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235화 (235/349)

제235화

235화. 체르노젬 (1)

정규 아레나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이 아레나 실패 영향으로 잃게 되는 건.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목숨 자체는 면사권이 어느 정도 막아주지 않는가?

필사 판정이 있는 특별한 죽음만 아니라면.

정규 아레나에서의 목숨값은 그리 비싼 게 아니었다.

정작 정규 아레나의 실패가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아웃 브레이크.

정규 아레나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이 해당 아레나를 클리어하지 못하는 경우.

높은 확률로 해당 플레이어의 ‘소속’ 지역에 아웃 브레이크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면사권과 관련 없이 오로지 아레나의 실패 유무로만 결정되기에.

당연히 플레이어들의 사망 숫자보다, 생성되는 아웃브레이크의 수가 훨씬 많았다.

근데 이게 왜 문제가 되냐?

기껏 면사권으로 살아 돌아온 플레이어들이.

‘그런 아웃 브레이크로 인해, 진짜로 죽어 나가게 되니까.’

소속 국가의 아웃 브레이크를 처리하기 위해 투입되어서다.

심지어 아레나가 아닌 현실이라, 면사권이 적용되지도 않는 상황.

당연히 정규 아레나 이후.

플레이어들의 사망 원인은 아웃 브레이크로 인한 사망이 1순위였다.

물론 정규 아레나도 시작되지 않은 현재에선 그리 걱정할 부분은 아니었다.

애당초 비정규 아레나 때는 아웃 브레이크가 거의 생성되지 않을뿐더러.

설령 생성된다고 한들.

낮은 난이도로 대부분 쉽게 처리가 가능하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

“방금 우크라이나에서 아웃 브레이크가 일어났다고 했습니까?”

가을인 9월까지 고작 한 달가량 남은 시점에서.

“맞아요. 정부 차원에서 최대한 은폐하고 있지만, 이미 알 만한 세력들은 다 알고 있죠.”

하필 ‘우크라이나’라는 나라에 아웃 브레이크가 일어났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시문의 얼굴이 대번에 심각해져서일까?

“왜 그러시죠? 혹시 시문 님께선 이 소식을 진즉 알고 계셨나요?”

린은 의문 어린 눈으로 물었고.

이는 주변의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자.

“아! 아뇨. 요즘 잠잠하더니 갑자기 아웃 브레이크라니 좀 놀라워서요.”

시문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연기가 잘 먹힌 것일까?

“후후. 그럴 만도 해죠~. 근래에 들어 아웃 브레이크는 없었잖아요?”

눈치가 빠르다 못해, 사람의 속까지 읽어내는 린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까딱였다.

“거기다 세계 연맹에 보고는커녕, 정부 측에서 최대한 정보를 은폐하려고 한다는 것도 좀 놀라워서요.”

“어머나? 아실 거 다 아시는 분이 왜 그러실까~.”

시문의 말에 본래의 야릇한 눈웃음을 걸치는 린.

변덕스러운 그녀의 변화에 시문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모른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아마 ‘아웃 브레이크 정도는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다’라는 마음이겠죠.”

아예 각성자 층이 약한 나라라면 모를까.

우크라이나와 같은 각성력 중위권의 국가들이 특히 그랬다.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니까요.”

지금의 대한민국도 그렇지 않은가?

본디 각성자 수준이 고르지 않고, 장단점이 명확한 중위권의 국가일수록.

아웃 브레이크와 같은 아레나 재앙에 대한 대처에 굉장히 민감했으니까.

린은 교소를 흘렸다.

“호호!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야 높으신 분들의 역량도 증명되고, 표심도 얻으니까요.”

국가적인 자존심도 있고~.

그렇게 중얼거리던 린은 어느새 이유정이 가져다준 찻잔을 쥐었다가.

‘응?’

미세하게.

그러나 그녀의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로 하얗게 질리는.

“…….”

시문의 얼굴을 확인하곤.

“어머. 뜨거워라.”

달깍.

능글맞을 정도로 천연덕스럽게 찻잔을 놓았다.

