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집착남을 좋아한다, 이거지?
(4/79)
4화 집착남을 좋아한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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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집착남을 좋아한다, 이거지?
2022.12.14.
우아한 클래식과 어울리지 않는 거친 욕설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아기 천사 그림 벽지 위로 화병 하나가 부딪혀 떨어졌다.
“왜! 대체 아네트가 갑자기 날 피하는 거야?”
바닥에 나뒹구는 도자기 조각을 지르밟던 세르디스가 분을 토해냈다.
아네트와는 줄곧 분위기가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도 자신을 마주칠 때면 허겁지겁 삐져나온 머리를 정리한다든가, 옷매무시를 가다듬는 걸 보고 제게 관심이 있다고 확신했는데.
“결혼한다는 것도 거짓이었어. 나한테 거짓말을 할 정도로 내가 싫은 거야?”
테라스에서 쓰러지고 나선 선을 긋듯 차갑게 굴었다. 결혼 이야기에 놀라 르앙베리아 백작에게 물어보니 그것 또한 없는 일이라고 하질 않나.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아네트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황자 전하…….”
흉흉한 기세에 시종이 말꼬리를 흐렸다.
“근데 왜? 대체 왜?”
줄곧 세르디스의 패악질을 지켜보던 오랜 시종도 침음을 삼켰다.
기분이 상할 때면 노골적으로 시종들과 시녀들에게 화풀이했던 탓이다.
세르디스가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기려 하자, 지레 겁먹은 시종이 움찔거렸다. 그 모습이 거슬린 세르디스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뭘 멀대같이 서 있어? 구경났어?”
“그, 그게 황자 전하.”
“버벅거리지 말고 똑바로 얘기 안 해?”
시종이 허겁지겁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하지만 세르디스는 받지 않고 눈짓했다. 알아서 읊어보라는 뜻이었다.
“일전에 전하께서 알아보시라고 한 르앙베리아 영애에 대한 정보 중에 흥미로운 게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세르디스가 흥미를 보이며 눈썹을 들썩거렸다. 시종은 서둘러 준비한 책들을 꺼내 왔다.
“르앙베리아 영애께서 어렸을 때부터 즐겨 읽었다는 책입니다.”
“책?”
“주로 소설책을 즐겨 읽으셨다고 합니다.”
“고작 알아 왔다는 게 이거야?”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시종이 급히 책 한 권을 펼쳤다.
“이 수많은 책이 모두 로맨스 소설입니다.”
어이없는 대답에 세르디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여기 나오는 남자 주인공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특징?”
“예. 한 번 이 부분을 보시겠습니까?”
세르디스는 시종이 펼친 부분을 유심히 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딴 범죄자 같은 놈이 주인공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모든 책에서 나온 남자 주인공은 전하께서 말씀하셨듯이 용납 못 할 만큼 심한 수준의 집착을 보였습니다.”
그렇다. 아네트가 읽은 책은 유독 남주의 집착이 도드라진 로맨스 책이었다. 빙의 전부터 로판을 즐겨 읽던 아네트는 빙의하고 나서도 집착 남주가 나오는 책을 즐겨 읽었다.
그리고 아네트의 취향이 아니더라도 그런 책이 유행이라 많이 나오기도 했고.
“그렇다는 건…….”
세르디스는 아네트가 달라졌을 때를 떠올렸다. 테라스에서 따뜻하게 담요를 덮어주고, 직접 수프를 끓여다 바치는 제 모습을. 이 소설 속 남주들과는 상반된 다정한 자신을.
대부분은 다정한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애써 그렇게 해줬건만.
“아네트가 이런 남자를 좋아한다는 건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에 시종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남자들만 나오는 책을 좋아할 리가 없지요!”
“만약에 이번에도 거부하면?”
“소위 말하는 튕기는 걸 겁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분이시니까요. 걱정 말고 밀어붙이십시오!”
시종은 당장 세르디스의 기분을 풀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그 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알지 못했다.
***
기억이 돌아온 뒤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저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손님 덕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아가씨. 황자님이 오셨는데요?”
