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9화
269화. 화안금정 (4)
황금으로 빚어낸 듯한 금빛 머리칼과 꼬리.
그와 같은 색으로 이글거리는 눈동자와.
“진짜 이 날만 기다렸다. 이랑아.”
장난기 가득한 미소와 목소리까지.
갑작스레 등장한 금빛 꼬리의 청년에 이랑진군의 두 눈이 부릅뜨인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존재.
“제, 제천대성! 네놈이 대체 왜!”
제천대성은 이곳엔 존재해선 안 될 이였으니까.
이내.
“또 그 눈이냐?”
이랑진군은 눈앞의 이글거리는 금색 눈.
화안금정을 험악스레 노려봤다.
“그 저주받을 눈으로 작금의 상황까지 읽고, 하계의 인간에게 분신체를 넘긴 것인가?!”
우웅.
주변이 일그러질 정도로.
이랑진군의 서슬 퍼런 호통에도.
“내가 몇 번을 말하냐? 화안금정은 미래까지 못 본다니까.”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인 손오공.
“하여간에 제멋대로 생각하고 판단 내리는 건 여전해요.”
하나 마냥 여유로운 몸짓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파츠측.
손오공의 주변으로 작은 불똥들이 튀어 오르지 않는가?
그것이 이 와중에도 시문을 노리는 이랑진군의 기파와.
‘역시 성좌는 성좌라고. 애 같아 보여도 든든하긴 하네.’
시문을 지키려는 손오공의 기파 간의 싸움임을 시문은 모르지 않았다.
손오공 역시 그런 이랑진군의 수작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더럽고 비열한 수작질도 여전하고 말이지.”
그의 기세를 가로막으며 입꼬리를 비죽 끌어올렸다.
하나.
“네놈의 그 오만방자함도 여전하다! 제천대성!”
손오공의 비소에 호통을 내지를 뿐.
이랑진군은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고 하는 게 더 알맞겠지.
스륵.
바람처럼 흔들린 손오공의 신형이.
쐐애액!
어느새 이랑진군의 정면으로 쏘아졌으니까 말이다.
이어.
짜아아악!
강렬한 마찰음이 터져 나온다.
놀랍게도.
짜자작!
쩌억!
무기 하나 쥐지 않은 양손으로.
“어쭈? 이걸 반응해?”
“이놈이!”
삼첨창을 쥔 이랑진군과 동수를 나누는 손오공.
하지만.
조금이라도 경지를 이룩한 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성좌와의 난타전은 점차.
“으핫! 여전히 약하구나? 이랑진군!”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점점 우세를 점해가는 손오공의 도발에.
“이익!”
얼굴을 붉어지는 이랑진군.
하나.
짜자자작.
콰르륵!
점차 밀려나는 난타전에서 결코 변수가 될 공격은 내지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길! 저놈이 강한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만!’
제천대성과의 수많은 마찰과 악연을 고사하더라도.
힘으로는 신왕급인 옥황상제와도 맞먹어, 석가여래께서 직접 나서게 만든 선계의 대역죄인 아니던가?
고로 말이 상위서열이지.
저 무식한 힘만 놓고 보자면 신왕급과도 다름없는 존재.
이랑진군 역시 그런 제천대성의 무력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인과를 얻어 형성된 내 분신체가 밀리다니……!’
아무리 그렇다 한들.
이랑진군 역시 상위서열의 성좌에다, 현재 정당한 절차를 거친 분신체를 형성한 상태.
심지어 손오공은 맨손이고.
자신은 무기인 삼첨창까지 지니고 있지 않던가?
한데도 손오공과 동수를 나누다 못해, 서서히 밀리기 시작하다니?
‘빌어먹을!’
이랑진군의 얼굴이 확 일그러진다.
‘근본도 모르는 천한 요괴 출신 따위가 감히…….’
어디서 어찌 태어났는지조차 모르는 근본도 없는 놈.
심지어 신선도 아닌 요괴놈 따위가.
“상제의 혈족인 이 이랑진군의 행사를 막아?!”
매번.
어찌 매번 옥황상제의 혈족인 자신의 행보를 이리도 막아댄단 말인가?
하나 그런 노성에도.
“어휴~ 이랑아. 그놈의 태생 소리는 지겹지도 않냐? 그래서, 그 잘난 태생으로 날 이긴 적은 있고?”
