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8화
298화. 듀오 (3)
왜애애앵.
요란하진 않지만.
꽤나 격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
그 아래로.
흙먼지가 자욱하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내.
평소의 사무적이고 차갑던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윈드!”
바람 마법으로 흙먼지를 치워 낸 올리비아가 황급히 달려온다.
“다들 무사하십니까?!”
하나 거기까지.
휘이이이.
자욱했던 흙먼지가 걷히고.
대련장 내부의 상황이 시야에 들어오자.
또각.
올리비아는 다급하던 걸음을 멈췄다.
우웅.
어느새 금색의 성력을 휘감은 이유정의 손과.
우득.
드래고니안의 그것과 같은 시문의 손이 고말숙이 내지른 일격을 막아 낸 것이다.
하나 당황으로 가득했던 올리비아의 얼굴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 두 분이 직접적인 공격을 막아 냈음에도…….’
분명 현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두 플레이어가 직격타를 막아 냈거늘.
‘이 대련장이 반파되었단 건가……?’
분명 랭커팰리스의 위명에 어울리도록.
온갖 아레나산 재료들이 떡칠 되어 있는, 이 대련장이 반파되었으니까.
나름 심드라실의 간부로서.
‘분명 눈에 띄는 실력자라곤 하지만, 데이터상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고말숙의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올리비아로선.
‘이놈의 길드는 대체 알면 알수록…….’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올리비아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물론 고말숙이 아닌.
‘오라버니…….’
시문을 향한 경악이긴 했으나.
이유정 역시 슬쩍 입을 벌린 채.
놀란 감정을 여실 없이 내보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 이렇게 빨라지신 거지?’
천살성을 실은 고말숙의 일격.
그것을 막기 위해 관중석을 뛰쳐나간 당시.
시문은 그녀와 거의 맞먹는 속도로 쏘아지지 않았던가?
이는.
‘아무리 내가 버프를 쓰지 않은 상태라지만…….’
보조계가 주력인 그녀의 버프가 사용되지 않은 상태라지만.
전투계로서도 어지간한 다이아들은 압살해 버리는 그녀의 스펙을 고려해 보면.
그야말로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특히나.
‘난 힘 스탯의 유니크 스탯인 괴력을 지니고 있는데, 그런 나와 비슷한 신체 능력을 내다니…….’
그녀는 일반적인 힘 스탯이 아닌.
힘 스탯의 유니크 스탯인 괴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던가?
세상의 많은 이들이 그녀의 무지막지한 완력을 괴력으로 표현하는 것은.
실제로 전혀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한데 그런 그녀와 동급의 신체 능력을 보이다니?
물론.
‘지금까지 오라버니의 성장 속도를 따져보면, 마냥 이상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스탯값의 총량은 내가 훨씬 높을 텐데?’
마력불능으로 수년을 고생하다 올해 초에 플레이어로 데뷔한 시문.
그에 비해 이유정은 김시혁과 함께 데뷔 후.
순식간에 랭커까지 치고 올라, 지금까지 랭커의 자리를.
그것도 랭커 중 랭커라 불리는 위치를 계속 고수해 온 상태 아니던가?
당연히 레벨업으로 주어지는 잔여 스탯만 환산해도.
올해 데뷔한 시문과는 절대적인 차이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분명 그래야 했는데.
‘어떻게 나와 비슷한 속도를…….’
그런 그녀의 상념을.
“말숙아. 정신 차려.”
시문의 미성이 일깨운다.
다행히도.
“야, 누가 들으면 무슨 회까닥 돈 년인 줄 알겠다.”
이 파괴적인 공세와 달리.
고말숙다운 대답이 튀어나온다.
물론 이는 말일 뿐.
“나 지금 완전 멀쩡하거든?”
짐승의 그것처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하는 그녀는 잔뜩 흥분한 수인족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어.”
가슴에서 울컥울컥 피를 쏟으며 할 말은 전혀 아니었으나.
“정말 미쳐버릴 정도로.”
