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수선전-116화 (116/185)

네가 밟아온 것 (4)

“이건…?”

서란은 내게서 파공주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서란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 이걸…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그건….”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해룡왕께서 서 도우를 하라 하시며, 그 법보를 전달하라고 하셨소. 그리고, 나는 탐욕을 부려 그 법보를 내가 가지고 있었소만….”

자폭용 법보를 굳이 서란에게 전달하진 않았다.

하지만 정작 파공주는 법력을 불어넣어도 쓸모가 없었고, 뭔가 특수한 조건이 채워져야 발동하는 성질의 법보인 듯했다.

“일단 미안하오. 하지만….”

“잠시….”

그리고, 서란은 그 법보를 받아 든 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서란은 파공주를 소매에 넣고, 섭명함의 조종실로 날아가 송진에게 갔다.

그는 송진과 뭔가 대화를 나누는 듯했고, 조종실 쪽에서 복잡미묘한 의념들이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얼마 후, 섭명함은 이공간에 있는 봉명성에 도착하였다.

그때까지도 서란은 송진과 파공주를 들고서 뭔가 대화를 계속 나누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들을 쳐다보다가, 봉명성에서 돌아와 다시 얘기를 나누기로 결정한 후, 청문세가의 결단기 수사들과 봉명성으로 진입하였다.

* * *

“우선 진법을 설치하기 전에, 다들 기다려 주시지요.”

나는 청문중진과 청문세가 원로원에게 언질을 준 후, 봉명성의 축으로 가 북향화가 했던 것과 같이, 그녀가 건드렸던 부분을 그녀가 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방법으로 건드렸다.

그리고.

쿠구구구구!

봉명성 전체에 압력이 생겨나며, 나와 청문세가 원로원들의 법력이 한 단계 봉인되었다.

쿠그그극!

‘수행이….’

한 단계 떨어졌다.

나는 겉보기에는 연기기.

다른 결단기 수도자들은 축기기로 수행이 떨어진 것이 느껴졌다.

“자, 그럼 보여 주시오. 정말 서 수사가 이 상태에서도 결단경의 전력을 낼 수 있단 말이오?”

한 청문세가의 원로가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형검을 바르쥐고, 근처에 있는 봉명성 내부의 구조물 하나를 향해 휘둘렀다.

지난번에 북향화와 왔을 때도 반파되어 있던 그 구조물은, 내가 무형검을 휘두르자 일격에 그대로 갈려 나가 가루가 되어 버렸다.

“이제 조금 믿으시겠소?”

내 말에, 청문세가의 원로원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후 봉명성의 진법이 해제되었고,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약 일각 정도가 이 진법이 유지되는 시간이오. 아마 봉명성의 회로에 손을 대서 어떻게 유지 시간을 늘려도 반 시진 정도가 최대겠지.”

청문세가의 원로들은 각자 내 말을 들으며 뭔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어쨌든 내 능력이 확인은 되었으리라 생각되외다.”

원로원과 청문중진은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추후에 원립을 잡을 때, 수사의 능력을 바탕으로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겠소.”

“험험, 그건 그렇고….”

원로 중 한 명이, 청문중진에게 말했다.

청문중진은 그의 시선을 받으며 내게 말했다.

“하면, 혹시 서 수사가 이제 진법을 펼쳐 주실 수 있으시겠소?”

“그러겠소.”

어차피 다음 생에도 와서 펼쳐야 하는 진법.

미리 펼쳐 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나는 그들에게서 북향화가 만든 진법 법기를 받아, 봉명성 1층 곳곳에 설치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봉명성 중앙 수목원에 있는, 장생과가 열리려 하는 수원목에 다가갔다.

나는 얼마간 수원목에 피어난 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정작 저 과실을 먹어야 할 자는 사라졌는데,

과실을 수확할 방법은 이제야 알아냈다.

‘살아갈 이유가 없어진 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퀭한 눈빛으로 수원목을 보며, 무미건조하게 진법을 발동시켰다.

쿠구구구구!

봉명성 전역의 영력이, 이 부근으로 몰려왔다.

