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2화
252화. 변화하는 겨울 (4)
“호오?”
모가담의 가슴을 꿰뚫은 시문의 눈에 작은 이채가 어린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찰나에 몸을 틀었어?”
마법계에겐 가장 치명적인 사각에서의 기습이건만.
모가담은 뒤를 보지도 않고 몸을 비틀어, 급소인 심장을 피해 낸 것이다.
하지만 급소를 피했을 뿐.
인간인 이상, 가슴이 꿰뚫렸다는 것 자체가 치명상이었고.
“쿨럭!”
실제로 모가담은 피를 한 됫박이나 토하며, 간헐적으로 몸을 떨어댔다.
이어질 시문의 2차 공격엔 꼼짝없이 당할 상황.
이를 마담 역시 잘 알았기에.
그녀는 전신에서 출혈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꼼짝 마!!”
벌떡 일어나 뒤편으로 손을 뻗으며 외쳤다.
“거기서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했다간! 올리비아 덴슨은 죽은 목숨인 줄 알아!”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재차 움직이려던 시문이 뚝 멈춰 섰고.
그것을 본 다이애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역시, 저놈은 올리비아 덴슨이 목적이었어!’
김시문이 세계적인 유망주란 건 일찍이 알고 있던 바.
최고의 스카우터인 윈터 퀸이 그런 김시문을 가만둘 리 없었을뿐더러.
‘둘 다 우크라이나의 아웃브레이크에 참여했었으니, 뭐라도 관계있는 거겠지.’
사이좋게 우크라이나의 일도 관여하지 않았던가?
어떻게든 좋은 관계가 형성되었을 것은 뻔할 뻔 자였다.
마담 다이애나는 시문에게 눈도 떼지 않은 채.
“레이나! 저 자식이 움직이면 당장 그년의 숨통을 끊어 버려!”
표독스럽게 외쳤다.
하나 몇 초간의 흐름 뒤에도.
레이나에게선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고.
“빨리 대답 안 해?!”
다시 한번 독기어린 목소리로 외치는 다이애나.
하지만 침묵은 여전했고.
하는 수없이.
“망할!”
키이잉.
특성 자력으로 암기들을 떠올리며 그녀는 주위를 한껏 경계한 채 빠르게 뒤편을 힐끔했다.
그러곤.
“아…….”
눈을 부릅뜨는 다이애나.
무리도 아니었다.
지금쯤이면 반쯤 송장이 된 올리비아 덴슨을 쥐고 있어야 할 레이나가.
“꺼, 꺼흑……!”
입에서 쉬지 않고 피를 내뿜으며, 헐떡이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꿰뚫린 목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어떻게든 출혈을 막아보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 레이나의 뒤편으로.
회색의 각진 암석인 네오디뮴 자석과 그 표면에 붙은 무지갯빛 수리검이 보였고.
‘서, 설마…….’
이를 확인한 마담 다이애나는 둔기에 맞은 듯 멍해졌다.
그렇게 서서히 뒤를 돌아보는 다이애나.
“당신…… 처음부터 내가 아니라…….”
그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천천히 읊조렸고.
“빌런들의 주력기 중 하나가 인질극이잖아? 아는데 당해 줄 이유가 없지.”
시문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친절히 그녀의 생각에 확신을 주었다.
“하, 하하…….”
헛웃음.
아니,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숙부.”
시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숙부라고?’
그리고 마담 다이애나는 또 한 번.
“내게 명령하지 마라.”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두터운 나무뿌리가.
꾸드드득.
방치된 올리비아를 보호하듯 감쌌으니까.
“김무열! 당신이 어떻게!”
충격 어린 마담 다이애나의 시선이 곧장 김무열을 향하는 순간.
“잠깐.”
그녀의 움직임이 뚝 멈춘다.
‘김무열? 김무열, 김시문…….’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같은 성씨.
거기다 때마침 저 오만하고 권위적인 남자가 갑자기 아메리칸 드림의 지부에 행차해, 앞을 가로막은 것까지.
일련의 상황들이 순식간에 마담 다이애나의 머릿속을 스쳤고.
“철목왕 당신! 처음부터!”
결국 작금의 상황에 대한 답을 내어놓았다.
김무열은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으나.
이미 대답은 들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파렴치한 인간 같으니!”
다이애나의 목에 핏대가 선다.
