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7화
327화. 예기치 못한 결과 (1)
뭐지?
혹은 누구지?
라는 반응 따위는 튀어나오지 않았다.
밤처럼 어둡지만 두렵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의 메시지창은 단박에 한 존재를 연상시켰으니까.
“예. 닉스. 정말 잘 잤습니다.”
밤의 여신 닉스.
그녀의 느낌을 그대로 담은 메시지창을 향해 답하는 시문.
빈말도 아니었다.
[태초의 잠에서 깨어나셨습니다.]
[모든 컨디션이 회복, 복구됩니다.]
그녀의 말 밑으로 떠오르는 메시지엔.
[신화 스탯 악기를 1 획득합니다.]
[누아다의 은팔이 5% 복구됩니다.]
상상치도 못한 내용이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졸음이 어렸던 시문의 눈이 대번에 번뜩 뜨인다.
‘신화 스탯인 악기 스탯을 얻은 것도 그렇지만…….’
악기.
1이라는 수치 하나로 상당량의 성장치를 제공함은 물론.
그 수급처가 상당히 제한적인 신화 스탯도 그렇지만.
‘누아다의 은팔이라니?’
진짜 신화급 무구인 누아다의 은팔.
10%였던 그것의 완성도를 무려 5%나 올려 주다니?
시문은 서둘러 자신의 오른팔.
누아다의 은팔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누아다의 은팔]
등급 – 신화급 (15%)
소멸해 버린 성좌 누아다의 은팔.
여러 가지 영향으로 상당 부분이 망가져, 제힘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10%였던 이전과 달리.
15%라는 수치가 떡하니 표기되어 있었고.
저며오는 감격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시문은.
“닉스, 아니 누님.”
부르르 떨리는 감격을 간신히 집어삼키며, 진심이 가득 담기다 못해.
“앞으로 자주 재워 주세요.”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발언을 그대로 내뱉었다.
그에.
-오, 오빠?
둥둥 다가오던 현자의 돌이 얼빠진 얼굴로 큼직한 눈을 끔뻑였고.
갑작스러운 시문의 발언에 침묵함도 잠시.
[오호호호호!!]
한동안 웃음을 숨기지 못하는 닉스.
[아아! 언젠가 할머니라고 불릴 각오까지 내심 하고 있었는데…….]
시문의 반응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누님이라니? 오호호홋! 정말 귀여워 죽겠다니까!]
메시지창임에도.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닉스.
하나.
-지X을 하세요.
어디 빙하수를 퍼온 듯.
-태초의 존재 주제에. 할머니조차 양심이 없는데, 누님 소리가 귓구멍으로 넘어가?
어마어마하게 시린 찬물을 대포로 갈겨버리는 현자의 돌.
그러나.
[어디 귓구멍으로만 넘어가는 줄 아니? 아주 전신의 구멍이란 구멍으론 죄다…….]
-으아아아! 그만! 그마아안!!
한술 더 떠버리는 닉스의 태도에 현자의 돌은 온몸을 도리도리 비틀며.
-미친 거 아냐? 애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어!!
붉어진 얼굴로 눈을 부라렸고.
[어머~ 언제는 오빠라더니, 하여간에 앙큼하다니까?]
-닥쳐!
[이 년이 언니한테! 얘! 내가 어느 남자에게 저런 소리 들어보겠니?]
-당연히 못 들어야지! 어느 미친놈이 언니한테 저런 소릴 해? 태초신인 거 잊었어?!
정작 그 미친놈인 당사자.
“혀, 현아. 일단 진정…….”
시문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제지하려던 찰나.
[웃겨! 야! 태초신이고 지X이고! 나도 한때 잘나갔거든?]
자존심이 제대로 긁힌 것일까?
시문에게 보이던 우아한 모습을 집어던져 버리는 닉스.
-암! 잘나겠지, 알고말고! 애까지 줄줄 달린 유부녀시잖아?
