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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귀족들 (40/210)

#40. 귀족들2022.01.16.

케이로부터 ‘렘브란트’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은 아서는 뒤이어 다른 한 사람에 대한 조사를 추가로 명했다. 렘브란트의 수행원에 대한 것이었다.

16549664327793.png“황실 소속 외교관이고, 프랜시스라는 이름인 것 같더군.”

진행되는 대로 알려 달라는 말로 명령을 마치고, 아서는 케이에게 이만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렘브란트야 황실의 외척이니 어느 정도 유명인사고, 그 정도 인물에 대한 정보는 케이 정도의 고위 귀족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테니 바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렘브란트의 수행원은 그런 유명인과는 다를 테니 조사할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명령을 받은 케이는 딱 1초 정도 멈추었다가 바로 대답했다.

16549664327797.jpg“……그쪽은 제 형인데요.”

아서는 드물게도 순간 말문이 막혔다.

16549664327797.jpg“바로 보고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케이는 침착하게 말을 시작했다.

16549664327797.jpg“프랜시스 포드. 포드 백작가의 차남입니다. 나이는 스물여덟이고요. 어린 나이에 외교 및 행정문관 쪽으로 진로를 정해 황실과 고위 귀족들이 다니는 명문 엘리트 코스 순서대로 밟고 웨스트리버칼리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입니다.”

16549664327793.png“…….”

아서는 애써 평정을 유지한 채 케이의 보고 내용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16549664327797.jpg“황태자 전하 및 렘브란트 경과 함께 수학한 동문이고요. 어릴 때는 사고 좀 쳤지만 지금은 어엿한 6년 차 황실 소속 외교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4개 국어인지 8개 국어인지 합니다. 네 개는 확실한데 나머지 네 개는 어설펐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 년 전 기준이지만요.”

16549664327793.png“…….”

케이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16549664327797.jpg“기사 케이 포드를 손아래 동생으로 두고 있습니다. 지금은 황제 폐하 명령으로 렘브란트 경을 보좌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동생 쪽은 아시다시피 아서 경을 보좌하고 있고요.”

아서는 작게 웃고 말았다. 케이도 슬쩍 따라 웃었다.

16549664327797.jpg“며칠 전에 이곳에서 재회해서 근황을 주고받았습니다. 재회에 감격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애틋하진 않지만 예의상 만나서 살아있구나, 인사 나눌 정도는 됩니다.”

케이가 말을 이었다.

16549664327797.jpg“‘프랜시스 포드’에 대해선 원하신다면 프라이버시 없을 정도로 자세히 알아 올 수도 있습니다만. 어느 정도까지 원하십니까?”

아서가 큼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16549664327793.png“……뭔가 민망하네. 미안.”

아서가 사과하자 케이가 웃었다.

16549664327797.jpg“사과하실 게 뭐 있습니까. 완벽한 적임자 찾아오셨는데요.”

아서가 이마를 문지르며 머쓱한 기색을 보였다.

16549664327793.png“자네 형인지 몰랐어. 성이 ‘포드’라는 걸 알았으면 짐작했을 텐데. 이름만 알았다.”

16549664327797.jpg“그러실 수도 있죠. 상관없습니다. 암살을 시키신 것도 아닌데요, 뭐.”

아서가 피식 웃었다. 케이가 산뜻하게 말했다.

16549664327797.jpg“어떤 방향으로 궁금하십니까? 집안에선 딱히 인망 높진 않지만 평범하게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하는 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게 궁금하신 건 아닐 것 같은데요.”

아서가 잠시 틈을 두고 물었다.

16549664327793.png“자네 형은 아직 미혼?”

16549664327797.jpg“네. 아직 미혼입니다.”

16549664327793.png“스물여덟이면 좀 늦었네. 귀족 금혼령 때문에 시기를 놓쳤나?”

16549664327797.jpg“그렇죠. 약혼 이야기 나오시던 분은 한때 있으셨는데 애매한 상태로 전쟁 터져서요. 금혼령 걸린 사이 흐지부지된 걸로 압니다. 지금은 딱히 만나는 분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도 돌아온 후에 아직 가족이랑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진 못한지라. 명하신다면 더 자세히 알아 오겠습니다.”

아서는 짧게 침묵했다. 눈앞에 있는 부하의 친동기라니 그 자신의 목적에 따라 조사해 오라 하기가 망설여지시는가 싶었다. 케이는 프랜시스에 대한 그의 첫 번째 추가 질문이 ‘미혼’이냐는 것이었다는 걸 염두에 둔 채 아서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아서가 이내 입을 열었다.

16549664327793.png“왜 자네 형을 조사시키는지 궁금하겠군.”

케이는 담담하게 답했다.

16549664327797.jpg“프랜시스의 동기이기 이전에 저는 기사이고 군인입니다. 주제넘게 명령에 의문을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게 시키시기 불편하시거든 다른 사람이 조사할 수 있도록 교대하겠습니다.”

16549664327793.png“아냐. 그대에게 묻지.”

아서가 담백하게 말했다.

16549664327793.png“내 아내에 대해 뒷조사하고 있기에. 어떤 이유인가 해서. ‘렘브란트의 수행원’이 조사 중인 건지 ‘프랜시스 포드’ 개인이 조사 중인 건지 신경 쓰이긴 하네.”

16549664327797.jpg“아.”

케이가 짧은 감탄사를 뱉었다. 듣자마자 납득이 가는 사유였다. 케이는 빠르게 그의 말에서 짐작되는 가능성이나 정황을 머릿속으로 되짚어 보았다.

16549664327793.png“그대 형은 어떤 사람이지? 미인이 있으면 관심 가지는 타입인가? 그런 타입이 아니라면 높은 확률로 ‘렘브란트의 지시’였을 것 같은데.”

