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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허(不許)(3)
나는 손바닥만한 종이배의 형태로 만들어진 비행법기에 법력을 불어넣었다.
부우웅!
법력이 들어가자, 종이배 형태의 비행법기는 크기가 불어나며 색상이 생겨나고, 하나의 나무배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
"가 보자."
나는 나무배 위로 뛰어올라 법력을 불어넣으며 수결을 맺었고, 동시에 나무배에서 주술문이 떠오르며, 허공을 빠르게 박찼다.
* * *
사흘 뒤.
나는 비행법기를 사용해 벽라국과 연국의 국경에 도착했다.
'연기기 수준의 비행법기는 일반적인 배 정도의 빠르기로군...'
아무래도 비행기 정도 되는 속도를 가지려면 축기기급의 비행법기거나, 혹은 결단기 수도자의 자체적인 비둔술(飛遁術) 정도는 되어야 하는 듯 했다.
비행법기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풍광을 즐긴 후.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기 있군."
번쩍!
내가 상대를 확인하자마자, 새하얀 강기가 번뜩이며 내게 쇄도한다.
나는 손을 휘둘러 강기를 뿜어냈다.
서로의 강기가 마치 뱀처럼 허공에서 유영하며 몇 합을 부딪혔고, 얼마 후.
내게 쏘아져온 강기가 그대로 상쇄됐다.
펄쩍!
난 허공을 박차고 뛰어내리며, 천상제를 사용하여 느릿하게 떨어져 내렸다.
"오랜만입니다."
"그래, 지난 번 봤을 때보다 조금 더 어검(馭劍)이 늘었구나."
"어검 연습은 한시도 놓은 적이 없으니까요."
이기어검이란, 단순히 칼이 허공을 움직이는 게 아니다.
검(劍)에 대한 장악력을 검신합일 이상으로 높여가고 또 높여나가.
결국엔 검에 대한 모든 것을 완전히 장악한 경지.
검의 소리와, 검의 재질에서부터 시작해 자기 자신의 무공 그 자체에서 뿜어지는 기세, 검기, 검강부터 모든 것을 완전히 의식으로 장악한 경지!
그것이, 이기어검이다.
그러므로.
이기어검을 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오기조원의 무인은 검뿐이 아닌 검강(劍罡) 역시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궤도를 바꾸며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내 손에서 떨어진 검을 조작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원거리에서 내 의식을 베어내어 원거리에 있는 검에 입력하는 것이기에.
오기조원의 경지에서 고저를 판단하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럽게 원거리에 있는 검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느냐로 갈린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군. 더 정진하거라."
"예, 그래야죠."
난 고개를 끄덕이며 아직 하늘에 떠 있는 비행법기를 거둬들였다.
"김 형은... 이번에 수도법술을 익히기 시작했다더니, 진짜로군요."
나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영기의 압력과, 그의 의식의 크기를 보며 물었다.
그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뭐... 아무래도 수도법술이 실생활에서 편리한 게 많다보니... 비행법기 같은 것도 그렇고. 물론 그래봤자 연기기 2성이다. 그 이상으론 올라갈 생각도 없고, 어디까지나 무공을 보조하는 용도로 쓸 생각이고..
또 이런 잡기에 의지하는 것보다야 내 자신의 무를 갈고닦는 게 내겐 더 쓸모있을 터다."
"그렇군요..."
무공재능이야 고금제일이었으나, 아무래도 수도공법에 대한 자질은 나와 비슷했고.
그마저도 나처럼 좋은 스승도 없으며 본인 자신도 수도공법보다는 무공에 열중하느라 아직까지 연기기 2성인 듯싶었다.
'거기다 최근에 익히기 시작한 듯 하니... 연기기 2성이면 오히려 나보다는 자질이 눈꼽만큼 좋은가보군.'
김영훈은 칠십이지살진언을 익힐 때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는 둥 잡담을 하다가, 나에게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그나저나, 정말로 괜찮겠느냐? 이런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여도?"
"상관 없습니다. 저 또한 청문세가에 공을 세울 수 있어 좋고, 또 김 형의 의견에는 동의하니까요."
"...그래. 고맙다. 그 놈들은... 한 놈이라도 빨리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이득이야."
막리세가가 진씨세가에게 연국 황조를 빼앗겼지만, 막리세가는 연국에 개입해서 정식으로 양민들을 갈아넣을 권한과 연국이라는 하부세력을 빼앗겼을 뿐.