“응. 아프다고 못 만난다고 해.”
“직접 병간호해 주겠다고 하셔요.”
“전염병이라고 해.”
“농담인 거 아신다는데요?”
“그냥 홀딱 벗고 있다고 그래. 몸에 열이 나서.”
황궁으로 출근한 아버지가 세르디스에게 내가 결혼할 상대는 없다며 ‘모솔’이라는 이야기까지 털어둔 탓이다. 냉랭해진 내 태도에 마음이 급해지기라도 한 건지 세르디스가 구애에 박차를 가했다.
끝까지 내가 만남을 거부하니 보석과 선물. 심지어는 저택 공터에 나만의 정원을 만들어주었다.
‘정원 이름이 달링이라나?’
내가 알던 사람 맞아?
그간 세르디스가 보여준 모습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생각에 팔에 소름이 돋았다.
“으으. 얼른 남편 찾든가 해야지.”
몸이 덜 회복 됐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코 저택을 나왔다.
나는 그가 보낸 물건은 전혀 손대지 않고 그대로 창고에 보관해두곤, 몰래 남편감을 찾았다.
카시안?
그는 그저 친구일 뿐이다.
그리고 카시안이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작 눈치챘다. 세 명의 카시안을 직접 만나봤으니 말이다.
세 사람 모두 카시안이 아니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카시안도 카시안의 인생이 있을 테니까.’
내가 다짜고짜 내 사정을 들이밀고 결혼해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일부러 부모님의 시선을 카시안에게로 돌려놓고 빈틈을 타 남편감을 찾아 나섰다.
꼼수였다.
시험을 거하게 망쳐놓고, 내 인생은 망했어. 난 뭘 해도 못 할 거야. 라며 오히려 과하게 반응하면 오히려 부모님이 덜 혼내는 것처럼.
네 명의 카시안보다 조건이 좀 더 나은 남자를 구해온다면,
원래라면 거부했을 부모님이라도 ‘그나마 낫다.’라며 받아들이실 수밖에 없을 테니까.
황자는 아쉽겠지만 그래도 부모님은 날 마냥 붙잡진 못하실 거다.
나도 부모님과 사이가 틀어지길 바라지 않고.
“둘 중에서 한 명은 응하겠지.”
정보 길드에 의뢰한 결과.
내가 요구한 조건에 맞는 귀족 영식은 딱 둘이었다.
나는 두 장의 서류에 있는 얼굴들을 익혔다.
약 1년. 세르디스가 비올렛에게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그 시점까지만 버티다 이혼하면 돼.
“아가씨. 머리 다듬어 드릴게요.”
서랍에 서류를 넣자, 때마침 베티가 들어왔다.
“근데 아가씨. 머리 장식을 이런 단출한 노란 꽃으로 하셔도 돼요?”
“응. 얼른 달아줘. 이제 출발할 시간이야.”
베티는 하는 수 없이 땋아 놓은 옆 머리에 장식을 꽂았다.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나는 만족스러웠다.
딱 보기에도 칙칙한 청록색 드레스.
거기에 두꺼운 화장은 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을 풍겼다.
“진짜 이러고 가셔도 되겠어요?”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물쭈물하는 베티는 마지막으로 문 앞에 놓인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슬쩍슬쩍 눈치 보는 걸 보니 세르디스의 선물이다.
“황자님이 보내신 거야?”
“네. 저번처럼 창고에 넣어둘까요?”
금색 리본이 감겨 있는 상자 위엔 편지 봉투도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평소라면 던져두라 했겠지만, 오늘은 다른 선택을 했다.
“열어보자.”
“네!”
베티가 뛰는 듯이 기뻐하며 좋은 솜씨로 리본을 벗겨내고 상자 뚜껑을 열자마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원작에서 아네트가 연회장에 입고 나타난 화제의 드레스였다.
청푸른색의 아쿠아마린 보석이 오묘한 빛을 내는.
“아가씨가 입으신 거랑 비슷해 보여요.”
