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플레이어의 신화급 무기창조-258화 (258/349)

제258화

258화. 멸망이란 (2)

어느 종족이건 감탄을 터트릴 절경.

그곳이.

화르르르!

엄청난 불길로 활활 타오른다.

일반적인 산불이 아닌 것일까?

피처럼 시뻘겋기도 하고.

때론 사막의 모래처럼 누렇기도 한 불길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화라락!

화륵.

섞이지도 않는 몸을 맞대며, 게걸스럽게 수목들을 집어삼켰고.

이 거대한 화재의 중심.

화과산에서도 몇 없는 귀한 평지인 그곳에선.

“더 질러라! 더!”

“우리 종족의 위대함을 보여 줘라!”

다수의 용족들과.

“우끽! 이 도마뱀 놈들에게 뒤처지지 마라!”

“우리 요괴가 더 잘났다는 걸 알려 줘라! 끼익!”

사람만 한 원숭이들의 윽박과도 같은 고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흐음…….”

그런 두 종족의 경쟁을 가만히 보고 있던 근육질의 원숭이.

사실상 고릴라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3미터의 거대한 그가.

“어째. 멸망 작업이 늦어지는 것 같군. 코브란.”

뒤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곳엔.

“커, 커헉!”

중독이라도 된 것인지.

시퍼렇게 변한 거구 하나가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의 종족이 재생력 하나로 아레나 중위권에 안착한 트롤임을 고려해 보면.

참으로 믿기 힘든 광경.

이내.

“끄…….”

단말마 같은 짧은 신음과 함께.

쿠웅.

시퍼렇게 물든 트롤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그 거구에 가려진.

“제 이름은 술디크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드래고니안과 같은 몸.

그러나 그보다 훨씬 넓적한 머리를 가진 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스스로를 술디크라 칭한 그는.

“코브란은 최상급 용족이자, 제 종의 명칭이지. 이름이 아닙니다만.”

방금 트롤을 쓰러뜨린 것으로 예상되는 입가의 퍼런 독을 슥 닦아내며 답했다.

그에.

“킥! 이 통풍대성인 미후왕께서, 한낱 용족의 이름까지 외워야 하는가?”

4미터에 달하는 근육질의 원숭이.

스스로를 통풍대성 미후왕이라 소개한 그가 비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대놓고 보이는 비웃음인데도.

“당연합니다.”

그것이 비웃음인지 모르는 건지.

아니면 신경 자체를 쓰지 않는 건지.

“이곳에 있는 코브란만 총 10여 명이잖습니까? 이름을 모르시면 앞으로 일 처리를 하는 데에 불편을 겪으실 테니까요.”

술디크는 다분히 차분한 음성으로 주르륵 말을 이을 뿐이었고.

“…….”

그런 술디크의 모습에 미후왕은 잠시 말을 잃어버렸다.

이내.

공연한 기 싸움은 포기하기로 한 걸까?

“좋다. 술디크.”

처음으로 술디크의 이름을 똑바로 부른 그는 쓰러진 트롤을 턱짓했다.

“이런 잡것들이나 잡는다고, 시간을 너무 낭비하는 거 아닌가? 이러면 작업이 늦어지잖나.”

“그렇지 않습니다.”

차분히 고개를 젓는 술디크.

“차원 멸망전 공격 측에 참가한 플레이어는 총 99명.”

그는 주변에 쓰러진 50구의 시체들을 훑었다.

“저희 측의 플레이어를 제외하면 총 50명이나 되니. 시간을 들여서라도 처리를 해 두는 것이 현명합니다.”

“우리의 목적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될 겁니다.”

확신을 담아 답하는 술디크.

파충류 특유의 길게 찢어진 동공이 미후왕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희는 이 행성의 핵을 얻고자 왔고, 당신은 이 차원의 성흔을 얻기 위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한데 이 차원 멸망전에서 승리하고 나면, 저 50명의 플레이어들이 그것들을 얌전히 넘길까요?”

“그거야…… 아니겠지.”

행성의 핵과 성흔.

갤럭시 아레나에 참가한 플레이어라면,

“애당초 그 둘은 차원 멸망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크고 귀한 보상이니까.”

결코 놓칠 수 없는 보상들 아닌가?

“역시.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했습니다.”

미후왕의 말에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술디크.

그에 미후왕의 눈매가 슬쩍 가늘어졌다.

