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화
204화. 정령과 용족 (3)
노여움이 상당한 것일까.
-어찌 감히!
한 차례의 성을 토한 이후로도.
2용제는 연신 거친 숨을 내쉬며, 감정을 가다듬지 못했다.
제2용제이자 용족의 대모라는 그녀의 위신을 돌이켜보면.
상당히 이질적인 반응이었지만.
‘하아. 저리 노하셔도 이상할 게 없지.’
2용제의 분노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잘 아는 데피나로선.
납득할 수밖에 없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설마 대모님께서도 전전긍긍하던 새로운 용종을 김시문이 탄생시킬 줄이야.’
정령왕의 요람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진 그 실험은 다름 아닌.
2용제 에키드나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던 실험 아니던가?
심지어.
‘수백 년 동안 지속한 실험인데도 해츨링의 육체에 정령력을 집어넣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김시문은 그 노고를 단 한 번의 아레나로 쳐부수다 못해.
역으로 본인이 해당 실험을 완성시켜 버렸다.
이는 그간 투자했던 외적인 부분으로나.
-이 에키드나가 해내지 못한 일을 한낱 인간 따위가 어찌해낸단 말이더냐!!
2용제의 자존심이라는 내적인 부분으로나 상당한 손실이었다.
특히나.
-시간만! 그래! 내게 시간만 조금 더 있었더라도, 그 업적은 생명의 어미인 나의 것이었거늘!
용제들 중 생명과 자연 관련의 권능을 지닌 그녀에게는 더욱 치명적이게 작용했다.
하지만.
“지당한 말씀이십니다만. 대모님? 지금은 그깟 인간 따위보다, 현 사태로 인한 상황의 수습이 먼저라 사료됩니다.”
이는 에키드나의 자존심과 관련된 것일 뿐.
당장 벌어진 이 상황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까 나가 측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거인족이 아주 성을 토했다고…….”
정령왕의 요람에서 펼쳐진 실험과 연구는 근본적으로 거인족의 의뢰에서 시작된 일이었으니까.
다시 말해.
“그동안 자신들이 요구했던 것들과 전혀 관련 없는 것을 연구했냐면서, 당장 지금까지의 연구 자료를 내놓으라고 엄포를 놓았다더군요.”
연구와 시설, 인체 연성 지식 등 거인족이 지원한 자원을.
2용제 에키드나의 개인 연구에만 사용했다는 말이다.
거인족이 어디 중하위 종족도 아니고.
용족인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상위 종족 아닌가?
달리 반신의 종족이라고도 불리는 거인족이었기에.
2용제 에키드나는 평소와 달리 코웃음으로 무시하지 않고.
-……이를 대비해 준비해뒀던 자료를 보내면 되지 않겠느냐?
다소 진중한 눈으로 물어왔다.
하나 나름 진중한 에키드나의 태도에도.
데피나의 얼굴은 그리 밝아지지 못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이런 사태를 대비해 준비했던 거인족의 의뢰 자료들은.
“자료가 있긴 하나…… 지난 수백 년간의 연구 결과라기엔 부족함이 많습니다.”
지난 수백 년의 연구 결과를 증명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으니까.
당연했다.
애당초 수박 겉핥기처럼.
깊이도 없이 그저 눈속임을 위해 조작된 자료들이지 않은가?
데피나는 2용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놈들이 아무리 멍청하다 한들. 그 정도 수준의 자료에 속아 넘어가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빠득.
통신구 너머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실제로 통신구 위로 떠오른 녹회색의 눈동자는 진득한 짜증과.
-쓸모없는 것들!
아주 작은 초조함이 뒤섞여 있었다.
-대비책은 항상 점검해두어야 한다고 그렇게나 일렀거늘!
괜히 고인이 되어 버린 나가들을 욕하는 2용제.
그러나 그것이 현 상황의 대책이 될 수는 없었기에.
2용제는 깊은 고민에 빠진 듯.
