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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저것들이 지금 불륜을……? (74/367)

74화. 저것들이 지금 불륜을……?2020.11.11.

벗으라고? 어떤 걸? 라틸은 당황해서 가짜를 보다가 슬그머니 몸을 뒤로 뺐다. 옷 아니면 가면? 어느 쪽이든 좋지 않았다. 그러나 두 쪽 다 아니었다.

1655108681459.jpg“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 그 신발, 벗어서 잠깐 보여줘.”

신발? 가면이 아니라 신발? 확실해? 이건 또 예상 못 한 부위인지라, 라틸은 의아해서 가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가짜는 확실하게 신발을 가리키고 있었다. 뭐 신발 정도야. 라틸은 신발 한 짝을 벗어서 옆에 내려두었다.

1655108681459.jpg“다른 한쪽도.”

다른 한쪽도 벗어서 내려두고 맨발로 서서 쳐다보자, 가짜가 레안에게 눈짓했다. 신호를 받은 레안은 다가와서 신발을 가져갔다. 레안이 신발을 가져가기 위해 곁에 다가왔을 때, 라틸은 순간 오빠의 뒤통수를 후릴 뻔했지만, 꾹 참았다.

16551086814603.jpg“여기.”

신발을 가져간 레안이 가짜에게 신발을 건네자, 가짜는 신발을 이상할 정도로 유심히 살폈다. 그걸 보며 라틸은 고개를 기웃했다. 가짜와 레안이 한패란 거야 이미 짐작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레안이 가짜의 말을 순순히 잘 듣잖아?

16551086814609.jpg‘물론 지금은 가짜가 황제이니 말을 안 들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만…….’

그 사이. 레안도 가짜의 옆에 서서 신중한 표정으로 신발을 함께 살폈다. 그건 참으로 괴상한 광경이었다. 길거리에서 단돈 3000바르트를 주고 산 싸구려 신발을, 가짜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황제인 사람이 황자와 둘이서 코를 박고 저렇게 쳐다보다니.

16551086814609.jpg‘냄새 안 나냐.’

마침내 만족할 만큼 발 냄새를 흡입했는지 가짜가 신발을 내려놓고서 라틸을 불렀다.

1655108681459.jpg“좋아, 바네사. 신발을 가져가거라.”

가져갈 때는 직접 가져가더니 왜. 돌려줄 때도 직접 돌려주시지? 라틸은 속으로만 구시렁거리면서 순순히 다가가 신발을 가져와 얼른 신었다. 그러고서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한 척 쳐다보자 가짜가 위엄 있는 척 명령했다.

1655108681459.jpg“신발이 낡았더군. 하녀라지만 내 방에서 일하는데, 되도록 좋은 걸 신고 일했으면 좋겠다.”

16551086814609.jpg“월급을 받으면 바로 신발부터 사겠습니다, 폐하.”

1655108681459.jpg“따로 말해둘 테니 하녀장에게 말해 하나 배급받아 가거라.”

16551086814609.jpg“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배려는 무슨. 웃기시네. 라틸은 침실을 빠져나오면서 비웃었다. 가짜는 라틸의 신발이 낡아서 배려한 게 아니었다. 이건 며칠 전에 산 신발이었다. 싸구려 신발이라지만 산 지 며칠 만에 낡을 리가 없다. 싼 신발은 뭐 비싼 신발보다 유달리 빨리 닳기라도 한단 말인가. 황제가 한 말은 다 핑계였다. 황제는 라틸이 신은 신발을 확인하려던 게 아니었다. 라틸의 신발을 벗기기 위한 거지. 즉, 황제는…….

16551086814609.jpg‘저 가짜의 변신 물품은 신발일지도 몰라. 자기 변신 물품이 신발이니까 나도 신발을 벗겨 보려 한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가짜의 신발을 벗기면, 가짜가 가짜란 걸 모두에게 알릴 수 있지 않을까? 계단을 내려가기 전. 라틸은 우뚝 멈추어 서서 고개를 돌렸다. 복도 끝. 마침 방문이 열리면서 레안이 나왔다. 너무나 사랑했던, 아직도 사랑하는, 그래서 더욱 용서할 수 없는 오빠가. 라틸은 확 몸을 돌려 얼른 계단을 내려갔다. 차가운 난간이 손바닥에 쏠리자 소름이 돋으며 가까스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16551086814609.jpg‘저 가짜의 신발을 벗겨야 한다. 하지만 무슨 수로? 가짜는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명령을 내리면 됐지만, 지금의 나는 가짜에게 명령을 내릴 수가 없는데?’

