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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3. 아델과 베르의 주변 이야기 (38/39)

외전 3. 아델과 베르의 주변 이야기

아침부터 아델라이드는 손님 맞을 준비로 바빴다.

오늘은 프리트홀트와 안나가 방문하는 날이었다. 안나가 다니엘을 낳고 처음 하는 외출이기도 하며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난 다니엘의 첫 나들이이기도 했다.

아델라이드는 루카스가 아기 때 쓰던 용품들을 넣어 둔 상자 몇 개를 가져와서는 그중 하나에서 물건들을 꺼내 찬찬히 살폈다. 그러다가 곁에서 손을 휘저으며 장난치고 있는 아들을 한 번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차곡차곡 정리해 놓은 상자 안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하아…! 루카스!”

상자 안으로 들어갈 것만 같은 아들의 상체를 잡아 상자에서 떼어 냈다. 그 작고 동그란 머리에 아델라이드는 입을 맞추었다.

“이제 이건 삼촌 줄 거야. 루카스한테는 너무 작거나 필요 없어졌으니까 다른 것 가지고 놀고 있어, 응?”

“짬…쫀?”

이제 제법 말을 하기 시작한 루카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베르톨트를 똑 닮은 눈망울이 자신을 의아하게 바라보자 웃음이 절로 났다.

“그래, 삼촌. 너보다 어리지만 엄마의 동생이니 네게는 삼촌이야.”

“엄마의 동생? 나보다 어려…, 동생. 잠쫀?”

엄마의 동생인데 자신보다 어리니 동생이지 않느냐, 왜 삼촌이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델라이드는 루카스가 어순에 맞지 않게 말하거나 명사로만 말해도 귀신같이 알아들었다.

루카스는 말하는 속도보다 생각하는 속도가 빨랐다. 그 생각을 말로 표현하려고 하나 아는 단어가 적은지라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렇게 찰떡같이 알아듣는 엄마가 없었다면 아이는 힘들었을 것이다.

“아냐. 너보다 어리다고 해서 무조건 동생은 아니야. 좀 더 크면 알겠지만 친족 간에는 촌수가 있단다.”

말이 어려웠지만, 그래도 루카스는 엄마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듯했다.

곧이어 아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름 생각이 정리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아델라이드는 좀 더 쉽게 다시 말해 주고 싶었지만 루카스가 어질러 놓은 상자 안을 다시 정리해야 했다.

“윤. 루카스와 장난감 방에서 좀 놀아 줘.”

아델라이드는 문 앞에 서 있던 윤에게 부탁했다. 윤은 루카스에게 다가와 눈을 마주치며 방긋 웃었다.

“황자님, 저랑 장난감 방에 가서 놀아요.”

“싫어. 어마마마 옆에 이쯜 꺼야.”

자신의 의사 표시가 명확한 루카스였다. 장난감이 좋긴 하나 아델라이드 곁이 더 좋은 모양이었다. 그때 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카스, 윤과 함께 가서 놀거라.”

베르톨트였다. 루카스가 눈썹을 움찔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이 베르톨트와 똑 닮아 있었다.

“패아….”

루카스가 조그마한 입술을 쭈욱 내밀고 자신이 화났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베르톨트는 따끔하게 한마디 더 하려다가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보는 아델라이드를 보고는 입을 닫았다.

루카스에게 다가온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루카스, 잠시 윤과 놀고 있어. 곧 손님이 오실 테니 그 전에 어마마마는 정리를 마쳐야 한단다. 알겠지?”

한결 너그러워진 목소리였다. 루카스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고 윤의 손을 잡았다. 루카스와 윤이 황제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베르, 루카스에게 좀 더 부드럽게 대해 주세요.”

둘만 남게 되자 아델라이드가 온화한 목소리로 베르톨트에게 말했다. 베르톨트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덥석 안았다.

“알았어. 노력할게.”

그녀 앞에서는 순한 양이지만 말 안 듣기 시작하는 루카스에게는 엄격한 아버지였다. 아델라이드는 중간에서 이래저래 바빴다.

베르톨트는 품 안에 가둔 아델라이드를 살며시 떼어 내고는 그녀의 턱을 올려 입술을 맞추었다.

