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6화 (6/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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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은 무공천재(2)

어떠한 무공을 대성(大成)한다는 것은, 그 무공이 지닌 진의(眞意)를 깨달아 완전히 체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인의 기량에 따라 무공의 진의를 실전에 적용할 수 있으면 한 명의 당당한 무사(武士)로 인정받는다.

저잣거리의 삼류 무공이더라도, 삼류 무공의 의(意)를 깨달아 체득하고, 그것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이류 무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상승 무공으로 향할수록, 무공의 한 초식에 담긴 의(意)만 하여도 삼류 무공 두엇에 해당하는 깨달음이 필요하기에, 상승 무공은 초식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이류, 일류에 도달하고는 한다.

참마종은 그런 류의 상승 무공들이 모여있는, 명실상부한 서경성의 대문파(大門派)였다.

그리고,

그런 참마종의 무공을, 칠 개월 만에 대성(大成)해 버린 자가 나온 것이었다.

슈칵, 슈칵!

김영훈 부장의 도(刀)가 허공을 갈랐다.

참마종의 절룡도법(絶龍刀法).

하늘을 나는 용마저 베어 가른다는 도법으로, 참마종의 내문 제자들이 배우는 내 제자용 기본 무공이었다.

물론, 내문 제자용 기본 무공이라는 뜻은, 일반적인 저잣거리 삼류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이류의 무공이라는 의미였다.

이류(二流)라는 이름 때문에 착각할 수도 있었으나,

이류 무공이라는 건 절대로 약하지 않았다.

대문파의 내문 제자들이 익히는 기본 무공인 만큼, 그 흉맹함은 상당한 강함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런 이류 무공의 진의를 깨달아 완전히 체화했다는 의미는,

“···일류에 도달했군.”

일류 무사(一流武士)에 턱걸이로나마 도달했다는 의미였다.

나는 눈앞에서 도법을 펼치는 김영훈 부장을 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일류.

그 이름이 주는 힘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어느 업계를 가더라도, [일류]라는 이들은 모두 한 업계의 거장들을 의미한다.

당장 무림 안에서도 일류 무사는 한 대문파의 장로급, 혹은 당주급의 직책을 맡는다.

중소 문파에서는 장문인 직책을 맡기도 한다.

‘무공을 익힌 지 반년 만에 일류라니.’

수많은 무인들이 고련하며, 깨달음을 얻어 겨우겨우 도달하는 것이 일류의 경지이다.

그런데, 김영훈 부장은 그러한 상식을 정면에서 부정하듯이, 당당히 반년 만에 일류에 접어든 것이었다.

‘참마종이 뒤집어졌다고 했나.’

듣기로, 칠 개월 만에 외문 제자가 장로급 실력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참마종이 난리가 나고, 김영훈 부장을 다른 문파의 간자로 의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다.

결국 그 일 때문에 김영훈 부장은 또 다른 간자 후보인 나와 함께 자택에 구금되어 버렸다.

‘난 무공도 모르는데 왜 간자로 모는 건지···.’

물론 이해야 간다.

50대의 배불뚝이가 무공을 배우겠답시고 찾아와서 무공을 가르쳐 줬더니,

자기 문파의 무공을 익혀서 반년 만에 일류 고수가 되었단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만큼, 의심할 만도 하다.

“그나저나 부장님. 걱정도 안 되십니까?”

“하하, 뭘 말인가?”

“간자로 몰리셨는데, 왜 이런 무협에서 보면 단전을 폐하고 경맥을 끊는 일도 있다 하지 않습니까.”

“분명 그렇지.”

부웅!

그는 마지막으로 검을 휘두른 후, 땀을 닦았다.

“하지만 왠지, 다음 [벽]이 보이는 것 같아서 말이네. 그 벽을 넘으면 다음 경지에 도달할 것 같거든.”

“···.”

괴물이다.

일류 무사가 된지 얼마나 됐다고, 다음 경지를 느껴?

‘일류 다음은 절정 고수.’

절정 고수부터는 대문파의 장문인, 혹은 원로급 전력이다.

연국에서는 절대고수라고도 불리우는 경지이며, 절정 고수만 되어도 연국에서 1000명 안에 들어가는 무시무시한 경지이다.

사실 무림계 안에서, 절정 이후의 경지는 얘기조차 되고 있지 않으니 사실상 절정 무사가 무공을 익혀 도달할 수 있는 끝자락인 셈이었다.

