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191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1)
-시문 님을 못 믿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비즈니스라는 게……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다소 조심스레.
그리고 정중히 들려오는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
“알죠, 알죠. 개인 간의 거래도 아니고, 이런 건 확실히 해야죠.”
시문은 고개를 주억이며 답했다.
“유정이 일을 도와주신 건,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때 제가 걸었던 조건도요.”
-그러면 이번에 갱신될 성장 버프의 대여는 3개월로 해주시는 겁니다?
“물론이에요. 참! 그리고 이번에 버프도 한 번 더 향상시키고, 추가로 길드 인원도 더 받을 예정이거든요.”
시문의 말이 끝나자마자.
-얼마가 되었든! 추가되는 티오는 저희가 전부 대여하겠습니다!
곧바로 날아드는 목소리.
윈터 퀸을 아는 이가 들었다면 기함을 토할 정도로.
-저번 스카웃 때처럼 원하시는 조건을 말씀만 하시죠. 저희 아메리칸 드림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올리비아 덴슨은 높아진 톤으로 말을 쏟아냈다.
그에 잠시 눈이 동그래지는 시문.
이내.
“죄송하지만 올리비아. 티오를 전부 드릴 순 없어요.”
시문은 부드럽게 답했고.
-시문 님, 아직도 저희의 진심을 모르시나 보군요. 원하신다면 당장 길마 자리도 양도할 수 있는!
답지 않게 흥분한 올리비아는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올리비아.”
시문은 그녀를 진정시키듯.
차분히 말을 이었다.
“어느 한 곳의 인원만 받을 거였으면, 애당초 한국의 플레이어들에게만 대여해 줬을 겁니다.”
-그들이 저희만큼의 비용을 지불할 여건은 되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올리비아. 제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알잖아요.”
-……후, 죄송합니다.
짧은 한숨과 함께 이어지는 사과.
-말씀하신 변화에 제가 잠시 흥분했었나 봅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죠.
“뭘 사과까지야, 충분히 이해해요. 성장 버프를 보유한 저로서도 놀라운 일이니까요.”
싱긋 웃은 시문은.
“아빠!”
어느새 도도도 달려와 품에 쏙 안기는 시연이를 한 팔로 안아주었다.
중요한 통화라는 걸 아는 건지.
“우움.”
따로 보채는 것도 없이.
품속으로 얼굴만을 비벼오는 시연.
그런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준 시문은 말을 이었다.
“어느 정도 눈치채셨겠지만, 전 성장 버프를 최대한 각국의 인재분들과 나눠 쓸 생각입니다.”
전생의 지구.
그리고 멸망 직전까지 살아본 시문은 안다.
‘나 혼자 아무리 성장해 봐야, 모든 걸 해결할 순 없어.’
아무리 강해지더라도 혼자서는 멸망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당연했다.
‘그 강력하던 시혁이도 말숙이도. 결국은 죽어 버렸으니까.’
그 원인이 같은 인간에 의해서든,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서든.
세상을 호령하던 최강의 하이랭커들도 결국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이했다.
혼자서는 아무리 강해도.
지구의 멸망을 막을 수 없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헤헤.”
품속에서 해맑게 웃는 시연이.
시연이뿐만이 아니지.
세상 모든 아이들과 자식을 둔 부모들.
그리고 그 친인척이나 지인, 혹은 친구들까지.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사람 사는 세상을 지키고 싶었다.
즉, 현재의 지구를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성장 버프 같은 건, 최대한 여러 나라와 나눠야 한다.’
물론 모두가 살아남을 순 없을 거다.
전생에도 바티칸, 모나코 등.
작은 나라들을 시작으로 많은 나라가 아웃브레이크로 멸망해버리지 않았나?
하나 그렇다 해도.
‘전생보다야 피해가 덜할 테니까.’
어차피 성장 버프를 대여하는 이들은 각국의 최고 유망주들.
차기 랭커가 될 그들의 가치를 따져보면.
전생과는 분명히 그 결과가 다를 터였다.
“이것 참…….”
문득 피식 웃음이 흘렀다.
시문은 그런 웃음의 원인을 고스란히 내뱉었다.
“웃기죠? 버프를 돈 받고 대여해 주는 놈이, 세상 위하는 척 말을 하고.”
다소 자조적인 웃음.
그러나.
-아뇨?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는 대번에 그런 웃음을 부정했다.
-솔직히 아직도 시문 님의 저의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그게 뭘까요.”
-어떤 세력이든 간에. 그만한 성장 버프를 얻었다면, 결코 타 국가나 길드와 공유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
“이렇게 돈을 받고 판다고 해도요?”