가벼운 입맞춤으로 시작했으나 점점 농밀해져 서로의 혀가 얽히고 타액이 섞였다. 베르톨트의 목 깊숙한 곳에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올라오더니 손이 점점 아델라이드의 몸을 더듬었다.

“으응…!”

그녀의 입에서 젖은 신음이 나왔다. 베르톨트는 한층 더 흥분해서 그녀의 엉덩이를 덥석 잡았다.

그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내려갔다. 손이 뜨거웠다. 옷 위로도 열기가 확연하게 느껴지는 손길이었다.

“그, 그만. 베르…, 그만요!”

아델라이드는 힘겹게 그를 밀어내고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러고는 베르톨트를 곱게 흘겨보았다. 베르톨트는 씨익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다시 입 맞추었다.

“그렇게 보지 마. 흥분돼.”

“하아…, 정말!”

아델라이드는 하도 어처구니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두 사람은 레니에의 저택에서 사랑을 나눈 후로 완전히 신혼다운 신혼을 보내고 있었다. 눈만 마주쳐도 둘 다 뜨겁게 달아올랐고 만지기만 해도 스파크가 튀었다. 아델라이드도 많이 변해서 그의 손길에 꽤 적극적으로 응했다.

그녀의 반응에 힘입어 베르톨트는 매일 밤마다 다양하고 적나라한 체위를 시도했다. 아델라이드는 너무 민망하면 민망하다고 솔직하게 말했고, 베르톨트는 그녀의 감상을 하나하나 귀담아들었다. 그녀의 변화는 부부의 성생활을 대단히 만족스럽게 바꾸어 놓았다.

“빨리 둘만 되었으면 좋겠군.”

베르톨트가 뜨거운 시선을 채 거두지 못하고 끈적하게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싸늘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폐하,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셔서 오신 거 아니었어요?”

이쯤 되면 그만 좀 하라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베르톨트는 어쩔 수 없이 아쉬워하며 시선을 거두었다.

“다니엘, 아니지, 처남에게 줄 선물이야.”

태어난 지 100일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처남이라고 부르려니 어쩐지 우스웠지만 웃음을 꾹 눌렀다. 그보다는 프리트홀트 경을 축하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는 상자 하나를 그녀의 눈앞에 내밀었다.

“뭐예요? 반지?”

그렇지만 반지 상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다랬다.

아델라이드는 궁금해하며 상자 뚜껑을 열었다. 거기엔 꽤 무게가 나갈 법한 팔찌가 들어 있었고 팔찌에는 커다란 보석이 박혀 있었다. 다이아몬드와 루비였다.

“베르!”

한눈에 보기에도 귀한 팔찌였다. 돈이 있다고 해도 이런 물건은 구하기 쉽지 않다.

감격한 아델라이드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베르톨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광산에서 채취한 거야. 녹턴에서 유명한 세공사에게 직접 주문했어. 뭐…, 처남 맞춤이라고 할 수 있지.”

아델라이드가 와락 베르톨트를 껴안았다.

“고마워요, 베르. 어머니가 기뻐하실 거예요.”

“프리트홀트 경도 고맙고, 안나…, 아니 장모에게도 고맙고, 무엇보다 그들에게서 태어나 준 처남이 고마워서 말이야. 신경 좀 썼어.”

아델라이드가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는 남편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 봐요. 들어줄게요.”

아델라이드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반대로 질척해졌다.

그가 그녀의 귓가에 입 맞추며 무어라 속삭였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 * *

아델라이드는 최근에 임신한 소니아에게 전해 달라며 손수 만든 아기 배냇저고리와 담요를 안나에게 주었다.

“정말 다행이게도 한슨은 소니아를 무척 사랑하더구나. 소니아가 임신을 하니 서점에는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 집안의 허드렛일까지 모두 도맡아 하고 있어.”

모두들 그동안 편치 않은 시간을 보낸 소니아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녀는 수도에서 제법 큰 서점을 운영하는 아카데미 교수와 결혼했다. 좀 늦은 결혼이었지만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갖게 되어 주위에서 축하 인사가 끊이지 않는 중이었다. 안나는 스트라우스 가문에서 함께 살던 소니아에게 친정 엄마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루카스는 어른들의 테이블에서 벗어났다. 아기 침대에 가서 누워 있는 다니엘을 들여다봤다.