답천사막, 천색성 인근의 부실한 영맥으로 펼쳤던 진법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거대한 영기의 파도가 이곳으로 몰려와, 주변을 메운다.

청문중진과 원로원은 그 장엄한 광경에, 모두 입을 벌리고 그를 구경했으나, 나는 퀭한 눈으로 멍하게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쿠구구구!

“…이제 법진이 발동했소. 앞으로 5년 후, 진법이 이 인근에 축적된 목 속성의 영력을 장생과에 쏟아부어, 장생과들을 급속히 성장시킬 것이오.”

“그렇구려. 고맙소.”

나는 청문세가 원로원의 감사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멍하니 서 있었다.

우리는 잠시 진법을 조금 조정한 후, 봉명성에서 나왔다.

“우선 감사드리오, 서 수사. 5년 후 다시 와서 장생과를 수확하도록 하지.”

나와 청문세가 원로원, 그리고 청문중진은 5년 후를 기약한 후 헤어졌다.

그리고, 청문세가 사람들이 사라지자, 송진과 서란이 내게 다가왔다.

쿠우우우!

송진의 의지에 의해 섭명함이 다시 공간을 넘어 머나먼 대해 위에 안착하였다.

“무슨 일이오?”

복잡한 의념을 흘리던 서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 법보… 정녕, 용왕께서 주셨단 말씀입니까?”

“…그렇소.”

“정녕, 제게 전달하라고 하셨단 말이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란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말하였다.

“혹, 이 섭명함 앞에서 귀도맹세로 그 진위 여부를 증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는 얼굴이 새하얗게 물든 채로 말했다.

섭명함에 대고 하는 맹세는, 그 맹세나 발언이 어겨졌을 때 사후에 섭명함에 혼이 빨려든다고 하였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섭명함에 대고 맹세하지. 서휼이 파공주를 서 도우에게 전달하라고 부탁한 것이 사실이오.”

“…하, 하하….”

서란은 아연한 표정으로 웃으며 머리를 짚었다.

잠시 그런 그를 쳐다보던 송진은 씁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 용왕에게 그런 면모가 있을 줄은 몰랐군…. 그런 비정한 자였을 줄이야.]

송진은 파공주를 꺼내며 말했다.

[서란과 내가 조사해 본 결과, 이 법보는 해룡족의 진원진혈을 가진 이가 ‘지정한’ 사람만이 발동시킬 수 있다. 진원진혈을 가진 이가 아니라면 법보에 간섭도 불가능하며, 진원진혈을 지닌 해룡족이 지정한 자가 아니라면 발동이 불가능한 거지. 그리고….]

그는 파공주를 보며 말했다.

[이 파공주에 지정된 자는, 서란 본인이었다.]

“…스승님, 불초 제자….”

[들어가 쉬고 있어라.]

“감사, 합니다.”

서란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잠시 혼자 있겠다고 하고는 섭명함 안쪽으로 들어갔다.

송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놈은 이 법보가 무슨 법보인지 아느냐?]

“알고 있소.”

나는 사실대로 말했고, 그 말에 송진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두덩이에서 귀화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자폭용 법보라는 걸 알면서… 서휼의 명을 받았단 말이냐?]

“그래서, 지금껏 전달하지 아니했잖소. 그리고 그 법보는 내가 사용할 용도로 작동법을 알려 달라고 한 것이외다.”

[….]

“그렇게 바로 알아차릴 줄은 몰랐지만.”

지지난 생의 서란은 법보를 직접 발동시킬 때가 되어서야, 파공주의 목적을 알아차렸다.

설마 이렇게 보자마자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송진이 훌륭하게 가르치고 있나 보군.’

나는 송진을 쳐다보았다.

나와 잠시 눈을 마주치던 그는 옅게 한숨을 내뱉었다.

[…고맙다. 제자에게 그 법보를 전달치 않아 주어서. 그 법보가 발동되었다면, 섭명함이 무너지고, 나는 여기서 제자를 가르쳐 청색귀골곡의 명맥을 이을 시도도 하지 못했겠지.]

송진은 씁쓸한 말투로 파공주를 바라보았다.

“별 것 아니오. 그나저나… 내가 지난번에 당신에게 받았던 소원권이 하나 남아 있었지.”

