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202화 (202/349)

제202화

202화. 정령과 용족 (1)

어지간히도 힘든 것인지.

반쯤 닫힌 눈꺼풀 아래론.

알록달록한 비늘만큼이나 다채로운 색상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하나 몸 상태의 영향이라도 받는 걸까?

뀨우우…….

다채로운 무지갯빛 눈동자는 수명이 다된 전구처럼 희미했다.

시연의 품에서 벗어난 용족은 두어 걸음 정도 발을 내디뎠지만 거기까지.

털썩.

녀석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고.

“안 대!”

그를 걱정스레 바라보던 시연은 얼른 녀석에게 다가갔다.

“뀨웅아! 아뿌지 마!”

언제 이름을 붙인 것일까?

알록달록한 비늘의 용족을 뀨웅이라 부른 시연은 애착 인형.

혹은 강아지처럼 녀석을 끌어안고, 연신 이마와 몸을 쓸어주었다.

그런 시연이와 뀨웅이의 위로.

-꺄하하!

-나 잡아봐라~.

-자연의 기운이 엄청 많아!

-헤헤! 정령계랑 달라서 재밌어!

알록달록한 빛무리.

정령의 무리들이 한바탕 장난을 치며 지나갔다.

그러자.

뀨웅…….

시연의 품에 안겼던 뀨웅이의 눈이 잠시 떠진다.

녀석은 눈을 뜨기조차 힘든지.

희미한 눈동자로 시문을 잠시 응시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뀨웅아…….”

녀석을 보는 시연이의 눈망울엔 작은 물기가 어린다.

시연이뿐만이 아니었다.

“…….”

말없이 뀨웅이를 바라보는 하이엘프 에르넨.

분명 용족은 그녀와 세계수를 죽이다 못해, 타락시켜 이용하려고 한 원수임에도.

뀨웅이를 바라보는 에르넨의 시선은 복잡할 뿐.

명확한 동정심을 내비치고 있었다.

실제로.

-쟤도 정령 같은데…… 어떻게 도와야 할지 잘 모르겠어.

-정령왕님의 기운을 지녀서 그런지. 우리 치료가 안 먹혀.

-응. 격이 너무 높아.

-미안해. 에르넨.

그녀는 치유 능력이 있는 물의 정령들을 보내 뀨웅이를 살폈으나.

물의 정령들은 정령왕의 격을 거론하며 울상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상황을 지켜보던 시문의 귓가로.

“아빠…….”

물기 어린 시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뀨웅이 안 아프게 해주세여!”

촉촉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시연.

시문은 그런 아이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주었다.

“걱정마. 시연아. 아빠가 뀨웅이 꼭 낫게 해 줄게.”

“진짜?”

“그럼.”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문.

애당초 시연이의 부탁을 따지기 이전에.

‘저 녀석. 분명 내게 살려달라고 했어.’

아까 잠시 눈을 떴던 알록달록한 용족.

뀨웅이는 명백한 생존 의사를 보내왔었고.

사안을 지닌 시문은 녀석의 의사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갤럭시 아레나에서 고심 끝에 내민 보상인데. 이대로 날릴 수도 없지.’

죽어 가는 생명체를 보상으로 선정한 만큼, 분명히 어떤 의도가 담겨있을 터.

‘반드시 살린다.’

그렇게 의지를 불사르는 시문의 두 눈 중 하나가.

키이잉.

날카로운 이명을 토했다.

* * *

-랄라랄라~.

-히히! 잡아봐라~.

-너! 거기서!

천진난만한 웃음소리.

그 원인인 형형색색의 빛무리들이 거대한 거목 주변을 맴돈다.

더 정확히는.

“은인. 이 정도면 될까요?”

하이엘프 에르넨의 주도하에, 세계수 아래 한 지점을 맴돌고 있었다.

시문은 물어오는 에르넨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딱 좋아요. 이렇게 계속 정령력을 주변으로 흩뿌려주시면 됩니다.”

“맡겨주세요.”

자신 있게 답한 에르넨은 주변을 거닐며, 정령들과 손장난을 쳤고.

-꺄하하!

-간지러워!

그럴 때마다 정령들에게선 저마다의 색을 지닌 정령력이 흘러나왔다.

잠시 그것을 보던 시문은 고개를 돌려, 정령들이 맴도는 중심.

복잡한 진이 그려진 곳을 바라봤다.

“아빠. 다 그렸쪄요!”