당연히 세르디스가 보낸 드레스 쪽이 훨씬 값비싸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나는 베티의 말을 뒤로하고 편지 봉투를 뜯어 읽었다. 뻔한 내용에 금세 촛불 위에 태워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
유난히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는 연회장 입구.
샤르페넌 공작가의 마차가 도착했다.
마차가 멈추고 에스코트 하나 없이 홀로 내린 이는 비올렛이었다.
보라색의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채 드레스 자락을 사뿐히 잡고 걸어 들어오는 자태는 영락없는 귀족이었다.
표정 하나 없는 얼굴이지만 처연하면서도 고고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는 소설 속 여주다웠다.
나는 그녀가 연회장 안으로 입장하기 전, 조용히 불러 세웠다. 오늘 연회에서 내가 쌓을 업보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비올렛 공녀님.”
계단을 오르려던 비올렛은 단번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눈에 날 알아보았다.
“공녀님. 르앙베리아 백작가의 여식인 아네트라고 합니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곧 연회가 시작될 텐데요. 이야기는 안에서 나누죠.”
나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진 않은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세르디스와 내 스캔들이 공공연하게 퍼지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황자가 일개 백작가에 들락거린다는 이야기도 들었을 터다. 성인군자 비올렛이라도 내가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연회에 들어가시면 더는 나눌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연회는 단순한 연회가 아니었다.
‘달리아 성녀의 기일.’
원작에서도 쓰레기의 서막을 알리는 에피소드.
세르디스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던 비올렛이 황후에게 황자비 자리를 달라고 하자, 화가 난 세르디스는 일을 벌였다.
일부러 연회의 목적과 반대되는 화려한 드레스를 비올렛에게 선물로 보내고,
달리아 성녀의 기일을 맞아 열린 연회에서 창피를 준다.
“한심합니다. 비올렛 공녀. 당신이 제 짝이 될 일은 영영 없을 겁니다.”
“이건…… 황자님께서……!”
“아네트. 이리 와.”
반면, 아네트에겐 연회에 맞는 드레스를 선물하곤 그녀를 띄워주며 첫 춤을 신청한다.
그 기억이 깊게 남아 비올렛의 가슴속엔 큰 비수가 꽂힌다.
비올렛에게 아네트가 쌍x이 되어버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연회 시작 전, 비올렛을 내 편으로 만들기로 했다. 무작정 비올렛의 손을 이끌고 빈 파우더룸으로 들어왔다.
“다짜고짜 여기로 데려와 죄송합니다만.”
딴 귀족들 눈을 피해 들어오느라 가빠진 숨을 삼켰다.
비올렛은 긴 속눈썹만 끔뻑거리며 침착하게 내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당장 옷을 벗어주세요.”
나는 조금의 장난기도 없는 어조로 말했다.
비올렛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그저 고요하게 말을 몇 번 되새긴 후 되물을 뿐이었다. 예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에티튜드였다.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연유로 옷을 벗어야 하는지.”
그녀의 드레스는 화려하게 샛노랗고 봄의 꽃을 연상시키는 하얀 보석들이 움직임에 따라 반짝거렸다. 아마 연회장의 샹들리에 아래에서는 누구보다 빛이 날 터.
하지만 그녀는 모르겠지.
그걸 노리고 세르디스가 그녀에게 드레스를 선물해줬다는 사실을.
“오늘 연회가 어떤 의미로 열린 건지, 공녀님께서는 알고 계시나요?”
“황후마마께서 친히 모든 수도 귀족들의 번영을 위해 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누구한테요?”
그녀는 샛노란 드레스와 잘 어울리는 옅은 오렌지 립스틱을 바른 입술에 호선을 그렸다.
“오라버니께 전해 들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오늘 비올렛이 혼자 황궁에 온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비올렛을 제 가족이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두 형제는 알맞은 드레스 코드로 입고 왔으니까.
권세 높은 샤르페넌 공작가가 이번 연회가 어떤 의미로 열리는지 알지 못할 리가 없지 않나.