[아, 그랬지. 분명.]

나는 송진에게 말했다.

“마지막 소원권을 쓰겠소. 부디….”

뚝, 뚝….

떠올리는 것만으로, 주변에서 저주문들이 치솟는다.

“나를… 도와주시오.”

흠칫!

송진은 움찔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복수를 할 수 있게… 도움을, 바라외다.”

[….]

그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그에 대해서는… 서란에게 부탁해라. 아마, 내 제자가 네게 더 도움을 줄 수 있을 게다.]

“그건 무슨 말이오?”

송진이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제자를 심해 속으로 보내어, 그곳의 음기를 모아 오라고 시켰지. 하지만, 사실은 한 가지를 더 시킨 바 있다.]

“음?”

그가 섭명함 위쪽에서, 흑풍해의 남쪽을 가리켰다.

[저 먼 바다 끝, 남쪽에 있는 [세계의 끝] 인근에, 해룡족의 본거지가 있지. 해룡왕이 거했던 해룡궁(海龍宮). 그리고, 서휼은 어쩐 일인지 서란을 이곳에 남겨두고 가면서, 녀석이 해룡궁에서 수련하지 못하게 하고 해룡궁을 거대한 봉인(封印)으로 덮어 버렸다고 하더군.]

나는 잠자코 송진의 설명을 들었다.

[서란에게 듣기로, 섭명함을 자폭시키고, 섭명함이 예전 집어삼켰던 해룡족의 혼을 해방하면, 그 요혼이 서란에게 봉인을 푸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라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 제자가 된 이상, 섭명함을 박살 내서 그런 짓은 절대 허락 못 하고, 서란에게 원영기가 되어서 섭명함에 직접 간섭하여 요혼을 찾아내라고 했지. 원영기 수도자는 섭명함이 먹어치운 혼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러려면, 해룡족의 영약이 잔뜩 남아 있을 해룡궁에 들어가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 제자에게 부식 계열의 신통을 가르쳐 준 후, 서휼의 봉인을 가서 뚫어 보라고 하였다.]

송진은 큭큭 웃으며 말했다.

[해룡족의 혼을 구해 내고 해룡궁에 들어가느냐, 해룡궁에 들어가 실력을 키우고 해룡족의 혼을 구해 내느냐. 그 순서의 차이가 생겼을 뿐.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서란도 그리하겠다 하였고…. 그리고 내가 가르쳐 준 신통에, 귀골곡의 고명한 진법도 가르쳐 주어서 녀석이 해룡궁의 봉인을 뚫게 했다. 그리고 이제 봉인의 귀퉁이가 거의 다 뚫렸다는 모양이고, 강력한 한 방으로 봉인을 뚫기만 하면 된다고 하더군.]

“그래서, 날더러 서 도우를 도와 봉인을 뚫어 달란 거요?”

[그래, 네가 익힌 그 기괴한 공법은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자랑하니, 분명 봉인을 뚫을 수 있겠지. 제자를 위해서 지금껏 강력한 한 방을 위해 귀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만, 네가 도와주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겠지.]

아무래도 서란을 위해 내 힘을 이용하려는 모양.

하지만 상관이야 없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서 도우를 도와 봉인을 뚫으면, 원립을 상대할 방도가 생긴다는 건가?”

원립.

그 녀석을 최대한 상대할 방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송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휼의 능력이 크다고는 해도, 섭명함도 없는 녀석이 해룡족의 장구한 역사 동안 쌓인 그 많은 보물들을 전부 가지고 비승했을 리는 없지. 분명 상당히 많은 보물이 해룡궁의 안쪽에 남아있을 터다. 그리고, 해룡족의 보물은 대다수가 원립 놈의 양대 주력 공법인 혈마진해광에게 상성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보물이다. 놈에게 상극인 기물들이 잔뜩 쌓여 있을 확률이 높다는 말이지…!]

그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서 도우를… 돕도록 하겠소.”

아무래도 좋다.

그놈에게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

그 말에 송진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섭명함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안색이 어두운 서란이 걸어 나왔다.

“…도와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선배님.”

“그렇네.”