‘고위 무공을 좀 익혔다고, 칠 개월 만에 절정 고수···.’

내 예상은 틀렸다.

이 기세라면, 천하제일도의 재림을 30년이 아닌, 50년은 앞당길 수 있다.

‘아니, 50년은 너무 갔고, 40년 정도로 해 두지.’

그만큼 김 부장의 성장세는 정신 나간 수준이었다.

“하하, 일류 무사 정도라면 간자 취급 받겠지만, 절정의 벽을 넘으면 수상쩍더라도 받아 줄 수밖에 없겠지. 거기다, 서은현이가 캐온 삼도 한 뿌리 남아 있고 말이야?”

그는 다시금 도법을 연습하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나는 등선향에서 캐 온 황주삼 역시 한 뿌리를 남겨 놓았다.

김 부장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그의 내공을 증가시켜 주기 위해 준비해 놓은 황주삼이었으나···.

‘얼마 후에는 주게 되겠군.’

그렇게 되면 김 부장의 내공도 역시 절정 고수에 걸맞는 내공이 될 터다.

“···그나저나 부장님, 어째 방금 전이랑 도법의 형(形)이 아예 달라진 것 같은데···.”

“하하, 참요당주 허백의 검법이네. 참마검법(斬魔劍法)이었나? 한 번 펼친 걸 보고 익혀 뒀지. 그걸 도법으로 풀어 펼쳐보는 중이라네.”

“···.”

‘천무(天武)의 재(才)로군.’

정말 가공할 정도다.

하긴, 생각해 보면 원래부터 김 부장은 이상할 정도로 등산을 하면서도 체력이 안 닳았고, 족구를 해도 기이할 정도로 발놀림이 빨랐다.

회사에서 몸 쓰는 뭔가를 하면 수상할 정도로 항상 1등을 달성하곤 했었다.

‘원래부터 있던 재능인건가···?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의 자질과 능력은 이 세계로 오며 각성한 게 아닌, 원래 세계에 있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인건가? 그렇다면, 내 회귀 능력도?’

억측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머릿속에서 떠오른 상념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 칠 주야가 지났다.

파앗!

김 부장이, 절정 고수가 되었다.

“[벽]을 넘었네.”

“···허.”

나는 김 부장에게 900년 묵은 마지막 황주삼을 건네주며,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생각외로, 말도 안되는 재능을 지니셨군요.”

“나도 내가 놀랍다네. 나한테 무공에 이런 재능이 있었을 줄은··· 어릴 때부터 무협을 좋아했던게 어쩌면 이런 이유였을지도.”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김 부장은 내가 건낸 황주삼을 받아 씹어먹고는,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쿠우우···.

얼마 후, 김 부장의 머리 위로 세 개의 꽃의 형태로 기(氣)가 뭉치더니, 그의 코와 입 속으로 흩어져 들어갔다.

‘저게 삼화취정···.’

스아아···.

김 부장의 눈에서 서기가 어렸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참마종 장문인도 딱히 안 무섭군.”

“···그래 보이십니다.”

“그나저나, 이 자택 연금은 언제 풀리는 건지 원.”

그는 우리 집 앞에서, 우리를 감시하는 장로 한 명에게 다가갔다.

“이보시오, 언제쯤 가택 연금이 풀리는 거요?”

“네 간자 혐의가 풀릴 때까지다.”

“흠··· 일단 알겠소.”

그렇게 사흘이 더 지났다.

참마종에서 사람들이 왔다.

“간자(間者) 영훈과 그 일당은 들으라! 참마종의 무공을 빼 가려는 타 문파의 간자 영훈의 단전을 폐(廢)하고 사지의 경맥을 끊어서 오라는 장문인의 명이시다!”

“허···.”

참마종에서 온 장로 셋이 김 부장을 둘러싸고, 이류 무인인 호법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정말 간자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나는 그저···.”

“시끄럽다! 저 놈을 묶어라!”

“후우···.”

제대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김영훈 부장이 빠른 속도로 발도(發刀)를 했다는 것 외엔.

슈칵!

“크으··· 아아아악!”

장로 한 명의 손목이 조금 잘려 나갔다.

이제 저 장로는 저 손은 평생 쓸 수 없을 거다.

김 부장은 우울한 얼굴로 검을 잡았다.

칠 개월 전과는 달리, 살이 쪽 빠져 근육으로 가득찬 그의 몸이, 그가 수천수만 번 연습했던 도형(刀形)의 자세를 자연스레 잡는다.

