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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만찬의 시작 (7/135)


7화. 만찬의 시작
202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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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샤를 향한 카나리아의 악의에는 이유가 있었다.

카나리아는 자신이 레니샤의 발을 닦던 하녀 출신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경멸했다.

스스로를 향한 혐오가 레니샤에게 번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더욱 카나리아는 고상한 척 굴었고 그녀를 돌봐주는 하녀들을 멸시했으며, 지금도 카나리아를 무시하는 레니샤를 증오하고 있었다.

황제에게 드러낼 수 없는 열등감이었다.

황제도 레니샤에게 일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마당에.

만약, 카나리아가 이것을 드러냈다가는 비참하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카나리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날카롭게 날이 선 눈동자로 카나리아가 짓씹듯이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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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하더라도 버림받은 황후 폐하보다는 제 처지가 낫지 않겠어요? 황제 폐하께서 어떤 생각을 하시고 계신지는 아세요?”

카나리아가 사뿐사뿐 걸어가 레니샤의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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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제가 황후 폐하께만 알려드리는 특급 정보랍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황후 폐하를 노예 카시우스에게 보낼 생각을 하시고 계시더군요.”

카나리아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카나리아는 이 황성에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녀의 절대적인 기준은 이곳에서 누리는 것들에 있었다.

분명 황후도 그럴 테니 지금 이 말에 모욕을 느끼리라.

게다가 노예 출신이라니! 카나리아보다도 못한 신분 아닌가.

어젯밤 황제를 구슬려 이것을 알아냈을 땐 치솟는 희열을 참을 길이 없었다.

드디어 레니샤가 카나리아의 아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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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것참……. 안타까운 일이군.”

레니샤가 여상하게 대답했다.

카나리아가 이를 악물었다.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태연한 대답에 속이 긁힌 것이다.

카나리아가 표독스럽게 레니샤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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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함께 지낸 정이 있으니 속내를 드러내 보십시오. 이 카나리아가 친절하게 위로해드리겠습니다. 속이 얼마나 상하시겠어요? 황성에서 쫓겨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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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괜찮네. 자네가 걱정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야.”

뭐지.

레니샤가 멍청해지기라도 한 건가?

카나리아가 입술을 질근질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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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입니다.”

나직한 목소리로 카나리아가 뇌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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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신분보다 미천한 노예 말입니다, 황후 폐하. 그런 자에게 가시는 거라니까요? 게다가 척박한 힐로샤인이라죠? 과거 로테라가 가진 땅 중에서 가장 척박한 곳으로 가게 되셨습니다. 그뿐인 줄 아십니까? 그 노예에게는 로테라의 성이 내려질 거랍니다. 로테라요!”

거기서는 레니샤도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와 같아서 카나리아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렉서스는 제 손으로 로테라 가문의 문을 닫았다.

그런데 카시우스에게 로테라의 성을 내린다고?

충분히 악의적인 짓거리였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보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기를 쓰고 로테라를 다시 복권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로테라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알고 있을 렉서스인데, 무슨 꿍꿍이속인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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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정말로 로테라를 무시하고 있는 건가? 나를 모욕하기 위해서 이런 악수를 둔다고?’

오래된 귀족들을 움직일 수 있는 이름이며, 로테라의 이름 아래에서 초르파 평야를 위해 검을 들었던 기사들을 응집할 수 있게 하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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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면……. 한 번에 쓸어내려는 것일 수도 있지.’

오히려 레니샤가 그대로 움직이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모으고 로테라를 부흥시키고.

그리고 다시 한번 반역을 덮어씌우려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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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는 안 돼.’

렉서스의 뜻대로 두 번이나 놀아나줄 로테라가 아니다.

레니샤가 매끄럽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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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아. 자네는 여전히 걱정이 많군. 이 나를 모시던 제시카 시절에도 그랬듯이 말이야.”

카나리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제시카는 그녀가 하녀 일을 할 때 사용하던 이름이었다.

황제의 침실에 들기 무섭게 렉서스를 졸랐다.

새로운 이름을 내려달라고 말이다.

이제부터 황제의 사람으로 살 것이니 그에 걸맞은 예쁜 이름이 필요하다고.

렉서스는 흥에 겨워 이름을 하나 내려주었다.

그게 바로 카나리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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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을……. 입에 담지 마세요, 황후 폐하.”

오히려 분노한 쪽은 카나리아였다.

덤덤한 레니샤 앞에서 카나리아가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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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그 이름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카나리아는 오랫동안 황실에서 살았던 새의 이름이지. 날개깃을 잘리고 단 한 번도 새장 밖을 나가지 못했던 가여운 새 말이야. 그 이름이 정말로 좋은가?”

레니샤는 아무렇지도 않게 카나리아의 아픈 곳을 찔렀다.

카나리아가 붉은 입술을 짓씹었다.

그런 것쯤은 카나리아도 알고 있었다.