“조금 충격을 받았지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란은 송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 남쪽 끝으로 가 주시기 바랍니다.”

[하하, 알겠다.]

그렇게 우리는, 해룡족의 본거지였다는 해룡궁.

남쪽 [세계의 끝]이 있다는 곳을 향해 섭명함을 조종하여 날아갔다.

* * *

쨍―

[흐음, 역시 섭명함과는 잘 안 맞는 해역이야.]

남쪽 바다는 잔잔했고, 하늘이 맑았으며, 태양이 거세게 내리쬐고 있었다.

천지영기가 안정적이었으며, 폭풍 같은 것도 일어날 일이 없어 보였다.

수시로 구름이 끼는 흑풍해와 비교하면 남쪽 바다는 굉장히 평화로운 듯했다.

‘무엇보다….’

천지간에 떠도는 영기(靈氣) 자체가 굉장히 깨끗하고 따스했다.

일말의 성스러움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제자야, 그럼 안내하거라.]

“예, 스승님. 해룡궁은 이 심해 밑바닥에 있습니다.”

서란은 바다 아래쪽을 가리켰다.

아무리 날씨가 맑았다지만, 푸르른 대해 속은 시꺼멨고, 깊이도 굉장히 깊어 보였다.

하지만 송진은 상관하지 않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조타륜을 잡을 뿐이었다.

[좋아, 그럼 다들 알아서 숨을 참거라.]

쿠구구구!

곧이어, 섭명함이 귀기에 휩싸이기 시작하더니 바다 아래로 잠수를 하기 시작했다.

‘별 기능이 다 있군.’

촤아아아!

나는 물을 막아 내는 섭명함의 귀기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였다.

섭명함의 귀기는 수면 위쪽에서는 햇빛에 닿아 조금씩 소모되는 듯했으나, 점차 심해로 내려가자 심해의 음기를 흡수하며 알아서 힘을 보충하는 듯했다.

‘이게 다 망가진 폐함의 기능이라….’

나는 잠시 섭명함을 둘러보다가 관심을 꺼 버렸다.

북향화, 김영훈, 청문령, 북중호와 천색성의 이웃들.

그들이 죽은 이후론, 왠지 어떤 일에도 딱히 감흥이 없었다.

신기한 것을 보아도 잠시 흥미가 일고 말 뿐이었다.

쿠구구구구!

얼마간 심해로 내려가던 섭명함이, 마침내 심해의 바닥에 닿았다.

쿠구궁!

[도착했군. 너는 서란을 따라 해룡궁에 걸린 봉인을 뚫어 다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참고 서란과 함께 섭명함의 귀무 바깥을 나섰다.

촤아아악!

어마어마한 수압이 나를 내리눌렀지만, 혈관에 강기가 흐르는 시점에서 그건 별로 내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숨을 못 쉬는 것 역시 범인들에 비해 3, 4일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서란은 해룡 형태로 변화하였고, 앞서 심해 속을 헤엄쳤다.

‘수면 위는 굉장히 따스하고 기분 좋은 영기들이 많았건만….’

그 밑에 있는 심해는, 어쩐지….

‘말라붙어 있군.’

어둡고, 생명력이 없었다.

심해에도 생명체는 산다.

하지만, 어쩐지 이 근방에는 생명체가 한 마리도 살지 않았다.

의식 영역에는 미생물조차 잡히지 않았다.

마치 사해(死海)라도 되는 듯이.

얼마 후, 나는 서란을 쫓아가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어둠의 장벽.

시커먼 반구형의 뭔가가, 전방에 있는 심해 밑의 땅을 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의 장벽이 주변의 생기(生氣)를 끝없이 흡수하는 것이 보였다.

“이게 그 해룡궁의 봉인인가?”

요족어는 공기가 아닌 영기를 진동시켜 말하는 것이었기에, 능력만 되면 딱히 입을 열 필요가 없었다.

나는 숨을 참은 상태에서 서란을 보며 물었고, 서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따라오시지요. 저 구석에, 봉인의 흐름이 가장 약한 곳에 부식의 신통을 걸어 봉인을 약화시켜 놓았습니다.”

나는 서란을 따라 다시 얼마간 헤엄쳤고, 봉인의 한 귀퉁이.