손오공은 질린다는 듯.
“어찌 네놈을 두고 다들 나한테만 무식하단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릴 뿐이었고.
그것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노오옴!”
이랑진군의 눈에 핏발이 선다.
“오냐, 내 오늘은 네놈의 시건방을 반드시 뜯어고쳐 주겠다!”
꽉 쥐고 있던 삼첨창을 바닥으로 쿵 내리찍는 이랑진군.
그에 맞춰.
쿠르릉!
하늘에서 흉흉한 빛줄기가 벼락처럼 삼첨창에 내리꽂혔고.
스으으.
빛이 내리꽂힌 삼첨창은 삽시간 검푸른 기운에 휘감긴다.
“그건…….”
그것을 본 손오공의 눈살이 슬쩍 찌푸려졌다.
“용계의 그 음침한 막내놈 기운이잖아? 설마 너, 그 망할 것들이랑도 손을 잡은 거야?”
“헛소리 지껄이지 말아라!”
대번에 노성을 토하는 이랑진군.
“본인은 상제의 혈족이다. 그깟 저열한 것들과 손을 잡을 것 같은가!”
“그럼 그 기운은 뭔데?”
“그 저열한 것들을 속죄시킨 대가다!”
“속죄는 지X. 용족놈들 털었다는 거잖아? 이거 진짜 한결같은 놈일세.”
이랑진군의 말을 제대로 해석하며, 헛웃음을 흘리는 손오공.
하나.
“닥쳐라!”
일갈한 이랑진군의 신형이 정면으로 쏘아진다.
손오공이 언급했던 5용제의 기운 때문일까?
쏘아진 이랑진군의 신형은 시문의 화안금정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빨랐으나 그뿐.
까앙!
화안금정의 본 주인인 손오공은 다른 것인지.
“새끼. 빨라졌네.”
금빛 기운이 휘감긴 주먹으로 삼첨창을 후려쳐내는 손오공.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는지.
“내 오늘이야말로! 네놈의 버릇을 뜯어고쳐 주겠노라!”
노성과 함께 내지르는 이랑진군의 삼첨창이 수십, 수백 갈래로 갈라진다.
그것은 흡사 독이 잔뜩 오른 독사들마냥.
사사삭!
손오공의 전방을 시작으로 모든 방위를 점하며 쏟아졌고.
시문에게 소환된 이후 처음으로.
“쯧.”
손오공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전투의 양상만이 아니었는지.
-이봐, 김시문. 이대로 가면 뚫리는 건 시간문제다.
이전처럼 시문의 머릿속으로 울리는 손오공의 목소리.
-난 어차피 정당한 절차의 분신체도 아니라서, 저놈한테 당하는 건 별문제가 없거든?
어차피 현재 손오공의 분신체는 그가 시문에게 주었던 머리털로 이루어진 것.
여기서 이랑진군에게 타격을 입는다 한들.
손오공으로선 크게 피해 볼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근데 넌 아니니까. 내가 좀 맞더라도 최대한 활로를 열어줄게. 기회보다가 바로 도망가.
분신체인 그보단, 시문의 생존이 우선이었기에.
도망을 제시하는 손오공.
하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시문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설마 거절할 줄은 몰랐던 것일까?
-뭐라는 거야! 인마!
대경실색한 목소리로 외치는 손오공.
-이랑이가 좀 멍청해 보여도, 엄연한 선계의 무신 중 하나야. 어중간한 놈이 아니라고!
하나.
“알아.”
지금껏 보여준 모습들이 좀 그래서 그렇지.
이랑진군이 엄연한 상위서열의 성좌라는 것은 시문도 잘 알고 있었다.
애당초 전생의 대륙성을 통해 다 알던 부분 아니던가?
단지.
“진짜 달아날 필요가 없어서 그래.”
진심으로 달아날 이유가 없어서이다.
이는 어중간한 자존심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애당초 상대는 성좌의 분신체.
전생의 하이랭커급이나 되면 모를까.
지금의 시문으로선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비벼볼 상대조차 되지 못했으니까.
그걸 손오공도 알았기에.
-그게 대체 무슨 개소리야! 진짜 너 죽는다니까?!
버럭 소리를 내지른다.
그뿐이던가?
