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 어린……아이? (63/146)


#63. 어린……아이?
2022.04.07.


커튼으로 가려져 있긴 하지만, 집 안에 있는 이가 누구건 자신이 손짓 한 번으로 사람 얼굴을 갈라놓는 장면을 분명히 봤겠지.

이미 그때부터 집 안에 있는 이의 경계심은 누그러뜨리거나 낮출 수 있는 상태가 아닐 터.

안에 있는 이가 누구건 저 곱게 자란 귀하신 분의 생각대로 순순히 무언가를 털어놓지는 않을 테지.

결국 손을 쓰는 건 자신이 될 테니, 이런 동네에 저 귀한 분을 오래 둘 수 없으니 되도록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뽑을 방법이…….

아이작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그런 그의 생각을 읽은 듯 앙브흐는 문을 향해 손을 뻗는 동시에 명랑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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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당신이 했던 조치로 두려움과 경계를 샀을 테지만, 바로 당신을 대면하는 것과 턱선만 봐도 귀한 티가 나는 내가 부드럽게 말을 거는 것, 어느 쪽이 나을까요. 물론 안에 있는 사람이 닳고 닳은 고약한 이라면 뭐, 당신이 지금 머릿속으로 하는 계획대로 되겠지만.”

그가 한 생각을 정확히 짚어내는 앙브흐의 말에 아이작의 여우 눈이 당황한 듯 조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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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하십니다.”

아까와는 달리 진심이 섞인 답에 앙브흐는 방실방실 웃었고 아이작은 한숨을 삼켰다.

그는 잠시 앙브흐를 바라보다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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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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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제까지 계속 날 멍청하고 순진한, 귀하게 자라서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본 것을요?”

앙브흐는 조금의 유감도 없는 것처럼 발랄하게 되물었고, 아이작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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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제가 아가씨를 멋대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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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그렇게 만만하게 보일 때 내 일을 하기 더 쉬워지기도 하고. 천성이 이렇게 타고난 걸 잘 이용하라고 아버님께서 말씀하셨거든요. 충실히 지키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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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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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죠. 난 타렌이잖아요. 상대가 나를 얕보면 그가 가진 진짜를 볼 기회가 생기거든요. 그것이 인성이건, 거래 물품의 진실된 가치이건. 하지만.”

앙브흐는 양손을 허리에 척 올리며 아이작을 향해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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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과는 거래할 일이 없을 테니,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요. 날 멋대로 재단해서 앞서나가지 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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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심하겠습니다. 이 이상 아가씨를 얕봤다가는 제 뒤통수도 더는 남아날 것 같지 않고요.”

평범한 이들에게는 지극히 껄끄럽고, 자칫 관계가 파탄 날 수도 있는 문제를 앙브흐와 아이작은 호주머니에서 꺼낸 과자를 나눠 먹듯 간단히 해치웠다.

그렇게 서로의 관계가 한차례 정리되자 앙브흐는 뻗은 손을 오므리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지만, 집 안쪽은 조용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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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너무 작았나요?”

앙브흐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금 손을 들었다.

-똑똑똑.

이전보다 조금 더 강하게 문을 두드렸지만, 여전히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울리거나 누군가 움직이면서 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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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지금 집에 아무도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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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척은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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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도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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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떻게 하는 거냐는 의미가 담긴 질문에 단답을 내놓은 아이작이 말을 살짝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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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서 소란이 있을 때 창문에 붙어서 보던 인영이 지금은 집 안쪽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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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그렇다면 적어도 제게 위협이 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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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그렇게 숨어 있다가 저희가 방심한 틈을 타 덮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을 수도 있죠.”

아이작의 말에 앙브흐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 곧 그를 향해 바짝 다가섰다.

두 사람이 키 차이가 꽤 났기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고 그를 올려다보며 큼, 하고 헛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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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공격을 당하면 막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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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강한 편이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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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수 있는 거군요.”

앙브흐는 그사이 아이작이 말하는 방식에 적응했는지 방싯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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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못하면 못 한다고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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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막을 수는 있을 겁니다.”

제가 기척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하건 자신의 선에서 해결할 수 있다.

확답을 들은 앙브흐는 자신 있게 돌아서서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려다 아예 문고리를 덥석 잡았다.

-덜컹.

당연하게도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고, 앙브흐가 크게 숨을 들이쉬는 순간.

아이작이 그녀의 뒤에서 손을 뻗었다.

-뿌드득.

-덜컹.

문고리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조금 기울어진 듯한 문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이작의 손에서 달랑거리는 문고리를 보던 앙브흐는 그를 돌아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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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할 줄 아는 것이 정말 많네요! 하지만 이렇게 잠긴 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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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꼬챙이 같은 것으로 딸 줄 알았다고요? 그렇게 시간을 쓸 필요도 없는 허름한 것이니까요. 부수는 편이 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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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안쪽에서 만난 사람이 어떤지에 따라서 떠날 때 문을 고쳐주고 가야겠네요.”

순수한 호의가 담긴 앙브흐의 말을 아이작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구태여 말리거나 되묻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어서 그러려니 했다.

그녀의 말대로 눈앞에 있는 이는 타렌이 아닌가.

돈으로 호수를 채울 수도 있는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이니 어디에 쓰건 아이작이 관여할 바는 아닐 터.

