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화
239화. 전부 역방향으로 (1)
10살은 되었을까?
젖살이 그득하지만, 뚜렷하게 올라간 눈매의 아이가 바닥으로 쓰러진다.
다행히도.
“말숙아!”
손을 잡고 뛰던 상태라.
여성은 얼른 아이를 잡아당겨, 바닥으로 넘어지는 사고를 막아 냈다.
“괜찮니? 다친 덴 없어?!”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는 여성.
딸과 정반대로 온화한 눈매의 여성은 황급히 딸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무리 여자아이라도 한참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
고로 꽤나 무거울 텐데도.
“엄마 꽉 잡고 있어야 한다? 알았지?”
“으, 응!”
여성은 딸 아이를 꼭 품은 채.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안 돼…….”
멀지 않은 곳에서 몇 번이나 봐왔던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던 고말숙은.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뒷걸음질을 멈추고 황급히 앞으로 내달렸다.
그에 기다렸다는 듯.
콰아앙!
전방에서 강렬한 폭발이 일어난다.
“아악!”
당연히 10살짜리 아이를 안고 있던 여성은 그 여파로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제 품에 있는 딸아이를 품에 꽉 끌어안고 있었다.
“이!”
이를 빠득 갈며, 곧장 바닥을 박차는 고말숙.
제아무리 플래티넘 랭크의 전투계라도.
불안정한 궤도로 날아가는 이를 따라잡기란 쉽지 않건만.
파앙!
허공을 박찬 그녀는 고랭크 전투계의 산물인 에어워크를 자유자재로 밟으며.
“내 쪽으로…….”
떨어지는 여성을 끌어안았으나 그뿐.
스륵.
떨어지는 여성이 허상인지.
아니면 고말숙이 허상인지.
여성은 고말숙의 손을 통과하여.
철퍽.
“아흑!”
단단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곳곳에 널린 콘크리트 파편 때문일까.
“엄마! 피! 피가!”
여성의 몸 곳곳엔 피가 스며 나왔으나.
“어, 엄마는 괜찮아. 우리 딸. 다친 덴 없지?”
여성은 자신을 걱정하는 딸을 되레 살피곤.
“어서 움직이자.”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정확히는.
“조금만 더 가면 벙커가 나올…….”
일으키려 했다.
자신과 목숨보다 소중한 딸아이의 머리 위로.
스윽.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전까진 말이다.
이어.
“크르르…….”
호랑이의 그것처럼.
듣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하다 못해, 근육까지 바짝 얼려버리는 울음이 들려온다.
고개를 들자.
특정할 수 없는 갯과의 머리가 달린 거인이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에.
“아, 안 돼…….”
허무하게 여성을 놓쳤던 고말숙의 몸이 또 한 번 세차게 흔들렸고.
“말숙아! 뛰어!”
비명 같은 여성의 목소리가 흔들리던 고말숙의 정신을 일깨웠다.
분명 자신의 손을 통과했을 텐데.
고로 이 모든 것은 잊을 만하면 찾아오던 악몽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을 진데.
“멈춰…….”
이성이 그 사실을 일깨우는 일은 없었다.
본능.
오로지 저 여성을 살려야 한다는 본능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할 뿐이었다.
정확히는.
“멈추라고오!!”
10살 이후로 이미 수십 번이나 봐왔던, 그날의 장면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스륵.
피핑!
내지른 주먹, 발차기, 파의 초식 섬멸포까지.
그녀가 내지르는 그 어떠한 공격도, 갯과 머리의 거인을 통과할 뿐.
결코 타격을 줄 순 없었다.
“크르르!”
쿵.
갯과 머리의 거인이 한 발 내디딘다.
고작 한 걸음이건만.
단박에 가까워진 거인은 전봇대 같은 팔을 들었다.
“이익!”
고말숙의 이가 절로 꽉 다물린다.
그녀의 관자놀이 위로.
투둑.
