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화
179화. 진범 (1)
세계 각성자 연맹.
각국을 대표하는 정상들과 플레이어 세력으로 설립된 단체로.
각성자 법의 제정부터 빌런 지정, 아웃 브레이크 관련 등.
갤럭시 아레나와 연관된 모든 부분에서 세계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곳.
그런 연맹의 회의장은 오늘.
“다들 모이셨으니, 어제 진행했던 안건에 대해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꽤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랭커. 철벽의 성녀 이유정에 대한 처분입니다.”
평범한 플레이어도 아닌, 무려 랭커에 관한 처분이 결정되는 날이었으니까.
삑.
원형으로 이루어진 회의장에 중심으로 청아한 미녀가 떠오른다.
그 옆으론 그녀에 대한 세부 내용이 공용어인 영어로 나열되어 있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유정은 현재 비각성자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혐의라뇨? 살해한 것이 맞지 않습니까.”
앞쪽 자리에 앉아있던 동양인 남성이 손을 든다.
그의 자리엔 붉은 국기와 용의 문양이 섞인 명판이 놓여 있었다.
“스스로도 살인을 자백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도 중국 측의 말에 동의합니다. 당사자가 인정했는데, 혐의라는 표현은 옳지 않아 보이는군요.”
옆에 앉아 있던 금발의 남성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 곁으로.
“저희 파키스탄 역시 중국과 러시아 측에 동의합니다.”
“저희 세르비아도…….”
줄줄이 이어지는 각국 대표들의 동의.
그에.
“죄송합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진행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말을 정정했다.
“비각성자를 살해한 이유정의 처분에 대해 최종 논의와 판결을 진행하겠습니다.”
“뭐, 논의할 게 더 있겠습니까?”
러시아 측 대표가 어깨를 으쓱하며 주변을 돌아본다.
“개인적인 원한으로 비각성자를, 그것도 제 할아버지를 살해했잖아요.”
“다들 어제 자료를 보시지 않았습니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회장실로 향하던 것을.”
“영상으로 보는 데도 비정함이 절로 느껴지더군요.”
줄줄이 호응하는 대표들.
아까 혐의라는 표현의 정정을 요구했던 대표들이 대부분이었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중국 대표가 종지부를 찍었다.
“일단 이유정을 빌런으로 지정하고, 그에 맞게 처분을 내리면 될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이유정을 빌런으로 정리해 버리는 분위기.
그때.
“너무들 급해 보이십니다만.”
중저음의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렸다.
앞선 대표들과 마찬가지로 회의장 가장 앞선에 앉은.
“빌런으로 지정하는 사안인데. 절차도 없이 그리 성급하게 결정해서야 되겠습니까?”
민머리의 중년 흑인이었다.
그의 책상 위론 성조기가 담긴 명판이 놓여 있었다.
“마커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세르비아 대표가 되묻자.
“말 그대로입니다. 빌런으로 분류한다는 건, 곧 세계의 공적으로 낙인찍는 일 아닙니까? 이런 사안은 본디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야지요.”
마커스는 젠틀한 미소로 답했다.
파키스탄 대표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이미 본인이 다 자백하지 않았습니까? 거기다 이유정은 랭커입니다. 범죄 위험성이 상당하단 말입니다!”
“저도 랭커가 저지르는 범죄에 대한 위험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 미국만큼 그 위험을 잘 아는 나라는 없겠죠.”
“그건…… 그렇지요.”
파키스탄 대표는 잠시 주춤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최고의 빌런 조직인 데스페라도.
그들의 악명을 최대치로 높인 사건이 바로,
“백악관도 서슴없이 테러할 수 있는 이들이 랭커급 빌런이잖습니까?”
미국의 백악관 테러 사건이 아니던가?
당시의 전 세계적인 충격은 물론.
세계 각성자 연맹이 설립된 후, 가장 거대한 사건 중 하나였다.
그것을 잘 알기에.
“그걸 아시는데도…… 절차를 논하십니까?”
파키스탄 대표는 아까처럼 강경하게 나오지 못했고.
“편하게 말씀하십쇼. 뭐, 이젠 농담으로도 올릴 수 있는 사건 아닙니까? 어제 토크쇼에서도 나오던데.”
마커스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하지만.”
이내.
“위험성이 높다고 절차를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지요. 세계의 공적으로 인정하는 일 아닙니까?”
착 가라앉은 사무적인 눈으로 말하는 마커스.
이어.
“동의합니다. 거기다 이유정은 일반 경찰에 얌전히 구속되었잖습니까?”
