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신혼인데 너무 멀쩡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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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신혼인데 너무 멀쩡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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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신혼인데 너무 멀쩡하잖아요!
2023.06.28.
고요한 정적만이 응접실 안에 가득했다.
슈웰리도 당당히 말할 때는 언제고 막상 입으로 뱉고 나니 얼굴이 새빨개져 버렸다.
“부, 부인.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결국 루카스가 먼저 제 부인에게 눈짓하며 말렸다. 헤르티안과의 결혼을 거절한 게 그 이유였다는 사실만큼은 평생 비밀로 간직하려 했다.
사기꾼한테 당했다는 걸 새로 대공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밤마다 손 꼭 붙잡고 평생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는데! 슈웰리가 직접 헤르티안에게 말할 줄이야.
루카스는 식은땀을 소매로 슥슥 닦으며 변명했다.
“죄송합니다. 요새 부인의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듯합니다. 아네트를 결혼시키고 나니 뒤숭숭해서 그런지…….”
퍽!
헤르티안의 대답 대신 매서운 손바닥이 그의 등을 때렸다. 얼얼해진 등짝에 루카스는 어벙한 눈으로 자신의 아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뭔가를 결의한 듯한 얼굴로 숨을 크게 들이켰다. 불안함이 루카스를 휘감았다. 당장 아내를 말려야 하는데, 왜인지 말렸다가 한동안 시달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공 전하. 답해주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슈웰리의 당돌한 질문.
헤르티안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답했다.
“멜슨 남작이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제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멜슨 그놈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고 백작가를 뽑아 먹기 위해 벌인 사기극이었으니까.
“부인, 당연한 걸 물어서 상황을 왜 이리 곤란하게 만드시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아내를 보며 답답한 건 루카스였다.
“그럼, 왜…….”
슈웰리가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입술을 깨물었다. 루카스는 잠깐의 정적을 기회 삼아 부인을 설득했다.
“대체 뭐가 문제인 겁니까? 대공께서 이렇게 건강하시니 드래곤 눈알도 뽑아 온 것 아닙니까?”
그러니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주시오.
하지만 슈웰리는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왔는지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저도 이제 백작가의 사람 아닙니까?”
“정말 별것 아닙니다. 부인이 아네트를 오랜만에 봐서 건강 걱정이 되었나 봅니다.”
“무엇이든 오해가 있다면 풀고 싶습니다. 제 건강이 걱정되신다면 당장 수도 병원에 가서 검진하고 오겠습니다.”
“아뇨, 아뇨. 검진이라니! 당치도 않은 소리를!”
헤르티안은 엄연히 피해자거늘. 어떻게 그런 일을 시킨단 말인가!
루카스의 곤란함이 극에 달할 무렵이었다.
“그렇다면 왜 아네트와 아무 일이 없는 거예요!”
다시 한번 폭탄이 응접실에 떨어졌다.
“아네트가 너무 멀쩡하잖아요!”
한껏 떨리는 음성이었다.
“솔직히 저희는 결혼 한 달 만에 아네트가 돌아온다고 해서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요. 두 사람 사이가 좋으니까 분명…… 분명……!”
슈웰리가 거침없이 말을 토해냈다.
‘멜슨 얘기를 했던 게 결국 이 얘기를 하고 싶어서였어?’
어쩐지 아네트를 유독 걱정스럽게 바라보더니, 건강보다 그게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안 그래요, 백작님? 우리 신혼 때를 생각해보시라고요.”
“그……그러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두 사람의 일이오.”
루카스는 연신 헤르티안의 눈치를 보았다. 모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두 사람의 사이보다 황후나 황자 세력을 걱정해야 할 때였다.
그래서 루카스는 아내를 대신하여 빠른 사과를 건넸다.
“계속 미안한 일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부인이 한 이야기는 잊어 주십시오.”
슈웰리가 옆에서 “백작님!”하고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헤르티안은 아까부터 대답이 없었다.
입으로 그녀가 한 말을 몇 번이고 중얼거리기만 할 뿐.
‘아네트가 건강하면 좋은 일 아닌가?’
처음 헤르티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네트의 건강을 최우선시하기로 약속했었고, 그녀가 건강하게 돌아왔다면 좋은 일 아닌가? 그런데 왜 백작 부인은 화가 나 있을까.