막리세가 본가가 어미어마한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어쨌든 황조라는 것은 세가의 명예와 연결된 문제였기에 막리세가의 위신이 실추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여하튼 명예를 제외하면 뺏긴 것이 그리 크지 않은 막리세가는, 여전히 예전보다는 덜하나.
연국 곳곳에서 범인들에 대한 학살을 저지르며 그 더러운 연단을 하고 있다 하였다.
진씨세가는 황조를 찾은 이후부터는 막리세가의 일에 더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각 가문의 연기기 수도자들이야 서로 부딪혀서 죽는 것은, 후기지수가 아니라면 서로 별로 상관을 하지 않았으나.
가문의 주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축기기 장로들은 사로잡혀도 보상금과 함께 풀어주는 것이 원칙.
그런 이유로, 김영훈은 진씨세가가 황조를 찾은 이후로는 의(義)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진씨세가와 막리세가, 그리고 주변국의 수도가문들의 가율의 헛점을 파고들었다.
"...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연국 내에서 진가와 막리가의 축기기 수도자들은 서로 부딪혀서 사로잡히면 가문에서 배상금을 받고 풀어주지만.
타국(他國)의 영역에 침입한 수도자는 축기기라 하더라도 타국의 수도가문의 수도자에게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가,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며칠 후 이곳으로 막리세가 수도자를 벽라국의 국경으로 내몰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막리세가 수도자의 힘을 다 빼 놓으면, 그때 네가 나서서 막리가 수도자의 목을 쳐버리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더러운 놈을 처리할 수 있어 좋고. 너도 벽라국의 영역에 침입한 연국의 막리가 수도자를 죽이는 것이니 명분에 문제가 없지!"
"예, 분명 그렇지요."
김영훈은 신나게 계획을 설명했고, 나는 차분히 그의 계획을 들었다.
그에게 모든 계획을 들은 나는 그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김 형. 제가 이전에 월수월무록을 드렸지요."
"그렇지, 네가 준 그 절세의 무공은 나를 착실하게 등봉조극의 극한으로 데려가고 있다. 또 내가 월수월무록을 분석하며 써넣은 주석도 추가된 상황이고..."
"하면, 김 형의 성격에 월수월무록에 주석을 써붙인 비급을 지금도 가지고 있을 것 같으십니다만... 혹여 제게 그것을 읽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
"음, 뭐. 안될건 없지."
김영훈은 이번에 저물법기를 하나 장만한 듯, 허리춤에 있는 주먹만한 주머니에서 두꺼운 서책을 하나 꺼냈다.
월수월무록은 이전에 내가 그에게 주었을 때보다 확실히 두꺼워져 있었다.
"제목은 바뀌지 않았군요."
이 정도로 내용을 추가했다면, 그의 성격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제목을 바꾸려 했을 텐데.
그러나 김영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바꿀 수 없었다... 나는 이 무학서를 여태껏 그대로 따라가며, 그저 간간히 주석을 단 게 전부다. 몇몇 내용을 추가하긴 했지만, 전부 등봉조극 너머 다음 경지로 넘어가는 것에 대한 시행착오를 기록하였을 뿐이다.
주석 몇 줄과, 시행착오 몇 줄 옮겨적었을 뿐. 나는 이 무학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감히 무슨 염치로 이 무학의 제목을 마음대로 바꾼다는 게냐."
"... 두께를 보면 시행착오 몇 줄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책의 두께는 내가 처음 주었을 때보다 서너배는 두꺼워져 있었다.
단순히 주석이나, 시행착오 몇 줄이 아니다.
김영훈이 온 정신을 다해 시행착오를 겪고, 월수월무록을 다시금 뛰어넘을 가능성을 찾으려 온 힘을 다한 것이었다.
"뭐, 두께가 두꺼워졌다 해도 내가 실패한 거야 사실이지."
"그래도 이 정도면 이전의 월수월무록과는 차별될 것 같습니다만... 조금이라도 구분을 위해 제목을 바꿔 주시지요?"
"정 그렇다면..."
그는 자조섞인 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월수월무록이 아닌, 월도월무록(越道越武錄)이라고 바꾸지."