‘분명 저놈의 말이 맞기는 한데…….’

술디크의 말과 행동은 더없이 효율적이고 똑바른데도.

‘왠지 묘하게 기분이 더럽단 말이지.’

그와 이야기를 나눈 미후왕은 더없이 기분이 더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나.

‘당장은 참아야겠지. 아무리 그놈이 봉인되어 있다 해도, 매번 멸망전을 방어해 냈으니…….’

실제로 몇 번이나 화과산의 멸망전을 유도하고 도전했건만.

매번 막히지 않았나?

‘하지만 3용제를 등에 업은 이상, 이젠 이야기가 다르지.’

비록 3용제 역시 행성의 핵이라는 목적을 지니고 도움을 준 것이긴 해도.

결국 자신이 더 급한 쪽이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

특히.

‘권능이 집약된 화염을 뿜는 저 염화방사포라면……. 화과산의 멸망 키워드를 공략할 수 있어!’

3용제가 지원해 준 저 거대한 화염 아티팩트.

염화방사포는 그간 치렀던 멸망전 중에서도 최고의 화력을 자랑할뿐더러.

멸망전의 방어 인원마저도 1명뿐이지 않는가?

이번에야말로 화과산을 멸망시킬 수 있을 터.

‘거기다 내겐 그것이 있으니. 만약 별 탈 없이 화과산의 성흔만 차지한다면…….’

술디크를 바라보는 미후왕의 두 눈에 섬뜩한 살기가 깃들었으나 찰나였을 뿐.

“으핫! 그렇고말고! 내가 괜히 미후왕이겠는가? 그쯤이야 다 알고 있지!”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재빨리 그것을 묻어 버리는 미후왕.

그런 미후왕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과연 통풍대성. 신뢰가 갑니다.”

기계적으로 고개를 주억인 술디크는 미후왕을 지나쳐.

“그럼 방해꾼도 다 처리했으니. 저희도 손을 보태지요.”

전방으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던 미후왕은.

“……그러지.”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술디크의 뒤를 따랐다.

“크핫! 교대 시간이다!”

“끼끽! 우리도 배고프다! 바꾸자!”

실시간으로 교대까지 해 가며, 효율적으로 방화를 저지르는 두 종족.

“염화방사포의 2자리를 비워라. 나와 미후왕께서 각각 자리할 거다.”

그들을 제지한 술디크가 염화방사포에 자리하려던 순간.

“음?”

미후왕의 바윗덩이 같은 눈매가 꿈틀한다.

무리도 아니었다.

저 멀리 뻗어 나간 염화방사포의 불길이.

화르르르.

하늘까지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불이…… 꺼지고 있잖아?”

허공으로 치솟아 사라지고 있다고 해야겠지.

이는 미후왕만 확인한 것이 아닌지.

“이, 이럴 수가!”

지금껏 사무적이고 차분했던 술디크가 처음으로 경악을 토한다.

무리도 아니었다.

“염화가 고작 바람 따위에 진압되다니!”

염화.

이 차원 화과산을 불태우는 이 불꽃은 다름아닌.

‘어떻게 된 거지? 염화는 3용제께서 친히 작업하신 불인데!’

3용제 아포피스가 직접 수 가지의 권능을 섞어 만들어 낸 화염 아니던가?

어지간한 고위급 마법으로도 어찌하지 못하는 화염이었다.

어찌 되었거나.

‘우선 저 바람의 근원을 빨리 제거하고. 될 수 있다면 표본까지 얻어내야겠어.’

재빨리 평소의 냉철함을 되찾은 술디크가 명령을 내리려던 찰나.

“이, 이런!”

그의 두 눈동자가 삽시간에 커진다.

술디크만이 아니었다.

“여, 염화방사포의 방어막을 활성화시켜라! 당장!!”

“얼른 방어 요술을 사용해라! 끼끽!”

전방을 보던 미후왕 역시.

술디크와 함께 목이 터져라 소리를 내질렀고.

그런 둘의 앞으로.

화라라라락!

염화를 머금은 강풍이 들이닥쳤다.

* * *

식물로 이루어진 화려한 부채.

펄럭.

그것이 가볍게 펄럭일 때마다.

화르륵.

세상을 불태우던 붉고 누런 화염이 삽시간에 허공으로 흩날렸고.

그 아래론 시커멓게 타 버린 화과산의 그을린 자국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나.