하지만 이내 그 뜻을 이해했다.
‘엊그제 쓰러지신 분답지 않게 마님이 너무 잘 뛰어다니십니다.’
‘보기 좋은데 왜 딴지야?’
‘두 분 지금 신혼이지 않습니까. 본래 신혼부부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게 정상이잖아요.’
문득 오센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다른 이들의 시선보다 아네트의 북부 적응을 우선시했기에, 그 말을 그저 흘려보냈다.
게다가 누가 보아도 사이가 좋은 부부라, 두 사람을 의심하는 이는 대공성에 없었다. 리리만 빼고.
‘그걸 백작 부인께서 걸고넘어지실 줄이야.’
“저, 대공 전하?”
루카스가 깊은 상념에 잠긴 듯한 헤르티안을 불렀다.
그러자, 이내 헤르티안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이었다.
“백작 부인께서 그런 오해를 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실은 부인이 걱정하는 그것, 맞습니다.”
슈웰리가 입을 틀어막았다.
“세상에. 그럼 반토막…….”
“부인!”
그녀는 멜슨이 가져온 진료서를 재차 떠올리며 울먹거렸다. 여자 관계가 복잡해서 그렇고 그런 병에 걸렸다는 게 사실이란 말인가.
“반토막은 아니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다만 부인과 아무 일도 없던 것은 사실입니다.”
헤르티안은 솔직하게 털어두었다.
“왜…… 왜요?”
슈웰리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신혼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건. 벌써 서로에 대한 애정이 식었음을 뜻하니까. 혹여나 제 딸이 버려질까 봐 두려웠다. 루카스도 그건 마찬가지인지 입을 다물고 침을 꼴깍 삼켰다.
“제가 부인의 마음에 들지 못한 탓입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헤르티안은 제 탓을 했다.
“아네트가 대공 전하를 마음에 안 들어 하다뇨.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한다고 했던 아이인데요.”
“북부의 추운 기운에 면역이 없는 부인의 건강을 걱정해서 적응할 시간을 조금 주려고 했던 게 화근입니다. 저까지 부인을 괴롭히면 안 될 것 같아서 잠시 내버려 뒀던 게 일상이 되어서…… 밤이 되면 조용히 취침만.”
크흡.
헤르티안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척, 몸을 돌렸다.
실은 슈웰리를 잘 타이를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아네트 탓을 해 버렸다. 제 마음은 한 번도 몰라주는 아네트가 괘씸해서.
“정말 건강에는 이상이 없고요……? 아네트가 늘 대공 전하의 약을 챙긴다던데.”
“제가 부정맥이라고 합니다.”
“부정맥은 또 뭐죠?”
처음 듣는 병명에 당황한 그녀가 곧장 되물었다.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는 병이라고 하더군요. 제 심장 박동이 이상하다며 그날부터 꾸준히 약을 지어주었습니다. 부인 앞에서만 날뛰는 것도 모르고.”
낯부끄러운 헤르티안의 고백에, 결국 슈웰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네트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를 줄이야.’
아카데미에서 연구만 주야장천 해대는 걸 말렸어야 했다.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자유롭게 하도록 해야 했다. 아니다. 제대로 교육시키고 결혼을 했어야 했는데.
그녀는 이제라도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다짐하며, 작아진 목소리로 읊조렸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아네트에게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제가 노력해야 해결이 될 겁니다.”
헤르티안이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상처받은 이처럼 구슬픈 눈빛이 바닥을 향했다.
“대공 전하, 때로는 직접 길을 만들어야 할 시기도 있습니다.”
슈웰리가 의지에 불타는 눈으로 대공을 응시했다. 그 또한 백작 부인의 손을 맞잡으며 응수했다.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물론이요. 언제든지!”
손발이 잘 맞는 두 사람을 보던 루카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러다 사고라도 치는 거 아니야?’
***
오랜만에 그리운 얼굴을 보자 눈물이 또 왈칵 쏟아졌다.
“베티!”
내 전담 하녀 베티.
“아네트 아가씨!”
원래는 북부에서 내 전담을 이어 하려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다시 수도로 돌아왔던 베티였다.
“너 일부러 아가씨라고 했지.”