그에 맞춰.

시문이 눈에 띌 정도로 안도감을 내비친다.

‘엿될 뻔했나 보네~?’

린은 오늘도 타고난 그녀의 눈치에 감사하며.

“호호! 좀 식혔다가 마셔야겠네요~.”

겉과 속이 상반되는 말을 내뱉었다.

이내.

“그래도 한국이랑 비교하긴 힘들죠. 한국이 중하위권 플레이어들이 좀 부실해서 그렇지. 상위권은 아주 탄탄하잖아요?”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의 화제를 돌렸고.

시문은 천년 묵은 여우 같이 영악한 그녀의 눈치에 감탄을 하며.

“그렇긴 하죠. 아웃 브레이크로 고생한 적은 딱 한 번밖에 없었으니까요.”

린이 주의를 돌리는 것을 받아주었다.

그때.

“…….”

고말숙의 얼굴이 극도로 어두워졌으나.

‘흐응?’

아쉽게도 이는 암시장의 오너로서.

그리고 타고나기로 늘 주변인을 살피는 린의 시야에만 포착되었다.

알 듯 모를 듯한 눈으로 고말숙을 힐끔거리던 린은.

“반면 우크라이나는 한국과 정반대의 상황이죠.”

다시 시문과의 대화로 복귀했다.

“그렇긴 합니다. 우크라이나의 중하위권 플레이어들은 탄탄하지만, 상위권 플레이어들이 적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국가들이 유독 아웃 브레이크에 취약한 편이죠~.”

유들유들한 린의 말에 시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현실에선 플레이어의 능력이 전반적으로 너프되니까.’

너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전생의 경험이 있는 시문도 잘 모르지만.

최소 절반에서 최대론 1/10까지도 줄어든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아레나 내에서라면 대수롭지 않은 수준의 아웃 브레이크도, 현실에선 상당한 위협이 되지.’

당장 지난 최우석 박사 때 만났던 최상급 용족들이 그 증거 아니던가?

신화급 무구나 사안 등.

본래라면 그다지 위협되지 않는 상대였지만.

현실에서 전반적인 스펙이 너프된 덕분에, 놈들과 꽤나 손을 섞어야 하지 않았던가?

‘아웃 브레이크는 보통 아레나 랭크 기준 2단계 정도로 높게 봤었지?’

예를 들어 브론즈급 아웃브레이크가 일어난다?

그럼 그곳에 동원되는 플레이어들의 수준은 최소 골드 이상으로 잡아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잠깐. 그럼…….”

시문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

상위권 플레이어가 적은 우크라이나지만.

반대로 플래티넘 이하의 중하위권 플레이어들은 상당히 탄탄한 나라다.

실버 등급의 아웃 브레이크 정도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데.

암시장의 주인이 그런 나라의 아웃브레이크를 정보라고 건넬 정도라면.

“설마 우크라이나에 열린 아웃 브레이크가, 최소 골드급 이상이라는 겁니까?”

우크라이나의 아웃 브레이크가 골드 이상급이라는 말이 된다.

그럼 다이아급 플레이어들로 소집해야 할 테고.

이는 상위권 플레이어가 부족한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난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호호! 과연 시문 님이시네요. 아웃 브레이크란 정보 하나로, 거기까지 꿰뚫으시다니~.”

린은 특유의 웃음을 흘리며 긍정을 표했다.

하나 시문의 얼굴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안 그래도 전생보다 한 달이나 앞당겨졌는데. 이젠 등급까지 높아졌다고?’

전생 이맘때쯤 우크라이나에 나타났던 아웃 브레이크의 등급은 실버.

고로 아웃 브레이크 자체는 체르노젬 사건의 원인이 되진 않았다.

한데 시기가 한 달이나 앞당겨진 것도 모자라, 등급까지 2단계나 높아지다니?

심지어.

“현지에 있는 저희 정보원에 의하면, 해당 아웃 브레이크의 등급은 플래티넘이라고 하더군요.”

한 단계 위인 골드도 아닌 플래티넘이라니?