콰가가가강!
어마어마한 폭음이 고막을 쉬지 않고 두드렸다.
오딘의 눈이 아니었다면, 감히 눈을 뜰 엄두도 내지 못할 전투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점차 격화되는 상황에.
-그냥 뒤에 차원 찢어 줄 테니까. 당장 달아나!
이젠 여유도 없는지.
더는 설득이 아닌, 행동으로 움직이려는 손오공.
그에.
“너. 이랑진군한테 밀리는 이유가 무기 때문이지?”
시문은 나지막이 물었고.
-어디 무기뿐이냐? 저 망할 5용제의 기운만 아니었어도, 이랑이 놈은 그냥 이긴다고!
실제로 5용제의 검푸른 기운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손오공이 밀어붙이던 구도 아니던가?
“그럼 너도 무기만 쥐면 되는 거잖아.”
-이 와중에 대체 무슨 소릴! 으아악!
다급한 비명을 내지르는 손오공.
-망할! 저 새끼 눈치챘나 본데?
손오공이 뭘 꾸미는지 눈치챈 것일까?
“어림없다! 너희 두 놈 모두 이곳에서 속죄하거라!!”
이랑진군은 흉흉한 안광을 흘리며.
콰가가각!
일대 전체로 삼첨창의 기운을 쏟아부었다.
하나.
“네 무기를 대충은 아는데 본 적은 없어서, 저번에 했던 지식 전수로 무기 정보 좀 넘겨 봐.”
시문은 차분히 읊조릴 따름이었고.
-야이! 이 와중에 자꾸 무슨…….
손오공이 어이없는 기색을 내비쳤으나 그뿐.
“빨리.”
시문의 나지막한 재촉에.
-에라이 미친놈! 루시퍼가 왜 붙어 있는지 이제야 알겠구만!
루시퍼를 들먹이며 최고의 칭찬을 내뱉은 손오공의 말이 끊어진다.
이어.
저번 오행산에서 손오공에게 삼장의 지식을 받았던 것처럼.
스으으.
일련의 지식들이 시문의 뇌리에 아로새겨졌다.
그것을 슥 훑은 시문은.
‘거참, 이런 무식한 걸 무기로 쓴다는 게…….’
어이없는 실소를 한번 흘려주곤.
따악.
곧바로 손가락을 튕겼다.
[요구치에 맞는 연성을 이루기에는 연성력이 부족합니다.]
[현자의 돌이 부족한 등가교환을 성립시키기 위해, 업적 포인트 500점을 요구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익숙하게 떠오르는 등가교환창.
‘신왕의 무구도 아닌데 500점이나 먹어?’
500점이란 교환값에 눈썹을 슬쩍 들어 올렸으나 그뿐.
‘하긴, 이만한 무구면 그럴 만도 하겠네.’
손오공에게 받은 무구의 내용을 본 시문은 절로 납득을 하며, 등가교환창의 ‘예’를 택했다.
그러자.
스르르르.
손가락으로 연성력으로 치환된 업적 포인트가 모여들었고.
따악.
그것을 머금은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파츠측.
연성 스파크가 번쩍이며, 기다란 봉의 형태로 조형된다.
그에.
“그, 그건?!”
억수같은 공격을 쏟아내던 이랑진군이 경악을 머금었다.
어디 이랑진군뿐이던가?
“자, 받아.”
무슨 동네에 지나가는 개한테 간식 하나 던져주는 것마냥.
툭.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손오공을 향해 기다란 봉을 던지는 시문.
그것은 유도기능이라도 달린 것처럼.
휘리릭.
손오공의 손아귀로 빨려들었고.
손에 쥔 봉을 내려다보는 손오공 역시.
“…….”
말만 없을 뿐.
이랑진군의 얼굴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지금까지 봐온 손오공의 성격을 고려해 보면.
이러한 침묵은 오히려 더 격한 반응이라고 해야겠지.
그걸 다른 뜻으로 착각한 것일까?
“얼굴 펴. 기존에 네가 쓰던 것보다야 부족하겠지만, 나름 쓸 만은 할 테니까.”
시문은 그런 손오공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너도 분신체잖아?”
분신체에 모조품.
딱 어울리는 조합 아니던가?
“…….”
“…….”
그렇게 말하는 시문을 잠시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손오공과 이랑진군.