언니라 칭할 정도로 가깝긴 한 것인지.
-그것도 어디 한둘이니? 에리스니! 휘프노스니! 네메시스에…… 어이고! 많다 많아!
아주 그냥 쉴 새 없이 기관총을 난사했다.
그러자.
[하! 요년 말하는 것 좀 봐라?]
눈매가 쓱 올라가듯.
메시지창 한쪽이 쓱 올라가더니.
[네가 나한테 애들 얘기를 해? 야. 내 자식이 많니, 네 자식이 많니?]
역으로 현자의 돌의 멱살을 붙잡았고.
-아, 아니! 자식 숫자가 무슨 상관이야! 많으면 많은 거지!
[왜 상관이 없니? 근친부터 시작해서 아주 그냥…… 어휴! 너만큼 다양하게 잉태한 애가 어디 있나 싶다.]
-우, 웃겨! 그러는 언니는 근친 안 했어? 당장 오빠랑만 해도…….
[아아~ 그렇지. 근데 그거 아니? 난 너처럼 신계 하나를 만들 정도로 줄줄 놓지는 않았다?]
결국 언니라 불리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어디 인과 탈탈 털어서 ‘그 신계’ 족보 한번 까볼까? 응?]
피니셔까지 완벽하게 꽂아 넣는 닉스.
결정타였던 것일까?
-야아아악!!
눈을 까뒤집은 현자의 돌이 곧장 몸 던져 돌진했으나 거기까지.
애당초 닉스는 메시지로만 등장한 상태였고.
현자의 돌은 파라켈수스의 플라스크 속의 담겨있지 않던가?
당연히.
콩!
-악!
그대로 연구실 벽에 머리를 들이박는 현자의 돌.
진심으로 돌진했던 것일지.
-으으……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바닥으로 툭 떨어진 녀석은 분노와 고통.
[후후, 동생아? 다음부턴 상대 봐가면서 덤비렴?]
그리고 짙은 패배감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고.
“…….”
그런 두 자매의 무시무시한 격돌에 얼어붙어 버린 시문의 앞으로.
[성좌 제우스가 얼굴을 가리곤 오열 섞인 한숨을 내쉽니다.]
[성좌 오딘, 미카엘, 라, 바알이 제우스의 어깨를 두드립니다.]
[성좌 천마가 ‘허허! 제우스! 자네나 나나 한참 더 정진해야겠구먼?’ 웃음을 흘립니다.]
[성좌 검은 염소가 ‘미친년들…….’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성좌들의 반응이 주르륵 떠올랐다.
* * *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둘이 어떤 경로로든 자매임을 틀림없이 확인할 수 있었던 상황이 지나가고.
“후. 그러니까…….”
시문은 어지러움을 가라앉히듯.
깊은숨을 내쉬며.
“발설지옥으로 다시 입장하기엔,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다는 거죠?”
닉스가 말한 상황을 차분히 되짚었다.
[그래요.]
그에.
[마음 같아선 직접 우마왕의 봉인지로 보내주고 싶었지만…… 아레나 것들이 워낙 지라…… 성화라서요.]
긍정을 표해오는 닉스.
시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흑암지옥까지 간 시점부터 말이 나왔었으니까.’
자신이 닉스를 소환해서 그렇지.
애당초 오도전륜대왕이 말하지 않았던가?
아레나 측에서 어지간히도 성화를 부린다고.
아마 염라대왕이 말했던 ‘정당한 절차’로 인한 발설지옥까진 괜찮았지만.
벨야치로 인한 흑암지옥행은 정당한 절차가 아니어서 그런 것일 터.
어찌 됐거나.
“그럼 다시 발설지옥을 가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겠네요.”
우마왕의 봉인이 있는 발설지옥으로의 재입장은 여러모로 불가능해진 상태.
[그럴 거 같아요. 저도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거기다 지금의 우마왕은…… 여하튼 미안해요.]