놀라운 건 시문만이 아니었는지.

“세상에!”

“프, 플래티넘이요?!”

“그게 정말입니까?”

조용히 대화를 듣던 시문의 일행들이 일제히 난색을 표한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럼 최소 다이아 랭크들이 나서야 할 텐데…….”

앞서 말했다시피.

우크라이나의 상위권 플레이어는 적기로 유명했으니까.

특히나.

“플래티넘급 아웃 브레이크인데…… 연맹에 보고도 없이 저 혼자 해결하려 한다고?”

가만있던 고말숙은 어딘가 거칠어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본래 말숙이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일행들은 큰 감흥이 없었으나.

‘말숙아?’

고말숙이 정말로 화났을 때와 아닐 때를 구별할 줄 아는 시문으로선.

꽤나 당황스러운 모습이었다.

‘갑자기 왜 저러지?’

눈을 끔뻑이며 고말숙을 힐끔하는 시문.

그러나 말숙이의 미묘한 변화를 알 수 없는 이들로선.

“아까 말했잖아요. 무작정 도움을 요청하기엔, 국가적 차원에서 다소 걸리는 게 많으니까요~.”

대화를 계속 이어나갈 뿐이었다.

“국가적 차원? 하! 결국 지들의 자존심 때문이잖아?”

“뭐, 그게 대부분의 이유의 근본이긴 하죠.”

“그까짓게…… 국민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점점 화가 깊어지는 고말숙.

저렇게 즉각적으로 터져 나오지 않는 상태가 더 위험하다는 걸.

“호호! 터프하고 화끈하신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여린 구석이 있네요? 다시 봤어요.”

누구보다 잘 아는 시문은 얼른 이 대화를 멈추려 했으나.

“그리고…… 우크라이나 측도 마냥 자존심만으로 버티고 있는 건 아니랍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이어지는 린의 말에 마음을 고쳤다.

“지금 백방으로 고랭크의 용병들을 모집하고 있거든요. 그것도 저희 암시장을 통해서 말이죠.”

싱긋 웃는 린.

그에.

“……쯧. 뭐라도 하긴 하네.”

고양되던 고말숙의 감정은 삽시간 가라앉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시문의 눈 역시 한층 깊어졌다.

‘용병이라…… 어떻게 체르노젬에 들어서나 했는데. 잘됐네.’

현 우크라이나의 대처를 보면 알겠지만.

아웃 브레이크는 국가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이 많은 재앙이다.

지난 길드전으로 연분을 쌓은 러시아의 체르노젬을 통해 입장할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굳이 복잡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지.’

친히 암시장을 통해 용병을 구한다니 딱 아닌가?

그런 시문의 기색을 읽었는지.

“어머나! 왠지 우리 파트너님께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느낌이 드네요~?”

린은 기쁨이 섞인 웃음을 흘렸다.

* * *

쾅!

테이블 위로 거세게 내리꽂히는 주먹.

아레나산 테이블 중에서도 귀한 등급이라 두 동강 나는 신세는 간신히 면했지만.

쩌적.

옅은 금이 생겨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나 금발의 남성.

올리버는 저 귀한 테이블을 걱정할 수 없었다.

귀한 테이블에 금을 가게 한 원인.

“대체 그게 무슨 개소립니까!”

어지간한 몬스터보다도 더 살벌하게 으르렁거리는 제 누이 때문이었다.

누이의 시퍼런 서슬에.

-들은 그대로야. 올리.

각진 턱을 지닌 남성.

데릭의 홀로그램이 움직였다.

-우린 이번 우크라이나의 아웃 브레이크에 참여하지 않아.

“어째서입니까?”

-어째서긴?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으니까. 국가적인 자존심을 밟을 순 없잖아?

어깨를 으쓱하며 깔끔히 말을 끝맺는 데릭.

그러나 그의 홀로그램을 바라보는 올리비아의 시선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그에.

-올리. 제발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줘. 네가 그럴 때가 가장 무섭다고.

데릭은 능청스러울 정도로 가련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뿐.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올리비아의 침묵에.