한동안 침묵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나가 측에 일러두거라.
조용해졌던 통신구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그간 연구했던 우리 측의 자료를 전부 보내라고.
“그간의 연구 자료라 함은…….”
-당연히 정령왕의 힘을 우리 용족의 육체에 담아내는 연구지, 뭘 묻느냐?
이어지는 2용제의 명에 데피나는 당혹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대모님. 그 자료는!”
-무식하다 욕해도 우리의 시선에서일 뿐. 엄연한 최상위 종족이니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제놈들의 자원으로 뭘 연구했는지를.
녹회색의 눈동자가 슬쩍 감긴다.
하나 잠시일 뿐.
-그걸 알면서도 이리 성을 내는 것은, 그간 우리가 연구했던 결과를 내놓으라는 뜻이겠지. 인체 연성에 대한 지식도 그렇고, 어차피 정령왕들을 쥐고 있는 건 놈들이니까.
곧 다시 뜨인 2용제의 눈동자는 용족의 대모에 걸맞은 지성을 내비치고 있었다.
데피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대모님. 그 자료는 우리 용족에게 특화된 자료이지 않습니까? 거인족에겐 쓸모가 없을 터인데요?”
-그건 나가들이 알아서 수정해 보낼 것이다. 물론 용족이라는 명칭을 거인족으로 바꾸는 정도겠지만.
대수롭지 않게 눈꺼풀을 까딱이는 2용제.
그녀의 말에 데피나는 저도 모르게 목울대를 꿀렁였다.
“……그 정도 조작이면 실험에 쓰일 거인족들이 전부 다 죽어 나갈 텐데요?”
-호호! 그럼 오히려 좋지 않으냐?
2용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무식한 것들이 그렇게라도 죽어준다면야, 우리로선 기쁠 따름이니.
결정적으로.
-애당초 놈들 역시 그걸 알고도 자료를 요구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거인족 역시 자신들이 조작된 자료를 보내리라는 걸 알고도 요구하는 것일 터.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데피나는.
‘과연…… 왕좌에 앉은 이들은 마음가짐부터가 다르시구나.’
저도 모르게 몸을 슬쩍 떨었다.
데피나 역시 날 때부터 최상위 용족인 드래곤이었으나.
옥좌에 앉아 종족의 미래를 살피는 이들의 마음가짐은.
‘아무리 종족의 번영을 위해서라곤 하나, 백성들의 목숨을 이리 가벼이 여기다니…….’
가히 그녀의 상식을 뛰어넘을 만큼 잔혹하고 냉철했다.
-그나저나.
한층 낮아진 2용제의 목소리가 데피나의 상념을 일깨운다.
-아무래도 그 김시문이라는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구나,
그 목소리엔 희미한 살기가 어려 있었다.
그것을 어렵지 않게 감지한 데피나는 불안한 눈초리로 물었고.
“다시 생각해 본다 하심은…….”
-답지 않게 뻔한 걸 묻는구나. 김시문, 그놈을 직접 처리해야겠다는 말이다.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답을 들어버렸다.
데피나는 황급히 답했다.
“하지만 대모님. 검은 제련소의 파…… 사건 이후, 다른 용제들께도 몸소 알리지 않으셨습니까? 김시문은 아레나 내에서 처단해야 한다고.”
용족 역사상 손꼽히는 치욕으로 기록된 지난 검은 제련소의 사태.
고작 한 인간에게 용족의 주요 시설이 무너진 것은 물론.
그때의 여파로 해당 인간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말라는 대모의 명까지 떨어지지 않았나?
크게 소문이 난 것은 아니었으나.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용족과 가까운 세력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한데 그것을.
“그런데 다시 김시문을 처리하시겠다고 하시면…….”
갑작스레 번복하다니?
무엇보다.
‘1용제께선 직접적으로 김시문을 건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대모인 2용제가 공표하긴 했어도.
그 뜻이 1용제의 명령임을 모르는 용족은 없었다.