“농락을 즐기는 저질인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씹어먹을 듯 내뱉는 그녀의 말을.
“농락이라…….”
잠시 곱씹던 김무열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너희가 알아서 당한 거지. 내게 굳이 가한 적은 없다만?”
“이익! 당신!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눈에 불똥이 튀는 다이애나.
“고작 콩알만 한 나라의 협회장 따위!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야!”
그녀는 피가 뚝뚝 흐르는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당장 우릴 후원했다는 자료만 퍼져도 당신은 끝장이라고! 그걸 몰라서 이래?!”
세계 최대의 범죄 조직인 데스페라도.
실제로 미국의 백악관까지 테러한 전적이 있으며, 최근 우크라이나의 아웃 브레이크 덕에 더욱 악명이 높아진 바.
이런 시국에서 그들을 후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제아무리 철목왕 김무열이라 한들, 버틸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잘 알지.”
‘알려지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김무열은 비릿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한데…… 그 모든 게 알려지려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지 않겠나?”
이어.
“네가 이곳에서 살아나간다는 조건 말이다.”
꾸드드득!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두터운 나무뿌리들.
“선혈의 무도!”
다이애나는 다급히 강기가 덮인 암기들을 내질렀으나.
이미 시문과의 일전으로 받은 부상이 적지 않은 바.
카가각!
그녀의 암기들이 나무뿌리들을 베어 내는 것보다.
꾸드드득.
들이닥치는 나무뿌리의 양이 훨씬 더 많았다.
다이애나는 이를 악물었다.
‘망할! 하루토가 준 탈출용 아티팩트를 쓰려면, 단 1초라도 시간이 필요한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구비해 둔 탈출용 아티팩트.
공간 능력자인 차원악동 카미사토 하루토가 준 성물이 있었으나.
안 그래도 마법계에다 철두철미한 김무열이 그 작은 틈을 놓칠 리 없을 터.
거기다.
‘여기서 김시문까지 난입하면 난…….’
모가담을 조져버린 김시문이 남아 있지 않은가?
다이애나의 시선이 자연스레 김시문을 향했고.
‘저건!’
볼 수 있었다.
우웅.
김시문의 백금색 팔에 꿰뚫린 채.
흉흉한 안광을 발하고 있는 모가담을 말이다.
‘모가담…….’
비록 그녀는 창립 멤버고 모가담은 2세대의 가입자라곤 하나.
같은 핵심 멤버로서의 전력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래. 방법은 이것밖에 없겠지.’
모가담의 뜻을 읽어 낸 그녀는 오러를 비롯한 전력을 쥐어짜.
“칼날 폭풍!”
힘껏 몸을 한 바퀴 돌렸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우아하게 회전하는 마담.
허공에 흩날려지는 그녀의 핏방울을 가르고.
피잉.
강기를 머금은 무지갯빛 암기가 스쳐 지나간다.
이내.
사사사사삭!!
고출력의 믹서기처럼.
범위 내의 모든 것을 갈아 버리며, 삽시간에 범위를 늘려나가는 암기들.
이어.
“Mk 0…… 혈소폭발…….”
죽어가던 모가담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더니.
꽈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결계 내부 전체를 집어삼켰다.
* * *
자욱한 흙먼지가 가신다.
아메리칸 드림의 한국 지부였던 빌딩은 어느새 통째로 내려앉아 있었다.
딱 한 가지.
짙은 갈색의 거대한 나무 고치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내.
꾸드득.
고치를 이루던 나무뿌리들이 스르륵 풀려난다.
“쯧. 자폭이라니. 설마 이딴 짓거리까지 할 줄은 몰랐군.”
짧게 혀를 차며 정장의 먼지를 털어내는 김무열.
그의 귓가로.
“의외네요.”
시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뒤편을 흘낏했다.
그곳엔 드래고노이드를 활성화한 시문이 일행들을 뒤로하고 걸어오고 있었다.
시문은 찌푸려진 김무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설마 저까지 구해 주실 줄은 몰랐는데.”
“무슨 의미냐?”
“그냥요. 죽게 내버려 두실 줄 알았거든요.”
“그런다고 죽을 놈이었으면, 진즉 죽었겠지. 애당초 따로 방어 수단이 있었던 거 아니냐?”