-하아. 그래. 아마 네 생각이 맞을 거야.

데릭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 말은…… 고의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무시하고 있다는 겁니까?”

-어허! 무시라니? 다시 말하지만 이건 그쪽에서 원하는 거라 억지로 모르는 척하는 거라고.

“하! 웃기지도 않는군요.”

코웃음을 치는 올리비아.

그러나 그녀의 눈매만큼은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우크라이나가 이 일이 공식화되길 바라지 않는 거라면. 비공식적으로 도우면 되잖습니까.”

-올리. 그걸 우리가 어떻게…….

“설마. 우크라이나 정부가 암시장을 통해서 용병을 모으고 있다는 걸. 모른다고까지 하진 않겠죠?”

매섭게 올라가는 올리비아의 눈매.

그만큼이나 날카로운 반문에.

-…….

데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침묵하는 길드 마스터를 묵묵히 보기만 하던 올리비아가 물었다.

“대체 왜야?”

평소의 존대를 벗어던진 채 말이다.

-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왜 우크라이나를 돕지 않는 거냐고.”

앞서 말했듯이.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번 아웃 브레이크가 공식화되길 원하지 않을 뿐.

뒤로는 아웃브레이크를 해결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암시장에게 용병 알선을 의뢰한 것부터가 그 증거 아니던가?

고로 아메리칸 드림 역시 도우려 한다면, 얼마든지 지원이 가능했다.

한데.

“왜 작은 제스처조차 취하지 않는 거야?”

아메리칸 드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다른 거대 길드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메리칸 드림의 사정은 좀 달랐다.

적어도.

“전대 길드 마스터께서, 왜 아메리칸 드림을 세웠는지 벌써 잊었어?”

올리비아 덴슨.

그녀가 아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길드는 그랬다.

“각성이란 힘으로 조국을. 나아가 세상의 평화와 약자들을 지키기 위해 설립됐지.”

전대 길드 마스터를 포함한 창립 멤버들의 정신.

그것을 2세대인 지금의 원로 층과 간부층들이 이어받았고.

이는 현 길드 마스터인 데릭과 올리비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데릭 넌, 그런 아메리칸 드림의 정신을 지키고자 그 자리에 올랐어.”

-올리. 난…….

“비단 이번 일만이 아니야.”

올리비아는 데릭의 말을 칼같이 끊어냈다.

“저번 심드라실 버프 건도 그랬고. 넌 길드 마스터를 이어받은 후부터 굉장히 변했어. 그것도 선대의 정신에 위배되는 쪽으로.”

서슬 퍼런 그녀의 시선에.

-올리. 세상은 변해.

데릭은 더 이상 서글프거나, 애처로운 가면을 쓰지 않았다.

-그뿐인가? 모든 가치도 변하고 사람도 마찬가지야. 플레이어는 더더욱 그렇지.

올리비아만큼 차갑진 않았으나.

그녀만큼 무감정한 얼굴이 된 데릭.

-비록 선대와 다른 방향일지 몰라도. 난 내 조국과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움직일 뿐이야.

“하…… 무슨 빌런도 아니고. 타국의 새싹들을 경쟁자라 칭하고 짓밟는 그거?”

-그렇게 생각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난 우리와 조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고 싶을 뿐이야.

그의 고저 없는 목소리에.

올리비아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거 알아? 너 방금 X나게 정치인 같았어. 플레이어가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지. 너도 사람을 상대하는 자리라 잘 알잖아? 올리. 길마라는 게 단순히…….

“그건 네가 본래 그런 인간이라서겠지. 전대 길마께선 그렇지 않았다는 걸 잊지 마.”

또다시 데릭의 말을 잘라내는 올리비아.

아까와 다르게 가식을 벗어던져서일까?

-…….

무표정하게 침묵하는 데릭은 그 자체만으로 싸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나 올리비아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데릭. 전대 길마님과 멤버들이 아니었다면. 그날 우린 모두 몬스터의 간식이 되었을 거야.”