“내 첫 사문(師門)이었거늘···.”

“이··· 무슨···!”

그 모습을 보고 놀란 다른 두 장로가 그에게 달려들었으나,

다시금 김 부장의 도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휘둘러지며 장로들의 손목을 옅게 베었다.

“어, 어어···.”

퍼억!

내게 다가오던 호법 역시 당황하던 새, 김 부장이 빠르게 다가와 손목치기를 날리자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으, 으아아아아!”

“젠장! 상승 고수다! 도망쳐!”

“장문인께 알려라!”

그러나 장로들과 같이 왔던 참마종의 제자들 몇몇이 기겁하며 도망쳐 버렸고, 김 부장은 굳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은현, 나는 투룡보(鬪龍堡)에 갈 생각이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투룡보는 사파이지만 크게 악행을 일삼는 문파가 아니고, 그저 호승심이 강한 문파인 만큼,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좋군. 그럼 자네는 일단 투룡보 앞에 가 있게나. 참마종의 장로들과··· 장문인을 따돌리고 오겠네.”

나와 그는 집 밖으로 나가, 반대 방향으로 헤어졌다.

나는 서둘러 투룡보가 있는 서경성 남부로 향했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투룡보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서은현이, 왜 이렇게 늦나.”

“하하, 부장님이 빠르신 겁니다.”

그러나 김영훈 부장은 어느새 나보다 빨리 투룡보에 도착해 있었다.

난 그의 도신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폭력성에 기겁을 하던 김 부장은, 이젠 칼에 피를 묻히고 다니게 되었다.

비록 이 세계에서 살아 나가기 위해서라지만, 이 세계는 우리를 바꾸어 놓는다.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무림이 아닌, 지구에 있는 일상으로.

문득, 나는 한 번의 삶을 더 허용한 이 회귀라는 능력이 참 하잘것 없다고 느껴졌다.

‘기왕 회귀할 거면··· 아예 지구에 있던 그때로 보내 주지 그랬나···.’

어쩔 수 없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어찌되었든 살아야 하지 않겠나.

나는 칼에 피를 묻힌 김 부장을 보며, 싱긋 입꼬리를 올려 웃어 주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부장님.”

***

10년이 흘렀다.

참마종에게 배신당하고 나온 김 부장은 투룡보에 투신해서, 투룡보의 공봉(供奉)으로 봉해졌다.

투룡보의 공봉이 된 그는 더욱 더 상승의 무공들을 수집해, 어느새 절정 고수에서도 상위에 달하는 강자가 되었다.

이제 그는 십 년 만에 천하삼대도객의 좌를 차지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는 언제나 실력의 4할 이상을 감춰 두고 실력을 보였으며,

그가 실력을 제대로 드러낸다면, 그는 천하제일도, 연국제일인(鸢國第一人)이 될 거라고, 나는 한 푼도 의심치 않았다.

이제 나는 그와 나이차를 무시하고 호형호제하고 지내기로 했으며.

그는 내게 딱 맞는 무공을 아예 만들어 내서 내게 가르쳐 주었다.

“단악검법(斷岳劍法)이라는 검법이네. 거악(巨岳)마저 베어 버릴 기개를 가지고 있다는 뜻에서 이름 붙였지. 아마 대성한다면 자네도 능히 절정 고수가 될 수 있을걸세.”

단악검법과 더불어, 검법과 함께 창제된 용맥기공(龍脈氣功).

단순한 삼류, 이류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일류 무공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런데 은현. 자네 정말··· 둔재로군.”

내 끔찍한 무재(武才)였다.

천하제일인인 그가 직접 나에게 맞는 무공을 창제해서 상세하게 알 려주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1년째 삼류에 간신히 턱걸이를 하는 정도였다.

“···어쩔 수 없잖습니까. 각자 재능이 있는 분야가 다른 거지요.”

지난 10년간, 김영훈이 무공을 수련하고, 나는 의술(醫術)을 공부했다.

전에 익혀 놓은 약초학에 더불어 혈자리, 시침법, 진료법 등을 공부했다.

덕분에 정식으로 의당을 차리고 의원 행세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상승해 있었다.

익혀놓은 약초학이 도움이 됐던 건지, 의술 분야는 무공보다는 훨씬 빠르게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그나저나 자네, 혼인은 안 할 건가?”