‘이건 1용제의 뜻을 반하는 일. 더 엮이면 내가 위험해진다.’
데피나는 얼른 말을 이었다.
물론 1용제의 뜻에 반한다는 말 대신.
“아마 주변 세력들이 우리 용족을, 그리고 대모님의 위신을 크게 비웃을 것입니다.”
용제의 위신을 거론하는 데피나.
그러나.
-데피나. 넌 참으로 똑똑한 아이지.
과연 용족의 대모라는 것일까?
-그래서 내 너를 아끼는 것이나, 이번만큼은 그 지혜를 자제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부드럽게.
하나 확실한 경고를 보내왔고.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결국 용제가 아닌 데피나로선.
“……실례했습니다.”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2용제는 만족스러운 눈으로.
-후후, 기특한 것. 그나저나, 그쪽 차원에서 조만간 길드전이 열린다고?
고개 숙인 데피나를 바라봤다.
“예, 이 차원은 여름과 가을이라는 계절마다 열리더군요.”
-으음…….
작게 침음성을 흘리는 2용제.
-듣기론. 크루아흐와 손을 잡은 세력이, 그 차원에선 최고 중 하나라고 불린다지?
“그렇습니다만…….”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데피나.
그것은 자신을 압박한 2용제에 대한 불만이 아닌.
“최근 국제적인 영향을 잃는 사건이 있던 터라…… 아마 길드전을 무대로 손을 쓰기는 어려우실 겁니다.”
얼마 전 일어났던 심드라실의 성장 버프 사건 때문이었다.
2용제 역시 그를 아는지.
-네 표정을 보아하니, 퍽이나 멍청한 일이 있었나 보구나.
묘한 눈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렇더라도. 내 반드시 이번 길드전에서 손을 써야겠다.
“대모님. 1용제껜 허락받지 않은 일 아니십니까? 무리하게 손을 썼다간…….”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넌 내 명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1용제를 거론하며 우려를 표하던 데피나가 고개를 숙인다.
그녀가 뭐라 한들.
감히 용제의 뜻에 반할 수는 없었으니까.
2용제의 눈은 부드럽게 휘었다.
-너무 걱정 말거라. 그놈을 아예 확실히 처리해 버린다면, 크루아흐도 마냥 질책하지는 않을 테니.
본디 결과를 중시하는 아이 아니더냐?
그렇게 읊조리는 2용제의 말에.
“그 ‘확실히’라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아뢰어도 될지요?”
데피나는 2용제의 말에서 중요한 부분을 되짚었다.
이내.
-안 될 것이 무엇 있겠느냐? 이번 일을 확실히 하기 위해, 나의 두 번째 전령, 에트라를 보낼 것이야.
“에, 에트라 님을요?!”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데피나.
그도 그럴 것이.
“에트라 님은 에이션트 드래곤 아니십니까? 아직 정규 아레나도 아닌, 이곳으로 넘어오기엔 리스크가 클 텐데요.”
드래곤의 생 중 가장 강력한 시기의 드래곤 아니던가?
하나 그런 데피나의 놀람에도.
-흥. 마음 같아선 군단장이나 사도를 보내고 싶거늘. 네가 말한 그 리스크 덕에 전령 정도로 그치는 것이다.
2용제는 코웃음을 칠 따름이었고.
데피나의 눈은 더욱더 커졌다.
‘군단장에 사도까지 언급하시다니!’
둘 다 용제 휘하의.
그리고 용족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 아니던가?
동시에.
‘아주 작정을 하셨군.’
작은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에트라 님이 오신다면 걱정할 것도 없지. 김시문은 확실히 죽을 테니.’
아직 정규 아레나가 아닌 덕분에.
현실에서는 상태창 페널티를 받는 지구 아니던가?
아마 지구에 있는 모든 랭커들을 긁어모아야, 에이션트 드래곤을 상대가 될 터.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유망주인 김시문이라도.
이번만큼은 살아남을 수 없겠지.