닉스는 미안함을 담은 메시지를 보내왔고.
“아뇨, 닉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시문은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제가 감사를 드려야 하는데요. 지금까지 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런 시문의 말에.
[시문 님…….]
어딘가 촉촉해진 느낌의 메시지를 보내오는 닉스.
이내.
“그리고,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거든요.”
시문이 작게 미소를 짓자.
[방법이요?]
닉스는 의문을 표했으나, 찰나일 뿐.
짐작 가는 게 있는 것일까?
[아아, 그걸 그렇게 쓰시려고요?]
닉스는 작은 탄성을 흘리며 물어왔고.
“네, 안 그래도 이번 데뷔전의 보상으로 따질 부분도 있었거든요.”
앞에 떠오른 아레나 보상창들을 쓱 훑었다.
[마스터 랭크 데뷔전에서 1등을 차지하셨습니다.]
[압도적인 성적과 전례에 없는 활약에 클리어 보상이 증가합니다.]
[귀속된 특성 ‘현자의 돌’이 일정량의 경험치를 분배받습니다.]
[레벨이 30 올랐습니다.]
[현자의 돌 레벨이 25 상승했습니다.]
무척이나 익숙하지만.
어딘가 낯선 보상창.
달라진 부분은 하나.
‘이것들, 이번 데뷔전의 아이템 보상을 쏙 빼놨어.’
바로 아이템 보상이 없다는 것.
특히나.
‘특별 랜덤 박스인데도 이걸 안 줬단 말이지?’
데뷔전은 전통적으로 ‘특별 랜덤 박스’를 지급하지 않던가?
물론.
‘뭐, 나름대로 짐작 가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짐작 가는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닉스가 개입했으니, 그걸로 아레나의 공평성이 무너졌다 생각했겠지.’
태초신 닉스.
갤럭시 아레나의 시스템을 두들겨 패 버리기까지 한 그녀 아니던가?
심지어.
‘닉스의 손에 벨야치가 죽기도 했으니…….’
데뷔전의 참가자인 거인족 플레이어 벨야치.
그가 닉스의 손에 죽어 버렸으니.
당연히 갤럭시 아레나 측에선.
자신이 공정함을 넘어서는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일 터.
실제로.
‘닉스 덕을 크게 본 것도 사실이긴 하니까.’
흑암지옥부터 태초의 숙면으로 인한 악기, 누아다의 은팔까지.
‘특별 랜덤 박스’에 버금가는.
아니.
그조차 견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이득을 보긴 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건 닉스가 독단적으로 자신에게 준 보상이고.
데뷔전의 보상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거기다.
‘애당초 공평성을 따지자면. 이쪽도 할 말은 있지.’
이쪽도 큰소리칠 명분이 있지 않은가?
시문은 고개를 들어.
“갤럭시 아레나에 정식으로 항의합니다.”
보상창을 바라보았고.
이런 시문의 항의를 예상했던 것일까?
[보상 누락에 관한 부분이라면. 이미 김시문 플레이어께서도 납득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곧바로 답을 해오는 갤럭시 아레나.
특히 따로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갤럭시 아레나는 ‘보상 누락에 관한 부분’을 먼저 언급했고.
“네, 당신들이 무슨 이유에서 보상을 누락을 시켰는지는 충분히 납득갑니다.”
그에 피식 웃음을 흘리곤.
“이걸 모른다는 전제하에 말이죠.”
시문은 즉시 인벤토리를 열어.
후끈!
열기를 품은 불씨 조각을 꺼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본 것일까?
[그건…….]
답지 않게 말을 흐리는 갤럭시 아레나.
시문은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맞습니다. 성좌 염제신농의 성물이죠. 그럼 묻겠습니다.”
불씨 조각을 갤럭시 아레나의 메시지창을 향해 내밀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전 거인족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죠. 한데 이걸 제가 어디서 얻었을까요?”
시문의 물음에.
[…….]