“저한테는 영원히 아가씨인 걸요. 헤헤.”
그녀는 그때보다 수척해진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래도 아가씨가 곤란하실 테니까 대공비 전하라고 부를게요.”
“안 본 사이에 얼굴이 많이 상했어.”
나는 갸름해진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코를 훌쩍거렸다.
“왜 속상하게 살이 많이 빠진 거야.”
항상 내가 디저트를 챙겨줘서 얼굴이 토실토실했던 베티는 어디 가고 빼빼 마른 아이가 서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생들이 이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고생을 좀 했거든요.”
그녀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럼 그렇다고 나한테 연락하지. 그랬으면 나도 도울 방법을 찾았을 텐데.”
아니다. 베티가 수도로 돌아갔을 때 먼저 물어봐야 했다.
“그래도 이젠 다 해결되었어요. 봉급 받으면 맛있는 거 많이 사 먹을 거예요!”
“뭐 하러 봉급 때까지 기다려. 자, 여기 있는 거 너 다 먹어도 돼. 그러라고 가져온 거야.”
베티가 좋아하는 걸로 많이 가져오길 잘했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애프터눈 티 세트를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저 챙겨주는 건 대공비 전하밖에 없다니까요.”
“그렇지? 나중에 정리되면 언제든지 북부로 와. 더 맛있는 거 잔뜩 사줄 테니까.”
베티 입에 쿠키를 가득 넣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한참을 우물거리더니 화장대에서 빗을 꺼내 왔다.
“빗겨주려고?”
베티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북부는 적응하셨어요? 처음 갈 때만 해도 추워서 힘들어하셨잖아요.”
그러고는 내 머리칼을 살살 빗질해 주며 물었다. 나는 옛날 생각이 나, 눈을 스르륵 감았다.
“추운 건 여전한데 대공성 보수도 하니까 이제 좀 나아질 것 같아.”
“안 그래도 보니사가 전하가 번 돈으로 대공성을 보수한다고 편지로 말해줬어요.”
보니사는 걱정을 한아름 안고 돌아간 베티를 위해 종종 편지를 보내주곤 했다.
때로는 모르는 글자가 있다며 내게 묻기도 했었다.
“그나저나 사업은 어떻게 벌이신 거예요! 엄청나게 큰 금액을 벌어들이셨다고 해서 제가 얼마나 궁금했는데요!”
베티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아는 게 약초밖에 없잖아. 약초를 필요한 곳에 많이 팔아넘긴 게 전부야.”
쿠르시아인과 거래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괜히 부모님 귀에 들어가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아서.
베티도 굳이 자세한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내가 말하고 싶지 않다는 걸 기민하게 눈치챈 모양이었다. 대신 그녀는 연신 내 머리칼을 빗겨주었다. 선을 그은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부분은 쿠르시아에 잡혀간 영지민을 빼 오는 데 썼어. 대공 전하가 신경 쓰고 있는 일이라 선뜻 이야기하지 못했어.”
내 말에 베티가 다시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비 전하를 이해해요. 이제 백작가의 사람이 아니라 대공가의 사람이신 걸요. 저는 오히려 비 전하가 어엿한 어른이 된 것 같아서 기뻐요.”
코끝이 시큰해진 나는 코를 슥슥 비비며 마저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튼 사업도 그 일 때문에 했던 거야. 너도 대공성을 봐서 알잖아. 얼마나 곳곳에 균열이랑 구멍이 많은지. 성을 보수하고 싶다니까 당장 영지에서 나오는 돈이 구제비용으로 나간다니까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니까.”
“그 비용을 영지 자금으로 전부 낸다고요? 솔직히 그건 황제 폐하가 보태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수도행으로 생각이 뒤바뀌었다.
‘황제는 헤르티안에게 어떠한 방패도 될 수 없는 사람이야.’
그에게 영지 일로 도움을 청하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황제나 황실에게 거는 기대를 모두 지웠다.
“영지 일이기도 하니 우리 선에서 해결해야지.”
그러자 베티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대공 전하께서 황태자가 되시면 비용 문제도 사라질 텐데.”
“베티. 그런 말 하는 거 아니…….”
나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하던 말을 멈추었다. 베티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내 생각이 짧았어.
‘헤르티안이 황태자가 되지 말란 법은 어디에도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