그러니 모가담이 자폭하는 데도 제 자리에서 꿈쩍도 안 한 거겠지.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는 김무열에.
“뭐, 그렇긴 해요.”
시문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방어 무구를 연성하려고 했으니까.’
신화급 방어 무구를 연성하려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착각 마라. 결계 유지를 위해 저년을 챙기다 보니, 범위 안에 네놈이 있었던 것뿐이니까.”
김무열은 뒤편에서 거의 다 죽어가는 레이나를 힐끗했다.
“그래요?”
그런 숙부를 묘한 눈으로 보던 시문은.
‘음?’
익숙한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저건…… 포탈?”
공간을 통째로 도려낸 듯.
포탈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공허로 이루어진 포탈이잖아?’
공허로 이루어진 검보라색의 포탈이 말이다.
그를 본 김무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하! 공간 아티팩트를 사용했나 보군. 바퀴벌레 같은 것.”
이내.
뚜벅.
거침없이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김무열.
“잠시만요.”
시문은 그런 숙부의 앞을 재빨리 막았다.
김무열은 찌푸린 얼굴 그대로 시문을 노려봤다.
“비켜라.”
“일단 제 말부터 들어요. 숙부. 이거 공허로 이루어진 포탈이라고요.”
“그래서? 설마 나더러, 그년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만 있으라는 것이냐?”
안 그래도 서늘했던 김무열의 목소리가 더욱 서늘해진다.
무리도 아니었다.
“이대로 가면 내가 놈들을 후원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질 터. 그걸 노리는 거냐?”
폭발이 일어나기 전.
마담 다이애나가 했던 말이 있지 않은가?
시문은 찬찬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단지 제게 맡기라는 거예요.”
“……너에게?”
“네, 저건 공허잖아요. 자칫하다간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마치 넌 위험하지 않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뭐, 남들보다는요?”
말없이 시문을 바라보는 김무열.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잘 알았기에.
“누차 말했었지만, 전 숙부가 협회장직에 있길 바라는 사람이에요. 믿어보세요.”
시문은 나지막이 말을 덧붙였다.
이내.
스르르.
일대 전체가 왜곡되듯 울렁인다.
결계의 주인인 레이나의 목숨이 끝을 향해 달리는 것이다.
“결계가 풀릴 모양이네요. 그럼 다녀올 테니. 뒤처리 좀 부탁해요.”
시문은 황급히 검보라색 포탈로 이동했고.
“…….”
김무열은 그런 포탈을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 * *
스아아아아.
검보라색의 진득한 기운.
접하는 것만으로도 본능적인 기피와 혐오가 올라오는 공허가 사방에서 넘실거린다.
흡사 먹물로 이루어진 강을 헤엄치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매번 느끼는 거지만, 여긴 정말 토할 것같이 역겨워.’
그 공허로 이루어진 세상을 열심히 헤쳐나가는 중년의 여성.
마담 다이애나는 오물통을 헤엄치는 것처럼 불쾌한 표정으로 이를 악문 채.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손아귀엔.
그르르르…….
귀곡성에서나 들릴 법한 음산한 소리를 내는 뼈다귀가 쥐어져 있었다.
‘하루토 이 망할 새끼! 이 엿같은 소리 좀 안 나게 만들라니까!’
당장이라도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불쾌했으나.
이 아티팩트를 놓아 버리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알고 있었기에.
“쯧.”
다이애나는 짧게 혀를 차며, 꿋꿋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때.
우우우!
손에 쥔 뼈다귀.
하루토가 건넨 아티팩트의 울음소리가 한결 더 강해진다.
그것이 누군가 포탈을 이용했다는 신호임을 알고 있는 그녀는.
‘뭐야? 설마 이 공간에 들어선 거야? 날 쫓으러?’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뒤편을 돌아봤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검보라색의 진득한 공허뿐.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기에.
“잘됐네.”
코웃음을 친 그녀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확 뒈져 버리면 나야 좋으니까.”
심지어 공허 속이라면 어마어마하게 고통스러울 게 아니던가?
그런 그녀의 귓가로.
“안타깝네. 그럴 일은 없어서.”
들려선 안 될 목소리가 들려왔고.
걸음을 뚝 멈춘 그녀는 천천히,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 먼 곳도 아니었다.
그녀의 왼쪽으로.
