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143화 (128/265)

< 143 >

엄마가~~~ 보고 싶을 땐~~ 어머니 사~ 진.

라이브 밴드가 연주하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씩씩하고 신나하던 장병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여러분을 군에 보내놓고, 한 시도 잠을 편히 못 주무시는 우리들의 어머니.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우리들의 어머니를 한 분 모셨습니다. 집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렸을 때 눈물을 흘리시던 우리 어머니. 지금도 하루 종일 아들 걱정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어머니께서 추운 날씨에 배고프지 않을지 걱정이 되어 여기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목소리를 듣고 우리 엄마라고 생각하시는 장병 여러분은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아직 어머니와 대화를 하지도 않았는데 어머니 생각에 몇 명은 눈물을 보이고 있었고, 몇은 벌써부터 무대 위로 달려 나가기 위해 엉덩이를 들썩였다.

“어머니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죠?”

“아이고 배 타고 기차 타고 택시 타고 미쳐 죽겄구만. 싸게싸게 나와 보라 하제 급살 맞게 지랄이여.”

“하하하하.”

전라도에서 오신 어머님의 입담에 다들 웃음이 터졌고, 뽀빠이 아저씨는 어머니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농사 지으신다고 하던데 올해 농사는 어떠셨어요?”

“아이고, 정부에서 비료를 빌어먹게 줘버려 가지고 조져 버렸셔.”

“하하. 계속 농사를 지으셨으면 아드님께서 평소 좋아하는 어머니 음식이 있었나요?”

“그놈의 자식은 돌도 씹어 먹을 놈이랑께, 주는 대로 안 가리고 다 잘 먹었슈.”

어머니의 거침없는 대답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진행자는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장병들에게 무대 위로 올라오라고 했다.

“어머니 오늘따라 아들들이 많이 올라왔네요.”

“머 군대 있으면 다 내 새끼들이쥬. 시방 내 아들은 안 올라왔을 것 같아유.”

약 서른 명 정도의 군인들이 무대 위로 달려왔고, 진행자가 한 명씩 인터뷰를 했다.

“무대 뒤에 계신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시나요?”

“저 어무이는 저희 어무이가 학실합니다!”

“어머니는 전라도 분 같으신데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고향이 어디세요?”

“저는 마산 출신입니다. 저희 어무이는 성대모사의 달인이십니다! 분명 저를 골려주기 위해 연기를 하고 계신 것이 학실합니다!”

“하하 그렇군요. 과연 연기를 하고 계신 지는 조금 이따 확인하도록 하죠. 다음 상병은 왜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해 주시는 음식은 가리지 않고 먹었고, 흙도 퍼먹으면서 자랐습니다. 목소리를 들어 보니 저희 어머니가 분명합니다!”

일부는 웃기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쳤고, 몇 명은 서로 자신의 어머니가 확실하다며 그럴듯한 이야기를 했다.

“어떤 이유로 뒤에 계신 분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시나요?”

“뒤에 계신 어머니는 저희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럼 왜 무대에 올라온 거죠?”

“며칠 전에 저희 어머니의 기일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올라왔습니다.”

“그렇군요. 하늘에서 보고 계신 어머니께 이야기하시죠.”

숙연해진 분위기에 진행자가 마이크를 내밀자 결의에 찬 병사가 굳은 표정으로 외쳤다.

“어머니! 아들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무사히 제대해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도록 하겠습니다. 충성!”

짝짝짝.

감정 이입이 된 병사들이 눈물을 흘렸고, 뽀빠이 아저씨도 그의 어깨를 도닥거려 주었다.

그렇게 한 명도 빠짐없이 인터뷰를 진행했고, 드디어 무대 뒤에서 한복을 입고 오신 어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와~~~!

자신의 아들을 찾기 위해 어머니가 두리번거리자 흙을 퍼먹었다는 병사가 쏜살같이 달려 나가 어머니를 안아 들었다.

“시방 먹는 거 좋아하는 놈이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냐.”

어머니는 연신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병사들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 손을 꼭 붙잡고 있었고, 진행자 뽀빠이 아저씨가 씩씩하게 외쳤다.