상쾌하다 못해.
동공까지 벌렁거리는 그녀의 미소는 정말이지 보통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 천살성의 단점을 너무나 잘 아는 시문은.
“알아, 내 말은 좀 진정하라는 거야.”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고.
“X발!”
그에 짜증을 토한 고말숙은 순식간에 인상을 찌푸리며.
“나 기분 좋다고 했잖아! 왜 자꾸 미친년 취급이야!”
언성을 높였으나 그뿐.
“그런 애가 결투도 끝난 마당에…….”
우득.
그녀의 주먹을 쥔 시문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이렇게 힘을 주체 못 하냐?”
“…….”
언제 언성을 높였냐는 듯.
곧바로 침묵하는 고말숙.
시문이 대놓고 짚기도 했으나.
스스로도 아는 것이다.
현재 들끓는 이 힘을 전혀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천살성의 영향임을 잘 아는 시문은.
“눈 감고, 호흡을 길게 들이켰다 내쉬어. 다 끝났어.”
차분히.
그러나 그녀가 자극되지 않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 난…….”
불안정하게 떨리는 고말숙의 눈.
그에.
“나도 알아. 말숙아.”
시문은 드래고노이드가 되지 않은 반대 손으로.
“지금 눈을 감으면. 이 고양감을 가라앉히고 호흡을 가다듬으면…….”
천살성의 기운에 파르르 떨리는 고말숙의 주먹을 덮었다.
“지금 얻은 모든 게 사라질 것 같겠지.”
정곡을 찌른 것일까.
“…….”
떨리는 눈으로 말없이 시문을 바라보는 고말숙.
시문은 그런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하지만 그렇지 않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네가 원할 때. 언제건. 넌 지금의 상태가 될 수 있어.”
어떠한 논리적인 이유나.
확고한 근거 같은 것을 들이대지 않는데도.
왜 이리 진짜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그에 영문 모를 심술이 샘솟은 것인지.
“……그걸 네가 어떻게 확신하는데.”
고말숙은 소심한 반발을 뱉어 냈고.
“그야…….”
잠시 말끝을 흐리며, 고말숙을 지그시 바라보는 시문.
어째서일까?
‘아…….’
재수 없을 만큼 잘난 저 외모 때문일까.
아니면 작은 빈틈만 보여도.
얄밉게 치고 들어오던 그간의 모습 때문일까?
“널 잘 아니까.”
전혀 납득할 수 없는.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개소리 같건만.
“……하.”
어째서인지 저 정체 모를 신뢰에 믿음이 갔다.
아니.
믿음이 가다 못해.
두근.
심장의 박동까지 거칠어졌다.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으로 그것을 깨닫고.
“그러니 말숙아. 놔버려.”
이번엔 마기가 아닌 용력을 휘감은.
“이제 괜찮아. 다 끝났어.”
지나치게 위험한 이 악마의 속삭임에 홀린 그녀는.
털썩.
정말 모든 것을 놓아 버렸다.
* * *
다부진 몸에 험상궂은 얼굴.
흡사 조폭을 연상시키는 그 외형에 걸맞게.
“나쁜 년.”
굵직하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욕을 내뱉는 남성.
하나.
“아! 거 더럽게 질척거리네! 미안하다 했잖아!”
눈앞의 여성에겐 전혀 위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애당초 근육 아재가 먼저 살수로 선빵 갈긴 거잖아. 내가 왜 미안해야 해?”
고말숙은 도리어 눈을 치켜뜨며, 박진욱을 노려보았고.
“살수도 정도가 있지! 네 그 주먹이 틀어박혔으면 난 곧장 황천행이었어!”
박진욱 역시 지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하이고! 천하의 밤사냥꾼이 엄살은. 어차피 유정이도 대기 중이었잖아.”
“어, 엄살! 야 인마! 직격타도 안 됐는데 나 양팔이 골절됐다고! 이게 엄살이냐?”
하나.
“팔까지 부러졌어? 참나, 생긴 건 산적같이 생겨 가지고. 영 약골이구만?”