“잠시 사이에 멀리도 왔네. 덕분에 좀 뛰었어.”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백금의 미남자가 서 있었다.
“어, 어떻게……!”
다이애나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든다.
무리도 아니었다.
‘여긴 공허 속인데!’
공허.
살아 있는 생명체는 물론.
죽은 자들에게도 어떤 위험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기운.
차원악동 카미사토 하루토에게 받은 특수한 아티팩트가 아니라면.
이곳에서 제 한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 텐데!
그런 다이애나의 속내를 꿰뚫어 본 것일까?
“아아. 왜 공허 속에서도 멀쩡하냐고? 뭐랄까. 내가 공허랑 좀…… 친해서라고 해야하나?”
시문은 미소를 머금으며 친절히 답해 주었으나.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다이애나의 머릿속은 더욱 어지러워질 뿐이었다.
이내.
“저, 저리 꺼져!”
발악적으로 남은 암기들을 쏟아내는 다이애나.
그러나 부상도 부상이거니와.
모가담의 자폭에 맞춰, 전력을 쏟아낸 상태.
오러가 드문드문 씌워진 암기들론.
까가강.
시문의 드래고노이드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고.
“더 보여 줄 건 없지?”
저벅.
공허 속임에도 발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시문을 본 그녀는.
‘이, 이렇게 죽는다고……? 데스페라도의 창립 멤버인 내가?’
빌런으로서 겪어 온 그 어떤 사선보다도.
깊은 절망감을 맞이했다.
* * *
스아아아.
진득한 검보라색 공허.
사방을 가득 메운 그것이 몸을 비벼왔으나 그뿐.
“흥.”
서늘한 중년인의 코웃음과 함께.
꾸드득.
그의 옷 속에서 백색의 나뭇가지들이 자라나자.
시이이이!
주변의 공허들은 비명과 같은 소리를 내며 물러났고.
별이 없는 우주처럼.
김무열의 일대는 시커먼 무주의 공간으로 변했다.
무려 최악의 기운이라는 공허를 물려냈건만.
“쯧.”
김무열의 얼굴은 불만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천계의 신목으로도 고작 이 정도가 한곈가?’
그의 옷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나뭇가지들은 무려 천계의 신목이 아니던가?
그 씨앗의 값과 희귀도가 3대 광물과 맞먹는 수준임을 고려해 보면.
고작 이 정도 효과밖에 못 본다는 것은, 나름 짜증이 날 만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주변의 공허를 물린 채.
저벅.
김무열은 어둑한 공허 속을 걸어 나갔다.
‘건방진 놈. 감히 내가 제 부하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뒤처리를 부탁한다는 망할 조카놈.
이는 뒤집어 말해서.
감히 이 김무열이에게 뒤처리나 하라는 말이지 않은가?
‘내 문제는 내 손으로 처리한다.’
그 날 이후로.
자신에게 문제가 될 후환은 모두 제 손으로 직접 처리해 온 자신이다.
측근인 최창욱의 손도 빌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물며 그것이 자신도 방심할 수 없는 조카놈이라면야.
‘남을 쉽게 믿을 만큼, 난 멍청하지 않다. 김시문.’
김무열의 눈매가 한결 사나워진다.
그렇게 걸음을 내딛던 순간.
쿠르르르르르.
공간이 크게 뒤흔들린다.
흔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흡사 태풍이라도 들이닥친 것처럼.
스아아아아!!
일대의 모든 공허가 거세게 소용돌이쳤고.
천계의 신목을 두른 김무열 역시.
“윽!”
이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이내.
몇 초가.
아니.
몇 시간이 지난 걸까?
시간의 흐름조차 짐작할 수 없는 소용돌이가 사라지고.
쿠르릉.
웬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여, 여긴?!’
감겼던 김무열의 눈이 부릅뜨인다.
당장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듯한 하늘.
그 아래로.
너무나 익숙한, 하지만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될 한옥이 보이는 것이다.
자신의 두 손으로 친히 불살라 버렸던.
‘김씨 가문의 저택이 대체 왜 여기에……!’
김씨 가문의 저택이 말이다.
하나 그의 경악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끼익.
대문 앞에 멈춰선 검은 세단.
그리고 그곳에서 내리는.
“고마워요. 최 기사님.”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한 여성에.
‘아…….’
김무열의 세상이 일순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