울룩불룩한 핏줄이 치솟았고.
단전에서 파생된 마기.
난폭하고 저돌적인 묵색의 기운이 리미트가 해제된 엔진처럼 전신에 에너지를 공급했다.
우웅!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이명이 그녀의 주먹에서 흘러나온다.
“그 손 치우라고 X새끼야아아!!”
그리하여.
천마신공(天魔神功) 격(擊).
패황쇄(覇皇碎).
마치 거울에 주먹을 힘껏 박아넣은 것처럼.
쩌적.
지금껏 단 한 번도 닿지 않았던 공격이 틀어박혔고.
그렇게 처음으로.
쨍그랑!
고말숙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막지 못했던 악몽을 깨부쉈다.
* * *
쿠르릉.
고막 너머로 가슴을 두드리는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솨아아아.
그에 맞춰 억수 같은 비 역시 쏟아졌지만.
반쯤 박살 난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한 여성의 주위만큼은 단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 여성의 머리 위로.
후욱.
허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X발. 이럴 거면 그냥 콱! 한번 덮치고 올걸 그랬나?”
걸쭉한 욕설.
하나 그것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여성은 매력적으로 빠진 눈꼬리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막상 원 없이 뒈지려니까. 처녀라는 게 이리 억울할 줄이야.”
어느새 필터까지 닳아버린 담배.
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긴 그녀는 뒤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도.
“그렇지 않냐? 겁대가리 상실한 쥐새끼야?”
여전히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어차피 지도 남자면 싫어하진 않았을 거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앙?”
그러나.
“…….”
아무 답도 들려오지 않았고.
“참나. 내 뒤를 노리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말까지 씹어?”
헛웃음을 흘린 그녀는 불씨가 남은 꽁초를 질근질근 밟아버리곤.
“아무리 뒈질 각오로 왔을 거라지만.”
몸을 돌렸다.
물론 그녀의 손에 시커먼 기운이 응축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었으나.
“겁대가리를 너무 상실한 거…….”
웅.
그녀는 차마 응축된 마기를 내지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 뭐냐?”
전혀 예상치도 못한 존재가 서 있었으니까.
하나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인 것일까?
“그러는 넌. 뭔데?”
상대 역시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물어오는 말투나 어조, 분위기도 그렇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하나 있긴 있었다.
“아아, 도플갱어였나? 아직도 살아남은 새끼들이 있었나 보네.”
흡연의 유무 때문인지.
방금까지 담배를 피웠던 여성의 목소리가 약간은 더 허스키하다는 것.
“하긴, 그 개 같은 능력이 생존 하나는 아주 탁월하지.”
시니컬한 미소를 지은 여성은 허공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말이야…… 내가 모처럼 누굴 위해서 헌신하는 마당이라, 기분 잡치고 싶지 않거든?”
이내.
“이 천마의 뒤를 노리고도 살아남은 걸, 영광으로 여기고 꺼져라. 물론…….”
허공에서 손바닥만 한 거울을 꺼낸 그녀는 맞은 편에 있는.
“내 모습은 지우고 X발아.”
자신과 똑같지만, 좀 앳된 여성을 비추었다.
아티팩트인 것일까?
지이잉.
거울에선 작은 이명과 함께 광선과도 같은 빛이 쏘아졌다.
하나 그것을 정면으로 맞았음에도.
도플갱어라 칭했던 존재의 외형은 변함이 없었다.
그에.
“뭐야? 불량품인가?”
여성이 제 손에 쥐어진 거울을 내려다보았고.
“하! 김시문 이 새끼가 불량품을 만드는 날도 다 오네?”
아까와 다르게, 다소 따뜻함이 담긴 헛웃음을 머금었다.
“아씨! 그 빈틈없는 놈은 이럴 때 까야…….”
그때.
“김시문? 방금 김시문이라고 했냐?”
앳된 여성이 갑자기 김시문이란 이름을 되짚었고.