“출발! 고향 앞으로!”

동민도 우정의 부대의 하이라이트인 그리운 어머니를 직접 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감동적이지? 이 장면은 매주 봐도 가슴이 뭉클해지더라.”

“그러네요. 주말에 집에서 봐도 눈물이 났는데 직접 보니까 더 찡하네요.”

첫 우정의 부대 영상을 성공적으로 만들었고, 이후로 MBS 우정의 부대 팀과 함께 여러 부대를 돌아다니며 소개 영상을 만들었다.

동민이 재치 있는 영상을 만들어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모든 부대가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권위적인 군 장교들이 많이 있었고, 자신의 입맛대로 영상을 만들라는 압력도 자주 들어왔다.

어떤 빡센 부대는 선임들 눈 때문에 장병들이 너무 각을 잡고 있어 뽀빠이 이상룡 진행자가 욕설을 섞어 가며 ‘사단장님 애들 좀 풀어주십쇼.’라고 농담을 하며 겨우 분위기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몇 병사가 심기를 거슬리는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생각보다 많은 부대장이 병사들을 영창에 보내기도 했고, 방송국과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명백한 직권 남용에 부당한 대우였지만, 아직 군사정권 시절의 물이 덜 빠진 시대였고, 조만간 해체되는 하나회마저 살아있어 군대 분위기가 아주 살벌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정의 부대는 힘든 군 생활을 하는 군장병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프로그램이었고, 모두들 사명을 가지고 힘든 영내 촬영을 이어갔다.

“자네가 그 유명한 김동민 일병이군. 직접 이야기하는 건 처음인데 영상을 정말 잘 만들더군.”

“안녕하세요. 항상 외진 부대에서 진행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다 함께 돌아다니는데 힘든 티를 내면 안 되지. 앞으로도 멋있는 영상 기대하겠네.”

우정의 부대를 다섯 번 정도 진행하다 보니 동민도 어느새 일병으로 진급했고, 진행자인 이상룡의 귀에도 동민의 이야기가 들어가 직접 인사를 나누었다.

우정의 부대는 1989년에 시작되어 1997년에 막을 내리는데 96년에 하차하게 되는 뽀빠이 이상룡의 빈자리로 프로그램이 사라지게 된다.

그는 평소 불치병 아이들에게 기부를 하며 선행을 베풀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를 원하는 정치 세력에 가입을 거부하면서 횡령 누명을 쓰게 된다.

추후에 횡령 사건은 무죄로 밝혀지지만, 그가 이루었던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되고, 그는 미국으로 떠나 관광버스 가이드를 하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 나가게 된다.

“내가 정치권의 간섭을 막아 주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미국으로 피신 가면 조금은 도와드려야겠네.”

동민은 매사 열심히 사는 그를 보면서 내년에 누명을 쓰고 무너지는 그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이후로 오지에 숨어있는 부대를 찾아다니며 우정의 부대 사람들과 금방 친해졌고, 동민도 조금씩 자신이 원하는 영상을 더 자유롭게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엔 공군 부대에 가는데 전투기와 헬기 촬영을 허가받았어.”

“아무래도 프로그램 인기가 있으니까 대부분 협조를 잘해 주네요.”

“예전에 톱건 현장에 방문해 봤다고 했지? 그럼 전투지 촬영에 관해서도 알고 있어?”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려서 자세히 배우지는 못했는데 필요하면 토니 스캇 감독님께 전화해서 물어볼 수 있어요.”

동민은 필요할 때마다 군대 영화를 찍은 감독에게 연락해 팁을 물어보았고, 우정의 부대 영상 퀄리티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게 좋아졌다.

항상 도움을 받던 주철한 PD는 그런 동민에게 훨씬 더 큰 권한을 주었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나 하고, 전투기 촬영에 관해서도 알고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토니 스캇 감독에게 직접 물어보겠다고 한 것이다.

“정말이지 너에게 합류를 부탁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제대하면 방송국에 취직시키고 싶지만, 바로 미국에 돌아간다고 했지?”