“···뭐, 기회가 오든지 해야 하지요.”

우리가 몸 담고 있는 투룡보는, 그 특유의 험난한 분위기 때문에 혼인을 하기가 꺼려졌다.

선을 보아도 내가 투룡보의 의당에서 일한다는 말에 얼굴이 하얘져 도망친 소저들도 있을 정도였다.

“하하하, 이거 서 아우의 결혼을 위해 투룡보를 슬슬 나가 봐야겠구만.”

“아니, 정말 저 때문에 나가는 겁니까?”

“농담일세. 그보다는, 투룡보가 너무 좁은 것 같아서 말이지.”

확실히, 십 년 안에 천하삼대도객의 칭호를 얻고, 실질적인 천하제일인의 실력을 가진 그의 말이라면 그럴 만했다.

“투룡보를 떠나, 새로운 단체를 꾸리려 하는데, 어떤가?”

“새로운 단체 말입니까?”

“그래, 무림맹(武林盟)! 연국 강호의 수많은 문파를 규합하고, 혼란스러운 정사지간의 문제를 중재할 단체지. 어떤가? 나랑 같이 갈 건가?”

“···당연한 말을 하십니다. 동향 사람끼리.”

“그래, 동향 사람끼리··· 헤어지지 말아야지.”

그렇게, 나와 김영훈은 이 세계에 온지 십 년째, 무림맹을 창설하기 위해 투룡보를 나섰다.

김영훈은 투룡보를 떠나 이 년 동안 연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각 주(州)의 대문파들을 찾아다니며 도장 깨기를 시도했고,

삼 년째.

결국 모든 문파의 간판을 떼는 데에 성공했다.

그는 진정으로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의 별호를 얻었고, 그는 천하제일인의 명성으로 무림의 문파들을 규합할 무림맹을 창설했다.

초대 무림맹주는 당연히 그였고, 나는 무림맹주인 김영훈의 측근이자 책사(策士)로 그를 보좌했다.

무림맹을 창설하고 7년이 지났다.

우리가 이 세계에 떨어진지 햇수로는 20년째.

나는 삼류 무사에 간신히 턱걸이하던 실력에서,

이제 무난히 삼류 무사 정도는 될 실력이 되었다.

물론 책사의 자리에서 영약을 많이 먹어치워 내공만은 일류였지만, 실력 자체는 아직도 삼류에 불과했다.

하지만, 김영훈은 역시 달랐다.

쿠우우우―

어두운 밀실.

나는 김영훈의 호법을 서며, 그가 운기조식을 마무리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때였다.

우우웅!

서광이 비추며, 그의 머리 위로 다섯 개의 원(圓) 형태의 기(氣)가 뭉쳤다.

얼마 후 다섯 개의 원형의 기들을 그의 코와 입으로 빨려들어갔다.

오기조원(五氣朝元)의 경지!

뚝, 우둑, 우두득···.

얼마 후, 그의 몸 곳곳이 크게 비틀리기 시작하며, 뼈와 살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저건···.”

우드득, 우드드득!

그의 육체가 이상적인 형태로 변화한다.

환골탈태(換骨奪胎)!

파아아앗!

잠시 서광이 이는 듯싶더니, 내 눈앞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주름과 흰머리는 전부 사라졌고, 벗겨진 머리는 풍성하게 자라 있었다.

생명력이 넘치는 그 육신의 주인은, 내가 알던 사람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형···님···?”

“하, 하하··· 하하하하!”

김영훈은 환골탈태를 함으로써, 반로환동(返老還童)에 성공한 듯했다.

이제 그는 오히려 나보다 훨씬 젊은 얼굴이었다.

“정말 최고군! 이보게, 아우! 정말 생명력이 팔팔 넘치는 것 같군!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하, 저보다 형님이 먼저 혼인하시겠습니다.”

그랬다.

나는 무림맹의 책사로 임명된 후, 미친 듯이 바빴기에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할 수 없었다.

“예끼, 이 사람아. 내가 혼인은 무슨 혼인을···.”

하지만 그 역시 결혼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결혼해 봐서 아는데, 처음 3년만 좋지 이후로는 정말, 아니네. 말을 말지.”

김영훈은 지구에서 과장을 달고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다.

아내분께 맺힌 게 많았는지, 그는 천하제일인이 된 이후에도 절대로 결혼은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나저나, 형님이 환골탈태한 걸 알면 세간이 놀라겠습니다.”