“뭐, 뭐?!”
애당초 승자와 패자의 입장과 여유는 다를 수밖에 없었기에.
“그렇잖아? 난 이제 다이아에 막 올랐는데, 몇 년 동안 다이아 최상위권에서 계시던 분이 뭐? 골절?”
“야! 난 암살계고! 넌 전투계잖아! 공격력도 아니고, 체력에서 밀리는 건 당연한 거라고!!”
“얼씨구? 그래서. 공격력은 압도하셔서, 대련을 지셨나 봐~?”
고말숙의 ‘너 약하잖아’ 시전에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박진욱.
결국.
“으아아악!”
냉정이 1순위인 암살계의 마음가짐으로도.
“고말숙! 오늘 진짜 끝을 보자! 너 죽고 난 산다!”
스릉.
고말숙의 도발을 버텨내지 못했고.
방금 쓰러졌다 눈을 떴음에도.
“X발 좋지! 안 그래도 제대로 쳐 보지도 못하고 끝나서 김샜는데!”
고말숙은 곧바로 팔을 걷어붙이며 자리를 박찼다.
하지만.
“그만.”
잔뜩 열이 오른 두 사람 사이로 파고드는 서늘한 목소리와.
“이 이상 소란을 일으키면, 둘 다 무구 키트는 없을 줄 아세요.”
그만큼이나 서늘한 내용에.
“…….”
“…….”
고말숙과 박진욱은 합죽이가 되어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상황을 종료시키고.
“진욱 씨는 다음에 마스터 되시면 같이 듀오 돌려요. 그리고 다음 무구 키트는 진욱 씨부터 챙겨드릴게요.”
“저, 정말입니까?! 약속하신 겁니다!”
신화급 무구 키트를 미끼로 박진욱을 달래어 보내버린 시문은.
“컨디션은 어때? 괜찮아?”
“엉! 유정이가 해 준 치료잖냐. 이런데도 아프면 그건 그냥 뒈질 운명인 거지.”
“그래? 알았어.”
툭툭 몸을 털며 일어나는 고말숙을 보곤 턱을 까딱였다.
“그럼 바로 가자.”
* * *
[마스터 랭크 승급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 아레나의 종목은 ‘공성전’,‘서바이벌’이고, 참가 인원은 1,000명입니다.]
[조건 ‘협력’이 추가됩니다.]
[참가자 모두 2인으로 팀이 맺어집니다.]
[인원이 모두 보이면 아레나가 시작됩니다.]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
특히나 그 시선을 끄는 것은.
“이게 뭐야? 공성전에 서바이벌이라고?”
종목에 위치한 공성전과 서바이벌이라는 두 개의 종목이였다.
난생처음 보는 문구에.
“야, 이거 맞냐? 뭐 오류 뜬 거 아냐?”
휘둥그런 눈으로 시문을 돌아보는 고말숙.
그에 비해.
“아마 맞을 거야.”
시문은 차분한 눈으로 앞에 떠오른 공지를 바라봤다.
그래.
마치 진즉 알고 있던 사람처럼 말이다.
당연히 실제로도 그러했다.
‘이중 종목이라…… 정규 아레나도 시작됐고, 랭크도 올랐으니. 슬슬 나올 법도 하지.’
이중 종목.
말 그대로 종목이 2개로 선정되어 나오는 것으로.
정규 아레나가 열린 이후.
주로 다이아 상위권 이상의 랭크대부터 등장하는 종목 방식이었다.
“그런가? 참! 그러고 보니 시혁이랑 유정이도 승급이 좀 특별했다고 말했던 거 같긴 하네.”
같은 동갑내기이기 때문일까?
김시혁, 이유정과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지.
두 사람의 승급전 이야기를 꺼내는 고말숙.
그에.
“그 말은 말숙이 너. 시혁이랑 유정이 방송은 안 챙겨 본다는 소리네?”
시문은 늘 그렇듯.
아주 자연스레 고말숙의 의표를 찔렀고.