“……한 번만 더 그 이름 입에 담으면 죽는다.”
여성의 눈이 삽시간 사나워졌다.
하지만.
“지X하네. 개소리 말고 답이나 해. 네가 어떻게 김시문을 알아? 아니, 애당초 넌 뭔데 내 면상 달고 있어?”
도플갱어라 칭해진 앳된 여성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오히려 위협적으로 되물어왔고.
“하! 막상 죽으려니까 진짜, 별의별 개잡것들이 다 붙네.”
시원하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젓던 그녀는 쥐고 있던 거울을 갈무리했다.
이내.
“짜증 나게.”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는 여성.
그녀의 주먹에선.
우우웅!!
검은 마기가 강맹한 울음을 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앳된 여성도 당하지만은 않았다.
쿠웅.
곧장 바닥을 박차는 앳된 여성.
놀랍게도.
사사삭!
땅을 박찼던 앳된 여성의 신형이 순식간에 대여섯 개로 나뉘었고.
“이건!”
그를 본 여성은 두 눈이 부릅떴다.
‘처, 천마군림보?’
앳된 여성이 회피기로 사용한 그것은 다름 아닌 천마군림보였으니까.
심지어.
‘저건 5성이 넘어야 쓸 수 있는 환영보잖아?’
3성이 되자마자 사용할 수 있던 억제력과 다르게.
저렇게 분신으로 갈라지는 것은 5성은 되어야 쓸 수 있지 않은가?
고로.
도플갱어 따위가 절대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이게 대체…….”
여성은 눈은 대번에 의문으로 차올랐으나 거기까지.
“뒈졋!”
우웅.
자신에 비하면 미약하지만.
‘패황쇄까지 쓴다고?!’
너무나 익숙하고 잘 아는 형태의 마기를 내지르는 앳된 여성에 한 번 더 경악을 했다.
그렇게.
콰아아앙!
여섯 방향에서 날아든 패황쇄가 작렬한다.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금세 걷어졌고.
치켜 올라간 눈매와 상반되게.
“……야.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뭔데 패황쇄가 날 통과한 거냐?”
여성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앳된 여성을 바라보았다.
하나 그런 여성은 안중에도 없는지.
“X발! 아까는 잘만 깨지더니. 이번엔 또 왜 안 되는 건데?”
앳된 여성은 제 주먹을 내려다보며, 정체 모를 짜증을 토할 뿐이었다.
그때.
오싹.
짜증을 토하던 앳된 여성이 흠칫 몸을 떤다.
“뭐, 뭐야?”
덜덜.
그녀는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으로 힘겹게 몸을 돌렸고.
볼 수 있었다.
쿠그그그그그그!
감히 형용할 수 없는 존재감을 담으며, 이곳으로 부유해오는 거대한 눈동자를.
그에.
“정신 차려. 이년아.”
시니컬한 목소리가 정신을 일깨운다.
어느새 그녀의 곁에선 여성은.
“내 얼굴로 그딴 표정 짓지 마라. 기분 엿 같으니까.”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 눈동자를 힐끔하곤 물었다.
“진짜 시간 없어.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너야말로 정체가 뭔데!”
“아 X! 이게 진짜!”
와락 일그러지는 여성의 얼굴.
이내.
“후…… 이게 거울 치료라는 건가? 나도 참 엿같은 년이긴 했구나.”
한숨을 푹 내쉰 그녀는 고개를 절레 젓고는.
우우우웅!!
어마어마한 마기가 어린 주먹을 내질렀다.
방금 앳된 여성이 내질렀던 천마신공의 초식.
패황쇄였다.
물론 마냥 똑같다곤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내지른 일격에.
콰르르르르륵!!
천지가 진동하다 못해, 뒤집혔으니까.
어디 그뿐이던가?
[끄으으으으!]
다가오던 거대한 눈알 역시 꽤 먼 거리로 밀려났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위력이었으나.