이내.
“하…….”
한숨과 같은 헛웃음 머금은 손오공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넌 진짜 종잡을 수 없는 놈이야.”
고개를 한번 슬쩍 젓고는 손에 쥔 봉을 슬쩍 기울였다.
그러자.
까가강!
곧바로 터져 나오는 폭음.
시문을 향해 몰래 내지른 이랑진군의 삼첨창을 보지도 않고 막아 낸 것이다.
그는.
“이랑아, 내 손에 여의봉이 들린 걸 보고도 이딴 기습을 하냐?”
까각.
삼첨창과 맞물린 여의봉을 까딱하며 입꼬리를 끌어올렸고.
“이……!”
이랑진군은 두 손으로 삼첨창에 있는 대로 힘을 가했으나 그뿐.
끼긱.
삼첨창을 가로막은 여의봉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망할 것들이!”
노기가 가득한 고성과 함께.
파아아앙!
가공할만한 파동이 터져 나온다.
그 반동으로 여의봉을 떨치고, 하늘 높이 떠오르는 이랑진군은.
“……용납할 수 없다.”
이를 빠득갈며 모든 힘을 삼첨창의 끝에 집약시켰다.
스아아아!
흉흉한 빛과 검푸른 기운이 한계까지 응축된 순간.
“용납할 수 없단 말이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허공을 박차며 아래로 내리꽂혔다.
쿠르르르!
하늘이 통째로 내려앉는 듯한 무시무시한 일격.
아래에서 그것을 가만 올려다보던 시문은.
“어때? 나 이번에도 도망가야 하냐?”
장난기 어린 미소로 물었고.
“하여간에, 루시퍼 같은 놈이 붙은 이유가 있다니까.”
손오공은 같은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이내.
“커져라. 여의.”
짧고 강직한 그의 말을 끝으로.
쩌어어어어엉!!
세상이 뒤흔들렸다.
* * *
한국 각성자 협회.
지하 주차장의 한 검은 세단에서 내린 서늘한 중년인.
김무열은 답지 않게.
쾅!
차 문을 거세게 닫으며, 어딘지 조급함이 담긴 얼굴을 한 채 성큼성큼 협회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로 순식간에 따라붙은 2미터의 거구.
“모시겠습니다.”
골렘 최창욱이 한 발 더 나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으나.
하필 모든 엘리베이터가 10층 이상의 고층에 위치해 있었고.
“망할.”
짧게 짜증을 터뜨린 김무열은.
텅!
곧바로 옆의 비상구 문을 열었다.
상당한 층수를 자랑하는 협회의 건물답게.
위를 향하는 계단은 끝없이 펼쳐졌으나 그뿐.
1세대의 랭커 출신.
심지어 아직도 현역에 뛰고 있는 김무열에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타앗!
마법계임에도.
범인을 초월하는 신체 능력과 마법, 특성의 보조로 순식간에 계단을 주파하는 김무열.
어느새 최상층에 도달한 그는 망설임 없이 해당 층으로 들어섰고.
벌컥!
협회장실의 문을 거칠게 열고 나서야, 그 저돌적인 걸음을 멈추었다.
이내.
“……언제 도착한 것이냐.”
아직 얼굴에 남은 조급함 때문일까?
미세하지만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김무열.
그에.
“방금이긴 한데…… 길이 엇갈렸습니까?”
협회장실의 중앙.
제 집마냥 편안히 앉아 있는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청년이 답한다.
지금의 상황이 꽤나 의외인 건지.
“최 비서님이랑 아까 통화했잖아요. 뭐하러 그렇게 급히 온 거예요?”
두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하나 의외인 건 이쪽도 마찬가지인 것일까?
“……급해? 내가?”
비슷한 얼굴로 되묻는 김무열.
그런 김무열이 어이가 없다는 듯.
“딱 봐도 호흡이 좀 떨리고, 옷매무새도 흐트러져 있잖아요.”
시문은 그를 향해 턱짓했고.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된 것인지.
“…….”
굳은 얼굴로 침묵하는 김무열.
하지만 그도 잠시.
“하.”
시문과 똑같이 어이없는 얼굴로 코웃음을 친 그는.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좀 거슬렸을 뿐이다.”
앞머리를 거세게 쓸어올리며, 소파의 상석에 털썩 앉았고.