꼴 보기 싫은 여동생에게 말할 의무는 없다 이거다.
거기다 두 공자가 죄다 세르디스를 옹호하고 추대하는 편에 섰으니 더욱이 그녀를 안 좋게 볼 수밖에.
나는 깊은 미소를 띠며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아뇨. 이번 연회는 황후마마의 뜻으로 열린 게 아닙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계시나요?”
“제국력 827년. 네 번째 달하고도 열흘…….”
아마 누구보다 가족들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그녀라면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알아챘을 것이다.
“성녀 달리아님의 기일을 기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살아 생전 온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돌보셨던 달리아 성녀님의 기일을 조촐히 보내실 수 없다는 이유로요.”
대부분의 귀족은 잊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작 이상의 고위 귀족들이 이렇듯 자신을 내세우려는 듯 화려한 옷차림이라면 필시 눈 밖에 날 터.
비올렛도 그 사실을 눈치채곤 곤란한 한숨을 내뱉었다.
“저와 옷을 바꿔 입어요. 제가 공녀님 드레스를 입을게요.”
그녀는 단출한 내 모습을 천천히 훑다, 이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임을 깨닫고 급히 시선을 돌렸다.
“왜, 저를 돕는 거죠?”
“공녀님이 저를 오해하는 게 싫어서요.”
“무슨 오해를 말입니까.”
비올렛의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세르디스 전하와 제가 교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 말이에요.”
나는 그녀의 기분은 상관없다는 태도로 독선적으로 굴었다. 사실 그녀의 방식대로 뜸 들이고 돌려 말하고 싶어도 시간이 촉박했다.
비올렛의 올곧은 눈이 나를 직시했다.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만, 그게 사실이든 가짜든 상관없습니다.”
뒤에 ‘황자가 누굴 만나든 황자비는 자신이 될 테니까.’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말이 틀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안심하지 마세요. 황자비는 제 것이 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게 무슨…….”
비올렛이 버썩 마른 입술을 달싹거렸다.
“왜냐구요? 세르디스 전하는 지금 저를 사랑하시거든요. 매일 뜨거운 마음이 가득 담긴 편지와 함께 수도에서도 보기 드문 보석들이 저택에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녀의 말허리를 끊어먹곤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마치 사내의 사랑을 독차지한 정부가 정실에게 말하듯 일부러 그녀를 자극했다.
“제가 몸이 약하다니까 직접 수프를 끓이지를 않나. 손에 물도 안 묻힐 황자께서 손수 병간호까지 해주시겠다고 하시는걸요.”
“그만.”
그제야 속내를 내비치지 않던 비올렛의 표정이 솔직해졌다. 고운 미간에 그어진 주름은 그녀의 감정을 고스란히 내비쳤다.
“거기다 제국에 유일무이한 황자님이잖아요. 전하가 원하신다면 이루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
“아마 제가 달려가서 당장 전하께 결혼하자고 청한다면 바로 식을 열어주시겠죠.”
침음을 삼킨 비올렛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오해하는 게 싫다고 말했습니다. 근데 갑자기 이런 태도로 나오는 건 무슨 경우죠?”
드디어 불안한 속내를 드러낸 비올렛에게 나는 말했다.
“지긋지긋해서요.”
“잘…… 못 들었습니다?”
"좋아하지 않는 상대가 저런다고 생각해보세요. 부담스럽고 불편해요. 저는 전하께 아무 감정도 없는데 말이에요."
나는 눈가에 거뭇하게 내려온 다크 서클을 한차례 가리켰다. 세르디스를 떠올리니 팔에 돋아오른 소름까지.
“진심입니까?”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비올렛이 물었다.
“네. 공녀님을 돕는 건 절 위해서이기도 해요. 공녀님한테도 손해 볼 것 하나 없는 장사지요.”
그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찬란한 새벽빛을 닮은 보랏빛 머리카락이 쏟아져 흘렀다.
흔들리는 여인의 눈동자에 내가 비쳤다.
나는 찬란하게 흐트러지는 공녀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며, 드레스 후크를 풀어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