월수월무록이나 월도월무록이나, 수도자를 뛰어넘는다는 뜻은 사실 변함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저 한 글자를. 그것도 이전과 뜻의 차이도 거의 나지 않는 제목으로 바꿀 뿐이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본인이 더 바꾸기 싫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는가.
나는 서책을 전부 읽고 암기해 두었다.
수도자가 되며 칠십이지살진언이나, 기타 법결을 외우며 머리가 좋아진 것인지.
아니면 수도공법이라는 게 원래 익히면 의식이 커지며 머리가 좋아지는 효능이 있는 것인지.
최근 의식이 커지며 암기력이 매우 좋아진 게 느껴졌다.
이전 삶까지는 몇 번을 읽고 읽고 다시 읽어야 겨우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두꺼운 서책이, 한 번을 읽자 순식간에 전부 뇌리에 입력되는 것이 느껴졌다.
"자, 그럼 여기에서 며칠만 기다리고 있거라. 내 막리세가 수도자를 벽라국 국경으로 내몰아 올 테니..."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몸 상태를 가다듬었다.
김영훈은 내게 월도월무록을 더 볼 거면 보라고 하며 내게 건내주곤 자신의 비행법기를 꺼내어 연국으로 날아가 버렸다.
"...날씨가 좋군."
스승님께 배운 천문과 천기에 대한 지식으로 미루어보아, 김영훈이 말한 시일까진 하늘이 창명할 터였다.
"그럼, 김 형이 올 동안 천천히 정리해서 써 보자..."
나는 적당히 넓직한 바위 위로 올라가, 주변에 작은 기초 진법을 펼쳐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한 후.
저물탁에서 탁상과 한 장의 종이.
그리고 먹과 벼루, 붓을 꺼내들었다.
나는 스승님에게 남길, 내 유서(遺書)를 쓰기 시작했다.
분명 김영훈이 축기기 수도자의 힘을 다 빼 놓을 것이라지만.
그들이 축기기라는 자리를 노름으로 딴 것은 아닐 터다.
하나하나가 인외의 존재였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괴수들.
힘을 다 빼 놓더라도 내 목숨은 위험할 터.
하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죽으러 온 것이니까.
제자가 평생을 노력하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그저 하늘에 거부당한채로.
그렇게 수명이 다해 죽는다.
스승으로서 얼마나 괴로울지, 얼마나 무력해질지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지난 삶에서 내 제자들에게 어떠한 제대로 된 길도 제시해주지 못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원망스럽고, 무력했었는가.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나 자신이 얼마나 혐오스러웠는가.
하지만, 제자가 멍청하게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상대와 싸우다가 전사(戰死)한다면,
상대가 원망스럽고, 슬플지언정.
스승님은 자기혐오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늘이 정해준 운명으로 죽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곧 죽을 목숨.
나 자신이 대적할 수 없는 무리한 상대와 싸우다가 멍청하게 그리 죽을 것이다.
그리 정했다.
스륵, 스르륵...
나는 천천히 유서를 써내려갔다.
유서라곤 했지만, 나는 내가 죽으러 간다는 것을 스승님께 들키면 안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벽라국 국경을 순찰하며, 스승님의 안부를 묻는 그런 형식으로 마지막 말을 전할 의도였다.
몇 번을 내 유서를 쓰고, 다시 지우기를 반복했을까.
난 마침내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유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이건... 언제쯤 보내는 것이 좋으려나."
전송부(傳送符)라는 부적을 사용하면 용적과 질량, 그리고 가진 영력이 크지 않은 작은 물건 한두개쯤은 지정한 상대에게 전송하는 것이 가능했다.
전송부의 속도는 대략 비행법기와 비슷하여, 지금 스승님께 전송부를 보낸다면 사흘 후에야 도착할 터였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보내는 것이 가장 적당하겠군.'
지금 보낸다면 미리 편지를 받아본 스승님은 천기를 계산해내어 아예 국경 근처에서 내가 의식을 치룰 수 있는 제의를 마련할 것이다.
전투를 시작하고 며칠 후면 내 수명이 다할테니, 전투 시작 후 사흘 후에 스승님께 서신이 도달한다면, 스승의 앞에서 제자의 죽음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나는 서한을 잘 접어, 전송부를 붙여 언제든 법력만 불어넣으면 스승님께 전달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김영훈이 약속한 일자가 되었다.
쿠릉, 쿠르릉...