  * * * 그 시각. 소스란은 말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허벅지가 바스러지도록 말을 달린 끝에 드디어 서넛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소스란은 그를 부르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말을 멈춰 세운 채 초조하게 고삐만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1655108681459.jpg‘이를 어째.’

한발 늦었다. 저 멀리 서넛이 보이긴 하는데. 주위로 다른 사람들도 함께 보인 탓이었다. 그들은 황실 깃발을 매단 이들. 이 와중에 라트라실 황제가 자기 깃발을 단 다른 부하를 보낼 리가 없으니, 저들은 분명 가짜 황제나 레안 황자가 보낸 부하들일 터. 즉, 적들이었다. 하지만 서넛은 상대가 적들이란 걸 알 길이 없기에 차분하게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1655108681459.jpg‘폐하. 어쩌지요?’

소스란은 나무 둥치 뒤에서 초조하게 아랫입술을 물어뜯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그는 다시 고삐를 잡아챘다.

1655108681459.jpg‘미안하다 말아. 조금만 더 힘내자.’

  * * * 전혀 어색하지 않게 황제의 신발을 벗길 수 있는 사람은 두 부류다, 하나는 목욕 시중을 들어주는 이들. 다른 하나는…… 후궁들. 목욕 시중을 드는 건 시녀들인데, 라틸은 현실적으로 이들에겐 부탁할 수가 없었다. 신참 하녀가 시녀들에게 뭐라 부탁한단 말인가. 황제 폐하 발을 보고 싶어요? 퍽이나 들어주겠다. 아니, 그걸 떠나서 가짜가 시녀들에게 목욕 시중을 받을 리가 없었다. 신발을 벗으면 가짜란 게 들통날 테니.

16551086814609.jpg“하녀장님. 하녀장님. 질문 하나 해도 돼요?”

1655108681459.jpg“일에 관련된 거라면.”

16551086814609.jpg“폐하는 목욕할 때 혼자서 해요?”

1655108681459.jpg“그게 네 일과 관련 있니?”

16551086814609.jpg“언젠간 제가 도와드려야 할 수도 있잖아요.”

1655108681459.jpg“그건 시녀분들이 할 일이니 꿈 깨거라.”

16551086814609.jpg“꿈은 이루어진단 말 모르세요?”

1655108681459.jpg“폐하께선 그 고약한 흑마법사 사건 이후로 목욕할 때 시녀들이 가까이 오는 것도 꺼리게 되셨어. 그런데 신참 하녀인 걸 부르시겠니?”

혹시나 해서 하녀장을 떠본 라틸은 자신의 가설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 역시 신발을 벗지 않기 위해 목욕 시중을 안 받는 거야. 그렇다면 황제의 신발을 자연스럽게 벗길 수 있는 사람은 이젠 후궁뿐이었다.

16551086814609.jpg‘물론 가짜는 후궁들도 멀리하려 들겠지만, 뭐. 키스 같은 거 할 땐 신발 안 벗고도 할 수 있으니까, 미남들을 앞에 두면 경계심이 약해지지 않을까?’

칼라인. 칼라인은 가짜가 가짜인 걸 대번에 알아차린 건 물론, 정원에서 이쪽을 향해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내기까지 했지.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타시르는 라틸과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보냈으니 잘 얘기하면 이쪽이 진짜 황제란 걸 알 수 있을지도 모르고.

16551086814609.jpg‘우선 칼라인 도움을 받자.’

라틸은 결심하자마자 내내 칼라인을 만날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신참인 라틸이 다른 곳에 이동할 기회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퇴근하는 길. 안 되겠다 싶어서, 라틸은 퇴근하는 척 걸어 나가다가 다른 사람들이 안 보는 틈을 타서 다시 슬며시 안으로 들어와 옆길로 빠졌다. 나중에 일이 잘못될 경우, 퇴근하던 도중에 길을 잃었다 변명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3개월 내내 하녀로 지내면서 저 가짜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저 가짜가 신발을 이용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신발을 벗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 해 봐야지.