멀지 않은 곳에서 원을 마무리한 시연이가 바닥에 그려진 진을 밟지 않도록.

폴짝폴짝 뛰어 다가온다.

“잘했어. 이제부턴 아빠가 할 테니까. 시연이는 정령들이랑 놀고 있어.”

“아니야. 뀨웅이 다 나을 때까지 기다릴 꼬예여!”

“그래. 우리 시연이 덕분에 뀨웅이가 아주 든든하겠네.”

시문은 두 손을 불끈 쥐는 시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내.

“현아야.”

-응. 오빠.

현자의 돌을 부른 시문은 진 중앙에서 숨을 헐떡이는 용족.

뀨웅이를 향해 다가갔다.

“너 정말 괜찮은 거지?”

-나쁠 건 없지? 용족이라고 다 쓰레기는 아니니까.

현자의 돌의 말이 의외였는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는 시문.

그걸 느꼈는지.

-왜? 의외의 반응이라서 놀랐어?

현자의 돌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어왔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시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금부터 쓸 방법은…….”

-알아. 키메라와 관련된 쪽인 거. 그리고 오빠가 나한테 했던 약속도 말이야.

현자의 돌의 말대로.

인체 연성 능력을 얻기 위해, 옵시디언 타블렛을 연성했던 그 날.

시문은 현자의 돌과 한 가지 약속을 했었다.

-오빠는 인체 연성을 이롭게만 사용한다고 했었지. 어디까지나 오빠가 강해지기 위한 용도로 쓸 거라고.

“그랬지.”

정확히 뭘 어떻게 쓰겠다는 말은 없었지만.

그것이 인체 연성이 금기된 이유인 ‘인체 실험을 하지 않겠다’라는 암묵적인 약속임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행할 키메라 제작은 그런 인체 실험에서도 정점에 달하는 지식.

시문으로선 당연히 회귀까지 함께한 파트너의 의사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근데 오빠. 내 눈치 볼 건 없다?

현자의 돌은 흔쾌히 수락했다.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그때는 내가 오빠에게 귀속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어떤 인간인지도 모르니까 한 소리였어.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당연하지. 오빠가 어떤 인간인지는 세상의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아니까. 설령 오빠가 잔혹한 인체 실험을 행한다 해도…….

잠시 말을 끊는 현자의 돌.

이내.

-난 신경 안 써. 내가 아는 오빠라면 분명 선의의 도착점을 보고 행하는 걸 테니까.

웬일로 장난기 하나 없이.

명랑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답하는 현자의 돌.

그에.

“…….”

침묵하는 시문.

어째서일까?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갑작스레 얼굴에 열이 오를 만큼.

낯뜨거운 현자의 돌의 말에 시문은 잠시 입을 가렸다.

그렇게 뜨거워진 얼굴을 가라앉힌 시문은.

“어, 어쨌든 믿어준다니 기쁘네.”

-후후. 좀 더 부끄러워 해봐. 낯 뜨거워진 존잘의 얼굴은 참 즐거…….

“흠흠! 그럼 나 작업 들어간다.”

녀석의 놀림각을 칼같이 차단하곤.

피이…….

신음을 흘리는 뀨웅이를 바라봤다.

스스스.

왼쪽 눈으로 겹쳐진 황금의 마법진들이 맞물려 회전한다.

그 중앙으로 길게 갈라진 동공으론.

‘역시.’

알록달록한 뀨웅이의 육체가 건축 도면.

혹은 홀로그램처럼 보다 입체적이고 세밀하게 보였다.

‘예상대로 용족의 육체와 정령력이 문제로군.’

그것도 무려 자연의 상징인 정령왕의 정령력이기 때문일까?

‘육체 내부가 실시간으로 약화와 노화, 그리고 파괴로 이어지고 있어.’

그 끝에서 다시.

‘또 용족의 우월한 육체 덕에, 망가졌던 부분이 재생되고 있고.’

녀석의 몸 상태를 확인한 시문은 헛웃음을 흘렸다.

“엄청 고통스러울 텐데. 그걸 저 정도의 신음만으로 버티다니…….”

실시간으로 육체가 망가지고 재생하길 반복한다.

이는 정령왕의 요람에서 쥐어짜이던 정령들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왜 이런 불안정한 짓을 하는 거지?’

시문은 시험 문제를 푸는 학생처럼.

출제자의 의도를 생각했다.

‘일단 목적 자체는 용족의 육체에 정령력을 담으려는 거 같은데…….’