아양을 떨어서 얻어낸 이름이 고작 카나리아였을 땐 그녀도 분기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정한 척해도 속에는 괴물을 키우고 있는 황제가 내린 이름이다.

카나리아는 카나리아가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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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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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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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잊혔지. 정원사에게조차 말이야. 모이도, 물도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고 새는 노래를 멈췄네. 잊힌 채로 쓸쓸하게 죽어버린 거야.”

레니샤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카나리아가 모를 리 없었다.

카나리아도 그 새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 거라는 뜻이다.

황제가 바랄 때나 노래하다가 결국 버려질 정부.

고상한 방법으로 레니샤는 다시 한번 카나리아의 치부를 들춘 것이다.

카나리아의 시야가 분노로 빨갛게 물들었다.

카나리아가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레니샤가 린데이를 향해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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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 차를 마실 생각인데. 자네는 더 있다 갈 생각인가?”

카나리아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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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폐하. 저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저 담소를 나누고 싶어서 온 것뿐인걸요. 제가 폐하를 공경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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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자네의 마음을 알고 있어.”

카나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레니샤가 그 뒷모습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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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되지도 않는 걸 매번 덤비는 걸까요?”

린데이 시녀장이 불만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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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도전하는 거야. 언젠가는 나를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가여운 인생이지.”

레니샤가 고개를 돌렸다.

카시우스와 힐로샤인에, 로테라의 이름으로 가는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다.

일견 답답했던 마음에 카나리아가 답을 내려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힐로샤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다.

레니샤를 짙은 눈빛으로 보던 불꽃같은 남자와.

희망도 없이 황성에서 흐느적거리며 지내던 것보단 훨씬 기대되는 일이었다.

***

모두의 욕망이 모이는 저녁 만찬의 날.

카시우스가 어색한 얼굴로 제 옷을 만지작거리며 만찬장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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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어울리시는군요. 앞으로는 자주 입게 되실 테니,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이제는 정말로 귀족 같으세요.’

고작 이런 옷 한 벌로 귀족 행세를 할 수 있다니.

마담 투리엘은 카시우스에게 옷차림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했다.

카시우스가 반드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소양들도 짧은 시간 안에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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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황후의 부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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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제가 부탁 받은 건 의상까지였지요. 하지만, 카시우스 경께서 그분께 피해를 끼치는 것만큼은 막고 싶거든요. 그분께서는 지금 자신의 상황만으로도 벅차실 테니.’

카시우스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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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라…….”

대체 이 작자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 대처하지.

테리언이 아무리 두 발로 뛰어다녀도 황성 안의 황제 속마음을 엿볼 수는 없었다.

테리언이 알아낸 사실은 몇 가지 없었다.

9년 전에 레니샤가 렉서스 황제와 결혼을 했다.

렉서스는 로테라의 힘으로 황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후, 로테라 가문은 황제에게 등 떠밀려 출전을 하게 된다.

그리고 5년 전, 황제는 레니샤의 하녀를 정부로 들인다.

수많은 여자들이 황제의 옆을 스쳐 지나갔지만 가장 긴 시간 황제의 곁에 머물고 있는 여자였다.

그 여자의 이름은 카나리아.

사람들 말로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천박하다나.

레니샤를 향한 카나리아의 악의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라고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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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그런 것도 남편이라고.”

카시우스가 중얼거리고는 만찬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황제의 초대를 받아서 온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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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앉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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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입니다.”

카시우스를 이곳으로 초대한 시종장이 그를 자리로 안내했다.

상석의 오른쪽으로 두 번째 자리였다.

카시우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황제가 카시우스를 이렇게 대우해줄 이유가 없는데.

그간의 박대를 만회하기라도 하겠다는 건지 다른 귀족들보다도 상석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고요함을 지키고 있었다.

곧 만찬장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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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카나리아가 늦었나요?”

애교 있게 말하며 카나리아가 눈을 찡긋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부각시키려는 듯이 제 이름을 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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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리는 여기겠죠?”

카나리아는 상석의 왼편에 앉았다.

카시우스가 알고 있기를 카나리아 또한 평민의 신분인데도 귀족들보다 윗줄에 앉아 있었다.

정말 기이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카나리아와 카시우스의 눈이 마주쳤다. 카나리아가 생긋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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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우스 경이라고 한다죠? 우리 제국을 구해준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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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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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카시우스 경. 우리 이름도 비슷하잖아요. 카나리아, 카시우스. 시작하는 글자가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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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릅니다.”

카시우스가 눈살을 미미하게 찌푸리고는 딱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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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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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아의 카는 C를 사용하고 제 이름의 카시우스는 K를 사용합니다. 발음이 같다고 해서 모두 같은 글자인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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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보통 카시우스의 이름에는…….”

카시우스가 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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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C를 사용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과거 카시우스라는 이름을 사용한 황제가 있었고 그 이후로는 그 이름에는 C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친하게 지낼 이유가 없어졌군요.”

카나리아의 얼굴이 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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