“종리추 이 X새끼. 대체 뭘 소환했길래 패황쇄에도…….”
정작 이 일을 해낸 당사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짜증스럽게 앞머리를 쓸어올리곤 말했다.
“어이. 싸가지. 마지막이다. 너 대체 정체가 뭐냐?”
“……고말숙이다. 넌?”
어느 정도 짐작했던 대답.
“내 답도 너랑 똑같거든? 됐고. 너 천마신공은 어떻…… 아니. 이게 아니지.”
머리를 벅벅 긁던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젓곤 말을 이었다.
“너 여기에 어떻게 나타난 거냐?”
“나도 잘 몰라. 아마 그 하루토인가 지점토인가 하는 새끼가 개수작을…….”
“하루토?”
여성의 눈매가 꿈틀한다.
“설마 카미사토 하루토. 그 또라이 새끼를 말하는 거냐?”
“X나 능글거리면서 설치는 또라이라면 맞아.”
“말도 안 돼…… 그 새끼는 분명 내 손으로 대가리를…….”
믿기지 않는 눈으로 제 손을 내려다보는 여성.
이내 중얼거림을 뚝 멈춘 그녀는 고개를 홱 들고 물었다.
“어이 고말숙. 너 몇 살이지?”
“반말 실컷 하더니 갑자기 나이는 왜…….”
“아! 닥치고 몇 살이냐고! 이년아!”
“……24살이다 이년아! 왜!”
지지 않고 버럭 소리치는 앳된 고말숙에.
“하!”
여성은 잠시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곤.
“그 지X 맞은 성질을 보니, 점점 이 정신 나간 가설에 믿음이 가네. 원래 모서리의 짐승은 시공간을…….”
“갑자기 뭔 개소리야?”
저 혼자 중얼거리던 여성은 고말숙을 바라봤다.
“뒈지기 전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는 모르겠다만. 24살의 고말숙아. 잘 들…….”
지지직!
갑자기 말을 잇던 여성의 목소리가 일그러진다.
여성만이 아니었다.
쩌저적.
쩌적!
무슨 멸망을 앞두고 있던 세상처럼.
시커멓고 어둑한 세상이 깨진 유리처럼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토 하루…… 그 새끼가…… 부산에 아웃…… 엄마의…….”
“뭐, 뭐라는 거야!”
조각조각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쨍그랑!
시공간이 깨졌고.
서걱.
공간을 통째로 베어내며 들이닥치는 익숙한 강기와 함께.
“말숙아! 고말숙! 괜찮아?”
검성 김시혁이 그녀를 잡아챘다.
* * *
드네프르 강의 동부.
아웃 브레이크에서 좀 멀리 떨어진 이곳엔.
팔랑.
발목에 황금색 날개 두 쌍을 단 미남자, 시문이 하늘을 주파하고 있었다.
‘분명 여기 어디쯤이었을 텐데.’
주변이 휙휙 지나갈 정도로 빠른 속도였지만.
키이잉.
오딘의 눈을 활성화시킨 시문은 주변을 빠르게 수색할 수 있었다.
이내.
키잉!
오딘의 눈에 진한 사기의 파장이 잡혔다.
‘찾았다.’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 시문.
“어?”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유는 간단했다.
휘이이이이!
웬 눈보라가 매섭게 휘몰아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곳의 중심.
‘저 사람은…….’
이 맹렬한 눈보라에도 도도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금발의 여성을 확인한 시문은.
“오, 올리비아?”
깜짝 놀라 육성을 내질렀다.
‘올리비아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아메리칸 드림 소속인 그녀는 전생에서도.
체르노젬의 사건과 아무런 접점이 없었으니까.
잠시 당황스러운 얼굴로 눈을 깜빡이던 시문의 신형은.
‘뭐, 가보면 알겠지.’
팔랑.
페타소스의 황금 날개를 팔랑이며 그곳으로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