16551086814609.jpg‘젠장, 하필 신발이냐. 나처럼 가면이던가, 차라리…… 차라리…… 신발이 낫네.’

그렇게 슬쩍슬쩍 이동하는 사이, 라틸은 마침내 하렘 안으로 들어서는 데 성공했다. 흑마법사에 대한 소문으로 분위기가 흉흉하면 어쩌나 했는데, 안쪽은 비교적 이전과 비슷했다. 궁인들은 평소처럼 일했고 경계도 여전했다. 그리고 저 먼발치에서 저녁놀을 받으며 산책하고 있는 사람은…….

16551086814609.jpg‘칼라인.’

딱 잘됐다. 안 그래도 칼라인을 찾고 있었는데 칼라인이 산책 중이라니.

16551086814609.jpg‘칼라인이 날 알아볼까? 아까는 날 알아보고서 쳐다본 걸까, 아니면 처음 보는 하녀라 쳐다본 거였을까.’

어느 쪽이든 일단 접근해보자. 라틸은 결정을 내리고서 칼라인이 산책 중인 방향으로 슬며시 다가갔다. 하지만 다가가다 보니 걱정이 되었다. 다짜고짜 접근해서 “나 누군지 알겠어?”라고 했는데, 혹시 누군가 그 상황을 본다면? 그걸 보고 라틸을 의심한다면? 기껏 생긴 가면이 소용없게 되지 않을까? 고민 끝에 라틸은 바로 말을 거는 대신 물건을 떨어트린 다음 그걸 주워 달란 식으로 말을 걸기로 했다.

16551086814609.jpg‘없어!’

그러나 주머니를 뒤져도 떨어트린 척할 적당한 물건이 없었다. 그렇다고 옷을 벗어서 던지면 그냥 변태라고 생각할 거고, 신발을 벗어서 던지면 그것도 이상하고.

16551086814609.jpg‘아 씨.’

라틸은 주위를 황급히 둘러보다가 결국 앞에 있는 커다란 꽃봉오리를 뜯어서 그걸 칼라인의 발치로 툭 던졌다. 조용히 산책하던 칼라인은 커다란 왕꽃 하나가 자신의 발아래로 떨어지자 멈추어 서서 고개를 돌렸다. 그걸로 시선은 붙잡았으나 라틸은 속으로 욕을 뱉었다.

16551086814609.jpg‘젠장!’

칼라인에게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는데. 그 옆에 클라인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이 도움 안 되는 후궁 같으니라고. 언제 친했다고 둘이 같이 산책하는 거야? 게다가 클라인은 무슨 오해를 한 건지 꽃과 칼라인, 라틸을 번갈아 보더니 눈이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변했다. 머릿속에 매운맛 연극 한 편을 뚝딱 만들어 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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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라인이 허리를 굽혀 꽃을 들어 올리자, 어쩔 수 없이 라틸은 얼굴 낯짝을 두껍게 하고서 다가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16551086814609.jpg“죄송합니다, 칼라인 님. 실수로 제 물건을 떨어뜨렸네요.”

대답은 클라인이 옆에서 했다.

16551086856972.jpg“물건을 떨어뜨린 게 아니라 뜯어 던진 것 같은데. 날아오는 속도랑 각도가 떨어뜨린 게 절대 아니던데.”

이 눈치 없는 새끼야…… 클라인의 입에다가 꽃을 물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는 걸 꾹 참고서, 라틸은 그를 무시하고 칼라인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까 착각한 게 아니라면 분명 칼라인은 자신을 알아보는 듯했다. 그러니 이렇게 눈으로 물어보는 것이다. ‘나 알겠어?’ 하고. 라틸이 아는 칼라인은 정원에서 물 뿌리는 하녀를 멀뚱히 구경할 사람이 아니니까.

16551086856976.jpg“…….”

