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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더 좋아요.
2022.08.04.
“아가씨도 빈손이 있으니 잡으시죠.”
“네!”
그리고 앙브흐는 가타부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이작의 손을 잡았다.
제가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이렇게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응할 줄 몰랐기에 한순간 움찔했지만 아이작은 큼큼 헛기침하며 의식적으로 앙브흐의 반짝거리는 눈을 피한 그가 물었다.
“어때? 아프냐?”
사실 정말로 아픈가? 하고 물은 건 아니었다.
그야 그렇지 않은가. 앙브흐의 손을 잡으면 낙인이 아프다니.
낙인이 아플 수야 있겠지. 저 낙인이 무엇인지 들었기에 아마 낙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고 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한 사람과 가까이 있거나 손을 잡으면 아프다?
슈가가 아이가 아니었다면, 아이가 살아온 세월과 짊어진 천형이 무엇인지 몰랐다면, 아이작은 대번 수작도 저렴하다며 코웃음을 쳤을 게 확실했다.
한데, 그런 그의 질문에 슈가는 머뭇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아파요.”
“뭐? 아파?”
슈가의 답에 앙브흐는 대번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이와 잡은 손에 힘을 뺐다.
손을 잡으면 아프다고 했으니 당연히 잡은 손을 풀어내려는 의도였고, 슈가도 고집부리지 않고 순순히 잡은 손을 놓았다.
그렇게 앙브흐가 손을 놓음과 동시에 물었다.
“이제 안 아파?”
원인을 제거했으니 당연히 고통이 사라져야 할 텐데.
“그…….”
온전히 걱정만이 담긴 앙브흐와 눈을 마주한 슈가는 개미가 기어가듯 작은 목소리를 냈다.
그런 아이를 보던 아이작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켄델의 이름을 계승한 아이작은 정보 수집과 수집한 정보에 대한 신뢰성, 쉽게 말해 사람들이 내뱉는 말에 섞인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이는 정말로 낙인에서 고통을 느끼고 있었으며, 심지어 앙브흐와 손을 잡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아파하고 있었다.
설마 내가 손을 잡아서 그런가?
아이작은 잡고 있던 슈가의 손을 슬그머니 풀어냈다.
앙브흐와 둘이서만 꺅꺅거리는 통에 홧김에 저지른 일이건만, 이 때문에 아이가 아프다니 없던 양심이 다 아팠으니까.
제 손을 감싸던 조금 거칠고 마른, 미지근한 온기가 사라지는 순간, 슈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들고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특유의 여우 눈으로 아이를, 정확히 말하면 갈비뼈 부근의 낙인을 살피던 아이작은 슈가의 콧방울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아프다며. 나랑 손잡아서 아픈 건 아니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목소리는 뚱했고, 하는 말도 듣기에 따라서는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는 면피용 발언으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슈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앙브흐처럼 분명하지 않지만, 아이작의 눈길과 손짓에서 자신을 향한 걱정이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분명, 아이작은 자신을 꺼릴 텐데.
그랬기에 슈가가 지나치게 아이작 눈치를 보자 그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해주었다.
‘명령 때문에 곁에 있는 거니까 눈치 볼 필요 없어. 어휴, 이 콩만 한 놈이 고대신이니 뭐니, 무슨.’
이상하게도 그 말을 하고 난 뒤에는 꺼리는 기색이 사라지고 앙브흐가 제게 너무 바짝 다가설 때 불편해하기만 했지.
그러고 보니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도 ‘일상’이라고 부를 만큼은 아니더라도 예전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웠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갑자기 낙인이 더 아팠다.
그런데도 아이작은 웃고 있었다.
“아프다면서 왜 웃어? 너 혹시 낙인이 아니라 머리가 아프냐?”
아이작이 움찔거리며 한 발 뒤로 물러나려다 아이의 기분을 생각해 간신히 버티면서 말하자 앙브흐가 받았다.
“슈가, 이제 괜찮은 거야?”
“네. 네에.”
거짓말이었다. 낙인 부근이 손을 잡았던 때보다 더 아팠다.
마치 이래도 계속 앙브흐와 아이작 사이에서 웃고 있을 거냐고 협박이라도 하듯이.
그 탓에 갈비뼈 부근이 불에 타는 듯이 아팠지만, 슈가의 입가에 번진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안 아프니까 다시 손을 잡아주면 안 돼요?”
그리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뻔뻔하게 양손을 앙브흐와 아이작을 향해 내밀었다.
하지만 앙브흐는 전처럼 덥석 손을 잡지 못했다. 이미 손을 잡은 후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망설임도 잠시.
“어, 앗!”
슈가의 손부터 잡은 아이작이 반대편 손을 들어 앙브흐의 손을 아이의 손 위에 얹었다.
그는 아픔을 참는 듯 미세하게 떨리는 아이의 눈가를 바라보면서 여우 눈을 더욱 길게 접었다.
앙브흐가 손을 잡기도 전에 자신이 손을 잡는 순간, 아니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아이는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손을 잡고 싶다면 이유가 있겠지.
아니…….
한숨을 삼킨 아이작은 뭔가를 감추고 싶지만, 잘 감추지 못하는 슈가에게서 읽은 것들에 정말이지 오랜만에 곤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 음. 역시 그거지?
슈가가 앙브흐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딱 그것이었다.
아이와 피로 연결되어 있던 쓰레기가 쓰레기로 밝혀지기 전 그를 향해 보였던 ‘가족’을 보는 눈.
앙브흐는 모르는 것 같았지만, 아이작은 한 번에 알아보았다.
단순히 그가 아켄델의 이름을 이어 온종일 사람을 관찰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래 사람이란 가진 것은 모르고 가지지 못한 것은 아주 잘 아는 것이 아니겠나.