아서가 뒤이어서 물어 왔다. 케이는 형의 성격을 떠올려 보았다.

16549664327797.jpg“…….”

유감스럽게도 짚이는 바가 있었다.

16549664327797.jpg“……네. 미인 좋아합니다. 연애도 은근히 많이 하는 편입니다. 여자 꽤 울렸습니다.”

케이는 뭔가 수치스러운 기분이 들어 참담하게 답했다. 아서의 의심이 너무 합당한 의심이어서 케이는 그 순간 다른 가능성 따위는 의심하지도 못했다. 형의 몹쓸 행동을 면목 없어 하며 자신의 순수성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어서, 케이는 몹시도 비난조로 형의 과거를 고발했다. 그리고 변명처럼 줄줄이 형의 여성 편력과 그로 인한 난감함에 대해 토로하고 말았다. 그러지 않으면 괜히 본인까지 비슷한 한통속으로 싸잡힐 것만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런.” 하고 웃는 낯으로 들어주면서도. 책상 밑으로 주먹을 틀어쥔 아서의 손등에 파랗게 힘줄이 돋았다. * * *

16549664364936.png“……?”

왠지 뒷덜미에 으스스한 기운이 끼쳐서,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쓰던 프랜시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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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에게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보고를 마치고. 긴 한숨과 함께 방에서 나와 돌아가던 케이는 기사들에게 막혀 있는 길목 앞에서 아서를 기다리는 레이디를 발견했다. 레이디 크리스티나. 보닛으로 얼굴을 가린, 아서의 진짜 부인. 딴에는 얌전하게 입는다고 입은 모양이지만, 평소의 취향이 숨겨지지 않는 화려한 드레스 차림이었다.

16549664327797.jpg“…….”

사과를 하겠다는 건지 기 싸움을 하겠다는 건지. 어쩌면 나름의 자존심을 세우는 방식이려나. 크리스티나는 문을 열고 나오는 그에게 힐긋 시선을 주더니, 손가락 끝으로 한쪽 치맛자락을 들고 살짝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우아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가는 눈꺼풀에 금빛 펄이 반짝였다.

16549664327797.jpg“…….”

화려하다. 압도적이고. 처음엔 상당히 닮았다 생각했는데. 볼수록 확실히 지금 부인이랑은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평생 아랫사람을 당연하게 부리며 살아온 영애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케이는 대답 대신 살짝 제복 모자를 들었다가 다시 썼다. 딱히 그의 화답을 바라지도 않은 듯 그녀는 다시 태연하게 정면을 향해 섰다.

16549664327797.jpg“…….”

성격도 확실히 다르군.

16549664387065.jpg‘저 여자 또 왔어?’

교대하러 온 기사가 눈짓으로 다른 기사에게 묻자 원래 있던 기사가 소리 없이 어깨만 으쓱했다.

16549664387065.jpg‘언제 왔어?’

16549664387065.jpg‘삼십 분 전쯤.’

입 모양으로만 하는 대답이 오간다.

16549664327797.jpg“…….”

케이는 못 본 척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어쨌든 아서의 방침은 ‘부실 보급 건’ 해결 전에는 ‘사기 결혼 건’의 수습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크리스티나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아마도 지금 이러는 것은 나름의 성의 표현인 듯싶었다. 젊은 기사들 몇몇은 그녀를 냉대했지만. 어쨌든 언젠가 그녀가 아서의 부인이 되리라는 것이 명백한 이상 홀대하긴 애매했다. 지금이야 기사들이 아서에게 훨씬 가깝지만, 결국 5년, 10년 후엔 그들이 모셔야 할 까마득한 상관의 부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 저 성질 더러운 크리스티나가 오늘날 자신을 무시했던 기사들을 가만둘까? 그때쯤엔 아서도 부하들보단 아내가 더 소중해져 있을 텐데. 설령 소중해지지 않더라도 무시하기 어려운 상대가 되어 있을 것은 확실하다. 그때는 둘 사이에 아이도 있을 거고. 줄리어스의 안주인이자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있을 그녀를 지금 이런 상황이라고 너무 무시할 순 없었다. 겉으로야 숨죽이고 있지만 속으로 얼마나 칼을 갈며 앙심을 품고 있을지 모르고……. 괜히 밉보이면 안 되는 상대라는 건 분명했다.

16549664327797.jpg“…….”

케이는 자리를 지키던 리오넬을 잠깐 눈짓해 응접실로 부른 뒤, 비슷한 취지로 조언했다. 지금은 저런 상태이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그녀를 너무 홀대하는 게 아서 경이나 기사들에게 안 좋을 수 있다고. 그러니 기사들이 너무 크리스티나를 무시하거나 불쾌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 시키라고. 리오넬은 잠자코 그의 조언을 들었다. 리오넬이 돌아왔을 때. 크리스티나는 여전히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로 있던 자리에 서 있었다.

16549664387095.jpg“…….”

그는 소리 없이 한숨을 쉰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섰다. 그리고 조용히 지시를 내려 기사들을 몇 걸음 뒤로 물러서게 했다. 기사들이 구경꾼처럼 멀뚱히 모여 서서 그녀가 아서를 기다리는 모습을 쳐다보지 않도록. 기사들이 통로 뒤편으로 자리를 옮기고. 리오넬만이 홀로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서서 자리를 지켰다. 얼마 후, 한 시간이 지나자. 크리스티나는 찰각, 하고 회중시계를 꺼내 시각을 확인한 뒤. 평소와 똑같이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165496643871.png“제가 기다렸다는 걸 전해 주세요.”

금색으로 빛나는 긴 속눈썹만 사뿐히 내리까는 인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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