“하하, 확실히 그렇겠지. 그나저나 이제 슬슬 무림맹도 다음 맹주에게 넘겨주어야 하는데···.”

“형님 눈에 차는 사람이 없나 보죠.”

“무림맹주는 자고로 무공이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어찌 된 놈이 한 놈도 무(武)를 이해하는 놈이 없어!”

“형님이 비정상적으로 천재인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멍청이가 아니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환골탈태 이후, 1년 후.

형님은 무림맹주의 직위를 후대에게 넘기고 은퇴했다.

나 역시 형님과 함께 은퇴하고 싶어했지만 2대 맹주가 무림맹 운영에 난항을 겪었기에, 결국 반강제로 무림맹 책사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렇게, 다시 10년이 지났다.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지 30년이 지났다.

내 나이도 어느새 예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공 실력은, 내공만은 많았으나 실질적인 실력은 삼류 끝자락에 간신히 도달한 정도였다.

무림맹은 2대 맹주를 거쳐, 3대 맹주의 시기에 이르렀고, 나는 은퇴하기 위해 미친 듯이 후계자를 양성해 2대 책사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가까스로 은퇴할 수 있었다.

영훈 형님은 초대 무림맹주의 자리에서 은퇴하고, 강호를 떠돌아다닌다면서 연국 곳곳을 여행하고는 했고, 몇 달씩 얼굴을 보지 못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 때문인지, 형님은 결국 내 은퇴식 때에도 오지 않았다.

내가 영훈 형님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던 것은 책사 은퇴 이후, 1년이 지난 시점.

서경성에 장원을 사서 그 안에서 유유자적하며 의술 서적을 읽고 있을 때였다.

저벅, 저벅···.

“뭐냐, 왠 놈이야··· 으음! 혀, 형님!”

“···.”

“왠 거지꼴입니까. 그나저나 제 퇴임식 때에도 안 오고, 어딜 가셨던 겁니까. 강호 유람이 그리··· 형님?”

오랜만에 본 그는, 거지꼴을 한 채 창백한 얼굴로,

세상을 뒤덮을 것 같던 그 모든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형님!”

철퍽!

그는 내 장원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은현아. 나는 내가, 정말로 축복받은 무의 자질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맞잖습니까. 형님이 천재가 아니면 뭡니까?”

“···맞다. 난 분명 무공의 천재다. 아마 이 연국에서, 아니, 범인(凡人) 중에서 내 무재(武才)를 따라올 놈 따위는 단 한 놈도 없을 거다.”

“범인이요? 형님이 어떻게 범인입니까? 형님은 천하제일인이시고···.”

“수도자(修道者)란 것들과 손속을 겨뤄 봤다. 너도 기억하지 않느냐. 30년 전. 우리 동료들을 납치해 갔던, 하늘을 날아다니던 그 괴물들.”

“···.”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랬다.

수도자들.

무림맹주의 책사로 활동하며, 나는 그들을 몇 번 만나 보기도 했다.

그들은 연국의 정재계, 심지어 연국 황실 곳곳에서 암약하며, 연국 자체를 주물럭거리는 이들이었다.

무림을 조율하는 무림맹이 창설된 후, 그들은 무림맹 역시 그들의 손에 넣고 싶어 했다.

영훈 형님은 못마땅해했으나, 그들에게 거역한다는 것은 연국이라는 나라 자체와 싸운다는 것임을 알고 있었던 나는 그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수도자들의 간접적인 지원을 받으며, 무림맹의 세력을 전폭적으로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림인이 수도자를 해할 수 없게 조치할 것을 명했고, 그 명에 의해 무림맹에 속한 이들은 수도자란 이들과 손속을 겨뤄 볼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형님은 무림맹주의 직위를 내려놓고, 수도자들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수도자란 놈들은 정말 찾기 어렵더구나. 심지어 한 번 찾아서 손속을 겨뤄 보려고 해도, 환술이나 비행술 같은 짜증 나는 기술로 도망치고는 해서, 겨룰 기회가 없었지만,

이번에 기어코 놈들과 겨루는 데에 성공했지.”

“그래서, 이겼습니까?”

“···이겼다.”

“무림맹주 시절에 그러셨으면, 제가 뒷목을 잡았을 겁니다.”

영훈 형님은 끌끌 웃으며, 씁쓸한 얼굴로 혀를 찼다.