하지만 서로 반대되는 기운의 특성상.

어느 한쪽의 기운이 우세하게 되면, 반대 기운은 잡아먹혀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둘 중 하나밖에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다.

당연히 용족의 육체를 지닌 용력이 우세할 확률이 높을 터.

‘그러니 용족인데도 용력을 아예 지워버리고, 정령력만 그런 식으로 주입하고 있던 거겠지.’

마치 물처럼.

일단 그릇만 비워내면, 어떻게든 정령력이 자리할 거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리고 어느 실험이나 마찬가지이듯.

‘아마 그게 될 때까지 실험체를 갈아치웠을 테고.’

해당 이론이 성공할 때까지 몇 번이고 실험을 반복했겠지.

“하!”

시문은 코웃음을 흘렸다.

‘누가 구상한 실험인진 몰라도. 멍청하다 못해 무식하기 짝이 없군. 인체 연성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지는 못하는데.’

아무리 인체 연성이라 한들.

근본부터가 상극인 둘을 조화시키는 방법 따윈 없었다.

있었다면 진즉 철천지원수이자, 대표적인 상극인 천족과 마족.

두 종족을 합쳐, 성력과 마기를 모두 다루는 혼종을 탄생시켰을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시문은 잠시 눈을 끔뻑였다.

“잠깐. 가능한가?”

영혼에 아로새겨진 지식.

비록 완성도 6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까지 얻은 지식으로 따져보면, 막상 불가능하다는 또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때.

피이…….

뀨웅이의 신음이 시문의 상념을 일깨운다.

“이럴 때가 아니지.”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린 시문은 다시 뀨웅이의 육체에 집중했다.

‘일단 뀨웅이가 정령력에 안정을 느끼는 걸 보면, 이 무식한 실험이 마냥 실패한 건 아냐.’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특수 아레나의 정령력 주입 시설 때부터 지금까지.

뀨웅이는 정령력이란 기운 자체엔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다.

단지.

‘저 속에 깃든 정령왕의 정령력이 문제일 뿐.’

그렇다면.

‘정령왕의 정령력을 전부 빼내고, 일반적인 정령력을 주입한다면?’

잠시 고민하던 시문의 고개가 서서히 저어진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안 돼. 정령왕의 정령력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긴 해도, 일종의 혈액처럼. 뀨웅이의 육체와 섞여든 상태야.’

그것을 함부로 분리하려 했다간.

뀨웅이가 죽어 버릴 수도 있었다.

녀석은 기계가 아닌 생명체니까 말이다.

“후…….”

머리를 식히듯.

잠시 숨을 고르는 시문.

‘그렇다면 정령왕의 정령력을 아예 뀨웅이의 체내에서 안정시켜야 한다는 건데…….’

톡톡.

하얀 손가락으로 턱을 두드리는 시문.

이내.

“잠깐!”

고민에 빠졌던 시문의 눈이 살짝 커진다.

‘그러고 보니 뀨웅이는 무슨 용종이었지?’

키이잉.

잠시 느슨해졌던 오딘의 눈과 사안이 빠르게 돌아간다.

그리곤.

“미친!”

기함을 토하는 시문.

무리도 아니었다.

뀨웅이의 용종은 다름 아닌.

“해츨링? 이 녀석. 진짜 드래곤이었어?!”

용제 바로 아래.

용족 중 최강의 용종인 드래곤이었으니까.

놀란 것은 시문만이 아니었는지.

-뭐? 얘가 드래곤이라고? 그게 정말이야?!

잠자코 있던 현자의 돌 역시 깜짝 놀라 경악을 토한다.

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 녀석. 새끼 드래곤인 해츨링이야.”

최강의 용종인 만큼.

용족 내에서도 무척이나 귀하게 여겨지는 것이 해츨링인데.

‘고작 이딴 무식한 인체 실험에 사용하다니…….’

대체 어느 미친 용족이 이따위 짓을 부린단 말인가?

잠시 정령왕의 요람 때를 되짚은 시문은 금세 주동자를 알아차렸다.

‘2용제로군.’

정령왕의 요람에서 나가들을 지배하기 전.

그녀들은 분명 2용제가 자신들의 여왕에게 거인족의 실험을 도우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하지 않았나?

‘2용제라면 해츨링을 이딴 실험에 사용하는 게 가능하긴 하겠지.’

두 번째 용제이자, 용족들의 대모라 불리는 존재.

그리고 티아메트의 기억에서 보았던 녹회색의 존재를 떠올린 시문은.