-당연하죠! 그깟 돈이 문젭니까?
올리비아는 딱 잘라 말했다.
-국가대항전부터 길드전, 그리고 다른 이벤트전들까지. 어차피 모두가 적인데, 그들을 키워 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녀의 말에 시문은 헛웃음을 머금었다.
‘그래, 이게 현 지구의 마인드지.’
오로지 나와 내 소속만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 잘못되었거나 나쁘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지만.
‘이런 마인드 때문에, 나라가 멸망하는데도 서로 섣불리 손을 내밀지 않았어.’
전생의 지구에선 다들 이기심을 기반으로 서로를 견제했었다.
당연히 이는 자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이상.
타국의 멸망을 방관하기만 했었고.
결국 그간 수많은 역사가 증명해 온 대로.
다음 타깃은 그들이 되어, 인간은 착실히 지구에서의 영역을 잃어갔었다.
물론.
‘뒤늦게 원조를 하긴 했지만, 지구의 절반 가까이가 이미 인간의 영토가 아니었지.’
핵까지 쏘아대며 결사항전을 하긴 했으나, 이는 일시적인 처리일 뿐.
아레나 실패의 여파로 계속 등장하는 아웃 브레이크를 매번 핵으로 처리할 수도 없었고.
결국 지구만 피폐해지는 자해 행위밖에 되지 않았다.
전생을 되짚던 시문의 상념을.
-그런 시선에서 볼 때, 솔직히 시문 님의 이런 버프 대여 방식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일깨운다.
-만약 시문 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정말로 범지구적인 발전을 위해 이러시는 거라면…….
말끝이 흐려지는 올리비아.
시문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뒷말을 이어주었고.
“진성 호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처음엔 그리 생각했습니다만. 레오니 볼프와의 아레나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비록 통화라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사람은 그냥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 말이죠.
천하의 윈터 퀸이 왠지 따스하게 웃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착각일까?
멋쩍은 듯.
“그건 좀 낯뜨거운 말씀이신데 말이죠.”
볼을 슬쩍 긁는 시문.
이내.
“하지만 그렇게 말씀해주셔도, 가입 티오는 안 늘려 줄 겁니다.”
시문은 장난스럽게 답했고.
-후후. 역시 만만치 않으시네요.
올리비아 역시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어쨌거나 올리비아? 당신과의 약속은 지킬 테니 걱정 마세요.”
-알겠습니다. 혹시 몰라 통화내용은 녹음했습니다만…….
“잘하셨어요. 혹여나 제가 번복한다면 꼭 써주세요.”
-꼭 그러겠습니다. 그럼 2일 후에 뵙지요.
통화가 끊어진다.
“…….”
잠시간의 침묵.
그러나 시문의 입가는 부드럽게 휘어있었다.
‘예상치도 못한 사람한테서 이런 소릴 들을 줄이야.’
윈터 퀸 올리비아 덴슨.
그녀가 얼마나 차갑고 냉철한지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던 자신이었건만.
‘전생의 기억도 마냥 믿을 만한 건 아닌가 봐.’
피식 웃는 시문.
그에.
“아빠, 기분 조아?”
품속에서 사부작거리던 시연이 물어봤고.
“응, 그런가 봐.”
“아빠가 조으면 시여니도 조아!”
시문은 해맑게 웃는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우리 공주님. 누굴 닮아서 이렇게 이뻐?”
“아빠 달마써!”
“아구! 어쩜 말하는 것도 이리 이쁜지.”
“헤헤!”
시연이의 말캉한 볼에 얼굴을 비비는 시문.
그렇게 연구실의 휴식 공간에서 아빠와 한동안 뒹굴던 시연은.
-시연아. 나 좀 도와줘~.
“웅! 언니!”
현자의 돌의 부름에 작업대로 달려갔다.
그런 시연이의 뒷모습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던 시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슬슬 준비해야지.”
허공으로 살짝 손을 젓는 시문.
그러자.
[업적 상점]
길드 인원수 확장 - 1,000p
인벤토리 확장 – 500p
조촐한 업적 상점창이 떠올랐다.
‘아직 비정규 아레나라서 그런지, 파는 게 영 없네.’
스펙과 관련된 물품은 하나도 없는 업적 상점.
하나.
‘그래도 칭호랑 퀘스트 같은 걸 많이 깨다 보면, 여기에 스탯 판매가 추가되겠지.’
전생의 시혁이와 말숙이가 알려 주었던 것처럼.
수치로 형상화되지 않은 플레이어 개인의 업적이 쌓이는 순간.
스펙 성장과 가장 직결적으로 연결되는 스탯이 판매될 터였다.
