕이자, 시문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유우토도 시연이의 팬인가 보네. 하긴, 우리 시연이가 좀 귀여워야지.’
순하고 밝은 데다 외모도 좀 이쁜가?
아이는 인종, 나라를 불문하고 사랑스러우니.
국제적인 팬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현상이었다.
시문은 벅차오르는 뿌듯함을 숨기지 않았다.
“시연이는 바빠서 이번에 같이 못 왔어.”
“바빠요?”
“어, 요즘 내 일을 좀 도와주느라고 바쁘거든.”
“대체 어떤 일이기에 그만한 아이를…….”
“아아. 언니랑 뭘 좀 만드는데. 그게 재밌는지 홀딱 빠져 있어.”
“어, 언니랑?”
점차 난해함으로 일그러지는 유우토.
뭐가 그리 충격적인 것인지.
“그만한 애가 그렇게 신경 쓰던 언니와 대체 뭘…….”
공포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어둡다 못해 눈동자까지 파르르 떠는 유우토.
시문은 잠시 볼을 긁었다.
‘뭔가 자기만의 세상이 있는 앤가?’
당황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뭐, 전생에도 소속이 문제였지, 애는 괜찮았으니까.’
전생의 유우토를 잘 아는 시문으로선, 음울하게 쳐진 유우토가 나쁘게 보이진 않았다.
그때.
화르르르!
뜨거운 열기와 함께 무언가가 허공에서 날아들었다.
저 멀리 우뚝 솟은 야만의 요새에서 날아드는 불덩이였다.
‘수성일 텐데 여기까지 공격을?’
시문은 인상을 찌푸렸다.
‘밸런스 조정으로 여유가 있다 이건가.’
시문은 불덩이를 향해 손가락을 들었으나 그뿐.
다시 손을 거두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새 음울함에서 벗어난 유우토의 검이.
서걱.
5성급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불덩이를 반으로 갈라버렸으니까.
콰앙!
후끈한 열기를 동반한 폭발이 머리칼을 어지럽힌다.
“뭐, 됐습니다. 단둘이면 아레나의 난도는 많이 올라가겠지만, 그것도 나름 클리어하는 재미가 있겠죠.”
시문으로서는 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유우토.
그에 시문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X랄하고 있네!”
악에 받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누구 마음대로 클리어야!”
함께 팀이 된 8인의 플레이어들이었다.
“누가 너희랑 게임을 해 준데? 난 안 해!”
“나도 안 해! 어린놈이 싸가지가 없어서는!”
“클리어하는 재미는 개뿔! 10대 190이라고!”
“애새끼들은 이게 문제야. 저가 뭐라도 되는지 안다니까.”
“김시문 저 새끼도 똑같아. 저런 놈이랑 말이나 섞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플레이어들.
유우토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무슨 말이긴! 어린 새끼가 벌써 귓구녕이 망가졌냐? 안 한다고!”
“왜? 안 한다니까 쫄리냐? 이미 늦었어!”
“어차피 다이아 갈 것도 아니라서. 난 이기든 지든 상관없네요~.”
“무릎 꿇고 대가리까지 박으면 뭐, 버프 정돈 생각해 볼게.”
“김시문까지 박으면 공성도 생각해 보고.”
아레나를 뛰지 않겠다는 플레이어들의 으름장에 유우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린 것도 좋지야 않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닌가 봅니다.”
“뭐?”
“다 떠나서, 제가 언제 10대 190이라고 했죠?”
그 말에 눈을 끔뻑이는 8인의 플레이어들.
“전 ‘단둘’이라고 했습니다만?”
유우토는 다시 한번 아까 한 말을 되뇌었고.
“이 새끼가!”
“처음부터 우린 안중에도…….”
8인의 플레이어들이 성을 토하기도 전에.
“알았으면 이만.”
서걱.
“죽어 주세요.”
8개의 머리가 일제히 허공을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