밀려드는 안도감에 금세 본연의 여유를 되찾은 데피나는.
“제가 무엇을 하면 될지요?”
반짝이는 눈으로 2용제를 바라봤다.
* * *
달그락.
그극.
익숙한 작업 소리가 들려온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뀨웅아. 물어와!”
뀨우우웅~.
흡사 삭막한 공장에 가져다 놓은 계절 화분처럼.
알록달록한 용족이 맑고 앙증맞은 울음소리를 토한다는 것.
작은 강아지만 한 크기의 페어리 드래곤이 시연이와 함께 연구실을 뛰놀았고.
-이것들! 내가 연구실에서 뛰지 말라고 했지! 밖에 정원 있잖아. 거기 가서 놀아!
플라스크 속 현자의 돌이 그런 두 아이의 뒤를 둥둥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해댔다.
그 모습에.
“귀엽긴.”
피식 웃음을 흘린 시문은 뀨웅이를 바라봤다.
‘설마 크기도 줄일 수 있을 줄이야.’
3미터에 달했던 뀨웅이의 신장은.
뀨우~.
현재 딱 강아지만 한 사이즈로 축소되어 있었다.
하나 시문의 미소는 단순히 앙증맞은 외형 때문이 아니었다.
‘본 모습을 숨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급 높은 용족이라는 증거지.’
운이 좋다면 상급.
보통은 최상급 용족들만 가능한 것이 현신 아니던가?
뀨웅이의 외형 변화는 곧 녀석의 급이 그만큼 높다는 말이 된다.
‘기왕이면 내 손을 탔으니, 최상급 용족이면 좋겠는데 말이지.’
뀨웅~.
기대 어린 눈으로 시연이와 뛰노는 뀨웅이를 바라보는 시문.
이내.
“참, 이럴 때가 아니지.”
슬쩍 고개를 저은 시문은 곧바로 퀘스트창을 열었다.
‘분명 히든 퀘스트였었지?’
정령계와 세계수를 잇고 난 후 받았던 히든 퀘스트.
‘차원과 차원을 잇는 나무’를 확인했다.
[차원과 차원을 잇는 나무] - 히든 갱신 퀘스트
-세계수의 이명은 차원과 차원을 잇는 나무입니다.
‘세계수를 성장’시키고 ‘타 차원을 연결’하십시오.
현재 연결 차원 : 정령계
보상 : ?
그러곤.
“히든 갱신 퀘스트라고?”
고개를 갸웃하는 시문.
그도 그럴 것이.
‘히든 갱신 퀘스트라는 건 생전 처음 보는데?’
2회차의 삶을 살고 있는 시문으로서도.
히든 갱신 퀘스트라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현 연결 차원 항목도 그렇고. 아마 매번 다른 차원을 연결할 때마다, 퀘스트가 갱신되며 보상이 주어지나 보군.’
또 연결 차원을 늘리기 위해선.
세계수의 성장이 필수적이고 말이다.
결국 히든 갱신이라는 말이 생소할 뿐.
시문의 입장에선 그리 복잡하거나 어려운 퀘스트는 아니었다.
오히려.
‘말이 히든이지. 일종의 연계 퀘스트와 다를 바 없네.’
지금처럼 하던 대로만 하다 보면.
절로 클리어가 되리라.
“그럼 히든 퀘스트는 됐고.”
고개를 끄덕인 시문은 턱을 톡톡 두드렸다.
‘에르넨은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퀘스트를 의뢰하겠다고 했었지?’
뀨웅이를 보고 충격에 빠졌던 에르넨.
물론 시연이만큼이나 뀨웅이를 좋아하긴 했으나.
아무래도 하이엘프에겐 용족과 정령력의 콤비는 충격이었는지.
그녀는 곧바로 연계 퀘스트를 의뢰하지 않고, 잠시간의 시간을 원했었다.
그럼 이번 일로 남은 것은.
“결속으로 얻었던 그 불완전한 칭호겠군.”