“맞습니다. 만약 그녀가 진정 빌런이었다면, 한국의 사망자는 이순철 하나로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애당초 그녀가 자백했다는 것도 의문스러운 부분이 많더군요.”
“그렇죠. 애당초 대놓고 CCTV에 제 행적을 다 드러낸 낸 것부터가 말이 되질 않아요.”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서야…… 한데 이유정은 랭커에 성삼의 단독 상속자 아닙니까?”
“맞습니다. 어느 쪽이건 최상위계층인 그녀가 인생을 포기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곁에 있던 대표들이 줄줄이 말을 보탠다.
또한.
삑.
삐빅.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던 대표들의 자리 위로 녹색 불이 하나둘씩 켜졌다.
현 의견에 동의한다는 신호였다.
대충 헤아려도 절반이 넘어가는 숫자.
그에.
“아, 아니!”
“갑자기 왜들 저래?”
“어젠 다들 빌런 지정에 동의하던 분위기 아니었어요……?”
러시아와 파키스탄을 비롯한 이유정의 빌런 지정을 찬성했던 대표들이 작게 수군거린다.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던 중국 측 대표.
위안훙은 미간을 슬쩍 찌푸리곤 물었다.
“결국 모두 추측이지 않습니까? 또 이유정이 추가적인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오늘 아침의 보고론 이유정이 한국의 협회로 수감되었다더군요.”
“마커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녀는 랭커입니다.”
“압니다. 그리고 한국 협회의 책임자도 랭커죠. 철목왕이 어떤 이인지는 중국 측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주 잘 알죠.”
“그를 잘 아신다면, 절차대로 진행하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능글거리며 웃는 마커스.
위안훙은 입술을 슬쩍 깨물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 김무열을 거론하다니…….’
철목왕 김무열.
한국의 협회장인 그가 중국, 정확히는 대륙성과 긴밀한 관계라는 건 이곳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 김무열이 언급된 마당에.
‘여기서 더 나가면 우리가 김무열을 무시하는 것밖에 되지 않아.’
여기서 더 토를 달다간 김무열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특히 대외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으나.
‘강화위 때도 그렇고. 안 그래도 저번 암살의 실패 이후로 우리와 거리를 두는 모양새인데…….’
최근 대륙성은 김무열과의 교류가 눈에 띌 정도로 뜸해진 상황.
‘창왕께서도 그와의 관계 개선 신경 쓰고 계시지.’
대륙성의 주인인 종리추마저 그와의 관계 개선을 주시하는 와중인데.
여기서 자신이 김무열의 위신을 깎아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음흉한 깜둥이 같으니!’
위안훙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좋습니다. 절차대로 진행하시죠.”
겉으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 현명하십니다. 그럼 진행자님? 절차대로 가시죠.”
마커스는 싱긋 웃으며 진행자를 바라봤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유정의 빌런 지정에 대한 최종 투표는.
“과반수의 반대로 이유정의 안건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과반수의 ‘반대’로 마무리되었다.
* * *
세계 각성자 연맹의 회의가 끝나고.
“마커스.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안드레아.”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으며 자리를 떠나는 대표들.
원형 회의장 가장 안쪽에 앉았던 만큼.
마커스는 가장 마지막에 퇴장을 했고.
이는 위안훙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대체 무슨 속셈입니까? 마커스.”
위안훙은 물을 수 있었다.
“아! 미스터 위. 뭘 물으시는 건지?”
“모른 척하지 마십쇼. 이유정에 대한 안건 말입니다.”
오늘 마커스와 유일하게 대립한 안건에 대해서 말이다.
애당초 마커스와는.
정확히 미국과는 연맹의 초기부터 잦은 다툼과 마찰이 있었었지만.
“왜 갑자기 뜻을 바꾼 겁니까?”
이번만큼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까지만 해도, 이유정을 빌런으로 지정하는 데 찬성하시지 않았습니까?”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미국의 대표인 마커스는 이유정의 빌런 지정을 찬성했었으니까.
마커스뿐만이 아니었다.
“캐나다도 그렇고, 유럽과 중동, 심지어 일본까지. 모두가 말을 바꾸더군요?”
이유정의 안건이 올라왔던 어제.
한국을 비롯한 소수의 국가를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의 대표가 이유정의 빌런 지정에 대해 암묵적인 찬성을 고해왔었다.
당연했다.
“이유정이 사라지면 당신들에게도 이득이지 않습니까?”
“어허! 미스터 위.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랭커는 플레이어의 최정점.
바꿔말해 국가가 지닐 수 있는 최고의 인적 전력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런 랭커를 하나 없앨 수 있다면.