“축기기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수도자와 싸워, 목숨을 걸어서야 그의 손끝에 상처를 낼 수 있었어···. 그 수도자가 자신의 몸에 스치기만 해도 내가 이겼다고 쳐 준다 했으니··· 일단은 이긴 거긴 하지.”

“···축기기의 경지에 이르른 그 자는, 수도자들의 천하십대고수, 그런 자입니까?”

“···아니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하기를, 자신이 이른 축기의 경지는, 수도계에서 밑바닥에서 두 번째의 경지라고 하더군. 무림인으로 치면, 이류 무사인 거지.”

“···!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지난 삶에서도, 이번 삶에서도.

분명 수도자들이 무서운 이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무림인들의 위에, 수도자들이라는 무지막지한 존재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30년 동안 그의 무공을 옆에서 봐왔기에, 알고 있었다.

그의 무공은 진정 하늘에 닿아 있다!

단순한 수식어가 아닌, 그는 정말로 허공답보를 사용해 하늘에서 무공을 펼치는 것이 가능했다.

만년한철 역시 두부처럼 베어 가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그런 무공천재가!

수도계에서 밑바닥에 두 번째에 있는 자에게 목숨을 걸고서 손끝에 상처를 내는 것으로 끝나다니!

'선협 세계라고 알고 있긴 했지만.'

내가 선협이라는 장르를 아는 것은,

그냥 그런 장르가 있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었다.

그리고 수도자라는 게 있기에 나는 대충 이 세계를 선협 같은 세계라고 했을 뿐,

그들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회사의 동료들을 납치해 갔던 괴물들 역시 수도자라기보다는, 어떤 신(神)적인 존재쯤으로 대충 생각하고 있던 게 지금까지의 내 인식이었다.

“···인간이, 형님을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로 강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연국의 곳곳에서 암약하던, 우리가 봐 왔던 그 수도자들은, 수도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던 이들이라고 하더군. 수도계에서 제일 밑바닥이라, 오히려 속세의 일을 처리하며 속세 곳곳에서 암약하는 것이라고 말이야.”

“···.”

그는 침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앞으로도 수도자들을 더욱 더 상대할 거다. 그리고,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무공을 만들어낼 것이다. 반드시···! 나는, 이 연국, 아니, 이 천하에서 다시없을 천무(天武)의 재(才)를 지녔으니까!”

그렇게, 형님은 형형한 안광을 불태우며 어딘가로 가 버렸다.

나는 그의 말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날부터 수도자라는 존재들에 대해 전력으로 조사를 이어 나갔다.

내 인맥을 이용해 무림맹에서 암약하는 수도자들, 정, 재계, 황실 곳곳에서 암약하는 수도자들과 만나며, 그들에게 수도계에 대한 것을 듣고, 알아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교류하며 수도계의 범위가 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도자(修道者).

그들은 칼과 내공을 갈고닦아 일신의 무위를 내세우는 것이 끝인 무림인들과 달리.

수련을 통해 신선(神仙)이 되는 것이 목적인 존재들이라 하였다.

그런 그들은 가장 밑바닥의 수도자들조차 무림의 절정 고수와 맞먹으며, 무림 곳곳에서 암약하고, 수도자의 경지가 올라갈수록,

호풍환우를 부리며, 천재지변을 장악하고, 점차 신적 존재에 가까워진다는 듯했다.

나는 그런 무시무시한 존재들에 대해 들은 이후, 너무나도 두려워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해 놓고 있었던 무공수련을 이어나갔다.

30년 전 처음 보았던 괴물들이,

그 용과 신선 같은 존재들이,

신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수련을 해서 도달할 수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고.

더욱 믿기지 않는 건, 그런 그들조차 상위세계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 치며,

그 상위 세계에는 훨씬 더 무시무시한 존재들이 즐비한다는 사실이, 허무맹랑한 거짓말 같았다.

그러나,

나 자신부터가 그런 허무맹랑한 거짓말의 목격자였기에, 단순한 농담이라고 부정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나는 동료들이 적당히 수도자가 되었다는 것만 알았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내 동료들은 정말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 가고 있을 터였다.

“하하···.”

수도자들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와 영훈 형님은 얼마나 하잘것없는 힘을 얻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제아무리 인간이 팔다리를 움직이는 무공을 익히면 뭘 하나.

수도자는 산을 집어던지고 지형을 바꾸는 괴물들이다.

제아무리 내가 회귀를 하면 뭘 하나.