‘이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뀨웅이에게만 집중하자.’

2용제에 대한 생각을 집어넣고.

뀨웅이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진짜 드래곤이었다니. 이러니 정령왕의 정령력을 버텨내지.’

위로는 용제말곤 존재하지 않는 최고의 용족.

그런 육체라면 당연히 상극이라도 정령왕의 정령력을 버텨낼 수 있었을 터.

“한데…….”

뀨웅이를 보던 시문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왜 드래곤 하트가 없지? 있었다면 진즉 드래곤인 걸 알아봤을 텐데.’

강대한 힘의 원천이자, 또 다른 심장인 드래곤 하트.

그것이 있어야 할 뀨웅이의 흉부는 텅텅 비어있었다.

‘설마 실험에 쓸 거라고 추출해버린 건가?’

드래곤 하트는 무척이나 귀한 재료이니 말이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혀를 내두르는 시문.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드래곤 하트가 없으면, 드레이크만도 못한 용족이 될 텐데…….’

실험에 낭비되는 것이 아깝다고 드래곤 하트를 뽑아버리다니.

무식함을 넘어 같은 종족에게 가해지는 잔혹성은 가히 놀라웠다.

이내.

‘어쨌거나, 내겐 오히려 잘 됐어.’

시문은 한층 밝아진 얼굴로 눈을 반짝였다.

‘서로 상극임을 떠나서 정령은 본디 영체, 용족의 육체론 당연히 정령력을 담아낼 수 없지.’

그러나.

‘영적인 기운을 담아낼 그릇을 육체에 심는다면?’

이를테면 온갖 마력과 권능이 집약된 드래곤 하트처럼 말이다.

‘하지만 난 드래곤 하트는 구조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그리고 그런 드래곤 하트를 받아들일 혈관이나 회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이어.

‘없다면 내 것을 참조하면 되지. 나도 용족이고, 애당초 이 인체 연성을 주도하는 건 나니까.’

고도로 활성화된 집중력은 곧장 해답을 내어놓았다.

‘현자의 돌은 드래곤 하트보다 더 뛰어난 그릇이야. 정령력 스탯도 귀속시켰으니, 기본 구조는 이걸 따라가고…….’

우드득.

시문의 몸이 순식간에 뒤틀리며 변화한다.

잠시 눈을 감고 드래고노이드를 관조하는 시문.

‘그렇군. 용족의 뿔은 강대한 기운을 안정적으로 컨트롤하기 위한 일종의 보조 기관, 여러 감각 기관도 있어 곤충의 더듬이와도 비슷해. 거기다 전체적인 내부의 구조나 구성 형식은…….’

현자의 돌과 드래고노이드를 데이터베이스 삼아, 연성에 필요한 부분을 정리했고.

영혼에 아로새겨진 인체 연성의 지식으로 이를 다시 벼려냈다.

“그럼 전반적인 내부 구조는 이 정도로…… 뿔은 자유로운 정령력처럼 뾰족하지 않고 둥글게……. 영체화 된 드래곤 하트를 육체로 이식해야 하니 그 주변은…….”

수많은 지식이 천둥이 되어 내리치듯.

시문의 머릿속에서 번득이며, 몰아치길 반복했다.

그리하여.

“좋아!”

결국 끝에 도달한 시문.

‘구체적인 설계는 다 끝났으니. 이제 정령력을 담을 드래곤 하트를 어떻게 만들지만 해결하면 되겠어.’

가장 큰 벽을 남겨두고 있었으나.

시문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마침 여기에 딱 맞는 재료가 있지.’

시문은 즉시 인벤토리를 열고 작은 구슬을 꺼냈다.

‘영혼핵. 이거라면 영체화 된 드래곤 하트는 충분히 구성이 가능해.’

SS급 아이템인 영혼핵.

검은 제련소 영혼 발전기의 핵심 부품으로 쓰였던 영혼핵은 지난 아레나.

‘저승의 강 스틱스’에서 깔끔하게 정화까지 된 덕분에.

정령력처럼 영체와 관련된 기운을 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원래는 호문쿨루스의 재료로 쓸려고 아껴둔 거지만. 재료야 다시 모으면 되니까.’

어차피 소정규도 열린 마당 아닌가?

당장은 급한 불을 끄는 게 먼저였다.

스윽.

시문은 쓰러진 뀨웅이 앞에 영혼핵을 놓곤, 녀석을 바라봤다.