시문은 곧바로 칭호창을 열었다.
[?신] - 불완전한 성장형 칭호
현재 공석인 자리에 앉을 자격을 얻었으나.
자격을 제외한 모든 부분의 미흡함으로 칭호까지 불완전해졌다.
-결속된 용족 : 페어리 드래곤
“으음…….”
작게 침음성을 흘리는 시문.
이번에도 불완전한 성장형 칭호라는 생소한 칭호가 떡하니 적혀 있었지만.
시문의 시선을 끄는 것은 정작 다른 부분이었다.
‘현재 공석인 자리? 저게 뭐지?’
현재 공석인 자리.
그리고 그에 앉을 자격을 얻었다는 문구 때문이었다.
‘성흔이 반응했다는 건, 성좌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 설마!’
불길한.
아니, 불길하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보고 용족의 성좌라도 되라는 건가?’
드래고노이드도 그렇고.
용력에 사안까지 지니고 있는 자신은 현재 격만 놓고 따진다면.
용제들에게도 그리 밀리지 않는다.
고로 엮으려면 얼마든지 엮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시문의 미간이 더욱 깊게 파인다.
‘처음 사안을 얻었던 날. 티아메트의 기억에서도 분명 그랬었지.’
용신 티아메트를 살해할 당시, 1용제인 크루아흐가 분명 제 입으로 그랬었다.
‘당신을 소멸시키고 용신이 되어 봐야, 결국 우리 중 하나.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우리 용계는 용신이 탄생하지 않은 그때로 다시 돌아갈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야 했던 마땅한 ‘자리’를 쟁취할 겁니다.’
라고.
이것들을 현 상황과 조합해 본다면.
‘설마 최초의 결속이 저 공석의 자리에 앉는 조건이라도 되는 건가?’
그렇게 가정해놓고 본다면 이번 일의 아귀가 얼추 들어맞는다.
‘그럼 2용제가 거인족과 손을 잡아가며, 그 말도 안 되는 실험을 한 것도 이 자격 때문이면 납득이 돼.’
새 용종을 탄생시키면.
최초의 결속을 시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걸 다섯 용제가 전부 하려면 최소 다섯 이상의 새로운 용종을 탄생시켜야 할 테고.’
어쩌면.
‘지금과 같은 실험이 더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봐도 이상할 게 없겠네.’
그럼 그것들도 찾아서 막아 내야 하는 건가?
“하!”
헛웃음을 흘리는 시문.
그도 그럴 것이.
‘의도치 않았다 해도, 놈들한테 제대로 엿을 먹였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에 예상치 못한 것을 더 알게 되어, 더 복잡해질 줄이야.
눈매와 콧등까지 찌푸리던 시문은.
“으으! 모르겠다!!”
두 손으로 머리를 마구 헝큰 시문은 소파에 푹 몸을 파묻었다.
‘당장은 지금 일만 생각하자.’
어찌 됐건.
‘엿도 내가 먹였고. 놈들의 업적을 가로채서 성공까지 시켰어.’
고로 무력은 용제들이 훨씬 강할지 몰라도.
이 자리에 오를 자격이라는 면에선 자신이 한발 앞서는 상황.
‘그래. 지금 중요한 건 이거지.’
그렇게 끄덕여지던 시문의 고개가 뚝 멈춘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근데 이만큼 중요한 일이었으면. 이렇게 당하고 가만있을 놈들이 아닌데?”
심지어 2용제가 연관된 일 아니던가?
지난 검은 제련소의 일도 그렇고.
이번 일까지 겹치면 용제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똑똑.
“시문 님. 저 박진욱입니다!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들어오세요.”
아니나 다를까.
“조만간 길드전 기간인 거 아시지요?”
“알죠. 이제 여름이니까요.”
“한데 이번 길드전의 주최국인 러시아에서…… 한국 대표로 성삼 길드가 아닌, 저희 심드라실을 지목했습니다.”
시문의 예상은 빗나가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