아이작은 아켄델의 이름을 잇기야 했지만, 가문에서는 내쳐진 것에 가까운 처지였다.
가족이니 뭐니 하는 것을 생각하며 눈물짓던 밤은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릴 적이 전부였고.
그 때문에 그는 다른 누구보다도 더 기민하게 슈가의 ‘가족’을 향한 시선과 감정, 갈등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아이의 그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한 순간, 굉장히 낯설고, 어색하다 못해 모른 척하고 싶을 정도로 낯간지러웠다.
그래. 간지러웠다. 아이작은 저도 모르게 간질거리는 가슴께를 문지르려다 남는 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아프면 바로 말해라. 손은 언제든지 잡아 줄 테니까.”
퉁명스러운 말에 담긴 걱정을 읽은 슈가는 말간 얼굴로 웃었다.
“아프지만, 손을 잡는 게 더 좋아요.”
그리고 그 찰나, 더없이 선명하던 아이의 낙인의 모서리가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흐려졌다는 사실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
“좋아. 그러면 이틀 후.”
결정한 올리비아는 거침없이 펜을 놀렸고, 그녀의 공문은 사용인의 손에 들려 그레타가 머무는 궁으로 향했다.
“전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레타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리 답했고, 케슬란은 그런 그녀의 뒤에서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숨기려 애를 썼다.
올리비아가 그레타에게 이틀 후 황녀 궁으로 오라는 전갈을 보낸 밤.
그레타는 케슬란을 인형으로 만들었다가 기억을 지워버리면서 힘을 지나치게 쓴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었다.
침대에서 몸을 말다가도 뻣뻣하게 피고,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손발을 오므리다가 갑작스럽게 활짝 펴는 등.
제 몸을 제가 주체하지 못해 침구가 축축해지도록 땀을 흘리고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인형은 하나만 만들도록 해. 그 이상은 통제하기 힘들다.’
제 손에 정화된 아버지의 귀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어딘가 먼 곳에서 우렁우렁 울렸다.
그렇게 땀이 범벅이 된 채 머리를 찢는 듯한 통증을 참아내던 그레타는 어느 순간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으, 꺄아아악!”
-벌컥.
“무슨 일이십니까!”
그녀의 비명에 노크도 없이 활짝 열린 문 뒤로 케슬란이 나타났다.
그는 침대에서 거의 혼몽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그레타를 순식간에 살핀 후, 주변을 훑었다.
습격자가 있는지, 위협이 되는 것이 있는지 눈 몇 번 깜박하는 사이에 파악한 케슬란은 곧바로 밖을 향해 외쳤다.
“궁의를 불러라!”
그의 목소리가 복도를 휩쓸기 무섭게 밤의 궁을 돌보던 사용인들이 움직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궁의가 그레타를 살피기 시작했다.
“일단 해열제와 진통제를 좀 드렸습니다.”
한번 터진 비명이 단발로 그치지 않았기에 연신 방을 울리던 그레타의 날카로운 비명은 궁의가 그녀를 재우고 난 후에야 사라졌다.
기절하듯, 아니 약으로 기절시켜 잠든 그레타를 뒤로한 채 방을 나선 궁의는 땀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다행히 그냥 잠드셨지만, 혹시라도 내일도 저렇게 심하시면 본격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네. 그 부분은 곧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네. 그럼 저도 동료들에게 미리 말을 해두겠습니다. 외교관분들이 제국에 오시고 얼마간은 저런 경우가 좀 있어서요.”
“그렇습니까.”
“네. 아무래도 계속 사시던 곳을 떠나서…….”
궁의가 무어라고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케슬란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가득했으니까.
“……해서 만약 풍토병일 경우…….”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케슬란이 지지부진하게 늘어지던 궁의의 말을 잘랐다.
“아, 물론입니다.”
“기억을 잠깐 잃을 수 있습니까?”
“네?”
너무나도 진중하고 은근하게 물은 것치고 지나치게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말이라 궁의는 제가 잘못 들었나 했다.
어리둥절한 궁의의 반응에 케슬란의 소심한 천성이 머리를 치켜들었지만, 그는 천성을 억누르고 다시 물었다.
“기억을 일부분 잃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기억을…… 어, 그러니까 기억을 잃을 수야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일부분도요.”
그리고 그런 것을 의사들은 ‘기억상실증’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외부의 강한 충격이나 혹은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동반한 경험 뒤로 일부 기억이 사라지는 일이 있습…….”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네?”
케슬란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저으며 부정하자 궁의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무슨 말씀이신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궁의를 보던 케슬란은 이내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밤인데도 고생하셨는데 이만 가보시지요.”
불러서 뭔가 이상한 것을 물은 사람이 이제 필요 없다며 가보라는데, 그냥 순순히 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궁의는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돌아섰다.
상대는 제국의 기사, 그것도 일개 궁의인 자신조차 얼굴을 알 만큼 알려진 차기 기사단장이 아닌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와야 하는 법.
어딘가 아파 보였다면 당연히 달라붙어 있었겠지만, 공교롭게도 기사들의 신체 검진을 며칠 전에 끝낸 상황이었다.
“네. 그럼 이만.”
멀어지는 궁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케슬란은 깊고 깊은 한숨을 삼키며 등을 똑바로 세웠다.
머리가 아무리 복잡하다고 한들 몸에 박힌 기사의 의무와 자세가 무너지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역시 어지러운 마음을 그냥 지나치진 못했기에 그는 자신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눈을 깜박하는 사이에 몇 시간이 지나갔는데, 그사이의 기억이 전혀 없는 게 말도 안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