그곳에 둘러싸인 시커먼 안개를 볼 수 있었다.

쿠구구구!

음기와 귀기가 진법에 의해 잔뜩 뭉쳐, 봉인의 한 구석을 향해 찐득하게 달라붙어 있다.

“흑색귀골곡의 귀곡부휴진(鬼哭腐䝗陣)이라는 진법입니다. 봉인이나 결계, 방어진법에 구멍을 내는 것으로 유명한 전쟁용 진법이라 하시더군요.”

송진이 가르쳐 주었다는 흑색귀골곡의 고명한 진법이라는 것 같았다.

나는 서란을 따라 귀곡부휴진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시커먼 안개로 휩싸여 있었고, 그 안개들이 진도를 그리며 봉인의 한 구석에 푸른 귀화를 태우고 있었다.

나 역시 진법에는 일가견이 있었기에, 귀곡부휴진이 봉인의 어느 부분을 약화시켰는지 알 수 있었다.

“저 가운데를 공격하면 되는 거요?”

“맞습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나는 담담하게 무형검을 잡고, 자세를 잡았다.

쿠구구구구!

그리고, 귀곡부휴진을 향해 무형검을 찔러 들어갔다.

쿠우우우우!

심해의 대지가 흔들렸다.

물속이라 거대한 폭음이 울리지는 않았으나, 주변으로 거대한 파장이 퍼져 나가는 것이 육안으로 보였다.

하지만 서휼이 쳐 놓았다는 진법은 아직도 꿈쩍하지 않았다.

‘이걸론 부족하단 건가.’

나는 다시금 무형검을 들었다.

단악검법, 오의, 단악!

쿠오오오!

다시금 심해 밑에 먼지구름이 일어난다.

‘약화된 게 이정도라니….’

이번에는 진동은 있었지만, 여전히 봉인은 두터웠다.

나는 단악을 펼친 후, 바로 월악의 자세로 돌아갔다.

산외산부진을 유지한다.

나는 산외산부진을 유지한 채로, 몇 번이고 서휼의 봉인에 단악을 때려 넣었다.

무형검으로 펼친 단악의 절초가, 약 16번 정도 연속해서 봉인에 부딪혔을 때였다.

쩍, 쩌저적!

봉인이, 갈라진다.

그리고.

촤아아아아!

그곳으로 구멍이 뚫리며 주변의 물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푸흡!”

나는 물살과 함께 안쪽으로 들어갔다.

“푸하!”

촤아아아아!

안쪽 공간은 공기가 가득찬 것인지 숨을 쉴 수 있었다.

얼마 후, 서란이 인간형으로 변해 안쪽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와 보는군요. 아주 어릴 때 말고는 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는데….”

서란은 주변을 둘러보며 향수에 젖은 듯했다.

‘어마어마한 생기(生氣)로군.’

나는 주변에 가득 찬 거대한 영력을 보며 주변의 영기를 흡입했다.

봉인 바깥보다 안쪽에 있는 영력이 기이할 정도로 높았다.

아무래도 봉인은 단순히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 것뿐이 아닌, 주위의 영기와 생기를 흡수해 안쪽으로 밀집시키는 역할도 했던 듯했다.

그때였다.

‘음?’

나는 눈 앞에 펼쳐진 해룡궁을 보았다.

마치 인간 세상의 황궁과도 같이, 고풍스러운 전각과 고궁(古宮)들이 늘어서 있다.

비취빛의 기와가 얹어진, 언뜻 신령스럽게 보이는 전각들은 주르륵 늘어서 장대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늘어서 있는 전각들을 보며,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익숙한데…?’

쿠드득!

나는 토벽(土壁)의 법술을 펼쳐 뒤쪽 균열에서 쏟아지는 물을 막았다.

그런 후 허공을 박차 하늘로 날아올랐다.

“선배님?”

서란이 나를 보며 의아한 듯 물어 왔지만, 나는 허공으로 날아올라, 고풍스러운 이 해룡궁의 모습을 한 눈에 담았다.

‘해룡궁의, 이 구조는…?’

나는, 해룡궁과 같은 모습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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