당연히 해당 국가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우리 둘밖에 없는데 솔직해집시다. 마커스. 지금의 한국은 갤럭시 아레나 전과 비교하면, 너무 크지 않습니까?”
갤럭시 아레나의 등장 이전.
핵 보유 숫자를 따졌을 때처럼 말이다.
“이유정은 현 한국에서 가장 핫한 랭커 중 하납니다. 그런 그녀가 사라지면, 당신들도 손해 볼 건 없을 텐데요?”
“미스터 위. 우린 세계 평화를 위해 존재합니다. 연맹의 일원으로서 그런 발언은…….”
마커스의 진중한 중재에도.
“심지어 정당한 명분으로 처단하는 일 아닙니까?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셨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군요.”
위안훙은 그의 말을 잘라내며,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잠시 침묵하며 그런 위안훙을 가만히 바라보던 마커스는.
“당신들에게는 연락이 가지 않았나 보군요.”
허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렇게 정체 모를 말을 남긴 채.
“곧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이, 이봐요. 마커스!”
설렁 손을 흔들곤 회의장을 나섰다.
그의 쌍꺼풀진 눈엔 희미한 즐거움이 어렸다.
‘보아하니 아까 빌런 지정에 반대했던 국가들은 전부 제의를 받지 못했나 보군. 하긴…….’
그러니 저렇게 반대를 해댔겠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미소까지 머금으며 곧장 제 사무실로 향하는 마커스.
이는 단순히 일이 잘 해결된 즐거움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성격상, 아마 지금쯤이면 도착해 있겠지.’
마커스의 예상대로.
“오셨군요.”
사무실의 문을 열자.
세련된 오피스룩에 깔끔하게 뒤로 묶은 금발.
그리고 차가운 인상을 지닌 미녀가 얇은 안경테를 올리며 그를 맞이했다.
“아. 올리비아. 많이 바쁘실 텐데. 굳이 이곳까지 들러주셨군요.”
“마침 시간이 생겨서요. 감사 인사도 드릴 겸 들렸습니다.”
그 말에.
“하핫! 누가 영입부의 전설 아니시랄까 봐, 말씀도 참 잘하십니다.”
호쾌한 웃음을 터뜨린 마커스는.
“제가 유명하신 윈터 퀸의 성격을 모르겠습니까? 보나 마나 일이 잘 진행되었는지, 직접 확인하러 오셨겠지요.”
“뭐, 그것도 겸사겸사죠.”
일말의 부정도 없는 올리비아에 다시 폭소를 터뜨리는 마커스.
그는.
“이거 제가 영 못 미더우셨나 봅니다?”
“연맹 설립부터 미국을 대표하셨던 분인데. 감히 어찌 그러겠습니까.”
“하핫! 미녀의 칭찬은 늘 즐겁군요. 안 그래도 오실 줄 알고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해뒀는데. 어떻습니까?”
장난스럽게 눈을 찡끗하며.
“식사라도 하시면서 차분히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게?”
감히 윈터 퀸에게 애프터를 신청했고.
“전 이제 보상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해서요.”
올리비아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잘 해결하신 것 같으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주 대차게 걷어차 버렸다.
* * *
[충격! 이순철 회장 살해 범인, 이유정이 아니다?]
[협회측 ‘이유정 범인 아닐 가능성 다분’]
[그럼 진범은 누구? 이순철 회장 살인 사건, 대대적인 재조사 착수!]
[이유정은 왜 자신이 죽였다 시인했나? 의문]
각종 포털 사이트로 우르르 쏟아지는 기사들.
이뿐만이 아니었다.
[70% 이상이 반대표! 이유정 빌런 아니야]
[세계 각성자 연맹, 이유정 빌런 지정 반대했다?]
[연맹의 결정에 신뢰가 더해지는 이유정의 무혐의!]
[‘이유정은 조국의 귀중한 인재,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 의지를 불태우는 협회장]
모두가 주목하는 이유정의 빌런 지정 유무.
그것이 70% 이상의 반대표로 불발되었다는 기사까지 퍼지면서.
-아니 ㅅㅂ 뭐가 어떻게 되는 거임?
-누구 말이 맞는데? 이유정이 안 죽인 거 맞음?
-맞으니까 연맹이 빌런 지정을 반대했겠지.
-근데 왜 자기가 죽였다고 했냐?
-그러니까 그걸 알아보려고 재수사한다고 하잖아. 난독임?
-역시 우리 성녀님이 그럴 리가 없지.
