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 안사람 (42/210)

#42. 안사람2022.01.23.

줄리어스 후작 저택의 주방. 바쁘게 칼질을 하던 주방장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둥절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버섯 알레르기가 있는 것 같을 때 확인할 수 있는 요리가 있냐고?

1654966465244.jpg“그야 버섯 요리겠지?”

1654966465244.jpg“아, 그래요?”

주방장은 황당해졌다. 바빠 죽겠는데 만찬 타임의 주방장을 붙들고 뭐 하자는 거야, 지금? 칼을 든 주방장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1654966465244.jpg“요리까지 할 거 있어? 그냥 버섯을 먹여 보면 되는 거잖아. 아니 애초에 가서 알레르기가 있는지 물어보면 되는 거 아냐? 왜, 누가 버섯 알레르기가 있는데?”

요리사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1654966465244.jpg“모르겠어요. 말 안 해 주셨는데. 그냥 그런 요리를 준비해 달래요.”

1654966465244.jpg“누가?”

1654966465244.jpg“허스트 부인이요.”

이런. 무시할 수도 없는 상대잖아? 주방장의 부리부리한 눈빛에 짜증이 서렸다. 하녀장과 주방장은 언제나 주인의 총애와 권력을 힘겨루기하는 저택 내 최고 지위의 고용인들이었다. 주방장도 결코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후작 대부인의 총애를 받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택을 쥐락펴락하는 올가 허스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예전에 하녀장과 마찰이 있었을 때, 후작 부인이 자신이 아닌 하녀장의 손을 들어주며 언제나 하녀장의 지시를 최우선으로 따르라는 판결을 내렸던 것은 주방장의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로 남아 있었다. 주방장은 더욱 예민해졌다.

1654966465244.jpg“뭐야, 그럼 버섯 요리를 하나만 만들라는 거야? 아니면 모든 요리를 그렇게 만들라는 거야?”

1654966465244.jpg“모르겠어요, 저도. 어떡해요? 저희 만찬 내갈 시간 다 돼 가는데, 시간이……. 뭐부터 시작하죠?”

주방장은 짜증이 솟구쳤다. 주방은 바쁜 곳이었다. 아니 근데 어이없네.

1654966465244.jpg“버섯 알레르기가 있으면 어차피 버섯 요리를 안 먹을 거 아냐? 그럼 요릴 내놔 봤자 그게 테스트가 돼? 버섯을 몰래 넣으라는 거야 뭐야? 그러다 탈이 나면 어떡하라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전부 내 책임이 될 텐데.”

이거 무슨 함정인 거 아냐?

1654966465244.jpg“그러게요……? 어떡하죠?”

자세히 말이나 해 주면서 시키든가. 어쨌든 시간이 없었다. 어차피 올가 허스트의 지시는 ‘최우선으로’ 들어야 했다. 주방장은 욕설을 씹어 삼키며 빠르게 지시했다.

1654966465244.jpg“일단 모든 요리에 버섯 올려. 대신 전부 잘 보이는 위치에 곁들여. 알레르기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서 피할 수 있게. 버섯 갈아서 들어간 요리랑 버섯 육수 쓴 요리 전부 빼.”

1654966465244.jpg“예, 셰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련히 버섯을 남겨 놓겠지, 뭐. 그럼 그게 테스트지 별건가. * * *

1654966465244.jpg“버섯이 줄리어스의 특산품이었나요?”

1654966465244.jpg“의외로 어울리네요. 하하하. 집에 돌아가 우리 주방장에게도 알려 줘야겠습니다.”

상단주들이 흔쾌히 웃으며 요리의 언밸런스를 감싸주었다. 버섯이 올라간 푸딩과 초코케이크와 크렘브륄레를 마주한 후작과 후작 부인은 당혹감 속에서 억지웃음을 지었다. 집에 방문한 손님들에게 최고의 요리를 내오는 것은 귀족들의 자존심이었다. 저택의 재력을 과시하는 수단이었고, 안주인의 센스를 평가받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주방장은 항상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버섯 올린 초코케이크와 버섯 얹은 크렘브륄레라니! 가문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유능한 쉐프와 요리사는 필수였고, 당연히 대륙 최대 재벌 줄리어스는 대륙 최고의 쉐프를 주방장으로 고용한 상태였다. 후작 부인은 그를 고용하고 몇 년간 다른 평범한 안주인들처럼 요리를 체크할 필요도 없었다. 훌륭한 요리에 감탄하는 방문자들 앞에서 최고의 주방장을 고용했을 뿐이라며 재력을 과시하고, 유능한 주방장에게 공을 돌리며 겸손한 척 거들먹거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상인들이 앞다투어 저택을 찾아오고 있는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버섯 올린 초코케이크라니! 지금은 즐겁고 기분 좋은 척들 하지만 다른 데에 가서는 줄리어스 저택에서는 글쎄 초코케이크에 버섯을 올려 먹더라며 비웃을 게 틀림없었다! 후작 부인은 이런 실수가 일어났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버섯은 의외로 어지간한 요리에 다 어울리는 식재료였다. 그래서 디저트가 나오기 전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디저트가 나오기 시작하자 알 수 있었다. 모든 요리에 다 버섯을 올렸잖아! 버섯 알레르기가 있는지 알아보라 했던 명령 때문인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어야지! 가만. 설마 아서한테도 이 요리들이 올라간 거야? 후작 부인은 머리가 띵해졌다. 일처리를 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 * *

