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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보송한 방울 단추 (117/367)

117화. 보송한 방울 단추2021.04.11.

습격자가 나타나고, 습격자를 잡자마자 누군가 박수를 친다? 클라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엔 망토를 입고 모자를 깊게 눌러써 얼굴을 감춘 이가 서 있었다. 누가 봐도 수상쩍은 모습에, 클라인은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바로 달려들며 발길질을 했으나 상대는 재빨리 다리를 피했다. 클라인이 또 그 움직임을 쫓으면서 상대의 멱살을 잡았으나, 상대는 이번에도 몸을 피했다. 그러나 망토 자락이 잡아 당겨지면서 상대의 얼굴이 드러났다.

1655109745378.png“너……!”

드러난 얼굴을 알아본 클라인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는 카리센에서 와 있는 대리공사였다.

1655109745378.png“미쳤구나. 남의 나라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린 클라인은, 곧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단 듯이 “경비!”하고 외쳤다.

16551097453792.jpg“후궁보단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대리공사는 달아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서 클라인에게 말을 걸었다.

1655109745378.png“뭐?”

클라인이 눈살을 찌푸리고 내려다보자, 대리공사는 방긋 웃으면서 한 번 더 또박또박 말했다.

16551097453792.jpg“‘공작님’께서는 클라인 황자님의 뛰어난 재주가 후궁 자리에서 묻히긴 아깝다고 하셨지요.”

1655109745378.png“다가 공작?”

클라인은 공작 소리에 인상을 확 구겼으나, 대리공사는 자기가 말한 공작이 어느 공작인지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고 그를 빤히 보았다. 클라인은 그 뻔뻔한 태도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1655109745378.png“미친 건가. 감히 그런 말을 입에 올려?”

이윽고 목소리가 스산해지면서 클라인은 대리공사의 멱살을 확 잡아당겼다.

1655109745378.png“반역죄로 처벌해 버릴 거다.”

16551097453792.jpg“후궁 자리에 있는 황자님께 국서 자리를 노려보지 않겠냐 여쭌 겁니다. 자국인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 아닌가요?”

그러나 대리공사는 멱살이 잡혀 목소리가 떨리는 와중에도 여전히 미소한 채 헛소리를 계속했다.

1655109745378.png“그런 거라면 다가 공작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겠지.”

그 말은 정치와 담을 쌓고 사는 클라인에게도 가당치 않게 들렸으나, 대리공사는 무슨 배짱인지 내내 태연했다.

16551097453792.jpg“네, 그래서 다가 공작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1655109745378.png“그딴 말장난에 넘어갈 거 같으냐.”

클라인은 코웃음을 터트리고서 대리공사를 확 밀쳤다. 뒤로 넘어지게 생긴 대리공사가 황급히 손을 뻗어 클라인의 망토 끈을 잡았으나, 고작 얇은 끈만으로 자신의 무게를 지탱할 수는 없었다. 대리공사가 뒤로 쿵 쓰러지자, 클라인은 차갑게 그 꼴을 내려다보며 다시 경비를 부르려 했다.

16551097453792.jpg“타리움에 와 있는 자국 외교관을 함부로 처벌하는 건 타리움 제국을 무시하는 행동이기도 하지요.”

1655109745378.png“!”

대리공사가 ‘어떻게 할 거냐’는 듯이 웃는다. 그 모습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더욱 열이 받은 클라인은 자제했던 거친 말버릇을 뱉고 말았다.

1655109745378.png“새끼가……?”

눈가가 포악해진 클라인은 있는 힘을 다해 대리공사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16551097453792.jpg“전하.”

그러나 어디선가 나온 악시안이 클라인을 뒤에서 붙잡는 바람에, 클라인은 목표한 옆구리를 제대로 차지 못했다. 발이 아슬하게 대리공사의 몸을 스쳐 지나가자, 클라인은 화가 나서 확 돌아보았다.

1655109745378.png“놔라.”

16551097453792.jpg“바닐이 전하께 가보라 해서 왔습니다.”

1655109745378.png“말리지 마라.”

클라인이 험악하게 명령했으나, 악시안은 그를 놓지 않고 차분하게 달랬다.

16551097453792.jpg“저자의 말이 맞습니다. 공개적으로 처리할 일은 아닙니다.”

1655109745378.png“악시안!”

16551097453792.jpg“카리센의 내분을 보여주는 꼴입니다. 자중하십시오.”

1655109745378.png“이 새끼가 뭐라 했는지…….”

16551097453792.jpg“들었습니다.”

악시안의 어두운 눈을 본 클라인은 그도 자신만큼 화가 났단 걸 알아차렸다. 그런데도 이렇게 나온다는 건 대리공사에게 화풀이하는 게 정말로 카리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단 거였다. 나라에 도움이 되진 못해도 나라 망신은 시키고 싶지 않았던 클라인은 마지못해 확 돌아섰다.