“뀨웅아. 많이 아플 거야. 아마 네가 겪어온 그 어떤 고통보다도 고통스러울지도 몰라.”

산채로 육체를 뜯어고치는 일 아닌가?

물론 고통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런 인체 연성은 시문도 처음이라 확신할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 시문의 나지막한 경고에.

뀨우…….

닫혔던 뀨웅이의 눈꺼풀이 열린다.

거의 꺼져가는 녀석의 눈동자가 시문의 눈을 응시했고.

시문은 느낄 수 있었다.

‘살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어요.’

라고.

뀨웅이의 패기에.

“그래. 최대한 빨리 끝낼게.”

녀석을 부드럽게 쓸어준 시문은 가볍게 숨을 고르며, 뀨웅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아야. 혹시나 내가 놓치는 부분이 생기면…….”

-알아. 내가 깔끔하게 커버할 테니까. 믿고 맡기셔.

씩씩한 현자의 돌의 대답.

시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곤 손가락을 튕겼다.

파츠측!

연성 특유의 스파크가 진 전체로 퍼져나간다.

이내.

파직!

뀨웅이의 가슴 앞에 놓인 영혼핵이 강렬한 스파크를 튀겼고.

[요구치에 맞는 연성을 이루기에는 연성력이 부족합니다.]

[현자의 돌이 부족한 등가교환을 성립시키기 위해, 업적 포인트 100,000점을 요구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10만 점이라는 무시무시한 대가를 요구했다.

본래라면 망설임 없이 ‘예’를 택할 시문이었지만.

‘아까 아레나까지 해서, 현재 업적 포인트는 53,300점인데…….’

당장 지닌 업적 포인트는 5만 점대.

‘낭패로군.’

갑작스러운 변수에 입술을 슬쩍 깨무는 시문.

그때.

“참! 그게 있었지?”

손뼉을 친 시문은 얼른 품속에서 검붉은 포션을 꺼냈다.

대륙성의 부길마 종완지가 사과의 선물로 건넸던 물건.

DS, 드래곤 세럼이었다.

‘이번 연성의 중심은 영체화 된 드래곤 하트지만, 뿔부터 내부 장기, 회로까지. 뀨웅이의 육체를 재구성하는 부분도 상당해.’

그리고 뀨웅이의 육체는 어디까지나 용족.

따라서 용제의 용력이 포함된 DS는 큰 도움이 될 터였고.

시문의 예상대로.

쪼르륵.

DS의 내용물이 진으로 뿌려지자.

[요구치에 맞는 연성을 이루기에는 연성력이 부족합니다.]

[현자의 돌이 부족한 등가교환을 성립시키기 위해, 업적 포인트 50,000점을 요구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요구 업적 포인트는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지닌 업적 포인트를 거의 다 쏟아부어야 했으나.

“됐어!”

변수를 해결한 시문은 주먹을 불끈 쥐며, 치환된 대가를 손끝으로 끌어모았고.

따악.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파츠츠츠츠츠!!

DS를 머금은 인체 연성 마법진이 검붉은 빛기둥을 토해낸다.

그것은 중앙에 있던 뀨웅이를 집어삼키고.

“으, 은인!”

“아빠아아!”

시문마저 집어삼켰으나 그뿐.

강대한 연성에 집어삼켜진 시문은 정작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한발 나아가.

“아아……!”

희열에 사로잡혔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집어삼킨 연성력은 다름 아닌.

‘이건 신의 영역에 가까운…… 그래. 이 또한 일종의 진리! 내겐 감히 허락도 되지 않는 진리다!’

지금의 시문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진리였으니까.

그것을 깨닫는 순간.

챠르릉!

맑은 이명과 함께.

검붉었던 빛기둥이 순식간에 무지갯빛으로 물들었고.

[새로운 용종을 탄생시켰습니다.]

[용종의 명칭을 정해주십시오.]

일련의 메시지가 떠올랐고.

그것을 멍하니 보던 시문은.

“페어리 드래곤(Fairy Dragon)…….”

본능적으로 흘러나오는 이름을 머금음으로써.

[용종의 명칭이 페어리 드래곤(Fairy Dragon)으로 지정됩니다.]

[당신을 주시 중인 다섯 성좌가 옥좌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천계의 성좌들이 갑작스러운 생명의 창조에 경악을 토합니다.]

[엔네아드의 성좌들이 갑작스러운…….]

[베다의 성좌들이 갑작…….]

[선계의 성좌들…….]

새로운 신화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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