-ㄹㅇ 이유정 방송 안 봤냐? 패륜 저지를 분이 절대 아니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온갖 커뮤니티가 들끓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본 시문은.
‘예상대로 굴러가네.’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휴대폰 화면을 툭툭 넘겼다.
‘반대 기사도 거의 없고. 하긴, 저번에 맞서는 세력들이 어떻게 되는지 봤을 테니.’
전갈 길드를 위시로.
국대 플래티넘부에서 논란을 만들고 언플했던 세력들.
그들은 전갈 길드의 부길마 김종준의 자백 영상을 기점으로 대거 쓸려나간 상태였다.
특히나 언론은 티만 나지 않았을 뿐.
숙부 김무열의 성격상, 아예 끝장을 냈을 터.
그러니.
‘미치지 않고서야. 반대 기사를 낼 엄두는 못 내겠지.’
대놓고 여론을 잡으려는 움직임에도.
감히 의문 제기나 반대 기사 따위는 쉽게 내지 못하겠지.
물론 인간은 망각의 생명체인 만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머리를 치켜들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손봐주면 되니까.’
시문은 산뜻한 움직임으로 휴대폰을 집어넣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형.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그 산뜻한 발걸음을 청량한 목소리가 붙잡는다.
시문은 몸을 돌려 물었다.
“뭐가?”
“세계 각성자 연맹 말이야.”
휘둥그레진 눈으로 들고 있는 휴대폰과 시문을 번갈아 보는 김시혁.
그가 놀란 이유야 간단했다.
“대체 뭘 어쨌길래. 연맹에서 반대표가 70%나 나와?”
방금 시문이 보았던 뉴스를 김시혁 역시 본 것이다.
이는 뒤따르던 박진욱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는 이미 시문의 지시를 이행하며,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고 있는 상태였다.
시문은 묵묵히 뒤따르는 박진욱을 힐끔하곤 말했다.
“성장 버프로 적당히 구워삶았다.”
“……세계 연맹이 성장 버프로 구워삶는다고, 삶아지는 곳이었어?”
“뭐, 요리사가 하기 나름이지.”
“…….”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는 시문.
그에.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형은 참 놀라운 일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경향이 있어.”
김시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시문은 한쪽 눈썹이 비쭉 올렸다.
“야 김시혁. 그거 칭찬이냐?”
“당연하지!”
“그럼 됐다.”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는 마저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시문은 폴리스라인이 설치된.
그러니까 노란 테이프가 죽죽 그어진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옆으로 자리한 두 명의 정장인.
각성자로 보이는 정장인들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협회장님께 연락 받았습니다.”
“얼마든지 살펴보십쇼.”
폴리스라인을 치우고 친히 문까지 열어주는 협회의 인사들.
“감사합니다.”
시문은 작게 감사를 표하곤 성삼의 회장실로 들어섰다.
사건 현장답게.
곳곳에 노란 번호판들이 즐비했으나 그뿐.
현장 보존은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사실 현장 보존이랄 것도 없었다.
“깔끔하네.”
따로 현장이 망가질 만한 일은 없이.
이순철 회장의 목만 딱 날아간 현장이니까.
시문은 이순철 회장의 책상으로.
정확히는 하얀 분필 윤곽이 그려진 곳을 향했다.
고급스러운 의자는 말라버린 피로 얼룩져 있었고.
의자 옆으로 동그란 윤곽이 그려져 있었다.
‘여기가 머리가 떨어진 곳이겠지.’
시문의 시선이 자연스레 머리가 떨어졌던 곳의 반대편을 향한다.
반쯤 문이 열린 거대한 창문이 보였다.
‘역시.’
그곳을 본 시문의 눈이 반짝인다.
시문은 의자의 머리 부분부터 허공을 쓸며, 천천히 거대한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에.
“형. 뭐 하는 거야? 벌써 뭔가를 알아낸 거야?”
김시혁은 영문 모를 얼굴로 물었고.
시문은 거대한 창문까지 도달하곤.
“어.”
탁.
고개를 끄덕이며 반쯤 열린 창문틀을 두드렸다.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야.”
그 말과 함께.
스아아아이.
검보라색의 음산한 기운이 시문이 쓸어온 허공을 타고.
그대로 의자의 머리 부분까지 쭉 이어졌다.
“저, 저건!”
“공허?!”
공허로 죽 그어진 선.
그것을 본 김시혁과 박진욱은 경악을 토했다.
[성좌 검은 염소의 ‘이건 망할 혼돈 새끼의 기운이잖아?!’ 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예상치도 못했던 존재의 경악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