1655109745378.png“네 말이 맞다. 저자는 언제든 처벌할 수 있지. 아니면 형님에게…….”

말을 해도 좋고, 라고 말을 이으려 했으나 뒤에서 풍겨오는 짙은 피 냄새가 클라인의 입을 저절로 다물게 했다. 놀란 클라인이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일어선 대리공사가 아까 습격자가 떨어트린 칼로 자신을 찌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 위치는 심장.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은 대리공사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16551097453792.jpg“괜한 오해를 살지 모르니 자리를 피해야겠습니다.”

악시안은 서둘러 클라인을 데리고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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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655109745378.png“죽었겠지?”

자리를 피한 클라인이 싸우느라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다듬으면서 묻자, 악시안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바로 끄덕였다.

16551097453792.jpg“죽었을 겁니다. 정확히 심장을 찔렀으니까요.”

1655109745378.png“미친 새끼. 뭐 하잔 거야?”

16551097453792.jpg“뭐라 하던가요?”

1655109745378.png“들었다면서?”

16551097453792.jpg“제가 들은 건, 함부로 타국에 온 외교관을 처벌하는 건 타리움 제국을 무시하는 행동이란 것뿐입니다.”

1655109745378.png“다 들은 게 아니잖아?”

클라인이 황당해서 묻자 악시안은 당연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16551097453792.jpg“거기서 뒷부분만 들었다 할 수도 없잖습니까. 설마 그 자리에서 죽어버릴 줄은 몰랐으니까요.”

클라인은 짜증스럽게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화가 치솟았다.

1655109745378.png“다가 공작이 보냈대. 나더러 후궁 말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지 않냐 묻더라.”

16551097453792.jpg“높은 자리?”

1655109745378.png“내가 거절하니 국서 자리를 말한 거라 둘러대던데, 그럴 리가. 보나 마나…….”

악시안이 하이신스의 측근이란 걸 떠올린 클라인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하이신스가 그러진 않겠지만, 사이가 나쁜 형제라면 자신의 이복형제가 이런 제안을 받았단 것만으로도 위협으로 느낄 수도 있었다. 이 생각을 하자 더욱 화가 난 클라인은 아까보다 더욱 성질을 부렸다.

1655109745378.png“어쩐지. 간이 배 밖에 나오지 않고서야 저런 말을 쉽게 한다 했더니, 아예 죽을 작정을 하고 왔을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절을 시킬걸!”

16551097453792.jpg“다가 공작이 뭘 원하는 걸까요.”

1655109745378.png“형님이 자기 뜻대로 안 움직이고, 자기 피를 이은 후계자도 태어날 것 같지 않으니 꼭두각시를 바꾸고 싶은 거겠지. 아니면 나와 형님 사이를 이간질하거나!”

16551097453792.jpg“그럴까요?”

1655109745378.png“그 외엔 다른 이유가 없잖아?”

16551097453792.jpg“…….”

1655109745378.png“뭐야. 다른 이유가 있어?”

16551097453792.jpg“그런 이유라면 굳이 클라인 황자님이어야 할 이유가 없어서요.”

1655109745378.png“무슨 소리야?”

16551097453792.jpg“다른 이복형제자매들이 있는데, 굳이 클라인 황자님을 골라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이미 다른 나라 황제의 후궁이 된 분을요? 오히려 가장 까다로운 상대인데?”

그런가? 이런 문제는 잘 알지 못하는 클라인은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돌연 목덜미 부근을 손으로 빠르게 더듬거렸다. 그러더니 낯빛이 파랗게 질리자, 악시안이 덩달아 놀라 물었다.

16551097453792.jpg“왜 그러십니까?”

1655109745378.png“없다.”

16551097453792.jpg“네?”

1655109745378.png“내 방울 단추!”

클라인은 망토를 여미는 끈을 들어올렸다.

1655109745378.png“여기에 방울 단추가 달려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

16551097453792.jpg“!”

1655109745378.png“혹시 대리공사가 나랑 싸울 때 뜯었나?”

악시안은 당황해서 두 사람이 떠나온 쪽을 보았으나 이미 그곳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을 터. 확인하러 갈 수가 없었다.

16551097453792.jpg“안 됩니다. 지금 찾아보러 갈 수는 없습니다.”

1655109745378.png“젠장!”

16551097453792.jpg“그리고 지금 하렘에 돌아가는 것도 안 됩니다. 다들 이상하게 여길 겁니다. 망토는 제게 주시고 황자님은 연회 장소로 돌아가세요.”

1655109745378.png“하지만…….”

16551097453792.jpg“이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없어진 단추에 상징적인 문양이 있습니까?”

1655109745378.png“아니. 그건 아닌데.”