“짜증이 났다는 거죠?”
그의 말을 정확히 해석해 낸 시문은 피식 웃으며 막 우린 듯한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이어.
“벌써 도착하셨군요. 시문 님.”
김무열과 비슷한 행색을 한 골렘 최창욱이 협회장실로 들어선다.
앞서 협회장실에서 보기로 통화를 했던 시문이었기에.
“예. 생각보다 가깝더라고요.”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며 답했다.
그런 시문의 귓가로.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거냐?”
평소대로 돌아온 김무열의 목소리가 파고든다.
시문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어떻긴요. 알고 계신 그대로죠.”
“대륙성이 암살을 시도했다? 그것도 도로 한복판에서?”
“예.”
“너와 통화까지 하고 마중을 왔던 김시혁은 암살자였고?”
“맞아요. 더불어 유정이나 말숙이, 진욱 씨까지 전부 폴리모프를 한 암살자더라고요.”
“하.”
또다시 코웃음을 흘리는 김무열.
자연스럽게 품에서 담배를 꺼낸 그의 앞으로.
찰칵.
최창욱이 라이터를 내밀었으나 그뿐.
“…….”
담배를 입에 물려던 김무열은 잠시 멈칫하더니.
“쯧.”
짜증스럽게 혀를 차곤 담배를 테이블 위로 툭 던졌다.
당연하게도.
‘또 왜 저래요?’
시문은 도무지 이해 못 할 눈빛으로 최창욱을 힐끔했고.
최측근인 그 역시도.
‘저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눈빛으로 답을 보내왔다.
잠시 저어지던 시문의 고개를.
“그럼 지금 랭커팰리스 근처에서 해제 중인 결계 내부엔, 김시혁을 제외한 그 3명도 같이 갇혀 있겠군.”
김무열의 목소리가 붙잡는다.
“아마 그렇겠죠.”
시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무열은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올 때 들은 보고론. 네가 휘말린 결계 일대엔 시체는커녕, 전투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던데?”
“맞아요. 결계와 더불어, 타 차원으로 강제 이동을 당했거든요.”
심지어 암살자들의 시신은 이랑진군의 분신체를 강림시키기 위해, 모두 흔적도 없이 써버린 상황.
거기다.
“타 차원이라…… 그럼 따로 증거도 남아 있지 않겠군.”
“예. 전투가 끝나자마자, 다시 도로로 소환되었으니까요.”
애당초 뒤처리까지 계산한 것인지.
손오공이 이랑진군을 처리하자마자, 다시 달리고 있던 도로로 역소환되지 않았던가?
‘자칫 차에 치일 뻔했지.’
정확히는 자신과 부딪칠 차가 큰일이 날 뻔했지.
급브레이크를 밟던 차와 운전자의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새록새록 떠올랐다.
피식 웃음을 흘리는 시문을 보고.
“그럼 이제 어쩔 것이냐.”
김무열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 어떤 증거도, 증인도 없다. 현 상황으론 대륙성의 짓임을 잡아낼 수 없을 터.”
중소규모.
하다못해 한국의 길드라면 모를까.
상대는 세계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대륙성이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대륙성에게 암살당했다고 논하기엔.
일반적으로 많은 무리가 있었다.
또한.
“아마 김시혁쪽도 마찬가지겠지.”
“그렇겠죠.”
이번 암살을 위해 발이 묶였을 동생과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일 터.
‘폴리모프까지 곁들인 암살인데. 거기서 증거 따위를 남길 리 없지.’
고로.
“그럼 현재로선, 놈들의 범행임을 지적할 방법이 없겠군.”
이번 암살 사건의 배후로 대륙성을 지적할 방도는 아예 없었다.
“그렇죠.”
시문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미간을 슬쩍 좁히며 묻는 김무열.
이유야 간단했다.
“……이대로 넘어갈 테냐?”
그간 겪어 온 김시문이라는 인물을 너무나 잘 알지 않는가?
아니나 다를까.
“그냥 넘어가진 않죠.”
대번에 고개를 젓는 시문.
“뭘 어쩔 셈이지?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대륙성은 압박할 수 없을 텐데.”
“그야…….”
그 얼굴 위로.
“없으면 만들면 되니까요.”
묘한 미소가 걸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