-……다시 말하지만, 모든 건 변해. 올리. 시대에 맞춰 나아가야 한다고.

“그래. 그렇지. 그게 틀렸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잠시 침묵하는 올리비아.

이내.

“넌 틀렸어. 데릭.”

한 손을.

스윽.

정확히는 중지를 들어 올려 보이는 올리비아.

-올리.

화라도 난 것일까?

데릭의 고저 없던 목소리에 작은 으르렁거림이 어렸다.

“아메리칸 드림은 쓰잘데기 없는 명예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존재하지 않아. 적어도 내가 배운 건 그랬어.”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지? 길드 마스터는 나다. 덴슨 부장.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엄과 함께 ‘덴슨 부장’이라는 호칭을 강조하는 데릭.

그리고,

“그거 알아 데릭?”

올리비아는 오늘 데릭과 연락한 이후 처음으로.

“최근 들어 너. 미국의 히어로가 아니라, 뭔가 빌런 새끼들이랑 유사한 느낌이 들어.”

진한 웃음을 흘렸다.

“꼭 그 새끼들이랑 동료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야.”

-…….

“됐어. 너 같은 머저리랑 더 할 말도 없고, 네 명령을 들을 마음 따윈 더더욱 없으니까.”

-올리. 난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이야.

“아니.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은 네가 아니야. 데릭.”

그러곤.

“올바른 ‘정의’지.”

-올……!

탁.

통화를 끊어 버리는 올리비아.

이어.

쾅!

수화기를 부숴, 다시 걸려올 연락까지 차단한 그녀는.

“후.”

후련한 한숨을 내뱉곤, 각진 안경을 벗어 던졌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누나.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알겠지만, 방금 그 말…… 굉장히 오글거렸어.”

동생 놈의 얄미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아. 새끼야.”

답지 않게 그 말을 받아친 올리비아는 옆에 걸어둔 외투를 챙겼고.

“누나. 생각 잘 해야 돼.”

어느새 다가온 올리버는 제 누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상대는 데릭이야. 그가 어떤 인물인진 누구보다 누나가 잘 알 걸 알아. 하지만…….”

웬일로 차분하고 진중하게 말하는 올리버.

“이건 위험해. 그의 손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칼이 쥐어져 있다고.”

그런 동생의 경고에.

“알아. 그리고 그게 녹슬기 시작한 칼이라는 것도.”

올리비아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미소를 또다시 지었다.

이번엔 데릭과 언쟁할 때와는 다른 따뜻한 미소였다.

올리버는 입술을 깨물었다.

“누나. 플레이어로서의 삶이 끝장날 수도 있어. 아니, 이 지구에서의 삶 자체가…….”

“상관없어.”

걱정이 가득한 동생.

그의 어깨를 붙잡은 올리비아는.

“올리버. 우린 그때 죽은 목숨이었어. 하지만 이렇게 살아 있지. 그게 뭐 때문이라고 생각해?”

“…….”

“정의야. 평화와 약자를 수호하고자 하는 전대 히어로들의 정의가, 그 시골 촌구석까지 오게 했고. 결국 우릴 살려냈지.”

어렸을 적.

“누나…….”

들끓던 몬스터를 앞두고 낡은 쉘터로 그를 밀어 넣었던 그때처럼.

“그들이 보여 준 정신이 지금까지 날 있게 만들었어.”

동생의 어깨를 부드럽게, 그러나 강하게 밀어냈고.

“그러니 이젠 내가 베풀 때야. 아니, 갚아야 할 때야.”

스륵.

190에 달하는 올리버의 체구가 힘없이 밀려났다.

그런 동생에 따스한 미소를 짓는 올리비아.

“걱정 마. 올리버. 다 괜찮을 거야. 모두 다.”

늘 차갑던 그녀의 손이 웬일인지, 온기를 가지고 동생의 볼을 쓸었다.

그리고.

그때 그날처럼.

또각.

문을 닫고 나서는 올리비아의 뒷모습을 보며.

그때 그날처럼.

“가지 마…… 누나.”

올리버의 뺨 위론 투명한 물방울이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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