클라인은 낯빛이 하얗게 질려서 자신의 얼굴을 한 손으로 쓸었다.

1655109745378.png“황제 폐하께서 이 망토를 내게 직접 입혀 주셨어. 모양을 기억할지도 몰라.”

  * * * 악시안이 일단 망토를 처리하겠다며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자, 클라인은 인적이 없는 길을 골라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사람들의 시선은 소란스러운 곳에 쏠려 있어서, 클라인은 슬그머니 연회장 구석으로 가서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리공사가 뜯어갔을지도 모를 방울 단추 생각에 초조해져서 연신 입술을 깨물게 되었다.

1655109745378.png‘그자가 뜯어간 게 맞을까? 아니면 그냥 줄이 끊어져서 바닥을 굴러다니는 건 아닐까? 습격자……는 아닐 거다. 그자는 너무 약했어.’

클라인은 한 자리를 뱅글뱅글 맴돌면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들이 대체 무슨 증거를 가지고 있을지, 그들이 무슨 말을 나누고 있을지 두려웠다.

1655109745378.png‘피해서 될 일이 아니다.’

마침내 그는 용기를 내어 사람들이 몰린 곳으로 다가가 보았다. * * * 그 사이. 망토를 챙겨 하렘으로 돌아온 악시안은 그걸 태울 만한 곳을 찾았다. 하지만 여름이라 불을 피워둔 곳은 조리실 뿐이었다. 그렇다고 조리실에서 망토를 태울 수도 없었다. 조리실에는 온종일 사람들이 떠나지 않으니, 그곳에 가서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여길 터. 악시안은 초조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클라인의 방 근처로 갔다.

16551097453792.jpg“뭐 하세요?”

마침 클라인의 방 안을 청소 중이던 바닐은 악시안을 발견하고서 물었다.

16551097453792.jpg“전하 곁에 있어 달라니까요?”

16551097453792.jpg“이걸 묻어야 한다. 나중에 태우더라도. 빨리.”

16551097453792.jpg“네?”

16551097453792.jpg“사정은 나중에.”

바닐의 눈이 악시안이 품에 든 망토로 향했다.

16551097453792.jpg“이거 제가 황자님께 드린……?”

16551097453792.jpg“나중에.”

바닐은 영 의아한 얼굴이었으나, 악시안이 허튼소리를 한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알기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16551097453792.jpg“그럼 개인 정원에 묻죠. 거기는 오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 * *

16551097649206.png“클라인은 어디 갔지? 클라인?”

오늘 하루종일 옆에 붙여두려 했는데, 얘가 그사이에 어디로 간 거야?

16551097649206.png“클라인!”

라틸은 클라인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달려가는 건 알았으나 라틸이 있는 쪽에서는 비명이 거의 들리지 않았기에, 라틸은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보기보다는 클라인을 먼저 찾았다.

16551097649216.png“폐하.”

그러고 있자니 서넛이 다가와 라틸을 불렀다.

16551097649206.png“서넛 경. 클라인 봤습니까?”

라틸은 잘됐다 싶어서 얼른 물었다. 그러나 서넛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라틸은 바로 무슨 일이 터졌단 걸 알아차렸다.

16551097649206.png“왜요?”

16551097649216.png“카리센 대리공사가 죽었습니다.”

16551097649206.png“그게 무슨…… 어쩌다가요?”

16551097649216.png“가면서 설명하겠습니다.”

라틸이 사람들이 몰린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서넛은 나란히 걸어가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빠르게 설명했다.

16551097649216.png“심장을 찌른 건 대리공사 본인입니다. 더 자세히 수사해 봐야겠지만, 칼을 쥔 방향을 보아선 그렇습니다. 문제는…….”

16551097649206.png“대리공사가 연회 도중에 죽은 것보다 더 문제가 있습니까?”

16551097649216.png“그 근처에 싸운 흔적이 있습니다.”

16551097649206.png“좋지 않네요.”

16551097649216.png“예. 게다가 적에게서 뜯어낸 걸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쥐고 있었습니다.”

사건 장소에는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들어서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라틸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얼른 양옆으로 물러났다. 라틸은 서넛을 데리고 안쪽으로 가보았다. 서넛의 말처럼 대리공사가 쓰러져 있었다. 칼의 방향, 싸운 듯한 흔적까지 모두 다 서넛이 설명한 그대로. 그리고……. 라틸은 허리를 숙여서 직접 대리공사가 꽉 쥐고 있는 손을 벌렸다. 손은 바로 벌어졌다. 손바닥이 펼쳐지자 그 안에 있던 게 모습을 드러냈다. 보송한 방울이 달린 단추. 라틸은 두 손가락으로 그걸 들어 올리며 빤히 바라보았다.

16551097649206.png‘클라인 옷에 비슷한 게 달려 있었던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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