팔랑.

발목의 황금색 날개를 팔락이며 허공을 나는 시문은.

펄럭!

허공을 선회하며 유난히 한쪽 방향으로만 부채질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끄아악!”

“뜨, 뜨거워!”

화과산의 몇 안 되는 평지.

그 위로 자리한 이 화재의 주범들에게 그들이 내뱉은 불길을 되돌려 주고 있는 것이다.

부채의 강풍으로 인해, 화염의 화력이 꽤 사그라든 상태인데도.

화라라라락!

붉고 누런 화염은 다양한 색을 띤 방어막을 쉽게 녹여 버리고.

“바, 방어막이!”

“우끼끼이!”

방화범들을 무자비하게 휩쓸어 나갔다.

그리고.

-ㄷㄷ…….

-미쳤다! 이건 또 무슨 마법이야?

-불을 끄다 못해서 역으로 날려 버리넼ㅋㅋㅋ

-신규 마법인 듯? 나 풍속성 처음 봄.

-ㅇㅇ 이 형 방송 처음부터 본 사람인데. 풍속성 마법 쓰는 건 한 번도 못 봤음.

시문이 바람을 다루는 것을 처음 본 시청자들은 경악을 토했고.

=딱 봐도 권능이 집약된 불길 같은데. 고작 바람으로……?

=보나 마나 권능급 바람이겠지. 뭘 놀라나?

=위에 놈은 말을 참 쉽게 하는군. 권능이 개나 소나 다룰 수 있는 힘인 줄 아나?

=놔둬라. 저능한 종족들이 그렇지.

이는 타 차원의 채팅창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다른 부분이 한 가지 있긴 했다.

=저 부채, 내 기억이 맞다면……. 현시점에서 존재할 수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위에 너, 최상위 종족인가 보군. 그걸 알다니.

=나 역시 그렇게 알고 있다. 아마 선계의 일 때문이었지?

=호오? 최상위 종족들이 꽤나 있군. 너희 말대로 저 부채의 주인은 봉인된 지 오래지.

=저번 아즈쉬타의 바다에서도 그렇고……. 이 인간, 다수의 성좌들과 접점이 있군.

시문의 부채가 범상치 않은 것임을 눈치챈 이들.

그들은 부채의 주인까지 아는 눈치였으나.

아쉽게도 전투 중이었던 시문은 채팅창을 보지 않는 상태.

그러나.

-너, 너!!

시청자들 말고도 비슷한 반응을 보내 오는 이가 있었으니.

-정체가 대체 뭐야? 응?!

다름 아닌 시문을 용병으로 요청한 성좌였다.

어지간히도 흥분한 것일까?

-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이 시국에 형수님의 무구를 사용하는 거냐고! 설마 형수님께서 풀려난 거냐?

머리가 울릴 정도로 외쳐 대는 성좌.

하나 놀란 것은 시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형수님? 파초선이 형수님의 무구라고?’

파초선.

전생에 대륙성의 마법계 랭커였던 풍녀 적미림의 무구.

그리고 시문의 기억상.

‘적미림은 배후성이 없었는데?’

풍녀 적미림은 배후성이 없이, 신화급 무구인 파초선을 사용했던 플레이어였다.

한데 형수님이라니?

시문은 즉시.

[방송으로 나가는 모든 대화가 음소거됩니다.]

아레니아의 방송 설정에 음소거를 걸곤 물었다.

“당신. 이것의 주인인 나찰녀를 아는 모양이지?”

또 한 번 주변의 불길을 날려 보낸 시문은 나지막이 물었고.

-물론이지! 요계에서 나찰녀를 모르는 이가 어디 있……다고, 가 아니라!

저도 모르게 줄줄 내뱉던 성좌는 급격히 브레이크를 밟더니.

-내가 먼저 물었잖아! 인마! 네가 어떻게 형수님을 아냐고!

대답한 것이 억울했던 것인지.

또다시 언성을 높이는 성좌.

그러나 시끄럽기만 할 뿐.

어딘가 칭얼대는 남동생처럼 느껴진 시문은.

“내가 하는 말을 보면 몰라? 이름만 알지. 나도 자세히는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야.”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그에.

-너! 내가 봉인되어 있다고 막말을 던지나 본데! 도술을 안 써도 그깟 거짓말 따위는…….