“일단 학교는 졸업을 하려고요. 언젠가 한국에 돌아올 수도 있을 거예요.”

동민은 주 PD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예능 국장으로 성장할 그도 동민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잡기에는 너무 큰 존재라는 것도 깨달았다.

다음 날 동민은 주철한 PD에게 찾아가 토니 스캇 감독과 전화 통화 한 것을 말해 주었다.

“피디님. 일이 조금 커졌어요.”

“무슨 일인가 동민 군? 문제라도 생겼나?”

“토니 스캇 감독님이 요즘 놀고 있다고 한국에 직접 와서 현장에서 알려 주겠다고 하시네요.”

“토니 스캇 감독님이 우정의 부대 영상을 만들어 주신다고?”

일이 조금 커졌다고 했지만, 사실 많이 커져 버렸다.

동민의 오지랖으로 방송국은 난리가 났고, 공군에서도 톱건의 감독이 직접 찾아와 부대 소개 영상을 만들어 주겠다는 소리를 듣고는 지원의 규모가 몇 배로 커졌다.

“오! 여기가 한국이로군. 전쟁 중인 분단국가라 걱정했는데 예상과 완전 다른걸?”

“어서 오세요. 한국은 처음이시죠?”

“다니엘인가? 오랜만이군. 그사이 많이 자랐구나. 못 알아보겠는걸?”

“그러게요. 오랜만이긴 하네요. 감독님은 그대로시네요. 잘 지내셨죠?”

동민이 직접 공항으로 토니 스캇 감독을 마중 나갔고, 그를 방송국으로 안내했다.

할리우드 감독의 방문으로 방송국에서는 그를 VIP로 정중하게 맞이해 주었고, 동민이 통역을 하며 함께 제작 회의를 했다.

“장비가 10년 전에 내가 쓰던 것보다 열악한걸?”

“영화 장비랑 방송국 장비가 다른 건 알고 계시잖아요. 이건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장비를 대여할 수 있지 않나? 기왕 하는 거 제대로 만드는 게 좋지 않겠어?”

“방송국 예산이 나올지 모르겠네요. 물어는 볼게요.”

토니 스캇 감독은 우정의 부대에서 사용하는 장비로는 도저히 촬영이 불가능하다며 나쁜 퀄리티의 영상은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장비 대여랑 영화 필름 값이면 예산을 너무 오버하는걸? 아마 국장님 선에서 결재를 받기는 불가능할 거야. 군대 예능 프로그램이라 협찬이 많은 편이 아니거든.”

“그럼 군에서 지원받을 수는 없을까요? 공군에서도 톱건 감독님이 홍보 영상을 만들어 준다고 하면 예산을 보태 줄 것 같은데요?”

공군 측에서는 예산을 지원해 주지는 못하지만, 전투기와 헬기, 파일럿을 무상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했고, 이것만 해도 장비 대여료와는 비교가 안 되는 비용이 들었다.

결국 방송국에서는 특별 다큐멘터리 편성을 하게 되었고, 토니 스캇 감독이 원하는 장비를 빌려올 수 있었다.

“이것 봐. 다 하면 된다니까. 감독이 되면 원하는 걸 얻어내는 협상력이 중요하단다. 다니엘 군도 잘 보고 배워두렴.”

“정말이네요. 사실 지원을 받기 힘들 거라 생각해서 개인적으로 준비할까 했는데 감독님 덕분에 돈을 아끼게 되었네요.”

“하하. 그래. 다니엘이라면 사비로 충분히 가능하겠지. 이번에 내가 잘 알려 줄 테니 다음에 내가 만드는 영화에도 투자를 해야 한다.”

“올해 개봉한 잠수함 영화는 이미 투자한 거 알고 계시잖아요. 결과 보고 다음에 투자할지 결정할게요. 내년에 만드는 영화는 제가 군대에 있어서 힘들고 미국에 돌아가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볼게요.”

그렇게 동민의 참견으로 초대형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다큐멘터리의 제목을 레드 머플러로 지어졌다.

< 143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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