16549664681069.png“일처릴 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집무실 문이 닫히자마자 후작이 모자를 내팽개치며 일갈했다. 후작 부인이 소리쳤다.

16549664681072.png“그 명령은 당신이 했잖아요!”

후작이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16549664681069.png“손님에게 내갈 요리를 최종 점검하는 건 당신 일이잖아! 내가 이런 것까지 간섭해야 해?! 어떻게 뭐 하나 똑바로 하는 게 없어!”

후작 부인은 분해서 부들부들 떨었다. 후작의 지적대로 그게 안주인의 역할이기는 했다. 하지만 후작이나 후작 부인이나 모두 정신없이 귀빈과 상단들을 함께 만나는 일정을 소화하느라 따로 요리를 점검할 시간은 없었다. 요리 점검은커녕 후작 부인은 약속의 종류와 시간대에 따라 일정과 일정 사이에 적절한 드레스로 갈아입고 단장하는 것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계속 같이 있었으니 후작도 그걸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얼굴이 새빨개진 후작 부인이 쾅 발을 굴렀다.

16549664681072.png“당신이 할 소리야?! 이게 전부 누구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16549664681086.png“…….”

잠자코 후작 내외의 싸움을 보고 있던 크리스티나가 조용히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며 말했다.

16549664681086.png“앞으로는 제가 확인할까요?”

서로를 향해 윽박지르던 후작과 후작 부인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딸을 쳐다보았다. 후 하고 폐 속에 차 있던 마지막 담배 연기를 내쉰 크리스티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16549664681086.png“어머니 아버지께선 요즘 상단들 만나시느라 바쁘시잖아요. 쉴 새 없이 약속이 밀어닥치고 있어서 다른 일에 신경 쓰지 못하고 계시고.”

16549664712765.jpg“…….”

크리스티나가 후작과 후작 부인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16549664681086.png“저는 매일 단장을 하고 그이 용서를 기다리는 일 외에 딱히 하는 일이 없으니 제가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요. 곧 아서 경과 함께 저택의 안살림을 돌보아야 하기도 할 테니 어머니께서 맡겨 주신다면 좋은 공부가 되기도 할 것 같고요.”

크리스티나……! 놀란 후작 부인이 감격의 눈으로 입을 가리고 철든 딸을 바라보았다. 크리스티나의 말이 이어졌다.

16549664681086.png“결국 제가 이 저택 안살림을 맡게 될 테니까요.”

후작 부인은 몹시 기뻐했다.

16549664681072.png“그렇지! 크리스티나. 내가 미처 널 생각 못 했구나! 전부 너한테 물려줘야 할 일들인데. 세상에, 내가 이렇게 정신이 없어!”

후작 부인은 여느 집들처럼 딸을 떠나보내지 않고 계속 끼고 살 수 있게 된 걸 새삼 실감하며 좋아했다.

16549664681072.png“이제 내가 널 의지할 수 있겠구나!”

출가외인이 된다면 남편 집의 살림을 맡게 됐을 테지만, 데릴사위를 들였으니. 결국 크리스티나가 이곳의 안주인이 될 터였다. 분명 맞는 말이었지만……. 후작은 불신의 눈초리로 미심쩍게 딸을 노려보았다. 크리스티나가 아버지의 시선을 마주 응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 * *

16549664712798.jpg“바빴을 뿐입니다. 그런 명령은 마님의 완벽한 단장에 비해 그렇게 중요한 성과가 있을 명령이 아니라 생각했을 뿐이고요.”

허스트 부인이 눈 하나 깜짝 않고 말했다. 피식 웃은 크리스티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보석 장신구를 턱짓해 가리켰다.

16549664681086.png“가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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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664712822.png“…….”

16549664741667.png“…….”