눈을 말똥말똥 뜨며 자신과 눈을 맞추려는 아기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아기는 두 주먹을 꼬옥 쥐고 있었다. 입을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이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짧은 다리를 세차게 움직여도 보고 몸을 버둥거리며 끙끙대기도 했지만 결국은 허공을 마주하고 똑바로 누워 있는 자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루카스는 검지로 아기의 통통한 볼을 꾸욱 눌러 보았다. 그러자 다니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루카스와 시선을 맞췄다.

씨익 소리 없이 웃은 루카스는 검지를 내려 아기의 주먹 쥔 손을 가만히 두드렸다. 아기가 그 손가락을 꼬옥 잡아 왔다.

“헤에.”

루카스는 기쁘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이번에는 손가락을 들어 보았다. 아기는 잡은 손가락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얼굴이 빨개지면서까지 주먹을 펴지 않았다.

“잠쫀…, 기여워.”

루카스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 바람에 대화를 하고 있던 네 사람이 루카스 쪽을 바라보았다. 특히 안나는 미소를 지으며 두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황자 전하, 아기가 귀여우세요?”

루카스가 안나를 바라보며 깔깔 웃었다.

“네, 잠쫀이… 제 손을 잡고 놓아쭈지 아나여.”

안나가 일어나서 아기 침대를 들여다보니 루카스의 말대로 다니엘이 끙끙대며 루카스의 손가락을 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안나는 웃음이 터졌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그 행복한 광경을 보고 안나와 마찬가지로 즐겁게 웃었다.

둘이 앞으로도 사이가 좋겠다며 흐뭇해하는 말들이 오갔다. 루카스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아델라이드를 돌아보고 말했다.

“어마마마, 저도 아기 갖고 찌어여.”

프리트홀트와 안나가 다녀간 그날 밤.

아델라이드와 베르톨트는 선물로 받은 와인을 마시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델라이드는 원래 술을 잘하지 못했지만 와인은 꽤 먹을 줄 알았다. 더군다나 프리트홀트가 맛이 독특한 것을 어렵게 구했다며 한참 자랑을 했기에 마셔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모금 입 안에 넣고 목으로 넘기는 순간 프리트홀트의 말대로 과연 맛이 남다르다 싶었다. 아델라이드는 그 떫고 싸하면서 달달한 맛에 매료되어 연거푸 와인을 홀짝거렸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었고 눈빛도 조금 몽롱해졌다. 기분도 꽤 좋은지 베르톨트를 바라보는 중간중간 희미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싫지 않아 베르톨트도 피식 웃었다.

“베르.”

“응?”

“우리… 루카스 동생 만들어 주지 않을래요?”

눈을 내리깔고 잔에 입술을 가져가던 베르톨트가 멈칫했다. 그는 시선을 들어 아델라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그를 보며 방긋 웃고 있었다.

“진심이야?”

“네, 진심이에요.”

베르톨트는 잠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렸다.

“아델…. 난 원하지 않아.”

“…왜요?”

뜻밖이었다. 그의 입에서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그녀는 자신의 동생인 다니엘이 그렇게 귀엽고 예쁠 수가 없었다. 루카스도 저렇게 귀여운 갓난아기였을 때가 있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루카스가 자신도 아기가 갖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물론 인형 같은 것이 꼬물거리니까 귀여워서 그냥 해 본 말일 수도 있겠지만 아델라이드는 루카스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다. 처음으로, 루카스에게 형제나 남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루카스 낳을 때 당신이 너무 힘들었어. 물론 초산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지켜본 나로서는… 당신이 그런 고통을 겪는 걸 다시는 보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그의 눈빛에 고통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아델라이드는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생각해 줄 줄은 몰랐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베르톨트…. 맞아요. 아이를 낳는 건 정말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낳는 고통보다 루카스가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이 훨씬 크잖아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도 독자였어요. 외롭지 않았어요? 힘들 때 힘이 되어 주고, 기쁠 때 진정으로 기뻐해 주는 형제나 자매가 있었으면 좋았을 거예요.”