절대 수도자들에게는 도달할 수 없다.

애초에 수도자가 되려면 영근(靈根)이란 것이 꼭 필요했고, 그것이 없는 이는 [절대로] 수도자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

‘회귀의 능력이, 이번 생이 끝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한 번 더 얻은 삶이라 생각하고, 늘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뿐.

만약 다음 삶이 또 있다면 어쩔 것인가.

사실 회귀의 능력이 한 번으로 끝나는지, 몇 번의 기회가 더 있는지는 나도 몰랐다.

하지만, 몇 번을 더 회귀한다고 한들.

‘절대로, 우리는 수도자라는 존재들에게 대항할 수 없어···.’

수도자들과 만나 그들의 세계에 대해 듣고,

고서(古書)를 뒤져 수도자들의 기록을 찾아볼 때마다, 나는 더없는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그 무력감과 압박 속에서, 나는 무공을 수련하고, 또 수련했다.

늙은 몸으로 칼을 한 번 휘두르면, 그래도 잡념이 조금은 사라졌기에.

그렇게 10년이 다시 흘렀다.

“후우···.”

나는 단악검법(斷岳劍法)을 펼치며, 숨을 조절했다.

이제, 나는 이류 무사에 턱걸이를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즈음.

나는 또다시 달라진 형님을 만날 수 있었다.

“혀, 형님···?”

오랜만에 만난 그는 봉두난발의 괴인(怪人)과 같은 행색이었다.

머리카락은 길게 뻗쳐 있었고, 수염은 길쭉하게 자라 있었다.

“···오랜만이다, 은현아.”

“예, 지난 몇 년간 거의 못 봤지요. 서신으로만 연락을 주고받았고··· 제가 보내드린 수도계에 대한 정보는 도움이 조금 되었습니까?”

“그래. 나름 도움이 됐다.”

“수도자들을 이길 무공은··· 혹여···.”

“구상해 두던 무공은 완성했다.”

“허어···!”

나는 탄성을 내뱉었다.

무공의 천재인 그가 그런 말을 내뱉을 정도라면, 그의 무공으로도 수도자를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정녕 형님의 무공이 하늘을 뛰어넘으셨겠구려···.”

“아니.”

그러나, 그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침울한 기색이었다.

“내 무(武)는, 딱 여기까지인 것 같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늘은 네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형님?”

그의 얼굴에 가득하던 자부심과 희망은 전부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오늘부로 수도문파(修道門派)에 제자로 들어가게 될 거다. 아마 막내부터 시작하겠지. 큭큭···.”

“아니, 그게 무슨···.”

“···10년 동안 수도자들에 대한 정보로, 그들을 찾아다니며 겨루고, 그들을 상대하기 위한 무공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결단기 수사라는 존재를 만났다.”

형님의 말이 이어졌다.

“그와 싸우고, 내 모든 깨달음을 펼친 덕에, 결단기 수사의 왼손을 잘라 내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결단기 수사가 부적을 하나 붙이니 손이 다시 자라나고, 나는 그 직후 그의 손에 철저하게 놀아났다.”

“···.”

“그자가 말하기를. 내 의지를 높게 봐 주어 자신의 수도문파에 넣어 주겠다고 하더군. 그자와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나는 알게 되었다. 여기가, 무공으로 닿을 수 있는 [끝]이라는 걸.”

“···.”

“무공을 익혀서는, 더 이상 위로 갈 수 없다. 백 년을 익히든, 천 년을 익히든 똑같을 뿐이야···. 그래서, 나는 이제 수도자가 되어 새로운 길을 걸을 작정이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할 말이 너무 많았지만, 해 줄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내 입에서 튀어나온 건 꽤 멍청한 말이었다.

“수도자가 되려면, 영근이라는 게 없다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결단기의 수도자가 말하기를.”

그리고, 멍청한 물음에, 충격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무림인이 도달하는 오기조원(五氣朝元)의 경지는, 수도자가 가지고 태어나는 오행영근(五行靈根)에 상응한다고 하더구나. 정확히는, 범인이 무공으로 오기조원에 도달하면, 그것으로 영근이 각성(覺醒)한다는 것이야.”

“허···.”

“수도자들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자질이, 범인은 무공을 익히고 평생을 궁구해야 겨우 각성할 수 있는 자격이라는 거지.”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읊조렸다.

“나는··· 무공의 천재였지만, 무공의 천재였을 뿐이야.”