저 멀리서 음기(陰氣)를 잔뜩 머금은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천기현상보다는 훨씬 그 규모가 작았고, 또한 인위적이었다.
'온다...!'
막리세가의 축기기 수도자가, 구름을 끌고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번쩍, 번쩍!
그리고 그 뒤로, 빛살이 터져나가며 누군가가 축기기 장로를 쫓아오고 있었다.
김영훈이었다.
'이제 시작이군.'
이번 삶의 마지막.
한 번 신나게 놀아볼 시간이다.
우우웅!
나는 전송부를 붙인 서신에 법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부적이 푸른 빛을 발하며, 푸른 매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푸른 매 형태의 전송부는 내 서신을 움켜잡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아 청문세가 방향으로 날아갔다.
난 월수궁무록을 이용해 내게 닿는 인식을 베어 존재감을 지우고.
은식술로 의식을 전부 숨겼으며, 아예 지월입도결에 수록된 토둔술(土遁術)을 펼쳐 땅 밑으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쿠릉, 쿠르릉!
쏴아아아!
먹장구름이 하늘을 덮으며 주변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땅 속에 숨어서 먹장구름의 중심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축기기 수도자는 어쩐지 익숙한 얼굴이었다.
'저 자는...'
신마전을 세웠던 당시의 회차.
그때에 50인의 축기기 수도자를 이끌고 신마전을 짓뭉개러 왔던 축기기 끝자락의 수도자!
그 노년의 축기기 장로였다.
그의 얼굴을 보자, 새록새록 옛날이 생각났다.
신마전을 세우고, 수도자들이 내린 수배령에서 도망치며 수도자들을 하나하나 참살하다가.
결국에는 축기 극초기 수도자를 이기고 기뻐하던 김영훈과 신마전.
그리고, 그 다음날 50인의 축기기 수도자들이 신마전을 둘러싸고 해충(害蟲)을 박멸하듯이 짓이겨버렸던 신마전.
저 막리세가 장로가 김영훈을 벌레 치고는 가상하다는 듯이 칭찬하며 그를 꾀어내던 순간.
그때의 절망, 회한, 약자의 비애...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때의 공포스러웠던 축기기 수도자는 없었다
"크윽, 이 빌어먹을 진씨세가 놈들!"
일그러진 얼굴로, 먹장구름의 기운을 움직이는 깃발 형태의 법기(法器)를 애타게 휘두르며.
걸레처럼 찢어진 청포를 입고, 전신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한 명의 사냥감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 이 놈들!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진가와 막리가의 조약에 따라, 너희는 나를 죽일 수 없다! 정당한 포로 대우를 원한다! 당장 공격을 멈춰라!"
"흥, 진을 펼쳐라!"
"예, 장로님!"
진씨세가의 연기기 수도자들 몇몇이 김영훈의 뒤쪽에서 진법 깃발을 휘두르며, 주변으로 염(炎)의 기운이 가득한 결계를 펼쳤다.
막리세가의 장로가 결계에 갇혀버렸고, 김영훈이 비릿하게 웃으며 그에게 날아갔다.
"무고한 범인들의 마을을 한줌 혈수로 만들어 가져갈 때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으면서...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니 발악을 하는 거냐? 이 쓰레기 같은 놈... 죽어라!"
파아앗!
김영훈의 주변에서 몇 개의 강환이 번뜩이며 막리세가의 장로에게 날아간다.
"억지 부리지 마라! 그깟 벌레들 몇 좀 재료로 채집했다고, 축기기 장로인 나를 죽이려 하다니! 크게 실수하는 것이다! 나, 나를 죽이면 너라고 무사할 것 같으냐!"
콰아아아!
막리세가의 장로가 깃발을 휘두르자, 하늘의 먹장구름이 움직였다.
먹장구름은 허공에서 뭉치며 한 마리의 운룡(雲龍)을 형성하며 김영훈에게 달려들었다.
'막리황신보다도 강하다..!'
나는 축기기 수도자의 수도법술을 보며 그의 실력을 짐작했다.
얼마간 강환과 축기기 수도자의 법술이 오간다.
그리고...
촤아악!
"크윽..!"
막리세가 장로가 쏘아낸 한 줄기 음풍(陰風)에, 김영훈의 팔죽지와 허리충이 그대로 뜯겨나갔다.