거기다.
‘다음 주면 사망 페널티를 방지해 줄 면사권도 생길 테고.’
또 정규 아레나에 들어가면 몇 가지가 더 추가될 터.
‘일단은 인원수부터 늘리자.’
시문은 업적 포인트를 투자해 길드 인원수를 확장시켰다.
1,000점으로 수용 가능한 길드 인원이 50명 늘었고.
그다음은 3,000점으로 100명의 수가 떠올랐다.
시문의 이마에 작은 주름이 진다.
“미승인 국가까지 따지면 대충 206개국 정도니까…….”
잠시 턱을 톡톡 두드리는 시문.
“이거 업적 포인트 좀 먹겠는데?”
애당초 업적 상점의 판매 목록이 이런 것들이라.
비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었지만.
업적 포인트가 무력으로 직결되는 시문으로선 나름 속이 쓰린 값이었다.
하나 어쩌겠는가?
전 세계를 상대로 가입 인원을 더 받으려면 늘려야 하는 것을.
“이번 소정규로 성장 버프의 관심도 커질 테니. 한 1만 점 정도는 투자하자.”
시문은 길드 인원수를 1만 점에 맞춰 확장했고.
확장된 인원수를 확인했다.
‘총 800명 정도 더 받을 수 있네.’
206개국을 기준으로 약 3, 4명은 더 받을 수 있는 숫자.
“일단 부족하면 나중에 더 늘리는 걸로 하고.”
시문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곤.
따악.
곧바로 세계수의 씨앗 조각을 연성했다.
[요구치에 맞는 연성을 이루기에는 연성력이 부족합니다.]
[현자의 돌이 부족한 등가교환을 성립시키기 위해, 업적 포인트 20,000점을 요구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익숙하게 떠오르는 메시지.
자연스레 예를 택하려던 시문의 손이 멈칫한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뭐야? 갑자기 2만 점이라고?”
등가교환.
분명 세계수의 씨앗 조각을 연성할 때 들었던 업적 포인트는 1만 점이었거늘.
지금의 메시지창엔 2만 점이라고 적혀 있지 않은가?
그때.
-오빠도 알잖아. 이런 영구제 연성물은 뒤로 갈수록 요구하는 가격이 높아지는 거.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세계수의 씨앗 조각도 이제 값이 높아질 때가 된 거지.
어느새 다가온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
그에.
“하긴.”
시문은 고개를 주억이는 시문.
“이번에 연성하면 경험치 증가만 50%가 되니까.”
천마신공이나 옵시디언 타블렛도 강해지는 만큼.
그 대가가 늘지 않던가?
시문은 ‘예’를 택하곤 즉시 연성을 시작했다.
차르릉.
맑은 이명과 함께 짙은 녹음이 손끝에 맺힌다.
이전과 제법 달라진 연성 임팩트에.
‘혹시 새 옵션이라도 추가되는 건가?’
시문의 눈에는 작은 기대감이 어렸고.
[세계수의 씨앗 조각이 일정량 모였습니다.]
[씨앗의 형태가 어느 정도 잡힙니다.]
[칭호 ‘세계수의 동반자’에 새로운 옵션이 추가됩니다.]
그런 기대감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시문은 곧바로 칭호창을 열었다.
[세계수의 동반자] - 성장형
세계수의 동반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소속 길드원의 경험치 50% 증가.
-소속 길드원의 스탯 성장률 110% 증가.
-7일마다 특정 판정을 제외한 사망 페널티를 1회 무효화시켜줍니다.
“어엇?!”
놀란 토끼처럼 동그래지는 시문의 눈.
무리도 아니었다.
40%에서 50%나 오른 경험치 증가.
90%에서 110%나 오른 스탯 성장률도 그렇지만.
“매주 사망 페널티를 1회 무료화해 준다고?!”
일주일에 1번.
사망 페널티를 무효화해 준다는 옵션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시문만이 놀란 것이 아니었는지.
드르르르르.
옆에 두었던 휴대폰에서 진동이 계속되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발신자 ‘김시혁’이라는 이름이 큼직하게 박혀 있었고.
그 위로.
[이유정 : 오, 오라버니! 이게…….]
[고말숙 : 야 X발! 전화 좀 받아!]
[박진욱 : 시문좌! 언질도 없이 이러시면 저 죽습…….]
[숙부 김무열 : 네놈! 대체 또 무슨 짓을…….]
[이모 이영희 : 시문아. 밥 잘 챙겨 먹었니? 저번에 말했…….]
[올리비아 : 미확인 메시지 +18]
수많은 메시지 알림이 쉬지 않고 팝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