얼마간 하늘을 쳐다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만 가겠네. 더 위의 경지를 추구하기 위해.”

말을 마친 영훈 형님은, 신법을 펼쳐 사라져 버렸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한 권의 서책이 남겨져 있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가 남긴 서책을 집어 들었다.

책의 제목은 월수궁무록(越修窮武錄)이었다.

수도자를 넘기 위해(越修) 무를 궁구한(窮武) 기록(錄).

그가 지난 십 년간 수도자들을 찾아다니며 만들었다는 무공이었다.

나는 한 장 한 장, 영훈 형님이 남긴 깨달음을 읽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류에 턱걸이를 했을 뿐인 내가 보기에, 뜬구름 잡는 소리밖에 없는 무공 구결이었다.

하지만 나는 책을 가득 채운, 영훈 형님의 떨리는 글씨체를 보며, 그가 이 무공을 남기며 느꼈을 심경을 느꼈다.

동시에, 이런 무공을 만들어 낸 그가 결국 무를 포기하고 수도자가 되기로 한 심경 역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책의 말머리에는 그가 내게 남기는 당부가 적혀 있었다.

―아우 서은현은 이 무공을 부디 후대에 남겨, 후대가 수도자라는 자연재해의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동아줄로 만들어 다오.

나는 그가 남긴 깨달음들을 또 읽고, 읽으며 머릿속에 박아 두었다.

어차피 몇 번을 읽어도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그의 유지를 느끼기 위해서였다.

“···형님. 이 아우를 남겨 두고, 어디를 가신단 말이오.”

처음에는 그저 부장님일 뿐이었다.

그러나, 40년의 세월 동안.

그는 내 진정한 형님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더욱 더 수련을 열심히 이어 갔다.

조금이라도 그가 남긴 구결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노쇠할 대로 노쇠한 내 몸은 점차 약해져만 갈 뿐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나는 이류에 턱걸이가 아닌, 제대로 된 이류 무사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점을 기점으로, 내 몸은 급격히 쇠약해져 갔다.

어쩔 수 없는 노화였다.

***

쿨럭! 쿨럭!

나는 화려한 침상에서 기침을 했다.

‘얄궂군.’

이 세계에 온 지, 50년이 되어간다.

나는 지난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침상에 누워, 비슷하게 감기로 죽어 가고 있었다.

바뀐 것은 그저 침상과 집의 종류뿐.

‘내 천명(天命)이란 것은, 바꿀 수 없는 건가 보군.’

정확히 같은 날, 같은 일에 죽을 것이다.

죽음이 가까워지니,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운명(運命)이었다.

인간은 아무리 거스르려 해도 운명이란 걸 벗어날 수 없다.

그저 순응할 수밖에 없다.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면 삶(生)을 조금 더 낫게.

조금 더 좋게 지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고난 운(運)과 명(命)을 바꿀 수는 없다.

사람(人)으로 몸을 받아, 운과 명 사이(間)에서 발버둥 치는 것이, 우리의 삶이자 일(事)이라면.

그 안에서만 뭔가를 얻어 가는 것이 인간지사(人間之事)이다.

그 바깥의 것은 얻을 수 없다.

‘···과연, 그랬을까.’

나는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난 삶에서의 후회를 느끼기 싫어.

새로 주어진 시간에서는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나는 내 운명 너머로 갈 수 없었을까.

무언가··· 발버둥 쳐서, 운명 너머를 엿볼 수라도 없었을까.

간혹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조금 더, 조금만 더 발버둥 쳤다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었···을지도···.’

영훈 형님과 평생을 보내며, 무림맹의 초대 책사 자리까지 올라가 보았다.

인간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부와 명예는 모두 거머쥐었고,

이제 남은 것은 임종일 뿐.

‘아쉬웠나?’

이 삶은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차고 넘쳤다.

단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더욱 더 커다란 곳으로 도약하려고 하는 이가, 더욱더 커다란 벽을 마주했을 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것이··· 아쉽···군···.’

나는 한 번의 회귀를 거친 것 외엔, 지극히 평범하다.

무공 면에서는 오히려 둔재이다.

평범한 내가, 하늘의 축복을 받은 재능의 옆에서, 그가 하늘을 넘어서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

그래.

하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못한 것이.

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차지만 춥지만은 않은 겨울.

나는 침상에 누워, 50년이나 지새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온 질긴 삶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그것이, 나의 두 번째 회귀(回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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