침묵하는 갤럭시 아레나.
그런 갤럭시 아레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시문은.
“아아! 뭐, 그런 건 개인 사정이니 제쳐 두더라도…… 제가 이걸 얻을 수 있는 경로는 하나뿐이잖아요?”
정말 몰라서 이러냐는 듯.
“닉스의 개입으로 이렇게 나오실 거면, 염제신농의 개입부터 먼저 따지셨어야죠.”
비소를 머금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심지어 따지고 보면 닉스는 제게 자신의 성물을 준 적도 없다고요?”
타르타로스의 조각.
보유자인 시문으로서도 감히 형용할 수 없는 그것을 받았음에도.
“아시겠습니까?”
얼굴 위로 철판에 콘크리트까지 깔아가며 말하는 시문.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타르타로스의 조각은 말 그대로 ‘타르타로스’의 것이지.
그곳에 거주하는 닉스의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타르타로스의 조각은 고사하더라도.
작금의 시문이 말하는 부분은 어디 하나 흠잡거나, 반박할 부분이 없었기에.
[……플레이어 김시문의 항의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갤럭시 아레나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어.
[단, 말씀하신 염제신농의 개입을 증명하기 위해선, 보유하신 염제신농의 신물이 필요합니다.]
염제신농의 성물을 요구하는 갤럭시 아레나.
이는 시문의 항의 내용을 증명하는 증거이기도 했지만.
‘내 보상은 돌려줘도, 염제신농의 성물까지는 줄 수 없다?’
염제신농의 성물을 자신에게 허락할 순 없다는 뜻이 깔린 말이기도 했다.
“뭐, 좋습니다.”
시문은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물이라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신성의 추출과 보관 외엔 큰 의미가 없는 성물이니까.’
앞서 닉스가 말해 주지 않았던가?
이 염제신농의 성물은 성물이긴 하나.
그리 특별하거나 의미가 있는 성물은 아니라고.
그러한 걸 억지로 쥐고 데뷔전의 보상과 개입의 증거가 될 기회를 날려버릴 바에.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로 제대로 엿을 먹여 줘야지.’
염제신농.
나아가 그의 휘하인 거인족 전체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은 비교가 불가한 이득이었다.
그렇게 계산을 끝낸 시문은.
“가져가세요.”
불씨 조각을 건네주었고.
스르륵.
그것을 수거한 갤럭시 아레나가.
[클리어 보상으로 ‘특별 랜덤 박스’를 획득합니다.]
누락시켰던 데뷔전의 보상과 함께.
[김시문 플레이어. 당신의 판단에 감사를…….]
감사를 표하려던 찰나.
“어허! 아직 제 말 다 안 끝났습니다?”
시문은 그의 말을 끊어내곤.
“염제신농의 개입으로 인해, 흑암지옥행은 물론. 이렇게 당신들에게 오해까지 받고, 해명까지 해야 했습니다.”
차가운 목소리로 따지고 들었다.
“만약 염제신농의 성물을 얻지 못했으면, 누락된 보상은 받지도 못하고 넘어가야 했겠죠.”
물론 그의 목소리와 다르게.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것 중 하나가 무고죄인 거 아시죠? 이거, 어떻게 보상하실 겁니까?”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걸쳐 있었다.
그에.
[…….]
한동안 침묵하던 갤럭시 아레나는.
[……김시문 플레이어의 입장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인과의 법칙상, 물질적인 보상은 불가합니다.]
마지못한 답을 내어놓았고.
‘물질적인 보상은 불가’하다는 조건에도.
“아아, 괜찮아요. 물질적인 보상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시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까딱였다.
“그냥 발설지옥행 차원 문, 한번 시원하게 열어 주세요. 아 당연히…….”
[푸흐흣!]
뒤편에서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그곳에서의 제 안전은 확실하게 보장되는 걸로요.”
부들부들 떨고 있는 닉스에게 눈웃음을 보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