“아델. 루카스는 장차 세르비아의 황제가 될 아이야. 황제에게 형제나 남매는… 마냥 우군일 수 없어. 경우에 따라서는….”

거기까지 말했을 때 아델라이드가 베르톨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그 힘이 의외로 강해서 그가 움찔했다.

“베르, 그런 말 말아요. 처음부터 후계 질서를 잘 잡으면 돼요. 피붙이끼리의 비극은 권력 구도가 안정적이지 않을 때 일어나니까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당신과 내가 처음부터 질서를 잘 잡도록 해요.”

아델라이드는 무언가 결심을 하여 일을 추진할 때는 그 누구보다 추진력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지금 그녀는 해 보지도 않고 미리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인이자 이 나라의 황후가 얼마나 야무지고 대단한 사람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만들어 가야지. 그래도… 난 당신이 힘든 것은 싫어.”

“베르, 두 번째는 훨씬 수월하대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또 알아요? 저 닮은 예쁜 딸아이가 나올지.”

딸이라는 말에 베르톨트의 눈이 반짝였다. 아델라이드는 그가 얼마나 자신한테 약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을 닮은 딸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그를 꾀면 그가 혹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녀의 예상은 한 치의 틀림도 없이 적중했다.

“딸? 당신을 닮은?”

“음…. 뭐 나를 닮을지, 베르를 닮을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딸일 수도 있잖아요.”

베르톨트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아델라이드를 꼭 닮은 딸이 얼마나 예쁠까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 한쪽이 간질거렸다. 그의 변화를 알아챈 아델라이드가 소리 내어 웃었다.

“베르…. 아직 임신도 하지 않았어요. 벌써부터 그렇게 상상하지 말아요.”

베르톨트가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그녀를 일으켜 허리를 안았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 루카스에게 여동생을 만들어 줄까?”

아델라이드가 까르르 웃었다.

술이 들어갔기 때문일까. 아델라이드는 다른 때보다 더 흥분했고 예민했다. 그의 품 안에서 밭은 숨을 쌕쌕거리며 몽롱한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발그레했고 목과 가슴, 몸 곳곳에는 그가 낸 붉은 자국들이 가득했다.

“아델, 너무 맛있어.”

낮은 목소리가 공기를 부드럽게 울렸다. 그 목소리에 그녀는 눈을 간신히 뜨고 그의 귓가에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위로 갈래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관계를 맺었지만 아델라이드가 위에서 리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려고 시도는 한 번 했지만 그가 주는 강한 자극에 정신을 못 차리고 결국 무너졌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라와서 대담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낮게 소리 내어 웃은 베르톨트가 그녀의 볼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우리 부인께서… 감당하실 수 있으려나?”

그가 그녀를 껴안고 휙 뒤집었다. 아델라이드가 위로 올라왔다.

상체를 일으켜 앉은 그가 그녀의 허리를 꽉 쥐었다. 자신의 중심을 그녀의 은밀한 곳에 갖다 대었다. 맨몸끼리여서 그런지 페니스의 위용이 여실히 느껴졌다.

아델라이드가 손을 뒤로 가져가 그의 것을 쓰다듬었다. 베르톨트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그의 목에서는 탄식과 같은 신음이 나왔다.

“하아…!”

두 사람은 서로의 손길이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로 준비되어 있었다. 아델라이드가 허리를 세우더니 서서히 내려가 그를 자신의 안에 가두었다. 그녀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신음이 흐느낌처럼 쏟아졌다.

“흣… 하응… 앗!”

“큿! 아, 아직 반밖에 안 들어왔어.”

“하응! 아, 안 돼. 하…!”

준비가 되어 있다고는 하나 들어오길 기다리는 것과 먼저 움직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긴장이 많이 풀려 힘들지 않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막상 해 보니 그 버거움에 숨이 차올랐다.

베르톨트는 자신의 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아델라이드를 올려다보았다. 제 것을 끊을 듯이 꽈악 조이는 느낌 때문에 그도 고통스러웠다.