레이나와 아서는 만찬 테이블을 앞에 두고 침묵했다. 그들의 앞에 차려진 만찬 테이블의 모든 요리 위에 버섯이 올라가 있었다. 레이나의 동공이 흔들렸다. 뭐지 이건? 노골적으로 모든 요리에 버섯이 올라가 있었다. 샐러드나 고기 요리, 전골 같이 마땅히 버섯이 어울리는 메뉴뿐만 아니라. 과일 띄운 요거트 위에도, 새하얀 우유푸딩 위에도, 노릇하게 구워진 크렘브륄레 중앙에도. 보통 버섯이 들어가지 않아 마땅한 요리들에도 전부. 대놓고 등짝에 하얗게 십자 표시가 박힌 버섯들이 앙증맞게 올라가 있었다. 심지어 초코케이크 위에까지 데코레이션 된 버섯을 보자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6549664712822.png“…….”

레이나는 이 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내가 써서 보낸 쪽지 때문인 것 같은데. 설마 아서 경이 버섯 편식한다는 말에 이런 치졸한 복수를……? 아니 근데 이건 뭔가…… 너무 유치하지 않나. 이런 식으로 할 생각이었던 거야……? 나는 그래도 아서 경 몰래 뭔가 일러바친다는 생각 때문에 꽤나 심각한 기분으로 그 쪽지를 적어 보냈는데……. 이래선 몰래 쪽지를 보내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러면 내가 뭔가 아서 경에 대해 바깥에 전달하고 있다는 걸 아서 경이 다 알 거 아닌가. 심지어 그게 그가 편식한다는 내용이라는 것까지 아서 경이 다 알아 버리게 생겼다.

16549664741667.png“…….”

아서는 골똘히 턱을 괸 채 이게 무슨 뜻인가 하는 얼굴로 버섯으로 가득한 식탁을 보고 있었다.

16549664712822.png“…….”

뭔가 본의 아니게 그를 골탕 먹이려는 몹쓸 친구의 장난에 가담한 기분이라 레이나는 얼굴이 벌게진 채 그의 눈치를 보았다. 아서가 중얼거렸다.

16549664741667.png“부모님께 몹시 혼이 나는 아이가 된 기분이군.”

16549664712822.png“…….”

아서가 담담히 말했다.

16549664741667.png“……편식이 나쁘다는 건 알고 있소. 그대 권유를 따르겠소.”

그리고 아서가 식기를 들었다. 그가 접시 위 버섯을 쿡 찍었다. 레이나가 당황해서 그를 말렸다.

16549664712822.png“저 주세요!”

레이나는 얼른 제 포크를 들고 요리에 있는 버섯들을 콕콕콕 찍어서 자기 입에 넣었다. 그리고 버섯이 사라진 자신의 접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서의 옆까지 얼른 다가갔다. 그리고 버섯이 없는 접시를 그의 접시와 바꿔 주었다. 달그락.

16549664741667.png“…….”

급히 입 안에 든 버섯을 얼른 삼키고 레이나가 말했다.

16549664712822.png“이걸로 드세요.”

16549664741667.png“…….”

아서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레이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아서에게 무척 미안했다. 전장에서 독버섯를 먹고 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싫어 한다며. 그 기억을 떠올리며 불편한 식사를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치사하게. 먹을 거 가지고……. 후작 부인이 자신의 보고를 가지고 이럴 줄은 몰랐다. 오 년 동안 부실 보급 때문에 고생한 사람인데…….

16549664741667.png“부인.”

아서가 피식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16549664741667.png“그냥 두시오.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오. 어차피 못 먹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맛있게 먹는 걸 보니 괜찮아 보이기도 해.”

16549664712822.png“아니에요.”

레이나는 접시를 뒤로 당기며 민망해했다.

16549664712822.png“저도 상한 생선을 한번 잘못 먹고 호되게 고생한 후로 생선 요리는 잘 먹지 않는걸요.”

레이나가 버섯이 담긴 다른 접시를 또 하나 손에 들며 말을 이었다.

16549664712822.png“아무리 신선하고 다들 맛있다고 그래도 저는 아팠던 기억이 생각나서 주저하게 되고 맛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싫은 걸 억지로 먹으면 기분 좋은 식사를 할 수가 없잖아요. 굳이 드시지 마세요. 다른 맛있는 것도 많은데.”

그가 버섯을 피하는 게 유치한 편식이 아니라는 걸 두둔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아서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이 찌푸려진 얼굴이었다.

16549664741667.png“……상한 생선을 먹었소? 어쩌다.”

레이나는 입을 다물었다. 말실수였다. 당연히 크리스티나 아가씨는 상한 생선 따위 먹은 적 없었다. 아서가 정색했다.

16549664741667.png“줄리어스가 그대한테 상한 생선을 먹게 했어?”

16549664712822.png“아, 아서 경.”

아서가 굳은 얼굴로 레이나를 보며 말했다.

16549664741667.png“나는 내 안사람이 안락한 데서 안전히 있을 거라 생각하고 전장에 간 거요. 그런데 대체 그댄, 내가 없는 사이 어떻게 지낸 거지?”

레이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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