그리고 여러 번 생각하지만, 정말 이상한 사람이군.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고, 그 이상한 사람과 처음 만난 이후로 죽이 잘 맞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아이작은 곧 힘없이 덜렁거리는 문을 슬쩍 밀었다.

커튼이 처져 있어 훤한 대낮인데도 어둑했던 집에 한순간 빛이 번졌다.

아이작이 문을 연 뒤 다시 뒤로 물러나자 앙브흐가 집 안으로 먼저 발을 들였다.

그녀는 로브 후드를 벗으며 집안을 둘러보면서도 굳이 누구 있냐며 소리 내어 묻지 않았다.

불러서 나올 이였다면 노크 했을 때 나왔으리라.

생각보다 정갈한 집 안 상태를 관찰하던 앙브흐가 아이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아이작은 그녀에게 집의 안쪽 딱 하나 있는 방에 누군가 있다는 의미로 눈짓했고, 앙브흐는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낡은 경첩에서 울리는 귀를 긁는 소리가 크게 울리자 앙브흐는 살금살금 움직이는 것을 그만두고 평범한 크기의 목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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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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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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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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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숨어 있군요.”

태연하게 옷장을 가리키는 아이작의 손끝을 따라 앙브흐가 움직였다.

-달칵.

작은 옷장 문은 저항 없이 쉽게도 열렸고, 이윽고 앙브흐와 아이작은 그 안에 웅크린 자그마한 인영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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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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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브흐는 옷장 구석에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는 아이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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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기척이 현저히 약하다고 했더니. 어린애였군요.”

아이작은 감흥 없는 얼굴로 아이의 작은 머리꼭지를 내려다보기만 했고, 그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자 앙브흐가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끝이 아이에게 닿기 직전 아이가 크게 움찔거리며 작은 몸을 더욱 작게 웅크렸다.

그런 아이의 반응에 앙브흐는 손을 거두어들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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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난 앙브흐라고 해.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지만, 네 오빠와 아는 사이란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수상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앙브흐의 목소리 때문인지, 어조 때문인지 혹은 둘 다인지.

그 수상쩍은 말도 어쩐지 믿음직스럽게 들려 아이가 어깨를 움찔거리며 무릎에 박고 있던 고개를 슬그머니 올렸다.

그런 아이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린 앙브흐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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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도망칠 수도 없으니 그냥 나오렴.”

차가운 현실을 경쾌하게 알려주는 앙브흐의 말에 아이는 주먹을 꽉 쥐었지만,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그녀의 말대로 옷장에서 나와 엉거주춤하게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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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아이구나.”

계산이 상당히 빠른 듯한 아이를 칭찬한 앙브흐가 재차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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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위르 가문의 아이야, 이름이 뭐니?”

순진한 얼굴과 발랄한 목소리였지만, 묘하게 압박감이 느껴졌다.

눈앞에 있는 귀하신 분의 말대로 어차피 도망칠 수 없다. 뒤에서 여우 눈을 한 채 저를 빤히 주시하는 남자의 손짓 한 번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미 보지 않았나.

오……빠와 아는 사이라고 했으니 어쩌면 며칠째 돌아오지 않는 오……빠의 소식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아이는 약간의 희망이 섞인 체념 어린 표정으로 입술을 오물거리며 작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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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 슈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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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했어. 슈가구나.”

앙브흐는 대뜸 슈가에게 뭔가를 묻지 않고 일단 아이를 좀 살폈다.

아이는 이런 외지고 위험한 곳에 살면서도 아픈 곳은 없어 보였다.

심지어 이런 곳에 사는 아이 같지 않게 뺨이 꽤 오동통하니 살이 올라 딱 보기 좋은 모양새였다.

피부도 뽀얗고 손끝도 거친 모양새가 아닌 걸 보니 오빠라는 그 사용인이 어지간히도 애지중지 기른 모양이었다.

앙브흐는 아이작에게 한 걸음 다가서서 속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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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용인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었나 봐요. 동생을 이렇게 잘 키워놓은 걸 보면.”

하지만 아이작은 딱히 속삭이지 않고 아이도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지 않은 목소리로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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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키워서 팔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소녀를 원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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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요. 제국 내에서 노예 매매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요.”

사람을 거래한다는 것은 늘 웃는 인상이었던 앙브흐가 무표정하게 얼굴을 굳힐 만큼 심각한 문제였지만, 아이작은 덤덤하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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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더욱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제국에서는 금지되어 있지만, 엄연히 사람 매매가 합법인 왕국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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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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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었지요.”

앙브흐는 진심으로 경멸을 담아 말했고, 아이작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서로를 응시하던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를 향해 눈을 돌렸고, 두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슈가는 목을 움츠리며 불안한 듯 잘게 떨었다.

아이작은 그런 아이를 주시하며 가차 없이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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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키워서 팔아먹으려고 했다 치더라도 이렇게까지 잘 대해주진 않을 텐데요.”

아이작의 말에 슈가는 작은 어깨를 더욱 작게 말고 달달 떨면서도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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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팔아먹는 거 아니에요. 오……빠는 늘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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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 오빠 말인데.”

앙브흐는 옷장에 숨어 있느라 엉망이 된 슈가의 머리카락을 끝을 조심스럽게 잡고 풀어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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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에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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