예상대로 칼라인은 라틸에게 꽃을 바로 돌려주지 않았다. 말없이 손바닥 위에 꽃을 올려놓고 같이 라틸을 바라보았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클라인도 도끼눈을 뜨고 칼라인과 라틸을 번갈아 보았다.

16551086856972.jpg“칼라인. 자네 설마 저 하녀가 진짜로 꽃을 떨어트렸단 말을 믿는 게 아니겠지? 아니야. 저 하녀, 분명히 이거 뜯어서 던졌어. 엄청 세게 날아왔다고. 저 밑에 흙 파인 거 봐. 넘어가지 마. 넘어가면 내가 폐하한테 다 이를 거니까.”

그 폐하가 나다 이놈아! 라틸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본 클라인은 고개를 기웃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저 하녀가 날 보면서 한숨을 내쉰 건가? 지금 저 하녀가 감히 나한테 한숨을 내쉰 건가? 대충 이렇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라틸은 클라인은 무시하고 칼라인만 집중했다. 칼라인. 쟤 말은 신경 쓰지 말고 날 알아봐. 빨리. 빨리.

16551086856976.jpg“그렇군요.”

마침내 칼라인이 중얼거렸다.

16551086856976.jpg“이걸 떨어뜨리셨군요.”

게다가 존댓말. 라틸은 확신을 가졌다. 날 알아봤어! 클라인도 칼라인의 존대가 이상하게 여겨지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16551086856972.jpg“자네 멍청이야? 저 여자가 꽃을 잡아 뜯어서 던진 거라니까?”

아니, 아니다. 존대는 신경도 안 쓰는 눈치다. 클라인이 멍청해서 다행이야, 라틸은 클라인은 무시하고서 칼라인을 들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칼라인이 저렇게 든든해 보일 수가 없었다. 칼라인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올라오더니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라틸에게 물었다.

16551086856976.jpg“또 떨어트릴지도 모르니 제가 들어다 드리겠습니다. 어디까지 가실 겁니까?”

16551086814609.jpg“창고요.”

거긴 사람이 적겠지. 라틸이 대답하자, 클라인이 이 하녀 이거 아주 대범하다고 입을 쩍 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칼라인은 클라인에게 먼저 돌아가라 말하고는 창고 쪽으로 앞서 걸어갔다.

16551086856972.jpg[칼라인 저거, 지금 불륜을 하려는 거야?]

얼마나 정신이 혼미해진 건지, 간만에 클라인이 속으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16551086856972.jpg[저 쉬운 놈 같으니라고! 용병왕이란 놈이 저렇게 가벼워서야!]

그래도 클라인이 저렇게밖에 생각을 못 해서 다행이었다. 이쪽이 흑마법사일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하는 눈치니까. 라틸은 한숨을 내쉬고서 칼라인을 뒤따라갔다.

16551086856972.jpg[아니, 이 사람들아! 나는? 난 어쩌고 둘이 가?]

마침내 인적 드문 창고에 도착하자 칼라인이 우뚝 멈추어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는 듯했다. 그러다 라틸이 바로 앞으로 다가오자, 그가 들고 온 꽃을 내밀었다. 라틸이 그걸 받아들자 칼라인이 묘한 눈길로 물었다.

16551086856976.jpg“주인. 어떻게 된 일입니까?”

16551086814609.jpg“나인 줄 어떻게 알았어?”

칼라인은 라틸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고 숨을 들이마시더니 얼굴을 비비적거리면서 중얼거렸다.

16551086856976.jpg“냄새가 다르니까요.”

16551086814609.jpg“혹시나 싶어서 하는 말인데.”

16551086856976.jpg“네…….”

16551086814609.jpg“개는 아니지?”

칼라인이 목덜미에 코를 댄 채 어깨를 떨었다.

16551086856976.jpg“아닙니다.”

16551086814609.jpg“일단 고개는 드는 게 좋겠어. 누가 보면 정말 불륜인 줄 알 거야. 그리고 부탁이 있어서 왔어.”

16551086856976.jpg“주인의 명령이시라면 어떤 것이든 따르겠습니다.”

16551086814609.jpg“그럼 신발을 벗겨줄 수 있어?”

16551086856976.jpg“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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