얼른 열이 올라 답하던 성좌는 말끝을 흐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뭐, 뭐야? 거짓말이 아니잖아?

그의 힘으로 직접 확인한 결과, 거짓말이 아니라고 밝혀진 것이다.

충격이 상당했는지.

-말도 안 돼……. 진짜 형수님을 모른다고? 그럼 파초선은 대체 어떻게…….

아까와 달리 낮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성좌.

-설마 선계의 첩자인가? 아니지! 그 망할 놈들이 기껏 얻은 파초선을 일개 플레이어한테…….

혼자서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는 모습이 퍽이나 웃겼지만.

‘파초선의 주인도 그렇고. 이 성좌도 요계 소속 성좌에다 봉인까지 당했나 보군. 선계와도 관계가 안 좋고.’

뭐, 그 부분은 마음에 드네.

그리고 성좌의 발언들로 빠르게 여러 정보를 유추한 시문은.

‘역시……. 화과산부터 좀 느낌이 오더라니. 이 성좌는…….’

자신을 용병으로 요청한 성좌의 정체를 간파했다.

하지만.

“여하튼. 그 일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아직 아레나가 끝난 게 아니잖아?”

화과산을 뒤덮은 화재는 어마어마했기에.

시문은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는 전방을 턱짓했고.

-마, 맞아! 뭐가 어찌 됐건 간에! 파초선이면 이깟 불길 따위는 죄다 날려 버릴 수 있지!

실제로 눈에 보였으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을 모습이 선한 성좌는.

-가라! 형수님의 연자여! 이번 멸망만 피하게 해 주면, 내 보상은 확실하게 쥐여 준다!

나찰녀를 언급하며 신나게 답했고.

“그 말 잊지 마라?”

성좌의 말을 다시 한번 되짚어 준 시문은 씨익 웃어 주곤.

전방으로 날아갔다.

발목에 착용한 탈라리아 때문일까?

파앙!

파공음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쏘아지는 시문.

이내.

“우끼끽! 저놈이다! 저놈이 이 사달의 범인이야!”

“인간? 고작 인간 놈이 어찌!”

파초선의 역공속에서도 살아난 방화범들을 확인하곤 헛웃음을 머금었다.

‘뭐야. 용족도 있었어?’

이어.

그의 시선이 파초선의 열풍에도.

화르륵.

우웅!

계속해서 화염과 방어막을 형성 중인 거대 아티팩트들로 향한다.

‘저 아티팩트가 권능이 담긴 불길을 뱉어 내나 본데…….’

그리고 보나 마나.

저 방화 아티팩트는 용족들이 가져온 것일 터.

‘일단 화재의 원인이니. 저것부터 제거해야겠군.’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시문은 파초선을 고쳐 쥐었다.

그때.

파스스.

손에 쥔 파초선이 미묘하게 떨려 온다.

굳이 볼 필요도 없었다.

‘벌써 힘이 다 됐나?’

리바운드.

소모성 신화급 연성품의 힘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드득.

시문의 몸이 삽시간 뒤틀린다.

순식간에 2미터의 크기로 자라나는 육체.

종을 뛰어넘은 육체 속으로.

우웅.

강맹한 기운이 저돌적으로 활성화된다.

그것을 파초선을 쥔 손아귀에 끌어모은 시문은 아르스 마그나의 묘리로.

휘이이잉.

바람과 마기.

섞일 수 없는 두 기운이 상식을 넘어 한곳에 뒤섞이도록 만들었고.

[성좌 천마가 ‘허허! 졸지에 유부녀와 함께하게 되다니. 우마왕 놈. 속 좀 쓰리겠군.’ 눈을 반짝입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색마가! 저건 그냥 무구라고!’ 어이없는 시선을 보냅니다.]

시문은 어딘지 위험해 보이는 천마의 반응을 뒤로한 채.

토옹.

맑은 이명을 흘리는 탁구공만 한 구슬을 던졌다.

이젠 거리가 꽤 가까워져서일까?

“……어?”

“잠깐만. 저놈은!”

“아, 안 돼! 반격 말고 우선 피해…….”

때마침 시문을 알아본 용족들은 경기를 일으켰으나 거기까지.

천마신공(天魔神功).

파(波) 천마옥(天魔玉).

이미 시위는 그들의 손을 떠난 상태였고.

그렇게.

휘오오오오오!!

거대한 태풍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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