“아델…. 큿! 내 걸 끊으려고 하는 거야?”

“하악…. 아… 안 돼. 못… 하겠어요.”

이대로 있으면 서로가 힘들 것을 알기에 베르톨트는 숨을 가다듬으며 그녀의 허리를 세게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의 몸을 내렸다.

“악!”

“큭!”

날카로운 비명과 거칠게 내뱉는 숨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아델라이드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델라이드는 베르톨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그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후우… 너무 좁아. 조금만 힘을 빼.”

베르톨트가 어금니를 악물고 힘겹게 말했다. 그러나 아델라이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아…, 안 돼! 너무… 너무….”

버거워하는 그녀 대신 그가 움직였다. 그녀의 허리를 들고는 자신의 허리를 힘 있게 쳐올렸다. 아델라이드가 젖은 신음을 마구 내뱉었다. 머리끝까지 쾌감이 올라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베르!”

베르톨트가 본격적으로 허리 짓을 했다. 애액이 흘러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델라이드는 마구 흔들리며 고개를 저었다. 몸이 너무 뜨거워져서 쾌감이 불꽃처럼 터지고 있었다.

그가 한껏 뺐다가 다시 한 번 크게 움직였다. 아델라이드의 몸이 들썩였다. 그녀가 손끝을 세워 그의 어깨를 뜯을 듯 움켜쥐었다. 격한 나머지 숨이 부족해져 머리가 핑 돌았다.

“흣…. 제발 천…천히 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구 흔들리던 그녀의 눈동자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검푸른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그 눈동자는 잔뜩 달아오른 열기에 취해 있었다.

그가 또다시 세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녀가 자지러질 듯 경련을 일으켰다. 오늘따라 한층 더 압박해 오는 그녀 때문에 벌써 사정감이 올라왔지만 베르톨트는 이를 악물며 버텼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야했다. 얼굴과 목 언저리 가슴 곳곳까지 빨개져서는 자신의 허리 짓에 가슴이 위아래로 마구 흔들리고, 눈빛은 몽롱해져 있었다. 탐스럽게 벌어진 입술은 연신 신음을 내뱉었다.

미치게 색스럽고 음심을 자극하는 자태였다.

“아읏, 핫, 아응, 아앙…!”

질척한 신음에 맞춰 그녀의 찰진 내벽이 미친 듯이 쫘악 조였다가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그녀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의 가슴 위로 쓰러졌다. 흐느끼듯 나오던 신음이 어느새 비명처럼 바뀌었다. 그녀는 그의 목덜미를 물어 버렸다. 그렇게 해야 이 강한 자극 때문에 절로 나오는 소리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그녀를 안은 채 그대로 몸을 돌려 침대에 누였다. 허벅지를 들어 그녀의 다리를 어깨에 걸치자 좀 전과는 다른 곳이 자극되었다. 그가 몸을 움직였다. 억제할 수 없는 신음이 터졌다.

“하앗…, 앗, 베르!”

“어디가… 좋지? 응? 아델, 말해 봐.”

베르톨트가 허리를 크게 한 번 돌리더니 그대로 퍽 하고 쳐올렸다. 아델라이드의 고개가 젖혀지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머릿속에서 번쩍번쩍 번개가 쳤다. 그의 것이 자궁 입구까지 닿는 것 같은 깊은 느낌에 덜컥 겁이 났다.

“베르! 주, 죽을 것만 같아….”

“큭! 지금까지 복상사로… 여자가 죽었다는 말은 못 들었어.”

아델라이드는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팔다리가 마구 떨려 와 견딜 수가 없었다. 온몸의 내장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가 하릴없이 흔들리는 그녀의 풍성한 유방을 쥐더니 정점을 있는 힘껏 빨아들였다. 그녀의 입에서 쉴 새 없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델라이드는 그를 도발했던 결과를 날이 밝아 올 때까지 몸소 겪어야 했다. 마침내 그가 그녀의 위로 쓰러졌을 때 그만큼이나 그녀도 몸에 흐르는 수분이 죄다 빠진 것만 같았다. 아델라이드가 땀으로 흥건한 그의 등을 쓸자 그가 그릉대며 그녀의 코끝에 입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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