동시에 김영훈이 쏘아낸 강환에 축기기 장로가 펼친 방어법술과 호신강기가 깨어지며 김영훈과 비슷하게 허리춤이 한 움큼 뜯겨나간다.
'저 상처는... 위험하다!'
축기기 수도자들이야 인간이 아니니, 저런 상처를 입어도 문제가 없겠지만.
김영훈은 연기기 2성 초기 수준의, 평범한 인간의 육신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지난 삶에서 김영훈이 막리황신에게 저 정도의 부상을 입고 기절해버린 것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그때였다.
"장로님을 지원해라!"
"서둘러라!"
결계를 펼친 진씨세가의 연기기 수도자들이, 각기 저물대에서 한 움큼의 부적을 꺼냈다.
번쩍, 번쩍!
수십, 아니 수백장은 되어보이는 치유부적이 김영훈의 상처로 날아가 덕지덕지 붙었고, 진씨세가의 몇몇 수도자들이 결계 너머에서 사용하는 치유법술이 그의 상처를 봉합한다.
'아, 그렇군. 아예 진씨세가에서 치유에 능한 연기기 수도자들을 지원병으로 데리고 온 건가.'
김영훈의 상세가 다시 완전히 나아버렸고, 그는 다시금 멀쩡해진 얼굴로 강환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이익, 이이이익! 이 빌어먹을 놈들!"
막리세가 장로는 그를 보며 얼굴이 시뻘개진 채 계속해서 법술을 쏘아내, 김영훈이 그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할 뿐이었다.
'막리황신보다 훨씬 강한 수도자다.'
완벽한 지원을 받는 김영훈과의 싸움에서 저 정도까지 버티다니.
"이 멍청한 진가 놈들! 네놈들이 들인 저 외인 놈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느냐! 저놈은 막리가와 진가의 가주들께서 직접 하신 조약을 어기려 하는 거다!
네, 네놈들이 나를 죽이면 네, 네놈들이라고 무사할 것 같으냐! 네 이놈들..."
막리세가의 장로는 피를 한 움큼 토하며 진씨세가의 연기기 수도자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연기기 수도자들은 사전에 김영훈에게 언질을 들었는지 조소를 지을 뿐이었다.
"하, 시끄럽소!"
"우리는 가율에 의해 처벌받지 않을 것이고, 되려 막리세가의 전력을 줄인 전공을 인정받아 상을 받겠지."
"미친 것들... 안 그래도 답천사막에서 일어난 대학살 때문에 가주님과 원로들께서 심기가 곤두선 이 때에 축기기 장로를 살해하는 미친 짓을 저질러! 네놈들이라고 무사할 것..."
그리고, 그때까지 숨을 죽이고 은신해있던 내가.
막리세가 장로의 빈틈을 찾아냈다.
'간다.'
의식을 집중한다.
기(氣)를 정련한다.
빈틈이 있지만, 크지는 않다.
그러므로, 저 빈틈을 더욱 더 키워야 한다!
월수궁무록, 극의(極意)
'노중로무궁!'
파아아앗!
일점으로 집중된 나의 의식이,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막리세가 장로를 향해 날아간다.
동시에, 그가 머리를 움켜잡고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
"흠...!"
그 모습을 본 김영훈 역시 의식을 집중하며 그에게 노중로무궁의 일식을 사용한다!
두 사람의 고수가 펼치는 노중로무궁의 절초!
머리가 난도질당한 것 같은 느낌일 터.
'놓치지 않는다!'
단악검법
심산(深山)!
지금껏 끌어모은 기(氣)를 일거에 방출하며, 대지를 뚫고 그대로 하늘로 쇄도하였다.
삽시간에 내 신형이 막리가 장로의 품으로 파고든다.
'끝낸다!'
번쩍!
미리 뽑아두었던 검에 찬란한 검강이 맺혔다.
내 검강이 그의 품에서 막리세가 장로를 향해 휘둘러졌다.
평소라면 축기기 수도자의 정순지력으로 은연중에 호신강기를 뿜고 있었겠으나.
김영훈을 상대하며 법력이 잔뜩 닳아있는 막리가 장로의 호신강기는, 연기기 수도자의 방어법술만 못한다!
콰앙!
내 검강이 그의 얇아진 호신강기를 파고들며, 그의 목을 베어간다.
'자른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파아아앗!
그의 품에서 푸른 빛이 터져나왔다.
'구명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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