“어, 엉? 아니 그게…….”
놀란 토끼처럼 눈이 동그래진 고말숙은.
“그, 그래! 나 최근에 다이아 승급전이랑 데뷔전으로 바빴잖아! 그래서 챙겨 보기가!”
황급히 답했으나 그뿐.
애당초 그녀의 답은 관심도 없다는 듯.
“반갑습니다. 여러분. 오랜만이죠?”
-꺄악! 시문 님! 기다렸어요!
-혀어엉! 왜케 오랜만에 방송 켰어?
-이 형 설마 몰래 뒷아레나 때린 거 아님?
-ㄹㅇ. 이 공백. 심상치 않다.
-이 남자에게서…… 낯선 향기가 난다…….
어느새 아레니아를 켜고.
시청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시문.
“…….”
그것을 멍청히 바라만 보던 고말숙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그러곤.
“……야 이 X자식아!!”
한껏 핏대를 세우며 달려드는 고말숙.
하나.
옵시디언 타블렛의 완성도를 80%까지 끌어올리면서.
전반적인 신체 능력과 함께 감각까지 향상된 시문에겐 어림도 없었다.
그러나.
“페이크다. 이 새끼야!”
시문의 반격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던 것일까?
시문에게 잡힌 팔을 미끼 삼아, 시문의 목을 향해 두 다리를 내뻗는 고말숙.
하지만 고말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시문은.
“미안한데.”
“어?”
터억.
목에 휘감긴 고말숙의 두 다리를 잡고.
“나도 페이크다.”
쿵.
그대로 바닥으로 내려찍어버렸다.
레슬링으로 빗대자면 일종의 파워 밤이나 다름없는 기술이었으나.
가하는 이도.
당하는 이도 모두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난 이들이었기에.
레슬링처럼 바로 다운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
“캭! 이 망할 놈이!”
서로를 얽히고설키는 형태가 되었다.
당연히.
-지금…… 뭐함?
-ㅅㅂ 정규 아레나가 언제부터 염장질하는 곳이…….
-시문 님. 저 여자 누구예요. ^^?
-쟤 고말숙 아님?
-미스 X발을 모른다? 뭐 어디 타 행성 출신이심?
-말숙이는 안 된다! 이놈아!!
이 모든 상황은 시문의 아레니아를 통해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그렇게 말숙이와 아옹다옹하면서도.
‘이런! 방송 중이었지 참.’
시야 한쪽에서 불이 나고 있는 채팅창을 확인한 시문은.
“하하! 안 그래도 여러분께 미리 소개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전방에 떠 있는 알림창을 가리켰다.
“보다시피, 이번 마스터 승급전에 2인 협력 조건이 붙어 있어서요. 같은 길드원인 말숙이에게 부탁을…….”
그러나.
-마, 말숙이?!
-방금 X나 친근하게 불렀는데?
-누가 쟤를 이름으로 불러?
-고말숙이 심드라실 길드인 건 다 아는데. 말숙이는 좀…….
-미스 X발이나 미친년, K 할리퀸도 아니고. 말숙이라니…….
이미 늦어버린 것일까?
-시문 님. 메일 보냈습니다. 확인 후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
-메일단 등장 ㄷㄷ…….
-아니 미스 X발도 육수가 있어?
-이쁘잖아. 몸매도 죽이고.
-하긴…… 킹쁘긴 해. 입만 다물면.
-성녀님도 가져가 놓고! 우리 말숙이는 안 된다!!
진압되긴커녕.
오히려 역으로 불타오르는 채팅창.
‘아니, 이렇게 대놓고 싸우는데. 대체 뭘 어떻게 보고 있는 거야?’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시문이 난색을 표하려던 찰나.
[인원이 모두 매칭되었습니다.]
[지역은 차원 미드가르드의 ‘승천의 성채’입니다.]
갤럭시 아레나가 내밀어 준 구원의 메시지와 함께.
사사삭.
무주의 공간이 빠르게 변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